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붉은 늑대들의 길드 마스터는 생각보다 젊은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2미터에 육박하는 거구. 피지컬뿐만 아니라 얼굴 생김새도 김세용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7층에선 축복받은 외모로군.’
그러다가 문득, 우리 옆에 있는 붉은 머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녀석은 엄청난 천재인 것인가?
백옥 같은 이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의 외모가 아닌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소설에 나오는 엘프가 어쩌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도자기 같은 피부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거기에 어우러지는 붉은 머리카락은 화룡점정이다.
‘이 정도면 평생 27층 군주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을 텐데.’
그럼에도 꽤 강하다.
이놈이 조금만 더 못생기게 태어났더라면, 지금쯤 이 세계관을 뒤흔드는 최고수가 아니었을까? 싶은 합리적 의심이 든다.
물론 의미 없는 뻘 생각이다.
“환영하오. 붉은 늑대들의 길드 마스터 유나라고 하오.”
“이호영입니다.”
“김세용입니다.”
그나저나 이름이 유나라니.
한국식 여자 이름과 이 얼굴은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제 우리 식구가 됐으니 말은 편하게 하도록 하겠네. 다들 앉도록 하지.”
외모도 외모지만, 유나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가 않았다.
27층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는 압도적인 기도.
어쩌면 나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로이드가 자네에게 혼쭐이 났다지? 내가 직접 가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쉽군.”
그 말에 붉은 머리, 로이드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린다.
“혼쭐이 난 것이 아닙니다. 마스터! 원래부터 맨손 싸움은 제 영역이 아니었던지라.”
“구차하구나. 로이드.”
“이 녀석이 강하다는 것까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게 되는 실전은 또 다른 문제 아니겠습니까?”
로이드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을 했다.
“로이드. 그럴수록 너만 찌질해 보일 뿐이다. 설령 네 말이 맞다 한들, 지금 당장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사내다운 모습이거늘.”
“죄송합니다. 마스터.”
로이드는 이를 앙다물며 두 주먹을 부들거렸다.
이번 시험은 원래 본인의 화려한 신고식이었어야 할 무대.
그런데 웬 듣보잡이 나타나 자신의 모든 계획을 다 깨뜨렸고 그것도 모자라 개망신을 당했으니, 나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녀석의 비통한 울분이 느껴진다.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두 사람, 거기 놓인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본 후 사인하도록 하게. 기본적인 조율은 이미 끝났다고 들었네만.”
“네.”
내가 요구한 계약 조건은 단 세 가지였다.
1년 치 연봉을 일시불로 제공할 것.
부동산을 비롯한 모든 기타 조건 대신 최고 수준의 아이템을 제공할 것.
마지막으로 김세용을 동반으로 영입할 것.
이것만 지켜진다면, 다른 조건은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27층에서 평생 머물 리도 없으니까.
“잘 읽어 보시게. 혹시 내가 사기를 쳐 놓았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럴 생각이었다.
야렌이 이 길드를 두고 ‘죽일 놈들’이라고 표현을 했으니, 무슨 짓을 할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꼼꼼하게 계약서를 훑어 내려가고 있는데,
‘어?’
사전에 조율된 것과 다른 부분이 하나 있었다.
“마스터. 이미 얘기된 것과는 다르게…….”
“아참, 얘기한다는 것을 하나 깜빡했군. 혹시 빌라 제공에 대한 것인가?”
“네. 스카우터를 통해 말씀드린 대로 저는 부동산을 비롯한 일체의 기타 조건 대신 [파이스의 반지]를 받는 것으로…….”
“물론 파이스의 반지에 대한 것도 계약서 안에 넣어 놓았네. 빌라 제공에 대한 건은, 음…… 그냥 받아 두게. 이번 기수의 최대어를 영입했는데 주거 문제 정도는 최상급으로 해결해 줘야 하지 않겠나?”
유나의 ‘최대어’ 발언에 옆에서 듣고 있던 로이드가 순간 이빨을 바득 갈았다.
그리고 들을 수 있었다.
깊은 빡침이 담긴 녀석의 날숨이 입술 사이로 사르르 새어 나오는 소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호의라 당황스럽군요.”
“계약서나 계속 잘 읽어 보게. 거주지 제공을 빌미로 내가 또 장난을 쳐 놓았을지 모르니까.”
장난.
확실히 있었다.
빌라에 들어갈 모든 물건들을 풀옵션으로 무상 제공한다는.
‘이놈들이 무슨 꿍꿍이지?’
자연스럽게 여러 의문들이 피어났다.
계약 조건을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자발적으로 호구가 되겠다니.
계약서의 내용을 아무리 꼼꼼히 훑어봐도 독소 조항 따위는 없었다.
“혹시 계약을 철회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이대로 바로 서명하죠.”
주겠다는 것을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혹시라도 이놈들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다면 차라리 빨리 들춰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데 서명을 하려는 순간 김세용이 외쳤다.
“잠깐! 마스터! 제 계약서를 몇 번이나 읽어 봤는데 주택 제공에 대한 내용은 못 찾겠는데요?”
“아, 그게. 당연한 얘기지만 두 사람의 계약서는 당연히 다르다네.”
“……왜죠?”
“참나. 이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있는 건지 모르겠군.”
“말씀해 주시죠.”
“두 사람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다르니까. 그런 이유로 자네의 계약서는 사전에 조율했던 그대로라네.”
유나의 말에 순간 김세용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멍청한 녀석.
27층에서 받은 버프들에 도취되다 보니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마저 잊은 모양이다.
– 명의 이전해 줄 테니까 사인이나 해. 인마!
그렇게 텔레파시를 보냈더니 김세용의 구겨졌던 얼굴이 펴졌다.
어차피 떠날 텐데, 이놈은 이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니,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가 바로 전송되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호감도가 20 증가하였습니다.] [호감도: -7]이렇게 했는데도 아직 마이너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허탈할 뿐이었다.
반면 김세용은 표정만 봐도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호감도: 100]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김세용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호감도 100을 찍은 기념으로 무언가를 받는 모양.
상태창을 다시 확인해 보니 못 보던 스킬이 하나 더 늘어 있었다.
[권풍]불주먹에 이어 또 하나의 권능인 권풍.
설명을 읽어 보니, 검으로 치면 검기(劍氣) 같은 것이며 장풍과도 유사한 것이다.
“이보게. 세용이, 우리 길드에 들어와 많이 기쁜 모양이군.”
“흐흐흐! 기쁘군요 마스터.”
“그래, 자네도 앞으로 하는 거 봐서 조건을 더 올려 주도록 하겠네.”
유나 역시 즐거운 표정이다.
이번 기수의 넘버 1, 2, 3을 싹쓸이했으니 당연한 일.
‘그나저나 아직까진 모르겠네.’
왜 붉은 늑대들이 죽일 놈들인지 말이다.
이곳 세계관에서 불편한 점이 하나 있다면 웬만해선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는 것.
마음으로 말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는 민족들인 것인지, 내면의 목소리가 잘 들려오지 않는다.
일단은 이 길드에 대해서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 * *
27층의 유일한 미션은 생존.
여전히 남은 시간은 ‘???’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었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리라는 것.
지금 나는 헌터 길드에 소속되어 있으니, 내가 직면하게 될 사건이라고 해 봐야 뻔했다.
주변 어딘가에 게이트가 생성될 것이고, 나는 헌터로서 작전에 투입될 것이다.
어쩌면 그 게이트는 이레귤러일지도 모른다.
계산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의 위험도는 더 높은 법이니까.
“긴급 상황! 로젤 마을 한복판에 5급 게이트 발생!”
내가 붉은 늑대들 길드에 가입한 두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희 신참 셋! 몬스터가 죽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몬스터가 드랍한 부산물을 챙기는 일이요.”
“그래. 절대 잊지 마. 어차피 몬스터 사체야 수거반이 처리하면 되지만 부산물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니까 꼭 챙겨 두어야 한다!”
“네.”
이번 작전에서 팀장을 맡은 루사. 그녀의 말투는 마치 우리를 초등학생으로 보는 듯했다.
작전 투입이 처음이라 해도 나이 차도 얼마 나 보이지 않는데.
아무리 우리가 이번 기수 1, 2, 3번이라 해도 팀장인 그녀 입장에선 불안한 모양이다.
더군다나 이번 작전에는 그녀와 우리 셋만 투입되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니까.
우리는 길드의 전용 운송 수단인 마나 전차에 몸을 실었다.
이곳의 세계관은 과학 기술이 그리 발전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마법을 이용한 이기를 만들어 내는 일에 매우 능숙했다.
어딜 가나 대장간을 볼 수 있었으며, 대장장이들이 다루는 분야 역시 상당히 넓었다. 그들은 단순히 무기를 제작하고 제련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타고 있는 마나 전차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별 복잡한 장치도 없이 마나로 인해 자율 주행하는 전차의 성능은 경이롭기만 했다.
“로이드는 주특기가 검이고, 나머지 둘은 주무기가 어떻게 되지?”
루사가 물었다.
“전 주먹이요.”
그러면서 김세용은 허공에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이제 조금 뒷면 저 주먹에서 권풍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녀석도 그걸 상당히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이호영이라고 했나? 너는?”
“……저는.”
순간 로이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검입니다.”
잠시 총과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역시 내 영혼의 주무기는 검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대놓고 총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기도 하고 말이다.
“검? 로이드랑 같네?”
“가장 흔한 것 중에 하나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나와 루사의 말을 듣고 있던 로이드가 갑자기 정색했다.
“흔한 것이 검이다? 검을 익혔다는 놈이 그런 말을 아주 쉽게도 하는군. 검술가로서 내가 한마디 하지. 검이라고 다 같은 검이 아니다. 네 말대로 시정잡배들도 익힐 수 있는 싸구려 검술이 있는가 하면 가문의 비술로 아주 소중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그런 검술도 있다.”
“그래서?”
“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검술을 한데 싸잡아 묶기에는 너무 다양한 검술이 존재하는 것이니까. 흔한 것이 검술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네가 익힌 것이 어느 수준인지는 알 만하군. 그렇지 않은가?”
“……흠.”
검술에 대한 자부심은 잘 알겠는데, 말꼬리 잡는 능력이 보통은 아니다.
내가 검술에 대해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찬호박이라도 소환해 낼 기세.
내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자 녀석도 이동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선택적 투 머치 토커로군.’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로젤 마을.
게이트가 보였고, 그 주변에는 결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결계는 이미 굳어 버린 모양인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 몇 명이 있었고 그들은 결계를 두드리며 아우성을 쳤다.
“다행히 몬스터는 아직 나오지 않았네. 너희 신참들, 이번이 데뷔전인데 들어갈 각오는 됐지?”
“네.”
공식적으로는 5급 규모의 게이트.
그런 이유로 숙련 헌터 한 명이 신참 셋만 달랑 데려온 것인데,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27층의 유일한 미션이 생존이니,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이벤트 하나가 터질 때도 됐으니 말이다.
“다들 진입!”
루사의 투입 명령과 함께 나는 인벤토리에서 엘리시온을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로이드 이 녀석 때문에 내 뒤통수가 따가울 지경이다.
– 16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