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디버프의 소멸, 거기에 ‘가정의 수호자’로부터 선물까지 받아 나의 버프 지수는 상시 2.45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혜택인데, 진짜배기는 신주아와 함께 베라드에 탑승할 때 있었다.
그녀와 나의 버프 지수가 합산이 되어 버리니 5.0마저 상회하게 된 것.
누가 메인 파일럿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이전과 비교한다면 상전벽해 수준으로 강해진 것이다.
[기가스 랴샬이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기가스라는 종족은 하나같이 겁 대가리라는 게 없다.
동족들이 하나둘씩 처참하게 내 손에 쓰러져 가고 있는데도, 그리고 내게 마나하트를 계속 흡수당하고 있는데도 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초대를 이어 간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인간의 포식자였으니까.
콰아아아악!
랴샬의 정수리에 검을 꽂아 넣으며, 결국 이놈도 베라드를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사실상 팔레네 섬에서의 모든 고비는 넘어섰다.
굳이 버프가 없더라도 릴디, 헤일, 루드네의 마나하트까지 흡수한 시점부터는 베라드에 대적할 수 있는 기가스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힘 조절이었다.
기가스들의 영역으로 계속해서 초대받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곤란한 일.
주체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도, 아슬아슬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기가스 루인이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이제 기가스를 상대하는 것도 벌써 열여덟 번째.
퀘스트의 제한 시간을 고려하면, 이 녀석을 마지막으로 팔레네 섬도 굿바이다.
“인간이여!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죽여 주마!!”
기가스 루인.
지금까지 중에선 가장 강한 상대였지만, 베라드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솨아아아악!
처음으로 전력을 다한 공격.
단칼에 기가스 루인의 모가지엔 붉은 실선이 만들어진다.
“이제 나의 공격을 받…….”
바닥에 추락하는 머리통은 결국 말을 맺지 못하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녀석은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인식하지 못한 것.
그만큼 베라드의 발검은 전광석화였다.
“강합니다.”
“어. 역사상 이 정도로 강한 기간트는 없었을 거야.”
물론 티폰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
티폰의 진짜 전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이제는 우리가 그것을 확인하러 갈 시간이다.
일단 기가스 루인의 마나하트부터 흡수 좀 하고.
지이이이잉-
루인의 몸체가 쪼그라들며 상당량의 마나가 또 베라드에게로 전이된다.
베라드의 마지막 업그레이드였다.
* * *
로렌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남겨 놓은 표식을 발견하고는 녀석도 더 이상 기가스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것.
며칠 만에 재회한 로렌의 기간트 제냔에게선 상당한 변화가 느껴진다.
“축하해. 로렌.”
“축하는 무슨! 네놈이 내 기간트를 박살 내 버리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훨씬 강했을 텐데!”
“그랬으면 지금의 제냔을 만나지 못했겠지.”
“그, 그건!”
“그리고 우리와 함께 여기 팔레네 섬에 오지도 못했을 테고.”
“뭐야! 나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냐?”
“그런 마음이 있다면 사양하지는 않을게. 그리고 이제는 마음 단단히 먹어 둬. 이제 곧 티폰을 만나러 갈 생각이니까.”
“미친놈! 베라드를 이 정도로 키워 놓고, 바로 죽으러 가겠다고? 아깝지도 않아?”
로렌은 여전히 티폰에 도전하는 일에 부정적이었다.
39층의 원주민들에겐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녀석이 비유하길 티폰이란 존재는 산이나 바다처럼 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니, 내가 얼마나 무모하게 비치고 있을지도 알고 있다.
“마지막까지 길잡이 잘 부탁한다.”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티폰은 왜 죽이려고 하는 거냐? 무슨 원수라도 진 거 있어?”
이런 질문은 난감하다.
퀘스트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산이 있어서 산에 오르듯, 티폰이 있어서 죽이러 가는 것뿐이야.”
“역시 넌 미친놈이군.”
“어.”
그럴지도 모른다.
탑이 있어 탑을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있었다.
미친놈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터.
탑에 온 뒤로 수많은 살생을 해 왔다.
대부분은 몬스터였지만, 그중에는 분명 사람도 존재했다.
죽어 마땅했기에 죽은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내가 미쳐 있지 않았더라면, 나 이호영은 결코 할 수 없었던 일들.
그리고 이제는 이 미친 생활의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결말이 어떠하든 머지않아 그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지이이이잉-
갑자기 성검 가이아가 진동하고 있다.
뭔가 특별함이 느껴진다.
나의 의지가 아닌, 성검이 자의적으로 먼저 이런 진동을 일으키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 몸에 힘 좀 빼! 티폰을 만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긴장한 거야?
성검이 고작 이런 말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떤 건 아닐 것이다.
– 한 가지 전할 소식이 있어.
역시 심상치 않은 케이스다.
항상 나와 함께 하고 있었으면서 내가 모르는 어떤 소식을 전하겠다니.
나는 숨을 죽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누군가가 너와 만나길 원하고 있어. 아무래도 네가 직접 그곳으로 향하는 포털을 열어야 할 것 같아.
성검을 통해 나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
인간의 영역에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초월좌들은 나와 격이 달라 직접 대면할 수도 없는 존재이니까.
–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 시기가 임박해 있는 건 분명해. 다음번에 내가 진동을 하게 된다면, 그땐 네가 직접 포털을 열어야만 할 거야. 아마도 그 시기는 티폰을 만나기 직전이 될 거 같군.
차원의 틈새에서 제나가 내게 해 줬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포털을 열게 될 좋은 타이밍이 올 것 같다는 그 언급.
그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뭔가 내게 긍정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기대하게 된다.
포털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존재. 누굴까?
* * *
대륙의 남쪽 끝이라 불리는 레오그란트 마을.
이곳에선 바다 건너의 작은 섬 하나를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저 멀리 작은 섬이 티폰이 살고 있다는 세상의 끝.
우리는 그 섬을 바라보며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다.
“바다 뷰가 죽이는군.”
근사한 식당이었다.
한쪽 면이 거대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테이블에서는 남쪽 바다가 훤히 보인다.
“당연하지. 여긴 회원권이 없으면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니까. 참고로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는 VVIP 전용이란 것만 알아 둬.”
로렌은 으스대며 자신의 가문을 플렉스 한다.
사실 이곳 바다가 멋진 건 사실이지만, 레오그란트 마을을 대륙 최고의 명소로 만든 건 다름 아닌 티폰이란 존재.
39층의 사람들은 티폰을 두려워하는 한편 신성시하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수많은 티폰의 조각상을 비롯해 거대한 티폰 신전마저 있을 정도다.
“레오그란트 마을은 이렇게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는데, 여기서 바로 보이는 저 섬까지는 아무도 갈 엄두도 못 낸다는 거로군?”
“금단의 구역이니까.”
“티폰이 그래? 들어오지 말라고?”
“그건 아니지만, 저 섬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가 죽었어. 그것도 모두 전설 속의 이야기일 뿐이지. 공식적으로는 지난 수백 년간 아무도 섬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 마을에 세워진 티폰 조각상들은 무얼 보고 만든 것이지? 그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인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들이 있잖아. 거기서 참고한 것이겠지.”
결국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들일 터.
기가스와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는 티폰의 형상도 실제로는 전혀 다를지 모른다.
사실 퀘스트만 아니었다면, 나는 티폰이란 존재 자체를 강하게 의심해 보았을 것이다.
지난 수백 년간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
“로렌.”
“왜?”
“오늘이 지나면 티폰은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사람들에게 발설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이 마을에 와 보니 39층의 사람들에게 티폰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티폰의 소멸.
그것은 이곳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 줄 것이다.
“미친놈.”
로렌의 반응을 보니 안심이 된다.
죽는 건 티폰이 아닌 내가 되리라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전해지지 않을 설화가 만들어지는 밤이겠군.”
“아니, 내가 전할 생각이야. 아무도 모르기엔 너무 아까운 스토리니까. 최강의 기간트 베라드, 그리고 어느 한 기간트 기사에 관한 이야기는 널리 전해지게 될 것이다.”
“좋을 대로 해. 단 조건이 있어.”
“뭔데?”
“네가 퍼뜨릴 설화 속의 기간트 기사는 무명으로 해 줘.”
“뭐, 어려운 조건은 아니군.”
그것이 티폰의 설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39층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저도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주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뭡니까?”
“그 설화 속에 등장하는 남녀 말입니다. 티폰에게 도전하기 전 약혼을 하고 떠나는 것으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남녀가 등장하는 설화인데, 로맨스가 빠지면 말이 안 되지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뜬금없는 스토리는 좀.”
“넣어 줘. 실화니까.”
“뭐? 도대체 이게 무슨 스토리야!”
지이이이잉!
그 순간 성검 가이아가 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그 순간이 온 것.
나를 만나고자 하는 그 존재가 누구인지, 이제 확인해 볼 시간이다.
“잠시 자리 좀.”
“갑자기 어디 가시는 겁니까?”
신주아가 일어서려는 내 손을 잡는다.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낯빛은 낯설기만 했다.
“바로 곧 돌아올 거야.”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괜찮아. 직감으로 알 거 아니야. 걱정할 일은 아닐 거란 거.”
“매번 직감이 작동하는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신주아가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자, 이 모습에 로렌은 헛웃음을 짓는다.
“화장실 한 번 가는 거 가지고, 진짜 놀고들 있네. 너희 정말로 약혼한 거야?”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 별다른 의지는 불어넣지 않아도 돼. 그냥 포털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그곳으로 통할 테니까. 이미 통로는 다 만들어져 있어.
나는 성검을 들고 허공에 원을 그렸다.
이전처럼 포털을 만드는 일이 난해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 역시 바로 해내는군. 너도 알고 있듯이 사실 넌 이미 특이점에 도달해 있는 상태야. 포털 생성을 남발하지만 않는다면,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지.
가이아의 말대로 특정 장소와 나 사이의 미약한 연결 고리만 있다면, 이젠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심지어 이번에는 강한 연결 고리가 느껴진다.
포털을 형성하는 일은 매우 쉬웠다.
지이이이잉!
허공에 생긴 균열.
나는 주저 없이 그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포털 너머로부터 강력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사부?’
– 28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