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평행 세계의 지구.
이곳에서도 종말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며,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주변 도시의 인구수를 감안한다면, 지금 지하철역에 남은 인원은 지극히 소수일 뿐이니까.
따지고 보면 여기 존재하는 사람들도 모두 플레이어인 셈이다.
그것도 후반부까지 살아남은 아주 능숙한 플레이어.
그리고 지금 난 봉천역 쪽의 일원이 되어 신림역에 도착했다.
“이봐, 봉천역 동지들! 너희들은 운 좋은 줄 알라고! 우리와 동맹을 맺었다는 건 생존 확률이 아주 높아질 거란 의미니까. 크크크.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신림역의 행동대장 최병대.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데, 우리 쪽에서는 아무도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맹 관계라고는 하나 힘의 균형에서 차이가 너무 크게 나기 때문.
그동안 전쟁 때마다 신림역에게 패한 일들도 무의식 속에 공포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오히려, 운이 좋았던 건 너희 신림 쪽 아닌가?”
“뭐?”
양 측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특히 옆에 있던 신창훈은 갑작스러운 나의 발언에 많이 놀란 모양이다.
혹시 내가 실언이라도 할까 봐 신림 쪽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거 같기도 하고.
“생각을 해 봐. 우리 같은 호구들이 봉천역에 몰려 있으니까 그동안 전쟁하기 편했잖아. 안 그래?”
내 말이 황당했는지 잠시 정적이 감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폭소.
“와하하하! 난 또 무슨 얘긴가 했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신림역이 운이 좋았지. 와하하하!”
최병대가 폭소하자 녀석의 동료들도 함께 따라 웃었다.
대조적으로 신창훈의 표정엔 그늘이 드리워진다.
이 동맹에서 갑과 을의 경계는 너무 명확하기만 했다.
‘그런데 신림은 이 동맹에서 무엇을 얻는 거지?’
지하철역에서 지금과 같은 미션이 계속 반복된다면, 분명 얻는 게 많은 쪽은 봉천이다.
공격의 방향이 노선도의 오른쪽을 향한다면 신림이라는 견고한 방패로 신대방을 손쉽게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반대의 상황에서 봉천은 그리 믿음직한 파트너는 아니다.
종말의 상황에서 한쪽이 더 많은 이득을 누리는 거래는 상상하기 힘든 법, 따라서 신림 쪽에는 뭔가 숨은 꿍꿍이가 있을 공산이 크다.
그때였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B-563EA7 구역에서는 이번 미션을 마지막으로 기존의 전쟁 방식이 종료됩니다.] [또한, 이번 미션을 클리어하는 그룹은 그 즉시 스페셜 퀘스트를 부여받게 됩니다.] [스페셜 퀘스트]1. 인근에 있는 다른 역 하나를 섬멸하기.
2. 각 노선도에서 가장 빠르게 미션을 완료한 그룹은 지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특전 부여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림 쪽에서 짜 놓은 각본을 알 것 같았으니까.
나는 뇌내망상으로 머릿속에서 각본을 전개해 보았다.
1. 신림-봉천 연합은 신대방 쪽을 공격하여, 미션 조건인 10Kill을 빠르게 달성한다.
2. 신림은 미션 클리어 직후, 새로운 미션이 생성되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봉천을 친다.
3. 신림역에서 방어를 담당하던 절반의 플레이어들 역시 재빠르게 봉천역으로 이동하여 봉천을 섬멸한다.
이 시나리오가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면 신림역은 2호선에서 가장 빠르게 미션을 달성하는 그룹이 될 것이며, 그 보상으로 지상으로 이동하는 특전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림이 봉천과 동맹을 맺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가장 중요한 전제 하나가 충족된다면 말이다.
‘신림 쪽에 예언가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는 것인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그 순간, 최병대가 외쳤다.
“자자! 서둘러서 신대방 쪽으로 가자고!”
한번 의심을 하고 나니, 모든 상황이 의심스러워진다.
신대방으로의 이동을 재촉하는 저 모습마저도.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잠깐만! 서두를 이유가 있어? 어차피 10Kill만 달성하면 되는 건데 느긋하게 가는 건 어때?”
“그런데, 아까부터 넌 뭐지? 봉천의 리더 그룹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에 대해서 궁금하면, 잠시 얘기 좀 하고 가든가.”
“아니, 그건 사양할게.”
최병대는 나를 향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소리 질렀다.
“자자! 서둘러서 이동해!”
최병대는 신림 소속의 수백 병력을 재촉하여 움직였다.
그리고선 우리 쪽의 신창훈에게도 빨리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나오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바로 신창훈에게 내 뜻을 전했다.
“이동을 최대한 늦춰 봐. 이유는 묻지 말고.”
“미쳤어? 신림이랑 어떻게 맺은 동맹인데!”
“곧 깨지게 될 거야.”
당연히 신창훈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냥 날 믿어.”
“도대체 뭘 보고 널 믿으라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 제일 이상한 게 바로 너라고!”
“알고 있어. 그래도 넌 날 믿어야 돼.”
나는 녀석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당장 신림 쪽에 칼을 겨누라는 게 아니야. 일단 이동만 늦춰 봐.”
신창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녀석의 눈에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난데없이 봉천역에 등장한 것도, 초인적인 힘을 가진 것도, 뜬금없이 신림과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점일 것이다.
“다 떠나서 무슨 핑계로 이동을 늦추냐고!”
이 녀석. 그래도 감 하나는 좋은 것 같다.
일단은 내 뜻에 동조해 보겠다는 의미니까.
“아무 핑계든 좋아. 나는 저 녀석들의 반응을 확인해 보고 싶은 거니까.”
신창훈은 다시 또 한숨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최병대! 미안하지만, 우리는 여기 오는 동안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습격으로 부상자들이 많이 발생했다. 잠시 치료할 시간을 부탁한다!”
신창훈의 갑작스러운 말에도 봉천 쪽 플레이어들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미리 교감이 없었던 발언이지만, 함께 지내 온 시간이 있기에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구석이 있었던 것.
“뭐? 동맹 맺자마자 이딴 식으로 나올 거야? 어차피 신대방 쪽 10명만 해치우면 되니깐 빨리 움직여! 부상자들은 후미에 세우고!”
“하지만 부상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부상자는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을 테니까 일단 움직여! 겨우 10명만 해치우면 되는 전투라고 말했잖아!”
아무런 꿍꿍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최병대의 태도는 확실히 이해하기 어렵다.
녀석의 말대로 10kill만 달성하면 끝나는 전쟁이며, 이런 가벼운 미션을 앞두고 조급할 이유도 흥분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니까.
나의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 * *
신림-봉천 연합은 철로를 따라 신대방 쪽으로 행군을 계속해 나갔다.
두 구역의 동맹으로 만들어진 수백 명의 공격대. 고작 10kill을 하러 가는 걸 생각한다면 과한 병력이지만, 이곳의 미션은 늘 이런 식이라 했다.
총인원의 절반은 공격, 절반은 수비.
“빨리빨리!”
선두에 선 최병대는 무언가에 쫓기듯 끊임없이 행군을 재촉했다.
어느덧 우리가 떠난 신림역은 까마득히 멀어졌고, 현재 우리의 위치는 신대방과 신림의 중간 지점.
이제는 내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인피면구를 착용합니다. 누구로 변장하시겠습니까?]은밀하게 행군의 최후미로 빠져 있던 나는 오랜만에 인피면구를 꺼냈다.
내가 변장하게 될 모습은 지금 신림역의 방어를 맡고 있는 석지훈.
나는 완벽하게 변장한 모습으로 행군 대열을 하나하나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신림 쪽 사람들은 갑자기 무슨 일이냐며 내게 말을 건네는데, 나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행군의 선두를 향해 서둘러 걸어갔다.
“석지훈!”
최병대는 나를 보고는 바로 표정이 굳어 버렸다.
수비를 맡고 있어야 할 석지훈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뭔가 이상 상황이 발생했다는 의미니까.
“급한 전달 사항이 있어서 왔어.”
나는 녀석의 옆에 서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뭔데!”
“지금 바로 봉천역 녀석들을 처리해 놔야 할 거 같아!”
“갑자기 왜!”
“이미 스페셜 퀘스트를 시작한 구역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뭐? 벌써?”
역시.
스페셜 퀘스트를 아는 걸 보니, 신림역에는 미래를 아는 예언가가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어차피 봉천역 녀석들은 떨거지니까 지금 공격대의 병력을 이원화해서 신대방과 봉천을 동시에 치는 작전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 병대 너의 결정만 남았어.”
“젠장!”
녀석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완전히 속고 있으니, 내가 할 일은 최병대 녀석을 부추기는 일.
“잘 생각해 봐! 지상으로 갈 수 있는 특전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씨파! 알았어! 내가 여기서 봉천 놈들을 쓸어 버릴 테니까, 지훈이 네가 잘 치는 녀석들로 데리고 가서 신대방 쪽 10명만 빨리 마무리해 줘. 지금 상황에선 최대한 빨리 스페셜 퀘스트를 생성시켜야 하니까.”
“알겠어!”
최병대의 다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놈의 머릿속엔 최대한 빨리 스페셜 퀘스트를 생성시킨 후 봉천역을 쓸어 버릴 마음밖에 없을 터.
상황이 다급하다 보니 참 잘 속는다.
최병대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신림역 형제들은 들어라! 상황이 바뀌었다!!”
녀석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신림-봉천 연합 공격대는 행군을 멈추었다.
“잘 들어라! 델타 작전 개시!”
최병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림역 공격대는 즉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챙! 챙! 챙!
검이 뽑히는 소리가 철로에 울려 퍼지며 거대한 살기가 공기를 가득 채운다.
“너희들 뭐야!”
“미안하지만 여기서 죽어 줘야겠어.”
“망할 자식들!!”
신창훈의 신호에 봉천역 쪽도 바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두 구역간의 전력 차는 극명하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우세한 쪽은 신림역.
이런 상황에서 가장 손쉽게 상대의 기세를 꺾는 방법은 리더의 목을 치는 것이다.
서걱-
엘리시온이 섬광을 발하며, 최병대의 목이 떨어졌다.
내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인 것은 오랜만의 일.
나에겐 살인의 제약이 있었기에, 페널티 부여를 위한 랜덤 주사위가 눈앞에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0이 나왔습니다. 스탯 포인트 차감은 없습니다.]내게 니케의 반지가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 최병대가 죽었어!!”
갑자기 떨어진 최병대의 머리에 신림 쪽에서는 온갖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단 한 명. 리더의 목을 베었을 뿐인데, 분위기는 바로 급반전되었다.
물론, 여전히 유리한 쪽이 신림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만큼 두 그룹 간의 격차는 상당해 보인다.
그래서 신림 녀석들을 당황하게 만들 또 하나의 카드를 꺼낼 생각이다.
“캥수야!”
나는 바로 캥수를 소환해 냈다.
캥!
“원 없이 싸워 봐!”
캥!
캥수는 그동안 좀이 쑤셨는지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어억-
무방비로 캥수의 펀치를 허용했으니, 맞고 버틸 재간이 없을 터.
신림역의 한 명은 목각처럼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갑자기 뭐야! 이 괴물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리더가 없으니 녀석들은 더욱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역관광의 시간이다.
– 193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