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0)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9화(10/213)
Ep. 9
어느샌가 희나가 나보다 반 발짝 앞서 걸으며 나를 리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치 목적지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조잘조잘 입을 놀리고 있었다.
처음 예정했던 점심은 거르게 되었지만, 서로 배고픔 따위는 느끼지 못한다는 듯 화제에 오르지 못했다.
“그거 알아? 여름에 동해 쪽에서 축제 같은 게 있는데 거기서 열리는 노점 음식들 엄청 맛있다?”
“나도 어렸을 때 봤던 것 같기도 하고..축제라기 보단 약간 오일장 느낌 아니었나? 좀 더 구수했던 것 같은..”
“맛있는 걸 팔고 있으면 축제 아닐까?”
“그런가? 지금 내 옆에서도 축제 열린 거 같은데 같이 참가하실?”
그러면서 내가 가리킨 곳은 달고나를 팔고 있는 작은 노점. 어렸을 때부터 이런 길거리 음식들을 좋아해서 이렇게 놀러 나오면 꼭 사먹는 편이었다.
“달고나? 먹고 싶어?”
“걸어다니면서 먹기도 편하고, 내가 단 걸 좋아해서. 하나만 사올게.”
“연후야, 잠깐만.”
나를 멈춰 세운 희나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달고나 노점에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계산을 마치고 손에 달고나를 든 채 돌아왔다.
곧이어 한 입에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툭 부수더니 내 입가에 들이민다.
“아~”
“희나야, 이거 내가 돈 줄…”
“아! ”
“아..”
“응, 착하지.”
희나가 직접 먹여주는 달고나는, 너무 달았다. 이게 달고나의 맛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 뒤로도.
“저것도 먹고 싶지? 아저씨 하나에 얼마에요?”
“희나야 제발..!! 내가 사게 해줘!!”
어디 포장마차 음식에 눈길만 주면 이처럼 귀신같이 알아채면서 사주려고 하는 희나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희나의 마음을 알 것 같기는 했다. 나도 희나가 뭐 먹고 싶다 말만 하면 0.1초안에 지갑 꺼내서 결제 박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낌새를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 내 시선만 가면 ‘먹고싶어?’라며 자신의 지갑을 꺼낸다.
내가 뭐라도 사주려고 하면 웃는 얼굴로 압박을 가하는데 차마 강행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럴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희나의 지갑엔 천원짜리 지폐도 꽤 많이 있었다. 지갑에 천원짜리 이렇게 많은 사람 살면서 내 여자친구가 처음이었다.
그걸 보면 희나도 이런 길거리 음식을 꽤 좋아해서 일부러 바꿔뒀나? 싶었지만 뭐라도 사면 나만 먹여주고 희나는 먹질 않으니.
그나마 입에라도 댄 것은 조금 전에 샀던 작은 숯불 꼬치의 마지막 조각 하나를 먹은 것 뿐이었다.
그마저도 괜찮다고 하는 것을 내가 직접 희나에 입가에 가져다 주면서 역으로 ‘아~’를 하며 먹였다.
-할짝
반쯤 억지로 먹인 꼬치로 인해 입술에 남은 약간의 기름기를 분홍빛의 자그마한 혀로 살짝 쓸어 올린다.
묘하게 관능적인 느낌이 들어서 차마 계속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고마워, 연후야.”
“내가 오히려 너무너무 고맙거든? 지금 내 양심이 파업 선언 하려고 하는데 내가 사주면 안될까?”
“가끔은 걔도 쉬게 해주는 편이 좋지 않겠어?”
“아냐, 평상시에 많이 쉬는 편이라 오늘 정도는 좀 가혹하게 일을 시켜야 돼.”
“풉, 알았어~ 아, 물 마실래?”
“물? 내가 사올.. 들고 있구나..”
작은 숄더백에 어울리는, 아주 컴팩트한 물병을 꺼내서 내게 건내준다.
“잠깐 저기 앉아서 쉬자.”
걸어가면서 마시기는 조금 그랬으니 눈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가까운 벤치를 가리켰다. 터벅터벅 다가가서 손으로나마 희나가 앉을 자리를 털어주려고 허리를 굽힌 그 때.
-스륵
어느샌가 희나가 얇은 손수건, 이라기엔 생각보다 꽤 커다란 천을 벤치에 깔았다. 그러면서 먼저 자리에 앉고는 자신의 바로 옆을 손으로 탁탁 치며 나를 끌어당겼다.
일견 스카프같은 그 천의 크기는 조금 붙어야 하긴 하지만 두 명이 앉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것도 갖고 다녀?”
“응~ 너랑 데이트하다 이렇게 앉을 일 생기면 깔아주려고 하나 샀어!”
“…이건 내가 해줬어야 했는데..”
“다음번엔 부탁할게?”
손수건 준비.
메모 완료.
“이제 어디로 갈까?”
“큰 길가에 영화관 있는 쇼핑몰 있지? 거기 가보지 않을래?”
“오케이, 안에 이것저것 볼 것도 많고 괜찮겠다.”
“영화는 좋아해?”
“그런 편이려나. 너는?”
“나도 그럭저럭일까. 하지만 네가 보고 싶은 거 생기면 꼭 같이 봤으면 좋겠어.”
“……….앞으로 내 모든 영화 관람 일정은 여자친구와 함께 하는 걸로.”
“약속?”
“약속”
새끼 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었다.
앞으로는 마x 영화도 우리반 쓰레기들이랑은 보지 않겠다.
—
벤치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어온 쇼핑몰에서도 적당히 아이쇼핑 위주로 둘이서 느긋하게 걸어다녔다. 명확한 목적지는 없어도, 둘이서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으니. 그런 와중에 귀에 종종 들려오는 지나가는 사람의 말소리.
“여자애 개미쳤다, 진심.”
“와, 존예 돌았네”
“남친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겠지..”
실내로 들어와서인지, 다시금 스쳐 지나가는 시선들이 한 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이해는 되었다. 나라도 길 가다가 지나쳤으면 분명 한 번쯤은 뒤돌아서 다시 봤을 테니까.
남자친구의 입장이 되니 썩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앗, 이거 봐봐! 너한테 잘 어울리겠다!”
“응?”
하지만 희나는 그게 너무 익숙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신경을 안 쓰는건지. 전혀 개의치 않고 마이페이스로 내 손을 꼭 잡고 이끌었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가까운 곳에 있던 안경점의 안경 하나.
“안경?”
“너 멀리 볼 때 조금 찡그리면서 보는 거 같길래. 시력 안좋지?”
“와, 진짜 귀신이다.”
찡그리면서 뭔가를 확인할 정도로 멀리 보는 일이 많지도 않았을 텐데 그걸 눈치채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희나가 집어 든 것을 보니, 안경 알 들어가는 부분이 크고 동그란 타입의, 금속 테 안경이었다.
안경이라.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괜찮을 것 같아서 쓸 생각 안 했었는데.
하지만 희나가 골라준 거니, 생각은 짧게 마치고 곧바로 직접 써보았다. 생각보다 거슬리는 느낌은 적어서 좋긴 한데, 농구 할 때 좀 위험하려나.
“어울려!”
“그래? 흠, 안경 맞추게 되면 이런 타입으로 할까.”
“응응! 맞추러 갈 때 꼭 말해줘야 돼? 나랑 같이 고르자!”
“고르는거 도와주면 나야 고맙지.”
“그래도 되도록이면 쓸 일이 없는 편이 더 좋으니까, 핸드폰 너무 가까이서 보지 않도록 해.”
“네.. 명심할게요 엄마..”
“그래! 엄마 말 잘 들어야 돼, 알았지?”
이걸 받아주네. 아무튼 내가 안경테를 걸치고 있는 모습을 좋아하는 게 조금 신기했다.
보통 안경 안 쓴 걸 좋아하지 않나? 하긴, 일반적인 취향보다는 희나 한 명의 취향이 더 중요하지.
“패션용으로 하나 살까?”
“어? 그거 괜찮다! 그렇게 하자!”
“너무 좋아하는데? 안경남이 취향이야?”
“딱히? 안경 쓴 연후가 취향!”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이길 수가 없다.
오늘만 벌써 몇 번 째인지 달아오르는 듯한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며 희나를 따라갔다.
내가 지금 끼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타입의 안경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고심하는 그녀.
“연후야, 이것도 한번 껴볼래?”
“알았어.”
그 전꺼랑 똑같은 것 같긴 한데.
새로 쥐어준 것을 써본다.
“으으음.. 안경알쪽 테가 너무 밝으면 조금 별로다. 이번엔 이거!”
“넹”
그런 식으로 수십 번을 바꾸면서 써보고 나서야 개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었던 지 웃으면서 나를 계산대로 이끌었다.
“이거 얼마에요? 얘가 쓰고 있는 거.”
“어디보자, 그거면 이만원입니다.”
“여기요.”
“자, 잠깐! 아저씨 잠시만요!”
이번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계산하려는 희나를 붙잡고 매장 구석으로 데리고 왔다.
“내가, 내가 살게. 내가 쓸거잖아.”
“사주고 싶은데…”
“그, 정말 진짜 마음만으로도 진심으로 고마워. 근데 아까 먹을 것도 계속 사주고 했으니까 진짜 이것만큼은 내가 살게.”
“그래도 내가 좋아하니까 사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것까지만─”
“부탁이야. 내가 사게 해줘.”
“응..알았어..”
절박하게 부탁까지 하고 나서야 희나가 침울한 얼굴로 한 발 물러섰다.
후, 내가 쓸 물건을 내 돈 주고 산다고 하는 게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까 급히 카드를 꺼내서 계산대로 향하자, 우리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던 아저씨가 웃으며 계산해주셨다.
“어이구~ 여자친구분이 예쁘기도 너무 예쁘고 착하시네요. 좋으시겠어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혹시 테에 문제 있으면 영수증이랑 같이 일주일 안에 오시면 됩니다.”
“넵, 감사합니..”
“저기 잠시만요.”
스무스하게 결제가 완료되나 싶더니, 희나가 갑자기 내 얼굴에 씌워져 있던 안경을 빼서 아저씨에게 건냈다.
설마 자기가 계산 못했다고 환불 시키려는거 아니겠지?
“안경 다리 부분 고무로 한 번 감아주시겠어요? 알러지 있을 수도 있어서.”
“아, 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엥? 무슨 알러지?”
알러지?
“이런 금속테는 피부가 알러지 반응 일으키는 사람이 종종 있거든. 그래서 혹시 모르니까 고무 감아달라고 한거야.”
“그렇구나…..”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랑 금색 조합이라서 끝 부분에 검은 고무 테이프 감아도 색감도 괜찮을 것 같고.”
“오…과연…”
희나 너는 다 생각이 있었구나..?
내 여자친구의 감동마저 느껴지는 새심함에 감탄했다. 솔직히 내가 뭘 못하고 있다기보단 희나가 너무 대단했다.
첫 남자친구와의 첫 데이트에서, 이것저것 사주려고 하는 거야 둘째치고 그 외에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 세심하게 잘 챙겨주는 게.
물론 나도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뒤적여보긴 했지만, 대부분 아주 기본적인 매너와 상식에 관한 부분이었지 그때그때 갑작스레 발생하는 이런 일들에 관해서는 메뉴얼이 있을 수가 없었다.
희나가 해주고 나서야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느낌.
당연히 희나로써도 이런 것들을 전부 예상했을 리 없었다. 물이나 벤치에 앉을 때의 손수건이야 준비성이 철저했다고 쳐도.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를 할 때 그냥 별 생각 없이 해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를 했을 때 내가 어떻게 생각할 지, 어떻게 해야 내가 더 만족할 수 있을 지를 최대한 고려 해준다는 느낌.
그야말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두근거림과 기쁨, 행복함은 희나와 사귀기 시작한 3일 전부터 한순간도 빠짐없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싱숭생숭하면서도 몽글몽글한 게, 내 가슴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