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91
91화. 무대 밖의 영웅
헌터 소집 명령이 끝나고 며칠 뒤.
구지상은 박이원의 부름으로 구원 길드장실에 향하고 있었다.
박이원이 왜 불렀는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긴장한 마음으로 길드장실에 들어갔다.
길드장실에 들어가자, 의자를 돌린 채 앉아있는 박이원이 보였다.
앉으라는 권유도 없었다. 박이원은 구지상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지상아, 왜 선발대에 들어가겠다고 말하지 않았어?”
이건 박이원이 화났다는 증거였다.
구지상은 박이원의 기분을 풀기 위해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형! 선발대에 안 들어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 선발대에는 나만큼 강한 이유영 씨도 있고, 나는 남아있는 게 더 좋을걸?”
구지상은 대답하면서도 이 말이 박이원의 기분을 풀 수 없을 거라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야 의자를 돌려 구지상과 마주한 박이원은 면전에다가 한숨을 쉬었다.
구지상은 이제 박이원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지상아, 네가 이러면 우리 구원 길드 무너지는 거 순식간이야. 난 그게 너무 힘들다.”
요즘 들어 박이원이 구지상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구지상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죄책감 같은 무거운 감정이 자꾸 심장을 괴롭히는 듯했다.
무슨 대답이라도 하기 위해 입을 움직이던 구지상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난 아직도 네가 에덴에 안 갔던 거 이해가 안 돼. 에덴 길드장 기분 맞춰주는 게 많이 힘든 일은 아니잖아, 그간 네가 해왔던 일들에 비하면.”
“….”
“지상아, 나는 우리 길드가 이대로 흔들리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우리만큼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거야. 우린 구원 길드니까.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우리를, 너를 믿고 있어.”
‘넌 대한민국의 영웅이잖아.’
박이원이 마지막으로 한 그 말은 구지상을 괴롭게 했다. 구지상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말로 꺼내 보면 알 수 없는 괴로움을 동반했다.
“……미안해, 형.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결국 구지상의 사과로 대화가 마무리됐다.
엄마한테 혼날 때처럼, 선생님한테 벌 받을 때처럼, 구지상의 사과가 있어야 이 훈계는 끝이 났다.
언제나 그랬다. 이러한 상황에 길들여진 구지상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박이원은 구지상이 헌터가 되기 전, 아이돌 매니저로서 함께해온 가족 같은 사람이다.
가족보다도 박이원과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고, 힘들 때도, 기쁠 때도 함께한 사이였다. 그만큼 믿고 따르는 형이었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박이원의 말에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던전이 모두 사라지는 그날까지?
던전이 전부 사라진 세상이 오긴 할까. 그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영웅은 보통 어떻게 결말을 맺지? 죽을 때까지 영웅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죽을 때에도 영웅일까. 그럼 사람들도 실망하지 않을까.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최고 속력으로 달리는 기분이었다.
구지상은 그러다 가끔 핸들을 틀어 도로를 벗어나 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대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평범하게 밥을 먹고, 거리를 걷다가,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구지상은 구원 길드장실을 나오며, 복잡해진 마음을 갈무리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영웅인 구지상까지 나약해져선 안 된다. 이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박이원도 언젠가 마음이 풀어질 테니, 그동안 구지상이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구지상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마치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려줄 것만 같은 전화였다.
***
구지상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이유영이었다.
이유영은 할 말이 있어서 구원 길드로 오겠다고 했는데, 구지상은 자기가 이유 길드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마침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고, 그냥 그 길드에 가고 싶었다.
이유 길드 앞에 도착한 구지상은 잠시 서서 그 건물을 바라봤다.
고등학교 앞에 있어서 그런가. 아이돌 연습생을 하느라 학창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는 구지상이지만, 이곳은 친숙함과 알 수 없는 편안함을 줬다.
“어, 저 사람….”
고등학교 앞인 만큼, 구지상이 모자를 눌러 쓰고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구지상은 서둘러 이유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윤지석 사무장과 이유영, 고주연이 구지상을 반겨줬다.
이유영은 구지상의 손에 들려있던 것들을 보면서 말했다.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근데 그건 뭡니까?”
구지상은 저번에 빈손으로 왔던 게 걸려서, 이번엔 구원 길드 근처의 유명한 가게에서 커피와 간식거리를 사 왔다.
이유 길드원과 사무장 몫의 케이크 네 개와 밀크티 두 잔, 커피 두 잔이었다.
“선물이에요! 팬분들이 여기가 맛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유영한테 전해주자, 이유영은 모르는 곳이었는지 다시 사무장한테 넘겼다.
사무장은 곧바로 알아본 듯, 살짝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여기 구원 길드 근처에 있는 맛집 아니에요? 이걸 구지상 씨가 우리 길드를 위해? 과분하다, 과분해.”
“아시는구나! 여기 완전 맛있어요.”
구지상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자, 윤지석은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윤지석의 요청으로 구지상이 셀카를 찍는 사이, 이유영은 케이크를 고주연에게 나눠줬다. 고주연은 밀크티를 한 잔 챙겼고, 이유영은 커피를 챙기고 있었다.
구지상은 힐끗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예상이 통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이유영은 커피, 고주연은 밀크티를 고를 거라고 생각하고 고심해서 산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영은 자기 몫의 케이크와 커피를 들고 말했다.
“사무장님, 이제 구지상 씨 놔주시고 케이크 드시죠. 한 개는 준성이 몫으로 남겨주시고요.”
“진준성 이 불쌍한 녀석, 구지상 씨가 선물해주는 장면을 못 보다니.”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이유영이 자기 몫을 반으로 나눠서 두 개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영은 응접실로 구지상을 안내하며, 반씩 던 것들을 내밀었다.
“지금 제가 부탁할 게 있는 입장이라 마냥 얻어먹을 수가 없습니다. 나눠 먹죠.”
정말 그래서인 걸까?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이유영은 무뚝뚝하면서도 사람을 참 잘 챙겼다. 본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딱히 부탁할 게 없어도 분명 자기 몫을 나눠서 구지상에게 줬을 것이다.
“에이, 이유영 씨 위해서 사 온 건데! 반만 먹고 무슨 맛인지는 알겠어요? 전 평소에 자주 먹어서 괜찮아요.”
“그냥 드세요. 그래야 저도 부탁을 할 거 아닙니까.”
이유영의 말에 구지상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이유영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사실 친절한 사람은 아닌 건지 헷갈렸다.
구지상이 마지못해 케이크를 먹는 걸 보고 나서야, 이유영은 본론을 꺼냈다.
“저번에 제가 던전 끌고 가놓고, 이후 후처리를 전부 떠맡게 해서 면목이 없네요. 고맙습니다. 구지상 씨 덕분에 편히 쉬고 잘 나았습니다.”
사실 구지상은 이런 감사 인사는 처음이었다. ‘역시 구지상’이라든가, ‘대단해요’라는 찬사는 많이 들었지만 이런 담백한 감사 인사는 처음 들어봤다.
구지상은 당연한 건데 마음 쓰지 말라는 말을 하려다가, 관뒀다.
“함께 싸운 동료인데 그 정도는 맡겨도 돼요! 그걸 가르쳐준 게 이유영 씨잖아요?”
이유영은 구지상에겐 혼자 싸우려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왔던 구지상이었기에 이유영의 그런 모습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중요한 부분에서 구지상과 달랐다.
“동료였으니까 고맙다고 하는 겁니다. 혼자서 그 뒤처리를 다 하게 했는데, 고맙다는 말도 못 합니까?”
감동 받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이유영의 반응은 냉랭했다.
구지상보다 고작 2살 많으면서 한 십 년은 더 살아온 어른 같은 태도였다.
그냥 성격이 달라서 그런 걸까? 볼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이유영 씨는 참 신기한 사람이네요.”
이유영은 내가 왜 너한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냐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딱히 포커페이스를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떨 땐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을 만큼 표정을 잘 숨긴다.
하여튼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부탁은 어떤 거예요? 방금 그 말이 부탁은 아니죠?”
구지상의 질문에 이유영은 다소 심각해졌다.
무슨 부탁이길래 저러는 걸까, 이번 던전과 관련된 부탁인 걸까?
이유영은 고민 끝에 한마디 꺼냈다.
“제가 던전에 가 있는 동안 종종 저희 길드에 좀 와 줄 수 있습니까? 이런 걸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구지상 씨밖에 없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구지상은 금방 이유영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고주연과 이유영이 모두 자리를 비우면 이유 길드에는 미성년자인 진준성과 민간인인 윤지석 사무장만 남게 된다.
수호 길드도 대거 선발대로 투입되었으니, 지금은 길드를 돌봐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는 듯했다.
구지상은 문득, 이걸 심각하게 말하는 것도 웃겼고 그걸 자기한테 부탁하는 것도 웃겨서 크게 웃었다.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한테 하는 부탁이 고작 길드에 종종 놀러 와 달라는 거라니.
이유영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구지상을 보고 있었는데 그것조차 웃겼다.
한참 웃던 구지상은 삐져나온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 너무 웃기다. 사무장님이랑 진준성 헌터가 걱정되어서 그러시는 거죠?”
“그게 그렇게 웃을 일입니까?”
“이유영 씨 지금 표정 완전 심각한 거 아세요? 거울 보면 이유영 씨도 웃을걸요?”
구지상의 말에 이유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이렇게 심각하게 부탁하지 않아도, 구지상은 선발대가 던전에 들어가면 수호 길드와 이유 길드를 자기가 책임지고 지켜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구지상이 던전 밖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주 놀러 올 테니까 걱정 마세요! 사무장님이랑 준성이한테 제가 와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말해놓으실 거죠?”
“물론입니다. 그 두 사람이 구지상 씨가 유명인이라서 좀 과하게 구는 면이 있는데, 그냥 무시하세요. 너무 맞춰주지 마시고. 참, 바깥에 피아노 있으니까 심심하면 그거 쳐도 됩니다.”
아이 육아를 부탁하는 것처럼 말하는 이유영의 태도는 여전히 웃음이 나왔다.
구지상은 반 덜어진 커피와 케이크가 놓였던 접시를 보며 잠깐 생각했다.
만약, 이 길드에 들어온다면 이 모든 것들이 일상이 되는 걸까.
이런 사소한 배려나 평범한 이야기들, 작은 즐거움들이 일상이 된다면 어떨까.
분명,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