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드래곤의 부화를 저지하십시오.] [남은 시간: 30일]어느 순간 미션창에는 남은 시간이 표시되었다.
30일 후면 드래곤이 알에서 깨어난다는 의미.
하지만 현시점에서 이것 외에 주어진 단서는 전혀 없었다.
이 드넓은 세상에서 무턱대고 드래곤의 알을 찾아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일단은 신주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일단 들른 곳은 마을의 주점.
여기서 신주아는 호기롭게 내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신 있어?”
“술로 누군가에게 져 본 적은 없습니다.”
“그건 아직 네가 사회생활을 안 해 봐서 그런 거고. 기껏해야 또래 친구들하고만 마셔 봤을 거 아니야.”
다년간 영업직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위장이 단련된 나다.
새파랗게 어린 20대 초반의 여자가 술 대결을 제안해 오는 건 가소롭기 그지없는 일.
“스킬을 사용하거나, 마력을 일으켜 취기를 몰아내는 건 금지야.”
“알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한 잔 따르죠.”
이그드라실 120년산.
우리는 이 술집에서 가장 독하다는 술을 주문했고, 연달아 몇 잔을 나누어 마셨다.
미션의 초반부터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탑에서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삶이 일상이었기에.
‘초반에 좀 늘어진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별일이 벌어질 것이라면 예언가 신주아의 직감이 먼저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마셔도 좋다.
‘……그런데 벌써?’
빠른 속도로 취기가 밀려오는 것이 지구의 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굳이 마력을 쓰지 않더라도 신체 스펙이 초인급이 되었으니 어지간해선 취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명백한 오산이었다.
이대로 몇 잔만 더 마시면 분명 취할 것이다.
“얼굴이 슬슬 달아오르시는 것 같습니다만?”
“더워서 그래.”
“지금 여긴 한겨울입니다.”
신주아.
특유의 세상 달관한 표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었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별다른 대화 없이 계속 술잔만 주고받고 있으니, 내가 신주아의 페이스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술맛은 좋은데, 분위기가 영 아니지 않아?”
“동의합니다. 술자리에서 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자는 당신이 처음이군요.”
뻔뻔하게 이런 말을 잘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이 무미건조한 분위기도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는 이유. 그녀에겐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은 가만히 있더라도 남자들이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추파를 날려 댔을 테니까.
“탑에서 내 관심은 오직 생존뿐이야.”
“딱 봐도 당신은 돌부처처럼 보이긴 합니다. 하긴 탑에서는 그게 최고의 미덕이긴 하겠군요.”
“너도 평범해 보이진 않아. 나이도 어린데 말투가 그게 뭐냐?”
“콘셉트일지도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다.
게다가 마음 스킬도 거의 통하는 법이 없으니 수싸움을 하기도 어렵다.
“이런 얘기 대신 진실 게임이나 할까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나 보지?”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그랬다.
신주아는 살성만큼이나 독특한 플레이어이며,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그러니 진실 게임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니케의 반지가 있는 한, 질문을 하는 쪽은 무조건 내가 될 수밖에 없다.
덤으로, 술도 마시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떼구르르르-
테이블 위에서 빈 술병 하나가 돌아간다.
술병의 주둥이가 누구를 가리키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빙글빙글 돌던 빈 병은 결국 이변을 일으키지 않은 채 멈춰 섰다.
“신주아. 운이 없군.”
첫 번째 질문은 맛보기로 살살 해 보기로 했다.
“탑에 오기 전에 너는 뭘 하고 살았냐?”
그냥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탑에서의 직업은 탑 이전의 생활과 관련되는 경우인 게 보통.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기에 탑에서 예언가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대학생?”
“서울대를 다녔으니 평범한 건 아닐 수도 있겠군요.”
“흘리기 기술이 보통은 아니네.”
“무슨 의도로 물어보신 줄 알 것 같으니 말씀드리죠. 저희 어머니는 무녀였고, 저 또한 어렸을 때부터 신기 좀 있다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이 정도면 답변이 되었습니까?”
“……어.”
또박또박 말을 잘하는 것이 역시 전혀 취하지 않았다.
술로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다.
떼구르르.
테이블 위에선 빈 술병이 계속해서 돌아갔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걸린 것은 신주아였다.
수십 번을 반복한다 해도 결과는 같을 수밖에 없다.
니케의 반지가 괜히 신화급 아이템인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신주아는 이 상황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으며, 내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을 했다.
“진실 게임 규칙 몰라? 답변하기 곤란하면 술을 마셔도 되는 건데.”
“그다지 곤란할 것도 없었습니다.”
사실은 여기까지 모두 내가 의도했던 시나리오.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하는 관성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진짜로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한 번을 위해서.
“이번 질문은…….”
“네.”
“너만 알고 있는 탑에 대한 정보. 있어?”
“있습니다.”
“뭔데?”
“이번 턴의 질문은 끝났습니다만.”
“그럼 술병 한 번 더 돌리지 뭐.”
내가 술병을 잡은 손끝을 튕기려고 할 때였다.
“하긴, 굳이 돌려 볼 필요도 없겠네요. 어차피 걸리는 것은 저일 테니까.”
“예언가의 직감인가?”
“네.”
신주아의 말을 다 믿을 순 없지만, 예언가라면 본인이 계속해서 질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질 걸 뻔히 알면서 왜 한 거지?”
“이상한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하면서요.”
“뜬금없네. 도대체 무슨 꿈이길래.”
“이호영, 당신이 이 탑의 최종 미션을 끝내는 꿈.”
“……흠.”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예언가 신주아. 이 여자가 방금 한 말은 정말 꿈같은 얘기였기에.
“그래서 결국 이호영 코인을 타 보고 싶다 이건가?”
“코인이라기보단 조력자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해 두죠.”
“그럼, 얘기해 봐. 너만 알고 있는 탑에 대한 정보. 계시를 받은 것이든 꿈을 꾼 것이든 뭐라도 좋으니까.”
믿고 안 믿고는 내가 판단할 문제.
신주아는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뗀다.
“당신은 차원의 틈새에 다녀오셨으니 저보다 더 많을 것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계시에 따라 당신에게 안내만 했을 뿐, 정확히 그곳이 무엇인지도 모르니까요.”
“어. 계속해 봐.”
“이 탑에 있는 초월자들의 존재를 믿으시죠?”
“어.”
제나가 이야기한 12군주들. 물론 신주아에게 이야기해 줄 순 없다. 차원의 틈새에서 있었던 모든 것들은 발설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조만간 새로운 초월자의 등극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존재가 당신과 관련이 있는 인물일 것 같단 예감이 듭니다.”
“뭐?”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둘이나.
* *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일.
이 탑이 게임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딘가에 단서가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28층 곳곳에 퀘스트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신주아와 내 의견이 일치했다.
“결국 최단 루트를 관통하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겠군.”
“동의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난이도는 무려 136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30일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첫 번째 장소로 네가 마을의 술집을 선택한 건, 나랑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네. 맞습니다. 근거 없는 직감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좋은 퀘스트가 뜰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언가께서 그러시다니 믿어야지 뭐.”
대낮부터 붐비는 마을의 주점.
컴퓨터 게임에서처럼 누가 퀘스트를 주는 NPC인지 표시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니, 우리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말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니케의 반지가 있으니 그리 헤맬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드래곤? 데라 대륙에서 드래곤이 자취를 감춘 지가 벌써 천 년인데, 지금도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첫 번째 시도는 허탕인 모양.
하긴 니케의 반지가 모든 상황에 만능일 수는 없다.
“네. 그럼 이만. 실례 많았습니다.”
“잠깐만! 저기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대머리 노인에게 물어보면 뭔가 이야기를 해 줄지도 모르겠군. 듀퐁이라는 노인네인데, 고대의 신화나 미스터리에 푹 빠져 있는 양반이거든.”
그 말에 나와 신주아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느낌이 왔다.
이쯤 되면 퀘스트가 뜰 때가 됐다는 것을.
* * *
테이블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노인.
가득 쌓여 있는 빈 병들을 보니, 어떤 캐릭터인지는 대강 짐작이 된다.
“드래곤? 당연히 존재하지! 세상에 드래곤이 없다고 지껄이는 놈이 있다면, 그놈이야말로 미친놈이지. 딸꾹!”
듀퐁은 대낮부터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천 년간 데라 대륙에서는 드래곤을 본 사람이 없는데도 말입니까?”
“내가 있다면 있는 거야! 딸꾹! 증거도 있다니깐!”
“증거요? 말씀 좀 들어 보고 싶습니다.”
“흐흐흐.”
솔직히 말하면 신뢰가 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꾀죄죄한 차림새에 언제 마지막으로 씻은 것인지 온몸에서 풍기는 악취. 거기에 말투만 봐도 허풍 꽤나 부리게 생겼고,
결정적으로 알코올 중독까지 있는 듯하니, 내가 딱 상종하기 싫어하는 부류였다.
어쩌면 이번도 허탕일지 모른다.
“내 얘기가 듣고 싶다 이거지? 딸꾹!”
“그렇습니다.”
“그럼, 저기 주점 입구에 나타난 저놈들 좀 치워 줘 봐. 딸꾹!”
듀퐁 노인은 갑자기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겼다.
딱 봐도 늦은 거 같은데.
입구에 나타난 거한 셋은 이미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듀퐁의 부탁대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거한 셋을 처리하십시오.] [성공 시: 듀퐁의 거처로 함께 이동]퀘스트가 뜰 때다 싶긴 했는데 절묘한 타이밍.
하지만 퀘스트 보상 문구에는 헛웃음이 나온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보상이라기보다는 벌칙에 가까운 일이니까.
어쩌면 알코올 중독 노인네의 수발을 들어주다 끝나기에 십상이다.
“신주아. 지금 이거 어떻게 생각해?”
“기왕 생성된 퀘스트이니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다.
예언가의 직감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의미니까.
결국 우리의 앞에 멈춰선 거한 세 명.
그중 가운데의 털보가 테이블 아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망할 놈의 노인네! 돈 떼먹은 주제에 술 처마실 돈은 있다 이거지?”
“딸꾹!”
보아하니 이들의 정체는 빚쟁이들.
듀퐁을 정말로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셋 셀 테니까 그 전에 튀어나와! 하나, 둘…….”
“얼만데? 듀퐁 노인이 꿔 간 돈.”
“왜. 대신 갚으려고?”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봤다.
“14만SP. 대신 갚는 거 환영이야.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도 되고.”
이 금액이 얼마의 가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신주아가 초기 자금으로 받은 돈은 100SP.
가진 돈으로 해결하기엔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왜? 얼만지만 물어보고 이제 와서 뒤로 빼려고?”
털보 녀석은 내 어깨에 손을 짚었다.
손아귀에 힘을 한껏 실은 것이 내 어깨를 으스러뜨릴 기세.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덕분에 선택하기가 쉬워졌다.
– 177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