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악마의 미궁 (3)
정하나는 던전 부산물을 섞어 만든 텐트와 침낭을 공략대원에게 나눠주며 야영을 준비했다.
수호 길드에서 공략대원들 몫을 전부 준비해온 덕에 순조롭게 잘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하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철저한 준비성이야말로 수호 길드의 장점이지.”
“맞습니다, 길드장님!”
수호 길드원들이 정하나를 치켜올려 주는 사이, 나는 고주연과 김신욱, 솔로 헌터들과 함께 텐트를 세웠다.
대체로 길드 단위로 온 덕에, 솔로 헌터 두 명과 우리가 한 텐트에서 지내게 되었다.
김신욱은 텐트를 세우자마자 안에 침낭을 펼치며 누워버렸다.
“아, 살 것 같네.”
“일어나, 아직 할 거 남았어.”
“딱 1분만 누워있다가 일어날게.”
고주연이랑 다른 헌터들도 지친 건지 김신욱을 따라 펼친 침낭 위에 앉거나 누웠다.
솔로 헌터 한 명만 자리에 앉아 무기 점검을 할 뿐이었다.
김신욱은 그대로 잠든 건지 어느새 숨소리만 내고 있었고, 고주연도 앉아서 졸다가 결국 자리에 누웠다.
내일 일정부터 불침번 순서까지 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내 생각보다 사람들이 피로해 보여서 조금 이따가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무기를 점검하던 한 중소길드 헌터들이 정하나에게 가는 게 보였다.
귀를 기울이자, 정하나와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 길드장님, 불침번은 어떻게 섭니까?”
“두 명씩 1시간마다 돌아가면서 설 거야. 이유영이랑 얘기하고 전달해줄게.”
저걸 내가 아닌 정하나에게 묻는 걸 보니, 아직 내가 리더로서 신뢰를 얻지는 못한 듯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는 걸 확인한 뒤, 정하나에게 가서 불침번과 다음 날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하나와 내가 회의를 마치자, 수호 길드원들이 공략대원들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
불침번이 몇 번 바뀌고 나서야 대부분의 공략대원이 잠이 들었다.
김신욱이나 고주연처럼 일찍 잠이 든 헌터들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긴장감 때문에 쉽게 잠들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는 불침번을 맡은 사람들과 함께 밤을 새웠다.
생명의 의지가 있는 나는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고, 이 밤 동안 해야만 하는 일도 있었다.
악마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얻어둬야 하는 물건이 있었다. 그 물건을 가진 몬스터는 새벽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춰야 했다.
고주연이나 정하나가 안 자면 데려가려고 했는데, 두 사람 다 정신없이 자고 있어서 혼자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별로 강한 몬스터는 아니라 나 혼자 상대해도 충분했다.
나는 불에 마른 풀을 더 집어넣으며, 그 몬스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불침번들은 깨어있는 나를 신경 쓰는 듯했으나, 대체로 그러려니 넘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몇 시간이 더 흐른 뒤, 드디어 몬스터가 나타날 징조가 나타났다.
동굴 근처에 있던 커다란 핏빛 호수에서 옅은 붉은 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솟은 붉은 빛을 발견한 것은 나와 불침번 둘, 그리고 안 자고 있던 솔로 헌터까지 총 네 명이었다.
나는 불침번을 서고 있던 둘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정찰하고 오겠습니다. 두 분은 만약을 대비해 계속 동굴을 지켜주세요.”
“혼자 가시려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 조금 겁먹은 듯했다. 사실 혼자 가도 충분한 일이고, 굳이 다른 헌터들을 깨울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나만 움직이면 더 불안해하겠지.
나는 불침번 둘에게는 경계만 하고 있을 것을 요구하고, 깨어있던 솔로 헌터, ‘강삼’에게 다가가 말했다.
“체력 괜찮으십니까? 저 빛이 나는 쪽을 확인하러 같이 가주셨으면 해서요.”
강삼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날 쳐다봤다.
옷도 전부 까맣고 머리와 수염도 덥수룩하게 길러 무섭게 생긴 인상이라, 뭔가 화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삼은 곧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무기로 보이는 것을 챙겼다. 그냥 말수가 적은 사람인 듯했다.
나는 강삼과 나가기 전 불침번에게 말했다.
“만약 제가 2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정하나 길드장을 깨우세요. 단독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강삼과 함께 붉은 빛이 나는 호수로 향했다.
20분이면, 저 호수 안에 있는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아이템을 가져오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만약 이 강삼이라는 사람이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강삼은 내게 선두를 양보하며 한 걸음 뒤에서 나를 따라왔다.
무기로 보이는 검은색 장우산을 한 팔에 끼우고, 딱 한 걸음의 거리를 유지했다.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척도 없어서, 영화에나 나오는 살인마랑 걷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분위기를 풀자고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나와 강삼은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호수까지 걸어갔다.
마침내 호수에 다다르자, 이곳이 수상한 빛의 근원지라는 것을 알리듯 물밑에서부터 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호수가 피 웅덩이처럼 붉었던 탓에 빛 역시 붉은색으로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호수의 빛이 일렁이며 물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강삼을 향해 말했다.
“몬스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악마의 성 앞에는 제단이 하나 놓여 있는데, 성문을 열려면 이 호수의 주인이 갖고 있는 항아리를 가져가 제단에 올려두어야 했다.
항아리는 이 호수의 주인이 밑바닥에 숨겨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호수는 녀석을 물리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어,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고 봐야 했다.
강삼은 내 말을 듣고는 처음으로 입을 열고 말했다.
“네가 약점을 노려라. 나는 뒤에서 보조해주마.”
“실례지만 무슨 스킬을 쓰십니까?”
“직접 보여주겠다.”
그는 들고 있던 검은 우산을 장총처럼 들더니, 호수를 향해 겨누었다.
그러자 우산의 끝이 총구로 변하며, 마치 소음기를 단 총을 쏜 것처럼 조용하고 깔끔하게 탄환이 발사됐다.
팅!
그가 쏜 탄환이 호수 안에 들어가자, 물속에서 커다란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며 거대한 그림자가 호수에서 솟아올랐다.
『쿠오오오오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호수의 주인인 붉은 몸을 가진 연체동물로, 흔히들 ‘크라켄’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회귀 전 마주했었던 문어 모습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따로 기록을 살펴보지 않아도 놈에 대한 정보가 금방 떠올랐다.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크게 포효했다.
나는 강삼의 앞에 서며 말했다.
“그럼 강삼 씨께선 다리를 저격해 공격을 견제해 주세요. 전 머리를 노리겠습니다.”
“알았다.”
저 문어의 약점은 머리다.
머리를 공격한다면 이 녀석은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저 녀석의 생명력이 제법 질기다는 점이었다. 단순한 저격으로는 놈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완전히 머리를 두 동강 내야만 했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녀석은 위협적으로 다리를 휘둘렀다.
나는 녀석의 다리를 피해내며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쾅!
녀석이 다리를 휘두른 자리에 있던 나무들은 싸그리 부서졌다. 확실히 SS급 던전의 몬스터 다운 위력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중간 보스급도 안되는 잡몹이다. 이 정도에 주춤해선 안된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나는 스킬을 발동해, 녀석의 거대한 머리를 목단의 줄기로 옭아맸다.
내 손에서부터 뻗어 나온 유연하고 질긴 줄기가 문어 대가리를 빠른 속도로 휘감았다.
녀석은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향해 마구잡이로 다리를 휘둘렀고, 나는 공격을 피하며 녀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팅! 팅!
뒤에선 강삼이 적절한 타이밍에 총을 발사해 몬스터의 다리를 튕겨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하거나 쳐내며, 사격 지원을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실력이 좋은데, 왜 처음 보는 얼굴이지?’
나는 우선 눈앞의 놈에게 집중하며, 화왕검을 소환했다.
크라켄은 나를 막으려는 듯 커다란 다리로 목단의 줄기를 끊어내려고 했다. 다리의 힘이 꽤 강력해서 목단의 줄기에서 투둑 소리가 나며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때, 강삼이 말했다.
“길을 터주겠다.”
강삼은 검은 우산을 어깨 위에 올리더니, 크라켄의 거대한 다리를 조준했다.
우산은 바주카를 쏘듯 커다란 발사구를 만들어내며, 날렵한 미사일을 발사시켰다.
투쾅!
엄청난 폭발력에 두꺼운 다리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단순히 우산을 총으로 바꾸는 스킬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눈앞의 뚫린 길을 달려 나가며, 녀석의 머리를 휘감은 목단의 줄기를 밟고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곧장 화왕검에 목단의 줄기 스킬을 담아, 기다랗게 자라난 녹빛의 검날을 녀석의 머리에 박아 넣었다.
푹!
이어서 검날로 살갗을 찢으며, 검을 휘둘렀다.
검날에서 뻗어나간 녹빛의 검기는 녀석의 머리를 가르며 뻗어나갔다. 그 상처의 틈으로 호수의 물처럼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쿠어어어어어어!』
나는 뒤에 있던 강삼에게 외쳤다.
“피하셔야 합니다!”
이 피는 호수를 붉게 물들인 원인으로, 산성을 띠고 있었다.
방어력이 약한 헌터라면 상처를 입을 것이다.
물론, 생명의 의지를 갖고 있고, 방어력도 A인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강삼은 검은 우산으로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쏟아지는 핏물을 구경하듯 보더니, 우산을 쭉 펼쳐 썼다.
후두둑 떨어지던 핏물은 그 검은 우산에 간단히 튕겨져 나가며 강삼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대체 무슨 스킬을 갖고 있는 거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헌터지만, 강삼은 꽤 뛰어난 전투 센스를 갖고 있었다.
첫 번째 던전브레이크 당시에 각성해서 지금까지 죽어라 던전을 공략해야만 나올 수 있는 노련함이었다.
그런 솔로 헌터라면 길드들이 스카웃하려고 해서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볼 법도 한데, 낯설었다.
회귀 전에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뭔가… 분위기가 묘해.’
그에게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나 그것은 카리스마나 위압감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불쾌한 공포심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어찌 됐든 강삼의 서포트 덕에 크라켄은 쉽게 재가 되어 사라졌다.
녀석이 사라지자, 핏빛으로 물들어있던 호수는 투명하고 깨끗하게 변했다.
맑은 호수 아래에는 크라켄이 숨겨놓은 항아리가 보였다.
나는 곧바로 잠수해서 그 항아리를 들고 나왔다.
항아리는 욕망이 가득 들어찬 얼굴 무늬가 새겨진 불길한 아이템이었다.
들고 다니기 상당히 꺼린 생김새였으나, 이 항아리가 있어야만 악마의 성 문을 열 수 있다.
나는 물기를 털어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강삼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강삼은 이번에도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이상한 항아리를 보고도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호숫가를 벗어나기 전, 그에게 물었다.
“강삼 씨는 여태 솔로 헌터로 활동해오신 겁니까?”
그는 한참 나를 보기만 하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동굴로 돌아가며 그에게 어디서 활동했는지 등을 물었지만, 강삼은 무시하거나 고갯짓으로만 대답했다.
결국 강삼에 대해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동굴 근처에 오자마자, 김신욱과 정하나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래서 안 나가겠다고? 걔네 다 뒤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냐?”
“언니, 지금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거야?”
당연히 두 사람이 싸우는 거라 생각했건만, 보니까 오히려 둘이서 편을 먹고 싸우고 있었다.
심지어 싸우는 상대는 안수연과 이용건이었다.
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