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악마의 미궁 (4)
이유영이 강삼과 함께 항아리를 구하러 나가고 얼마 후.
김신욱은 묘하게 공기가 쌀쌀해진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오자마자 불부터 피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꼭 불이 꺼진 듯이 추웠다.
이렇게 쌀쌀한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김신욱은 불 좀 피우라고 옆자리에 있는 사람을 깨우려 했으나,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신욱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밖으로 나갔다. 도저히 추워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텐트 밖으로 나오니 불이 꺼져 있었다.
“왜 불 다시 피우는 놈이 하나도 없어?”
투덜거리며 잠시 생각해보니, 분명 불을 지키고 있던 녀석이 있었다.
김신욱은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깐씩 깨어날 때마다, 불 앞에 있던 이유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불 앞에는 그 이유영이 없었다.
‘얘 어디 갔냐. 텐트에 없던데. 다른 텐트에서 자나?’
김신욱은 다른 텐트들을 뒤적거리며 이유영을 찾았다.
그러나 이유영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행적을 알 만한 사람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김신욱은 고주연이 자고 있는 텐트를 찾아가, 고주연을 깨웠다.
“이봐요, 고주연 씨!”
다행히 고주연은 김신욱의 부름에 눈을 떴다. 김신욱의 외침에 고주연과 함께 자고 있던 다른 헌터들도 잠에서 깨어났지만, 그건 김신욱의 알 바가 아니었다.
김신욱은 잠이 덜 깬 듯한 고주연한테 바로 할 말부터 했다.
“그쪽 길드장이 안 보입니다.”
김신욱의 말에 고주연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텐트를 나온 고주연은 김신욱과 비슷한 순서로 이유영을 찾았지만, 이유영은 어디에도 없었다.
두 사람이 바스락거리며 텐트를 돌아다닌 탓에 몇몇이 비몽사몽 하는 얼굴로 밖을 내다봤다. 그중에는 안수연과 이용건도 있었다.
이용건은 텐트를 나와 김신욱과 고주연을 보더니, 곧 동굴 안을 찬찬히 살폈다.
바깥까지 잠깐 나갔다 온 이용건은 상황 파악을 끝낸 건지, 표정이 별로였다.
이용건은 김신욱과 고주연에게 물었다.
“두 분이 불침번은 아니죠?”
“불침번이 뭔데?”
“이런….”
김신욱은 침낭을 펴자마자 곧장 잠든 탓에 불침번에 대해 전달받지 못했다. 김신욱이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자, 이용건은 아까보다 한층 심각해진 얼굴이 되었다.
사태 파악을 마치고 온 안수연도 한껏 심각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안수연과 이용건은 아이 컨텍을 하다가, 고주연에게 물었다.
“고주연 씨, 혹시 이유영 씨가 자리 비우겠다고 따로 얘기해둔 적 없습니까?”
“몰라, 말없이 자리 비울 애는 아닌데….”
고주연의 대답에 안수연과 이용건이 아까보다 더 심각해졌다.
이 새벽에 네 사람이나 떠드는 탓에 몇몇 헌터들이 잠에서 깬 건지 텐트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이용건은 주위를 살펴보다가, 안수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수연 씨, 일단은 정하나 길드장님을 깨우는 게 좋겠습니다. 정하나 길드장님이 있어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할 겁니다.”
“알겠어요.”
안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정하나를 깨우러 갔다.
눈을 감은 채로 이야기를 듣던 정하나였으나, 안수연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서 잠이 번쩍 깬 듯했다.
정하나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느릿하게 텐트 밖으로 나오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진정들 해. 별일 아닐 테니까. 화장실이라도 갔나 보지.”
정하나는 볼을 긁으며 태연하게도 말했다. 그 덕에 사람들이 안정을 찾는 게 보였다.
사람들은 진정시킨 정하나는 김신욱을 퍽 치며 말했다.
“야, 전구. 불 좀 켜봐.”
“미쳤냐?”
“아 좀 켜봐!”
김신욱을 전구 취급하는 정하나의 태도에 김신욱은 얼굴을 구기며 혀를 내밀고 메롱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주연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둡잖아. 얼른 해.”
“…….”
김신욱은 어쩐지 고주연의 말에는 반항하기가 어려웠다.
김신욱이 하는 수 없이 스킬을 사용해 주위를 밝혔고, 사람들은 여태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바닥에 집중했다.
불이 꺼진 모닥불 옆에는 시선을 빼앗는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저게 다 뭐야?”
“설마 피….”
그 말과 동시에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피비린내가 훅 끼쳐 올라왔다.
모닥불 주위에는 피가 흩뿌려져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저 피를 흘린 사람이 살아는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김신욱은 솔직히 당황했다. 던전이 처음이기도 했고, 이런 피를 실제로 본 경험이 다른 헌터들에 비해 드물었다.
그런데 김신욱과 달리 피 웅덩이를 유심히 살펴보던 고주연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뭔가 적혀있어.”
그 말에 다들 고주연이 가리킨 곳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피로 써진 글씨가 있었다.
「사라진 두 인간을 되돌려 받고 싶을 시, 바위 절벽으로 올 것.
단, 이유영 혼자 오도록.」
글자를 읽어내린 김신욱은 그제야 이유영이 없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오지랖 넓은 녀석이 이걸 보고 혼자 움직인 게 틀림없었다.
똑같이 글자를 읽고 있던 이용건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략 회의 때 이유영 씨한테서 이런 기믹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이유영 씨도 몰랐던 걸까요? 스킬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더 심각한 상황 아닌가? 김신욱은 그저 추워서 일어났을 뿐인데, 상상 이상으로 큰일이 벌어진 듯했다.
이용건의 말을 듣고 한참 고민하던 안수연이 자신의 추측을 내뱉었다.
“만약 이유영 씨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해도 이상해요. 그 이유영 씨가 아무한테도 한마디 말없이 혼자 갔을까요?”
그 말을 들은 정하나는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신욱 생각에도 이유영 같은 똑똑한 녀석이 공략대를 불안하게 만들 것 같진 않았다.
정하나는 쭈그려 앉아 피를 한 번 만져보더니, 고민 없이 말했다.
“피가 아직 안 굳었어. 붙잡힌 지 얼마 안 된 거야. 지금 당장 움직이면 구할 수 있어.”
김신욱도 정하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오라는 장소까지 적어놨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피 웅덩이를 내려다보던 고주연은 다른 말을 꺼냈다.
“뭔가 이상한데.”
고주연은 상당히 침착해 보였다.
자기네 길드장이 없어졌는데 왜 저렇게 침착한 건지 김신욱은 이해할 수 없었다.
표정의 변화가 없는 고주연은 정하나를 보며 말했다.
“이유영이 베이스캠프를 지키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습격당하는 걸 몰랐을 리가 없어.”
한 치의 의혹도 없는 믿음이었다.
이유영이 안 자고 버티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습격당하는 걸 구경만 하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여기 있는 전원이 마찬가지였다.
누가 습격당하는 소릴 들었다면 김신욱도 자다가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정하나는 고주연을 올려다보다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도 전혀 몰랐을 정도였는데, 이유영이 몰랐을 수도 있어요.”
웬일로 정하나 녀석과 의견이 맞는 듯했다.
김신욱은 얼른 이 조잘거림을 끝내고 당장 구하러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수연은 무언가 깨달은 듯한 소리를 내며, 똑똑해 보이는 얼굴로 조잘거림을 이어갔다.
“이유영 씨가 자리에 있었다면, 굳이 이런 글을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 글은 꼭 이유영 씨가 없는 걸 전제하고 쓴 글 같아요.”
안수연의 말에 다들 여태 느꼈던 위화감이 해결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유영을 도우러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김신욱이 한마디 하려던 때, 이용건이 선수를 쳤다.
“이유영 씨는 잠깐 순찰을 나간 걸 수도 있겠군요. 불침번들에게 말해놓고 말이죠. 그런데 하필 불침번인 두 사람이 사라지는 바람에 행적을 알 수 없게 된 거고요.”
김신욱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은 이유영을 구하러 갈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이유영 구하러 가자고 말하고 멍청이가 될 뻔했다.
똑똑한 안수연은 이용건에게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잠깐 기다려 보죠.”
“저도 동의합니다.”
정하나는 뭔가 찝찝한 표정이었다. 김신욱도 마찬가지였다.
이유영이 없든 말든, 이렇게 피를 흘린 사람은 분명 있다는 뜻이다. 그 사람들을 구하려면 당장 움직여야 한다.
김신욱은 이미 결단을 내려버린 듯한 안수연과 이용건에게 말했다.
“사람 뒤져가는 걸 뻔히 알고 기다리자고? 언제까지 기다리게?”
김신욱의 말에 정하나도 안 되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정하나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 보이는 표정으로 안수연에게 말했다.
“사람이 피를 흘리고 사라졌어, 언니. 죽으면 어떡해.”
정하나의 말에 안수연도 잠시 흔들리는 것 같았으나, 안수연은 그럼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용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의견 대립이 이어지며 정하나와 김신욱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서 안 나가겠다고? 걔네 다 뒤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냐?”
“언니, 지금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거야?”
김신욱은 대체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사라졌다. 그럼 구하러 가야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하나?
이용건과 안수연이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태도도 짜증 났고, 이럴수록 시간만 지체되고 있다는 사실이 열 받았다.
그렇게 넷이 팽팽하게 대립하던 중, 어느새 입구 쪽에 서 있던 고주연이 누군가를 반겼다.
김신욱을 포함한 네 사람은 그 얼굴을 보고 말다툼을 멈췄다.
“다들 무슨 일입니까?”
이유영은 이상하게 생긴 항아리를 들고서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랑 같이 다녀온 건지, 이유영을 따라서 한 헌터가 들어왔다.
김신욱은 드디어 말이 통할 것 같은 녀석이 왔다는 사실에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았다.
***
나는 깨어있던 헌터들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야기를 들었다.
김신욱과 정하나, 안수연과 이용건의 입장을 둘 다 들어본 뒤, 나는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내 말에 고주연을 제외한 네 사람이 기겁했다.
정하나는 미쳤냐고 했고, 김신욱은 돌았냐고 했다.
이용건은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혼자 움직이는 건 좋지 않다며 차분하게 말렸다. 안수연도 혼자는 위험하다며 날 설득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불침번 두 분은 아마도 상태 이상에 걸렸을 겁니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조용히 습격할 수 없습니다. 즉, 몬스터는 상태 이상을 쓴다는 건데. 저 말고 상태 이상에 즉각 대응이 가능한 분 계십니까?”
내 말에 네 사람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동행하는 헌터가 상태 이상에 즉각 대응이 불가능하다면 그냥 혼자 가는 게 낫다.
불침번이 당한 상태 이상은 아마 데스스토커가 쓰던 ‘유혹’과 비슷한 계열일 것이다. 이런 정신계 상태 이상은 여러모로 까다로워서 내가 해제해주지 못하면 사태가 더 번잡해진다.
“서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람들 끌고 가는 것보다 혼자 다녀오는 편이 빨라요. 전 혼자서도 탱킹과 공격이 가능합니다. 힐도 할 수 있고요. 맡겨주시죠.”
다들 머리로는 납득한 듯했지만, 여전히 찝찝한 모양이었다.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누군가 혼자 가려 했다면 뜯어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회귀자인 나는 여기 있는 이들과 경험에 차이가 있다.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나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사람들 살려서 오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시간을 더 허비할 수 없었다.
흘린 피의 양을 보아하니, 다들 언제 죽어도 모를 중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정하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삼키고 있었다. 김신욱은 뒷머리를 짜증스럽게 털었고, 안수연과 이용건은 착잡하게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반면 가만히 보고만 있던 고주연은 내게 담담하게 물었다.
“이유영, 자신 있어?”
“물론이죠. 맡겨 두세요.”
나는 고주연에게 들고 있던 항아리를 건넸다.
힘들게 구해온 항아리를 들고 갔다가 깨트릴 수는 없어서 맡아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고주연은 못생긴 항아리를 이리저리 보며 물었다.
“이게 뭔데?”
“성문으로 들어갈 때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잠깐 맡아주세요.”
고주연은 신기하게 항아리를 쳐다봤다. 김신욱도 관심이 가는지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분해 보이는 정하나에게 말했다.
“바위 절벽은 여기서 북동쪽으로 20분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제가 1시간 안으로 도착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하나 길드장이 구하러 와주세요.”
정하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나를 노려봤다.
안수연은 웃으면서 정하나의 볼을 잡아당겨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
곧 기분이 조금 풀린 듯한 정하나가 버럭 소리치며 답했다.
“너 없으면 이 공략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 알지?!”
“물론입니다.”
“얼른 뛰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동굴 밖으로 나섰다.
동굴을 나와 절벽으로 달려갔다. 전속력으로 뛰는데, 점차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