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신전의 제단 근처에 위치한 거대한 마나 화로.
지금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홍염의 불도깨비였다.
퀘스트의 제한 시간은 단 3시간이었기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결국 멸망의 무기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이 화로 안에는 내가 가진 최고 등급의 무기 아이템을 집어넣는 수밖에 없었다.
성검을 제외하면, 내게 남는 것은 엘리시온과 홍염의 불도깨비. 둘 중에서는 검보다는 총이 멸망에 더 어울릴 거란 생각이었다.
화르르르-
불꽃이 과격한 재채기를 하며, 화로 속을 용광로처럼 달군다.
드디어 신전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화로 속에 자신의 마나를 불어 넣는 일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순서.
나는 인피면구로 김세용의 얼굴로 변장을 하고는 마나 화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누구도 나를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제지하진 않는다.
그랜드 마이스터의 명이 있었으니까.
‘얼굴의 힘을 믿는다. 세용아.’
나는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화로 앞에 멈추어 섰다.
스르르르-
그리고는 마나 화로의 중심부에 손을 뻗어 몸속의 마나를 밀어 넣었다.
비록 내가 이곳에 더한 것은 마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감성을 더한 것이다.
김세용의 얼굴은 절름발이 군주를 감동시킬 수 있으리란 작은 소망을 빌면서 말이다.
화르르르-
또다시 불꽃이 재채기를 하며 화로는 활활 타오른다.
이제 남은 것은 홍염의 불도깨비의 재탄생을 기다리는 일.
최악의 경우에는, 너무 소중한 총 한 정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화로 속에서 들끓는 마나를 나의 불도깨비가 감당해 내지 못한다면 터져 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부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수백 번을 되뇌며, 잠시 후 나는 그랜드 마이스터의 얼굴로 대장장이들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화로에 홍염의 불도깨비가 들어간 지 대략 두 시간이 지났을 때 즈음. 화로의 배관에서는 마나의 증기가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온다.
드디어 모든 과정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신호.
이 모습에 모든 대장장이들이 숨을 죽인다.
“그랜드 마이스터시여! 드디어 계시를 받은 무기가 탄생한 것입니까?”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도 이 화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민망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상이 내 뇌리를 스치며 새카만 재로 변해 버린 총 한 자루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덜컹-
나는 조심스럽게 화로의 입구를 열었다.
그 순간 짤막한 메시지 하나가 내 귓가에 들려온다.
[신화급 아이템이 제작되었습니다.]전율이 살짝 밀려온다.
어느 정도 기대를 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정말로 돼 버릴 줄이야.
세용이의 얼굴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마, 말도 안 돼!
디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번에도 퀘스트 하나가 그냥 날아가 버렸음을 직감했을 테니까.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이며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을 전하였다.
– 하아!
반드시 한 번은 만들어진다는 멸망의 무기가 지금 탄생했으며, 37층의 세계관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37층이 종료되는 순간, 나와 함께, 바람처럼 말이다.
나는 곧바로 홍염의 불도깨비를 화로에서 꺼내 두 손 높이 들어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순간 신전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디나가 내게 보여 주었던 환영 속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곳의 대장장이들은 그들의 군주를 경배했고,
“위대하신 절름발이시여!!”
다음으로는 그들의 지배자를 받들었다.
“오오! 그랜드 마이스터!!”
이 광기 어린 모습에는 소름이 밀려온다.
나는 이 함성에 하나를 더해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얼굴의 힘에 경의를!’
* * *
홍염의 불도깨비에서는 은은한 광채가 나고 있다.
얼핏 보면 이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풍기는 기운 자체는 분명 달라졌다.
아이템 상태창의 ‘신화’ 등급 표시는 위풍당당하기만 하다.
그리고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아이템 설명의 맨 아랫부분.
※ 본 아이템에 전용 스킬이 장착되었습니다.
– 스킬명: 신의 한 발
– 효과: 비공개
– 쿨타임: 비공개
홍염의 불도깨비가 신화급 아이템이 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스킬명 신의 한 발.
불도깨비가 다른 기능에는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신화급 아이템이 되었다는 건, 바로 이 스킬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감한 부분이 있군.’
효과와 쿨타임이 모두 비공개라는 것.
시험 삼아 한 발 당겨 보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효과는 그렇다 치고 쿨타임이 터무니없이 높은 숫자가 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예를 들어 시험 삼아 [신의 한 발]을 당겨 봤는데 쿨타임이 100년이라도 떠 버리면, 이 스킬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스킬명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 절체절명의 순간에 단 한 발. 이라는 느낌을 주니까 말이다.
나중에 제나를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지만, 이 스킬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단 한 번 쓰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하면, 이 빌어먹을 탑의 마지막 층이 될 터.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험을 걸어 볼 수 있는 최상의 패를 하나 얻은 셈이다.
어쩌면 멸망의 인과율은 깨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멸망의 무대가 37층 플레아 대륙에서 탑 자체로 바뀌게 되는 것일 뿐.
아직은 혼자만의 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혼자 실실대며 웃는 것이지?
다시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해 준 것은 디나였다.
“나, 웃고 있었어?”
– 어, 좋은 상상이라도 하고 있나 봐? 그런데 지금 웃음이 나와?
디나는 내 상태창의 호감도 부분을 가리킨다.
[호감도: 69]이번에도 정확하게 15가 떨어졌다.
다행히 연속된 퀘스트 실패에 따른 페널티는 없어 보인다.
– 어쩔 거야? 이렇게 마음 놓고 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다고! 너도 알잖아. 호감도가 0이 되는 순간 사망에 이른다는걸.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더 남았다.
호감도 50 이하까지 가려면 두 번의 퀘스트를 더 날려 버려야만 한다.
“나 역시 유감이야. 이번 퀘스트만은 꼭 클리어하고 싶었는데.”
– 혹시, 퀘스트를 일부러 망치려고 농간을 부리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이곳 37층에서 호감도는 생명선이나 마찬가진데, 누가 미쳤다고 일부러 호감도를 떨어뜨리겠어.”
– 그거야 그렇지만, 번번이 퀘스트를 피해 가고 있잖아. 마치 교묘하게 작정한 것처럼 말이야.
“상상력이 지나쳐. 디나.”
– 나도 이젠 오기가 생겨! 반드시 이호영 네가 퀘스트 하나를 클리어하도록 만들고 말 거야!
흥분한 디나는 거칠게 나를 끌어당겼다.
갈수록 그녀의 매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조급하고 초조함이 마음이 내게 전해지며, 그녀의 미소도 점점 천박하게만 느껴진다.
“나도 원하는 바야. 디나.”
– 이번에야말로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퀘스트를 선사해 주지!
하지만 ‘절대’라는 말은 이렇게 함부로 써선 안 되는 것이었다.
디나가 내게 제시한 다음 퀘스트는 대륙의 남부 지방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한 영주를 암살하는 것.
영지 사람들에게 온갖 잔혹한 짓을 자행해 온, 누가 보아도 죽어 마땅한 자가 틀림없었으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나에게는 일시적으로나마 인간쓰레기도 성인군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결국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퀘스트 제한 시간이 모두 경과하였습니다.] [호감도가 하락합니다.] [호감도: 54]이렇게 무려 네 번의 퀘스트를 날려 버렸음에도 내 호감도는 여전히 50을 웃돌고 있었다.
그리고 37층에서 남은 시간은 어느덧 3일.
디나는 여전히 포기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자, 이번엔 내가 누구를 죽이면 되는 거지?”
– 이번엔? 지금 이번엔 이라고 했어?
디나는 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너무 뻔뻔하잖아!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죽인 적이 없으면서!
“어쩔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네가 암살 타깃으로 제시한 사람들 모두 죽일 이유가 1도 없었으니까. 나 역시 이렇게 호감도가 반 토막 난 것은 너무 안타까워.”
– 그, 그거야! 네가 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놓은 거잖아! 심지어 지난 퀘스트는 이동 시간만 무려 일주일이었어! 그 멀고 먼 거리를 이동해 갔는데, 이런 식으로 날 물 먹여도 되는 거야?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덕분에 이제 퀘스트 하나만 날려 버리면, 목표를 달성하며 37층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유감이야. 디나.”
–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갑자기 디나가 발산하는 분위기가 묘하다.
분명 심상치 않는 짓을 하려는 것.
“도대체 뭘 하려고?”
– 뭘 하려는 게 아니라 이미 했어. 방금 너의 기억 일부를 읽었거든.
디나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그런 것도 할 수 있다고?”
– 말했잖아. 난 군주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분의 권능도 일부 사용할 수 있지.
“그런데 내 기억을 읽어서 뭘 하려고.”
– 곧 알게 될 거야. 자, 그럼 다시 이동해 볼까? 서둘러야 할 거 같아. 이제 너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디나의 미소가 불길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띄운 승부수가 도대체 뭐이기에.
* * *
디나가 나를 데려온 곳은 목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느 과수원 밭이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나무들은 저마다 탐스럽게 익은 과일들을 품고 있었으며, 밭의 끝자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낡은 집 한 채는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우러져 마치 시골 고향에 온 것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어때?
“평화로워 보여. 왜 날 여기에 데려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 그래. 평화로운 곳이지. 넉넉하진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인심 좋기로 유명하고, 사소한 분쟁 하나 없는 곳이니까. 그럼 이제 저 집으로 들어가 볼까?
“설마, 내가 죽어야 하는 타깃이 저 안에 있는 거야?”
– 저기에 사는 건 맞지만, 지금은 출타 중이야.
“그럼 무단침입이네.”
– 어차피 죽일 건데, 무단침입이 대수는 아니지.
“……하긴.”
그렇게 나는 디나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예상과 달리 집과 가까워질수록 이 안에서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더욱 놀라운 건, 한둘의 기운이 아니라는 것.
대략 열 명가량은 되어 보인다.
“출타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 죽여야 할 타깃이 출타 중이라고 했지, 아무도 없다고는 안 했어.
“그렇군.
덜컹-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집 안의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휑하다.
층고가 높은 복층 구조에 방은 1층에 둘, 2층에 넷.
밖에서는 분명 기척을 느꼈지만, 지금 시야에 보이는 것 중에 생명체는 아무 것도 없다.
– 너도 느끼고 있겠지만 지금 방에는 아무도 없어.
“알고 있어. 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바로 이 아래쪽이니까.”
기감을 일으키니 지하에서 미약한 기운이 느껴진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떠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말소리는 멈추었으며, 호흡의 숨결에도 조심스러움이 묻어나 있다.
‘디나는 나의 기억을 읽었다고 했는데.’
분명, 이 아래쪽에 있는 상황은 나의 과거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을 터.
디나는 지하로 향하는 문을 가리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 네 기억까지 읽은 건 유감이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네가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꼴을 봐야 속이 풀릴 거 같았거든.
자신만만한 저 디나의 표정을 보니 마지막으로 빅엿을 선사해 주고 싶은 마음만 들 뿐이었다.
– 25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