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어떻게 생겨 먹은 티탄인지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너였구나!’
단 한 발의 예외도 없었던 백발백중 투창의 주인공.
티탄의 제왕은 고고한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하여간 너란 놈은 간댕이가 부었어도 단단히 부었어. 격의 차이가 안 느껴져?
성검 가이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가이아가 격의 차이를 운운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분명, 제왕의 투창은 신기(神技)에 가까운 권능이었기에.
– 그리고 이제는 너무 위험해졌어! 팔라스의 방패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잖아!
가이아의 말대로 팔라스의 방패는 곧 자가 수리 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제왕의 투창을 계속 견뎌 내느라 방패가 너덜더덜해졌기 때문.
하지만 내가 아무런 믿는 구석도 없이 제왕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아니다.
“이길 수 있어.”
– 하아!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오는데!
무림맹주와의 대련 이후 나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의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혜의 나무는 명상만으로도 내게 수련의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으니까.
절대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탑의 최종층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대결을 시작합니다.]제왕의 안광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녀석의 손에 쥐어진 거대한 장창은 투창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이즈.
기둥만 한 제왕의 창이 나를 향해 찔러 온다.
– 저거 한 대 맞으면 바로 끝이야!
가이아의 말대로다.
현재 남아 있는 방패의 내구도로는 도저히 버텨 낼 수 없는 공격.
회전하는 저 창날은 저항하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박살 내 버릴 기세였다.
휘이이잉!
나는 곧바로 테이아의 날개를 펼쳐 뒷걸음을 치며 날아올랐다.
오랜만에 가동되는 비행의 감각이 아주 깔끔하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마나는 날개의 엔진을 4기통에서 6기통으로 바꿔 준 격.
– 호오!
출력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마냥 뒷걸음을 친 것만은 아니었다.
왼손에 쥔 홍염의 불도깨비는 곧바로 불을 뿜는다.
타아아앙!
불도깨비 역시 달라진 마나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맛이 확실히 좋아진 것.
질풍처럼 총구를 떠난 마탄은 제왕의 가슴에 날아가 박혔다.
“크어어어어어!”
고고하기만 하던 티탄의 제왕이 처음으로 분노의 괴성을 뱉어 낸다.
지이이잉-
그리고는 순식간에 제왕의 한쪽 손에는 단창 하나가 나타난다.
염동력을 훨씬 상회하는 허공섭물(虛空攝物)의 경지.
제왕은 지체 없이 나를 향해 단창을 쏘아 냈다.
– 피하지 마!
성검이 급하게 외쳤다.
이유는 나도 알고 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쏘아지는 제왕의 투창을 피할 재간이 아직은 내게 없으니까.
차라리 팔라스의 방패를 믿고 맞불을 놓는 것이 현 상황의 베스트.
나는 테이아의 날개에 최대 출력을 걸어 제왕을 향해 돌진했다.
콰지지직!
투창과 무형의 방패가 거대한 충돌을 일으킨다.
조금 더 버텨 준다면 좋겠지만, 이곳 보스룸까지 오는 동안 너무 많은 공격을 허용했던 것이 컸다.
[팔라스의 방패의 내구도가 0이 되었습니다.] [자가 수리를 위해 방패의 가동을 중단합니다.]아쉽지만 잠시만 안녕이다.
그래도 제왕의 마지막 투창까지는 완벽하게 막아 준 고마운 녀석.
투창은 맥없이 추락했고, 나는 지금 만들어진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 무방비야!
테이아의 날개는 일말의 속력도 늦추지 않고 그대로 나를 티탄의 제왕에게로 인도한다.
그리고 나는 팔라스의 방패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만들어 준 빈틈을 향해 성검을 찔러 넣었다.
콰아악!
성검이 제왕의 두꺼운 가죽을 뚫어 낸다.
생각 같아서는 녀석의 몸속을 헤집어 놓고 싶었으나, 바로 성검을 회수해야만 했다.
신음성과 함께 녀석의 거대한 주먹이 날아왔으니까.
휘이이이익!
바위 같은 펀치가 내 코끝을 스쳤고, 다행히 나의 비행은 근소하게나마 빨랐다.
제왕의 공격은 매번 골로 갈 수 있는 놀라운 파괴력을 자랑한다.
9번 공격에 성공해도 1번의 방어에 실패하면 위험해지는 아슬아슬한 승부.
그랬기에 거리를 벌리며 방아쇠를 손을 얹었다가도 다시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티탄은 또다시 허공섭물의 권능으로 투창을 손에 쥐었으니까.
휘이이잉!
일단은 거리를 벌리고 끊임없이 비행술을 펼치며, 제왕을 주시해야만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가는 그대로 창에 맞아 승부가 나 버릴 테니까.
다행히 속도와 거리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나.
그리고 하나 더 나의 결정적인 우위를 꼽자면 전투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태생부터 강했을 이 티탄이 생사를 오가는 싸움을 해 본 적은 거의 없을 테니까.
나는 비행술로 제왕을 교란시키며, 녀석이 빈틈을 노출하기만을 기다렸다.
그 빈틈이 당장 나오지 않아도 좋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찾아올 기회. 그 과정 속에 내가 공격을 허용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타아아아앙!
결과적으로 이따금씩 총성을 울릴 수 있었다.
빈도가 잦진 않으나, 가랑비로 제왕의 옷을 젖게 만들 계획.
운이 좋다면 성검을 꽂아 넣을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조금씩 이 녀석을 상대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으니 단 한 번,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결정타를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 *
[티탄의 8층 탑이 무너집니다.]더불어 나의 마나도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마지막 순간, 제왕의 심장을 향해 성검을 꽂아 넣는 순간 아낌없이 마나를 탈탈 털어 넣은 것.
만약 여기서 피니시를 하지 못했더라면, 더 이상 테이아의 날개로 비행술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녀석의 주먹에 맞든 창에 찔리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바로 나였을 것이다.
결국 승부수를 건 것이 주효했다.
거기서 못 끝냈었더라면, 훨씬 더 어려운 싸움을 했을 것이다.
“후우!”
그렇게 안도의 심호흡을 내뱉으며, 티탄의 제왕이 남긴 마나를 받아들였다.
엄청난 양이다.
지난 일곱 개의 층에서 받은 것보다도 더 많은 수준.
탑이 완전히 소멸되자 배경이 바뀌며, 보스 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일곱 명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신주아를 제외하면 다들 허탈한 표정이다.
유일하게 도전한 8층을 클리어하고도 보상 하나 받지 못했으니까.
“이 미친놈! 정말로 티탄의 제왕을 죽였다고?”
“결국 혼자 8개 층을 다 먹은 거네.”
어쩌다 보니 탑의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장제훈의 말에 따르면 이번 8층 탑의 목적은 나 같은 이레귤러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
하지만 이번 8층 탑을 겪으며 예상치도 못한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야, 이호영! 너 나랑 조용히 얘기 좀 하자!”
장제훈이 다급하게 나와 개인 면담을 요청했다.
PK에 실패한 녀석은 결국 무언가 페널티를 받았을 터.
내가 유일한 동아줄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 됐다.
[이곳에서의 모든 여정이 종료되었습니다. 본래의 구역으로 돌아가겠습니다.]나는 아무 말도 해 줄 수도, 해 줄 시간도 없으니까.
주위의 배경이 다시 희미해진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39층의 시작이다.
* * *
[남은 시간: 25일 4시간] [호감도: -95]티탄의 8층 탑을 클리어하며 거의 닷새의 시간을 보냈다.
39층의 테마가 생존이란 것을 감안하다면 시간이 흐른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이로 인해 그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
39층은 무려 30일이나 되는 장기간의 무대인 만큼 중간중간 반드시 클리어해야만 하는 퀘스트가 나올지도 모른다.
“마지막 8층에서 위험을 감수한 보람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어. 미안해. 나 혼자만 보스 룸에 도전하러 간 거.”
“같이 가자고 제안하셨어도 제가 거부했을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위험을 잘 감지하는 거.”
“어. 이번 39층에선 너의 그 감지 능력 덕 좀 봐야 할 것 같아. 지금 내 호감도가 완전 개판이거든.”
반면 신주아의 호감도는 +88
이 높은 수치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다.
39층을 관할하는 ‘바람의 군왕’은 모든 여자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기 때문.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이놈의 탑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상당히 서둘러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39층을 무려 5일이나 늦게 시작하는 셈이니까.
[기간트를 획득하십시오.] [남은 시간: 4일 4시간] [실패 시: ???]불친절한 메시지.
우리는 기간트가 무엇인지 모른다.
또한 나흘 내에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인지도 관건이다.
“제 얼굴을 쳐다보셔도 소용없습니다. 당연히 저도 모릅니다.”
“하긴 너도 여긴 처음이니까.”
서둘러 가까운 마을을 찾아 기간트에 대한 정보부터 찾아봐야겠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럴 때 주점은 좋은 선택지가 된다.
“기간트라고 했소?”
“네. 어떻게 구하면 되겠습니까?”
내 질문을 받은 남자는 우리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으며 혀를 쯧쯧 차기 시작한다.
“말하는 걸 보면 아직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라면 문제지. 보아하니 시골 촌구석에서 온 사람들 같은데, 대뜸 기간트를 어떻게 구하냐고 물어보니 너무 황당하잖아!”
남자가 황당해하는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이곳 세계관의 시세를 기준으로 기간트 1척의 금액은 웬만한 시골 마을 하나를 통째로 구입하는 것보다 비싸다.
기간트라는 것은 전투용으로 활용하는 기갑 병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어쨌든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기간트의 구입 금액을 나흘 내에 벌어들이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신주아는 나에게 조용히 읊조렸다.
“이 마을을 통째로 강탈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어쩌면 가장 손쉬울지도 모를 방법.
하지만 그런 막장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고 싶다.
“그럼, 그 기간트라는 것 말입니다. 어디서 만드는 겁니까?”
기왕 강탈을 할 거라면 기간트를 구입할 돈보다는 기간트 자체를 강탈하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조차도 최후로 미뤄 두고 싶은 방법이긴 하지만.
“당신들. 아주 재밌는 사람이로군. 도대체 어느 시골에 처박혀 살아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지 원. 뭐? 기간트를 만들어?”
내 질문이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만드는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이런 것까지 설명을 해 줘야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서.”
“여기, 술 한 잔 받으시죠.”
남자는 내가 따라 준 술을 원 샷으로 들이키더니 말을 이어간다.
“뭐, 따지고 보면 당신 얘기처럼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군. 기간트의 껍데기에 기가스의 마나하트를 넣어야 하니까. 그걸 만든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처음 듣는 것이지만 말이야.”
이방인인 나로서는 참 어려운 말이다.
“결국 핵심은 기가스의 마나하트인 모양이군요.”
“그래. 기간트의 껍데기로 쓸 만한 것들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 우리 마을만 해도 선조들이 세워 놓은 동상이나 조각상들이 꽤 있지 않은가!”
이 얘기를 듣자 하니, 기가스의 마나하트만 있으면 껍데기로 쓸 수 있는 유물들은 공공재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현대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그럼 기가스라는 것들 말입니다. 어디 가면 구할 수 있습니까?”
“왜? 설마 기가스 슬레이어라도 되려고?”
“네.”
“와하하하하! 내가 최근에 들어 본 농담 중에 가장 재밌는 말이었어.”
이 세계관의 유머 감각도 이해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팔레네 섬! 그곳이 바로 기가스들의 낙원이지.”
남자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 팔레네 섬까지는 마차로도 열흘은 족히 걸리는 거리.
내게 테이아의 날개가 있다지만, 이것저것 다 계산하면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자. 신주아.”
“네.”
우리는 주점 문을 나서자마자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 27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