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자네, 무림맹의 천라지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지?”
“모릅니다.”
“……모른다고?”
“네. 모릅니다.”
당연히 이 무림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다.
나는 이 낯선 세계의 이방인이며, 예전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던 곳일 뿐이니까.
“지금 날 놀리는 게로군.”
모르는 걸 모른다고 했을 뿐이다.
갈원웅의 표정을 보아하니 믿지 않는 눈치지만.
“그래도 대충 어떤 뜻인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도망자들을 잡기 위해 가동하는 포위망 아닙니까?”
“역시 날 놀린 게로군.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말이야.”
그리고 이어진 갈원웅의 천라지망에 대한 설명은,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단 이틀.
포위망이 가동된 이후, 도망자들이 버틸 수 있다는 최대 시간이라고 했다.
“천라지망이 그 정도입니까?”
“당연한 일 아니겠나? 무림맹의 전문 수색 기술은 천마신교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니까 말이야.”
도망자들이 남기게 되는 모든 흔적들이 단서가 된다고 한다.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꼬리가 밟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천라지망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무림 곳곳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정파세력의 연결망이라네. 정파의 우호 세력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 무림맹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도 볼 수 있지.”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아직 무림에서 65시간을 넘게 버텨 내야만 한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무림맹의 천라지망이 조금이라도 늦게 가동되는 것이지만, 이제 곧 제갈서량의 시체가 발견될 터.
마냥 희망 회로만을 돌리기 어려운 일이다.
일단 잡히게 되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나는 이미 무림맹의 총군사를 죽인 몸이니까.
“그래도 어르신께서 탈출을 감행하셨을 때에는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것 아닙니까? 천라지망을 피할 수 있는 탈출 경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사실, 탈출에 확신이 있어서 뇌옥을 나온 게 아니라네.”
“그럼요?”
“죽기 전, 천마신교의 십만대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사는 게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지. 나에겐 해 볼 가치가 있는 모험이었을 뿐이야.”
역시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렇군요.”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말게나. 적어도 자네 혼자 탈출하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하는 게 더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럼 이제 말씀해 주시죠. 이 무림맹을 빠져나가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성벽을 넘어, 서둘러 움직인다면 이틀 내에 만운산의 절벽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네. 지금부터 우리가 향하게 될 곳이지.”
“절벽이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절벽이라 함은 퇴로가 확보되지 않는 막다른 장소.
굳이 그런 곳을 도피처로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절벽에서 모험을 감행할 생각이라네.”
“어떤 모험 말입니까?”
“만운산의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천마신교의 안가(安家) 한 채가 은밀하게 위치해 있다네. 문제는 절벽이 아주 높고 많이 험하다는 건데, 절벽을 통하지 않고 가려면 시간이 두 배 이상은 소요돼서 말이야.”
무림의 초절정 고수에게 절벽이 험해 봤자 얼마나 험하겠냐 싶겠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고수에게조차 가혹한 험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좋다.
안락함마저 느끼며 내려갈 수 있을 테니까.
“절벽 아래로 이동하는 건 그리 큰 난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그 안가(安家)라는 곳이 얼마나 안전하냐는 것이겠군요.”
내 말에 갈원웅은 호탕하게 웃는다.
내가 방금 보인 자신감이 그에게는 무지의 객기로 느껴진 듯싶었다.
“안가라고 완벽하겠는가? 하지만 그곳에 설치된 기문진은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 줄 것이라네. 전서구를 보내고 천마신교 형제들의 병력이 당도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지.”
“좋군요. 그럼, 됐습니다.”
퀘스트의 성공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 느낌이다.
조건이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무림맹에서 제갈서량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게 알도록 할 수 있다면 완벽할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무림맹의 외성벽에 당도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내가 인피면구로 변장한 총군사 제갈서량의 모습이 우리의 모든 수상함을 뒤덮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당당히 외성벽 경비병들의 앞을 지나기로 했다.
그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는가?”
“없습니다! 총군사님.”
경비병들은 갈원웅과 그에게 업혀있는 채이설을 힐끔 살펴보지만 별다른 의심은 품지 않는 모습이다.
“경계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여라. 간 큰 침입자가 있었으니 말이다.”
“네! 수상한 기색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네가 전해 줘야 말이 하나 있다.”
“네. 분부 내려 주십시오. 총군사님.”
“천혜각의 지하 뇌옥으로 가서 나의 명을 전하도록 하여라. 지금부터 세 시진 동안은 뇌옥의 순찰을 중지하라고 말이다.”
“명 받들겠습니다. 총군사님.”
마음 같아서는 세 시진이 아닌 하루 정도를 지르고 싶지만, 너무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
내가 명한 세 시진(6시간)만 계획대로 이행되어도 나름 큰 시간을 버는 셈.
이제부터는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탈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 될 것이다.
* * *
갈원웅이 말한 대로 만운산의 절벽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사이 나는 인피면구를 벗었으며, 채이설은 잃었던 정신을 되찾았다.
지난 이틀간 우리는 먹지 않고 자지 않으며, 흔적을 남기는 일을 최소화하였다.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이 정도의 노력은 그저 기본값일 뿐이기에.
“어르신, 지금쯤 추적대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와 그리 멀리 있진 않을 걸세. 어쩌면 턱 밑까지 와 있을지도 모르지. 자네도 알다시피, 천라지망의 추적대는 무림 전체에 퍼져 있는 정파 세력의 연결망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역시 그렇군요.”
“그래도 아직까진 내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네. 문제는 지금부터지만 말이야.”
절벽 앞에 당도하고 나서야 갈원웅이 말한 ‘험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험한 정도가 아니다.
발 디딜 곳이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벽.
그럼에도 갈원웅은 내려가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천라지망의 위력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한때 무림맹의 장로이기도 한 그의 생각이 틀렸을 리는 없다.
“자네들의 경지도 보통은 아닌 것 같네만, 목숨을 걸어야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네.”
“목숨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어르신.”
“설마 이제 와서 포기하겠다는 건가? 지금 당장 추적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안심해선 곤란하네! 곧 잡히게 될 거야!”
갈원웅이 날 다그치기 시작했다.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다.
“목숨을 걸지 않을 거라 했지, 내려가지 않을 거라 한 적 없습니다.”
“허! 그렇다면 다행이고, 패기 하나는 알아줘야겠군.”
단순한 패기도, 호기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있을 뿐이다.
“지금부터 제가 어르신과 이설 씨의 안전한 하강을 돕겠습니다.”
“뭐라? 날 돕는다? 허허! 내가 아무리 한물간 뒷방 늙은이라지만 퇴물까지는 아니라네!”
당연히 퇴물일 리가 없다.
내공의 심후함이나 경공술의 숙련도를 놓고 본다면 나보다 위니까.
하지만 나의 도움이 없다면 위태로울 수 있을 만큼 이 절벽의 지형은 가혹하기만 하다.
[테이아의 날개가 가동됩니다.]“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무림에서 몇몇 아이템들은 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총이 뿜어내는 마탄은 탄지공으로, 테이아의 날개는 허공답보의 수준으로만 활용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비록 비행은 불가능하지만 이 정도면 족하다.
온전하게 이행되는 허공답보는 안락한 연착륙 상태를 만들어 낼 테니까.
“자네! 지금 뭔가 이상해! 자신감이 너무 무모하단 말일세!”
“절대 무모하지 않습니다. 어르신.”
휘익!
나는 주저 없이 절벽의 끝자락을 딛고 몸을 날렸다.
물론 다음 스텝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이런 미친!”
등 뒤에서 갈원웅의 경악성이 들려온다.
그리고 경악성은 한 번 더 반복되었다.
“……미친!”
물론 두 번째 미친은 그 뉘앙스 자체가 다르다.
지금 나는 세상 만물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상태. 무림 역사 전체에서도 손꼽힐 수준의 허공답보를 펼치고 있다.
“무모하지 않습니다.”
갈원웅이 벌리고 있는 입을 다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 * *
안가(安家).
이곳은 기존에 내가 알던 은신처 혹은 쉘터의 개념과 비슷하면서도 상위 호환이다.
일단, 외부에서 이 안가의 존재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기문진이 만들어 내고 있는 짙은 안개로 인해 완벽히 가려져 있으니까.
또한 기문진이 겹겹이 펼쳐져 있기에 안가의 존재를 인식했다고 하여, 바로 들어올 수도 없다.
제한 시간이 정해진 생존 퀘스트를 수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인 것이다.
“전서구는 보내 놓았네. 지원 병력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놓은 셈이지.”
“무려 수십 년을 세작으로 희생하신 어르신의 지원 요청입니다.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빨리 당도할 것입니다.”
“자네는 마치 신교의 형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이 정도는 신교가 아니더라도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왠지 자네를 보고 있으면 신교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탐나는 인재이기도 하고.”
갈원웅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당장이라도 나를 신교로 포섭할 것만 같은 기세.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신교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까.
“그리고 자네는 신교의 누구와 꼭 닮았단 말이지.”
“그런 말씀을 이미 한번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랬었지. 그런데 자네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생각은 더 짙어지고 있다네. 혹시 내가 누구를 말하고 있는 지 궁금하지 않은가?”
“저는 신교인이 아니기에 말씀해 주셔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 수밖에 없을걸세. 그 사람은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니까.”
갈원웅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사실 위험한 발언이기도 하지. 한때는 내 어린 시절의 동무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우러러 보는 존재니 말이야.”
“……설마.”
“그 설마가 맞다네. 현 천마신교의 지존. 자네에게선 그 사람의 향이 느껴져.”
“…….”
갈원웅의 앞에서는 무영추혼검을 펼친 적도 없는데, 참으로 소름 돋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게서 사부의 향을 느낀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 이상한 일이지? 자네는 신교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인데, 내가 이런 실없는 이야기나 하고 있다니.”
“어쨌든 놀랐습니다. 고금제일의 인물과 어린 시절의 동무셨다니 말입니다.”
“고금제일? 그래, 그건 그 녀석이 어린 시절부터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지. 그런데 정말로 그 경지에 올라서다니 참 대단한 녀석이야.”
갈원웅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사부는 고금제일의 경지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현재 탑에서 등선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
“궁금합니다. 그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 어차피 이 안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할 일도 없고 말입니다.”
사소한 호기심. 그리고 사부에 대한 뒷담을 하고 싶은 짓궂음이 가져온 결과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탑에서 우연히 맺는 인연들은 때때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지금 이 인연이 그러할 예정이었다.
– 258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