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오랜만에 세상 빛을 본 성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가 성검과 교감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침묵을 지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제나, 넌 왜 그런지 알고 있어?”
“나쁜 징조는 아닐 거야. 특이점에 다가가고 있단 의미일 테니까.”
“특이점?”
“그래. 성검은 이유 없이 침묵하는 일이 없어. 아마도 성검은 널 시험하고 있는 중일 거야.”
“시험? 무엇을 위한?”
“그건 네가 나중에 성검과 다시 교감하는 날이 오면 물어보면 될 일이고.”
제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얄밉게 혀를 삐죽 내민다.
“쳇. 그냥 좀 알려 줄 것이지.”
“대신 더 재미있는 걸 하나 알려 줄게.”
“뭔데?”
“아직 네가 경험하지 못한 군주는 이제 넷밖에 남지 않았단 사실 말이야.”
“……아주 대단한 정보로군.”
그러고 보니 벌써 열두 군주 중 여덟 군주의 영역을 통과해 왔다.
지금까지 겪어 본 군주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정상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결국 아직도 또라이를 넷이나 더 경험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내 말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나 봐?”
“나도 더하기 빼기 정도는 할 줄은 아니까.”
“쳇. 그럼 40층 이후의 탑은 새로운 분기점에 접어들 것이란 얘기도 안 해 줘야겠네?”
“새로운 분기점?”
“40층이 끝나면 열두 군주 전원을 한 번씩은 겪어 보는 것이니, 당연히 그 이후의 탑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않겠어?”
“이상한데? 계산대로라면 남은 군주가 넷이니 41층은 되어야…….”
“뭐, 정말로 더하기 빼기를 잘하긴 하네! 하지만 그런 것도 다 편견일 뿐이야. 두 군주가 동시에 관할하는 영역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이 탑에서는 39층이 그런 곳이지.”
“그렇군. 그럼 41층부터는 대체 뭐가 많이 달라진다는 거지?”
“가장 크게 달라지는 건 플레이어들의 구성.”
“너무 막연한 말인데?”
“40층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아주 많이 죽을 예정이거든. 이건 너라고 해도 바꿀 수 없는 미래야. 자! 알려 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만!”
“뭐야, 치사하게.”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건 제나의 치사함이 아니다.
40층에서 플레이어들이 대량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 그리고 이는 불가항력이라는 것. 도대체 40층에서는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러다 문득 섬뜩한 한 가지가 떠오른다.
“설마 40층은 피의 날인가?”
“말했잖아. 더는 알려 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맞네. 피의 날.”
“몰라!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첫 번째 피의 날이 20층이었으니, 40층이 두 번째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한 번쯤 살성들이 날뛸 날이 올 때도 되긴 했다.
최근의 미션들은 평균적으로 매우 순한 맛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포털을 열어 봐야겠군.”
“목표 좌표를 어디로 할지는 정했어?”
“어. 방금.”
“너 혹시!”
“그래. 40층으로 향하는 포털을 열어 볼 생각이야. 피의 날의 장소로 유력한 곳이니 먼저 가 보지 않을 수 없잖아?”
“무리야. 무리! 40층은 포털을 열기에는 너무 먼 미래라고! 연결 고리가 너무 약해! 괜히 기회만 한 번 날려 버리게 될걸?”
연결 고리의 의미에 대해서는 예전에 들어 알고 있다.
아직은 나와 성검 간의 교감이 완전치 못하기에 내가 열 수 있는 포털은 한정적인데, 나와 강력한 연결 고리를 가진 장소일수록 포털을 열기가 수월해진다.
이를테면 내 소속 구역의 로비라든가, 지금처럼 자주 방문하는 차원의 틈새, 이미 한번 다녀온 과거의 층도 연결 고리가 강한 곳에 해당한다.
하지만 미래의 층은 상대적으로 나와의 연결 고리가 약한데, 당연히 현재 층에서 더 멀어질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정말로 무리라고 생각해? 저번에도 넌 그런 반응이었지만, 결국 난 보란 듯이 한 층 위의 포털을 열어 버리고 말았잖아.”
“그건 한 층이니까 그렇지, 현시점에서 40층은 무려 세 층 위라고! 더하기 빼기 잘한다면서 그게 계산이 안 돼?”
하지만, 아무리 확률이 낮다 할지라도 도전해 보아야만 한다.
성검을 이용해서 내가 궁극적으로 열어야 하는 곳은 이 탑의 꼭대기 층. 여기서 도약을 하지 못하면, 꼭대기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다.
혈마의 말대로라면 탑이 높아지는 속도는 플레이어들의 등반 속도보다 더 빠르니까.
“그래도 도전.”
“하여간 그놈의 고집하고는!”
나는 성검을 고쳐 잡고는 마나를 불어 넣었다.
거기에 함께 더하는 것은 나의 의지. 좌표는 40층. 아마도 피의 날이 열릴지도 모르는 장소.
우우우웅-
성검 가이아는 공명했고 나는 주저 없이 허공에 원 하나를 그었다.
원의 시작점이 마지막 점이 되는 순간, 허공에는 영롱한 푸른빛이 생기며 스파크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느낌이 좋다.
[40층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뭐야! 이게 또 된다고?”
제나는 말도 안 된다며, 오히려 짜증을 낸다.
무려 세 층 위를 향하는 포털.
드디어 나는 또 한 번의 커다란 도약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게. 이게 되네.”
나는 제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포털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럼 이제 확인해 볼 시간이다.
과연 40층은 피의 날로 예정된 장소인지를.
* * *
텅 비어 있는 고대 유럽풍의 도시.
40층의 배경은 그런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가장 특이할 만한 점은 코끝을 자극하는 향이 이 드넓은 공간 전체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절대 감각을 가진 내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을 만큼 그 농도는 은은하지만, 분명 익숙한 향이었다.
‘뭔지 알 것 같군.’
바로 와인의 향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 알림음이 있었다.
[지금부터 피의 날을 시작합니다.] [플레이어의 96퍼센트가 사망할 때까지 피의 날은 계속됩니다.] [광란의 농도가 25% 증가합니다.]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40층은 바로 피의 날이 열리는 곳.
또한 아주 많은 수의 플레이어가 40층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말 또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데!’
이곳에서 생존 가능한 플레이어는 단 4퍼센트.
37층을 마친 현시점에서도 이미 소수의 인류만 생존해 있는 것이니, 40층을 마치고 나면 그땐 그야말로 극소수. 인류는 종말에 훨씬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탑이 이렇게 규칙을 정해 놓았다면, 이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미래일 것이다.
대부분 플레이어는 죽는다는 의미.
게다가 피의 날은 살성이 미쳐 날뛰는 날이니, 일반 플레이어들의 생존율은 훨씬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암울한 기분이 엄습해 온다.
내가 죽을 리는 없겠지만, 나만 살아남은 세상은 큰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 순간 코끝을 자극하는 향이 더욱 강렬해진다.
이것이 바로 메시지가 알려 온 ‘광란의 농도’.
가슴 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탑에 온 이후 거의 느껴 보지 못한 온갖 기본적인 욕구들이 밀려들며, 나의 신경을 자극한다.
머릿속에서 뒤섞인 온갖 정념들은 결국 파괴의 본능을 일깨우는 느낌.
‘여기서 농도가 더 강해진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
마나를 일으켜 체내로 들어온 광란의 향을 밀어내 보려 해 봐도 소용없었다.
이것은 필시 군주의 권능일 테니 한낱 플레이어 수준에서는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시스템에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피의 날을 잠정 중단합니다.] [광란의 농도가 원상복구 됩니다.]콰아앙!
순간 마른하늘이 번쩍이기 시작한다.
‘시스템 오류라…….’
아마도 나의 방문으로 인해 시스템이 자동 작동하여 피의 날이 시작된 것일 터.
그러고 보면 탑이 마냥 완전한 장소인 것은 아니다.
어쨌든 여기서 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어 보이니, 서둘러 포털을 통과해야 할 것 같다.
괜히 여기서 머뭇거리고 있다가,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 * *
2주 만에 다시 돌아온 로비.
가장 늦게 도착한 것은 역시 나였다.
차원의 틈새와 40층을 방문하면서 약간의 시간차가 생긴 것.
사람들은 이미 37층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서로 묻지 않기로 합의를 한 모양이다.
‘왜지?’
라는 의문이 들다가도, 디나의 행태를 돌이켜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플레이어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안내자가 따라붙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이제 곧 40층에서 맞이하게 될 피의 날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나흘이나 자유 시간을 부여받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의 날을 극복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어? 아니야 아무것도.”
제아무리 신주아라 해도 뾰족한 수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
이미 미래는 정해져 있다.
40층에서는 단 4퍼센트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 구역 출신들을 더 살리고 덜 살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아까부터 무언가를 혼자 골똘히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별거 아니야. 아참! 그리고 골드 상환은 조금만 더 천천히 해야 할 거 같아. 37층에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좀 있었거든.”
“그게 걱정이라면 천천히 갚으셔도 됩니다. 한두 층 오르고 끝날 탑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신주아까지는 40층 이후의 생존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머지 동료들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신주아.”
“네. 말씀하세요.”
“혹시 계시받은 거 없어? 아니면 최근 특이한 꿈을 꾸었다든가.”
“별다른 건 없습니다.”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고민이 어떤 종류인지는 알 것도 같습니다. 혼자만 또 무언가를 알게 되신 모양이군요.”
“만약 그렇다고 하면?”
“이 얘기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오늘만 보고 사셨으면 합니다.”
“오늘만?”
“어차피 탑이란 곳은 하루하루가 외줄 타기 삶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어찌어찌 버티어 살아남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해답이 등장하곤 했는데,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그랬던가.”
“제게 탑이란 늘 그런 곳이었습니다.”
신주아의 말이 내 마음속에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돌이켜 보니 그녀의 말대로 그랬던 것도 같다.
탑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절묘한 타이밍에 채워 주곤 했으니까.
그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니케의 행운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탑이 만든 정교한 시나리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일들은 종종 있곤 했다.
종말이 처음 시작되었던, 아니 어쩌면 종말이 시작되기 그 이전부터 말이다.
“좋은 말이네. 오늘만 보고 살아라. 꼭 영화에 대사로 나올 거 같은 말이잖아.”
“도움이 되셨다면 나중에 이런 대사가 나오는 영화나 한 편 보여 주시면 됩니다.”
“그래. 일단 이 빌어먹을 탑에서부터 나가야겠지?”
“그렇지 말입니다.”
물론 한 가지 또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탑 밖에서 제대로 된 영화 한 편이라도 보려면, 인류를 멸종 상태로 몰고 갈 두 번째 피의 날은 막아야 한다는 것.
오늘만 보고 살다 보면, 그리고 또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어디엔가 답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 25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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