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항상 궁금했었다.
내게 공략집을 보내는 존재는 누구이며, 왜 나에게만 호의를 베푸는 것인지.
사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종말 전 실버 고블린이라는 한 마리 몬스터를 도운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선행이 복을 불러오는 건 전래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어쨌든, 이번 30층에서는 오랜 궁금증에 대한 일부의 해답을 얻게 되었다.
‘왜?’라는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된 셈.
‘30층의 군주. 지혜롭고 순결한 자.’
나는 그 이명을 수시로 되뇌어 보았다.
그러자 여러 정황들이 그럴듯하게 끼워 맞춰진다.
이 종말의 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얻은 이능은 ‘현자의 상태창’.
이것은 단순히 타인의 정보를 열람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지혜를 얻게 된 것.
평범하게 살던 내가 천마의 검술을 익히게 된 과정만 봐도 그러했다.
천마신교의 수많은 교도들을 따돌리고, 내가 천마의 후예가 되었다는 건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
비단 검술만이 아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나는 비범한 능력을 보여 왔다.
때로는 미션 해결의 최단 루트를 공략집 없이 쉽게 찾기도 하였으며, 남들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일이 숨쉬듯 자연스럽게만 느껴졌다.
내가 아는 내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현자의 능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
지금 탐독하고 있는 권법 관련 도서 역시 하얀 습자지가 물감을 빨아들이듯, 아주 빠르게 나의 머릿속에서 물들어 간다.
‘캥수가 아주 좋아하겠군.’
어제 읽었던 [감각의 주먹>이 권법에 가장 적합한 체내의 마나 통로를 만들어 주는 내용이었다면, 오늘 읽고 있는 [주먹의 기술>은 실질적인 초식을 담고 있다.
내 두뇌에 겹겹이 둘러진 버프의 효과로 인해 이미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시물레이션이 가동되고 있는 상태.
이 실험의 효과는 어젯밤 입증되었다.
책을 다 읽었으니 이제는 실험의 결과를 확인하러 나갈 시간이다.
나에게 볼일 있는 것 같은 생도 한 명만 정리하고 말이다.
“이호영!”
드넓은 도서관 열람실. 게다가 시험 기간에 비마법 섹션에서 다른 생도를 만났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일 리가 없다.
“누구?”
“내가 누군지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냐?”
반듯한 외모에 고고한 말투의 미소년.
하지만 당연히 모른다.
30층을 시작할 때 내 뇌 속에 전이된 정보 중엔 이 생도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
“몰라. 정말로.”
아카데미의 한 학년 생도 수는 대략 천여 명.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해도 다 아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녀석은 정말 모른다는 내 말에 허탈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말투에는 품격이 줄줄 흘러넘친다.
“그렇군. 하긴 나도 오늘 너를 처음 알게 됐으니, 같은 조건이로군.”
오늘 헤이니 교수의 강의에서 발표 한번 한 게 나를 꽤 유명하게 만들어 준 모양이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네하드 가문의 삼남 드레인이라고 한다. 혹시 이래도 모르겠나?”
“어.”
하필 생도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집안이 아주 좋거나, 아니면 꽤 우등 생도인 모양인데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정말로 모르는데, 용건은?”
“네가 헤이니 교수와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어서 왔다.”
제대로 뜬금포다.
나는 이놈뿐 아니라 헤이니 교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단지, 오늘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한 것이 전부이니까.
“무슨 관계냐니. 당연히 사제지간이지.”
“내가 물어본 것은 당연히 사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거짓말!”
“왜지?”
“그 여자는 음탕하니까.”
“헤이니 교수가 음탕한 것이 나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어. 이건 도대체 무슨 논리야?”
“오늘 네가 강의 시간에 했던 답변. 헤이니 교수와 사전에 함께 공부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면?”
“아니, 할 수 없다.”
“근거는?”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이니까. 아카데미 입학 후, 단 한 번도 1등을 내준 적이 없는 나조차도 말이다.”
드레인 네하드. 생도 랭킹 1위라면, 본인의 유명세에 자신 있을 만도 했다.
우리 학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이 녀석을 내가 호기롭게 모른다 했으니, 드레인의 눈엔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알 것도 같다.
“논리가 엉망인 걸 보니 헤이니 교수가 음탕하다는 말도 거짓이겠군.”
“그녀는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왕실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사람이다. 이게 그냥 실력만으로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역시 논리가 엉망이군. 말했듯이 오늘 그녀의 질문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허풍이 과하군.”
“이렇게 사람을 모함까지 해 가면서 나를 확인하려는 걸 보니 많이 불안한가 봐?”
“뭐?”
“이제 곧 졸업 시험이잖아. 1등 자리를 내줄까 봐 불안해서 날 찾은 거 아니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나는 부정한 짓을 벌인 교수와 생도를 색출하려는 것뿐이다.”
“그래서 날 추궁하면 내가, 그래 맞아! 헤이니 교수가 날 유혹했고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이야! 라고 할까 봐?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해도 실토할 리가 없을 거 같은데?”
“물론 순순히 말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많지. 이를테면…….”
순간, 드레인 이 녀석이 마나를 끌어 올린다.
마나를 운용하는 모습만 봐도 괜히 생도 랭킹 1위인 게 아니란 게 느껴진다.
물론 이 녀석이 나를 상대로 해를 가하기 전, 나의 발검이 반끗은 더 빠르겠지만.
하지만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서브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드레인 네하드는 당신을 상대로 속박 마법을 펼치려 하고 있습니다.] [속박 마법을 해제하여, 본인과 헤이니 교수의 결백을 증명하십시오.] [성공 시 : 랜덤 아이템 박스 지급]살짝 어이가 없다.
막무가내로 날 모함하는 이 녀석을 상대로 결백을 주장하라니.
‘하지만 랜덤 아이템은 못 참지.’
생각 같아서는 무력으로 참교육을 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일단은 순순히 속박 마법에 당해 주기로 했다.
드레인 녀석은 바로 완드를 휘둘러 내 주변에 작은 결계를 만들어 낸다.
그 솜씨가 꽤 그럴듯하다.
이 도서관이 아무리 드넓다 한들, 여긴 명백히 밀폐된 공간.
하지만 이 외진 구역에서 누가 죽어 나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드레인의 마나 발출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훌륭하군.”
“지금 감탄만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닐 텐데?”
“놀라운 실력인 건 사실이니까.”
“건방진 녀석! 이 결계는 24시간 이상은 지속될 것이다. 네가 이 속박을 해제할 술식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보아하니 날 풀어 줄 마음은 없는 거 같고.”
결계에 둘러진 마법의 언령이 감각을 타고 전해진다.
생도 수준에선 상당한 솜씨. 내가 아무리 호감도로 인한 지혜의 버프를 받고 있다 한들 곧바로 술식을 만들어 낼 순 없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이쪽 방면으로 문외한이었으니까.
“강의 시간에 발표했던 솜씨라면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난 그것이 제대로 된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모든 상황을 감안해도 해제 술식을 만들어 내는 데 최소 몇 시간은 필요해 보인다.
그렇게 오랫동안 결계에 갇혀 꼴사납게 있을 순 없는 노릇.
나는 바로 인벤토리에서 엘리시온을 꺼냈다.
“단순 물리력으론 안 될 거란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해제 술식을 만드는 건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엘리시온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드레인 녀석에게 물리 마법의 위력을 보여 줄 생각이다.
파앗!
검끝은 결계의 한 지점에 작은 폭발을 만들어 낸다.
이 녀석이 결계를 만들어 냈을 때보다 더욱 은밀하게 마나를 발출해 내는 것이 1차 목표.
도서관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콰직!
작은 폭발은 결계에 균열을 만들어 냈고 그것은 바로 가뭄에 땅 갈라지듯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여기서 바로 깨뜨리지 않으면 결계는 다시 굳어져 버릴 터.
깔끔하게 한 방에 끝내는 것이 2차 목표였다.
스르르르!
결계가 다시 굳어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굳어 버린 것은 드레인의 표정.
녀석은 넋 나간 얼굴로 결계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어떻게!!”
“말했잖아.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고.”
물론 녀석은 내가 해제 술식을 펼쳐 낸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계관의 검술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마법 아카데미의 생도 신분이니까.
“그리고 장난을 쳤으면 대가는 치러야하겠지.”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수호자의 배리어.
저레벨 시절, 방어 목적으로 구입한 아이템인데 결계를 만들어 은신처를 형성해 내는 물건이다.
[수호자의 배리어를 사용합니다]사용 대상은 드레인 제하드.
이 아이템의 지속 시간은 2시간이며 강력한 충격에도 훌륭하게 사용자를 보호해 낸다.
단점이 있다면 아이템이 발동되는 동안에는 사용자가 결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결계 밖으로 살짝 새어 나오는 소리엔 분노와 짜증이 가득 차 있었다.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는 녀석이다.
본인이 한 것을 그대로 되돌려 준 것뿐인데.
“건투를 빌게. 결계 지속 시간은 고작 2시간일 뿐이니 그냥 기다려도 되고.”
“당장 풀어라!”
“넌, 우리 학년 랭킹 1위니까 금방 해제 술식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물론 거짓말이다.
마법이 걸려 있는 아이템이지만 직접 마법을 펼친 것과는 결 자체가 다르니까.
생도 수준에서 이 결계를 술식으로 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에서 나가면 가만두지 않겠다!”
“좋을 대로.”
녀석의 낑낑대는 모습을 더 보고 싶긴 한데, 더 궁금한 것은 실험의 성과였다.
캥수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보고 싶었기에 서둘러 도서관 밖으로 나섰다.
결계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드레인의 고함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려 왔다.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아이템 박스가 지급됩니다.]랜덤이어서 더 마음에 든다.
니케의 반지가 있는 한 여기서 뜰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 나올 테니까.
굳이 기다릴 이유는 없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오픈합니다.]가능하다면 캥수용으로 나와 줬으면 좋겠다.
바란다고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
[스킬 스톤을 획득하였습니다.] [수련의 숙련도가 일정 수준 도달하는 경우 스킬이 자동으로 생성됩니다.]생소한 아이템이지만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탑에서 스킬은 가장 귀한 것 중 하나이니까.
“캥수야!”
“캥!”
캥수는 우렁찬 외침으로 본인의 소환을 알렸다.
이제는 실험의 결과를 확인할 시간.
“캥수야, 어제처럼 가상의 스파링 좀 해 볼까?”
“캥!”
두 번째라 그런지 캥수는 별다른 의문 없이 섀도 복싱을 시작했다.
휙! 휙!
몸을 푸는 모습이 더없이 가볍기만 하다.
체내 곳곳에 마나가 효율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기맥을 뚫어 놓았으니까.
“캥! 캥!”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캥수가 펼쳐 내는 움직임들이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초반부터 뭔가 다른 움직임들.
내가 오늘 도서관에 본 책은 주먹의 기술의 내용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본인 몸에 적합한 방식으로 체화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과가 꽤 괜찮은 듯하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 하나.
손에 들고 있던 스킬 스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스킬이 생성됩니다.]‘어?’
딱 봐도 내가 아닌 캥수 쪽인 모양인데, 펫이 스킬을 보유한다는 건 금시초문.
나는 숨을 죽이며 결과를 기다려 보았다.
– 20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