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00)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99화(100/213)
Ep. 99
너무나 기분 좋았던 두 번째 섹스였다. 나를 괴롭히던 연후의 손길도, 그의 짓궂은 목소리도. 그 모든 것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에게라면 평생을 그렇게 당하기만 하더라도 행복할 자신이 있을 정도로.
아침에 눈을 떠 몸을 씻고 나오자, 간밤에 자기가 심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연후의 얼굴이 보였다. 전혀 그럴 필요 없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침이 되었는데도 나에게 키스를 해주지 않은 점이었다.
“응~? 어제? 너무 좋았는데? 아! 모닝 키스 안 해줬지?! 빨리 해줘!”
“아, 미안.”
깜빡했다는 듯 한발 늦게 나에게 키스를 해준다. 조금 심통이 나려고 했지만, 동거를 결심한 날이기도 하고 전날에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 줬으니 봐주기로 했다.
키스를 받고 나서 그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비록 시리얼이긴 하지만, 나도 연후도 아침은 가볍게 먹는 편이었으니까.
사랑하는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오늘따라 더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
지난 밤의 잠자리를 정리하고 연후와 함께 집에 들렸다. 마침 방문해 있던 언니가 소란스레 환영해 주는 것을 들으며, 이젠 정말 시댁에 들리는 듯한 느낌으로 발을 디뎠다.
다행히 어머님도 우리의 동거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셨는지, 큰 문제 없이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연후의 일에 주도적으로 앞장 선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주시는 것에 감사했다. 물론 예전부터 그래왔었지만, 여전히 그 마음 변치 않으셨으니.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연후와 함께 가져갈 옷들을 챙겼다. 그 사이에 우리의 밤일에 대해 묻는 언니에게는 진심을 다해 답해주었다.
“너무 좋았어…”
나라도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기에 수줍게 대답했다. 하지만 정말로 너무나 좋았으니까. 이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언니와 이에 관해서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연후가 옆에서 질색하는 얼굴을 하자 여기에선 참아내었다.
남편이 진심으로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내 안에는, 연후의 것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이걸로 임신한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학교야 1년 쉬는 것도 아무런 상관 없는데.
그런 생각을 안고 연후와 옷가지를 정리하며 오빠를 불렀다. 연후의 컴퓨터도 옮겨야 하고, 옷 짐도 줄인다고 줄였지만 그래도 양이 많았다. 그래서 차를 끌고 올 수 있는 오빠를 호출한 것이다.
그 전에 내가 남겼던 키스 마크로 잠시간의 투닥거림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 연후가 내 것이라는 표식을 온 세상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곧이어 오빠가 도착하고, 오자마자 우리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믿고 있었다고!”
“닥쳐.”
“오빠, 연후한테 그런 말 하지 마.”
“맞아, 형. 우리 좋은 말만 하자.”
“뒷골 땡긴다…”
이런 광경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예전처럼 연후와 장난치는 모습이, 그때는 면식조차 없었던 윤정 언니와도 친하게 지내는 그 모습이. 매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언제나 나에게 다정하고 또 위해주는 오빠의 모습이.
연후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우리 오빠.
그에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다가 서둘러 옷을 챙겼다. 차를 대로에 세워둬서 금방 빼야 한다고 하니. 옷과 컴퓨터를 싣고 나서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같이 우리 집으로 향했다.
차로 온 덕분에 금세 도착한 집에서는, 마치 자신의 집인 마냥 자연스레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열어주는 연후의 모습에 감동했다. 별거 아니기도 하고, 앞으로 많이 볼 광경이지만서도.
안에 들어와서는 오빠와 언니를 거실에 두고 둘이서 옷을 정리했다. 자리가 부족해 공간을 만들고, 내 속옷이 있는 곳에 연후의 속옷도 같이 넣어두고.
그때 살짝 붉어진 연후의 얼굴이 귀여웠다. 하지만 앞으로 익숙해져야 했다. 내가 입은 것도 많이 보여줄 거니까. 그가 원한다면 집에서 속옷만 입은 채 생활하는 것도 상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에는 전에 샀던 속옷을 입을 예정이었다. 아직 입기도 전인데, 속이 죄다 비치는 그 야한 속옷을 보자마자 흥분하는 연후의 반응에 만족했다.
그렇게 간단히 정리가 끝난 후, 거실에 나와 다같이 치킨을 먹으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연후는 이불을 찾으러 잠시 세탁소로 갔고,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희나야, 그거 알아?”
“어떤 거?”
“남자들은 있지, 컴퓨터에 무조건 야동 있는 거.”
“…….”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있는데 설마 연후도 그럴 리는.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언니가 입꼬리를 늘린 채 말을 이었다.
“설마 연후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 그래도 내가 있는데!”
“에이~ 그런 건 상관없이 무조건 있거든! 안 그래, 희성아?”
“…난 노코멘트로.”
“만약 있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안 보면…”
“여자친구가 있어도 그런 걸 보는 게 남자들이더라. 지우라고 해도 절대 안 지울 걸. 그치, 희성아?”
“나한테 묻지 말라고!”
거기서부터 오빠는 입을 다물어버렸지만, 저 태도가 오히려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동시에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그야 혼자 있을 땐 당연히 그런 걸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걸 볼 바에야 그냥 나한테 다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분노보다는, 그렇게 쌓인 것을 내가 아닌 모르는 여자들의 몸을 보면서 풀었다는 것에 서운함이 들었다.
설령 약속을 지켜 내 생일 전에는 끝까지 하지 않더라도, 내 몸 정도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었는데. 내가 전부 빼줄 수 있었는데!
그리고 연후가 올 때가 되자, 오빠와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갈 테니 둘이서 잘 이야기해 보라는 말과 함께.
하여 나는 방에서 연후를 기다렸다. 그의 말을 듣고 판단하고 싶었으니까.
이내, 그가 이불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자 바로 추궁을 시작했다.
“형이랑 누나 갑자기 간다는데 왜 저래? 뭐 미안하다던데.”
“그건 됐고, 지금 컴퓨터 킬 수 있어?”
처음엔 내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컴퓨터를 만지던 그가.
“뭐 찾으려고? 내가 도와줄까?”
“응, 네가 찾아줘야 돼.”
“뭔데?”
“동영상.”
그 말까지 듣자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그래, 정말 있다 이거지?
바로 변명을 내뱉는 그의 입을 막고, 그가 열어준 폴더에서 지금까지 그가 봐왔을 동영상을 하나씩 빠르게 확인했다.
섹시한 코스프레를 한 가슴 큰 언니의 동영상. 침대에서 연인같이 다정하게 일을 치루는 가슴 큰 언니의 동영상. 학생과 가슴 큰 여교사의 동영상. 성인 장난감을 몸에 단 채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가슴 큰 언니의 동영상 등등.
제각각의 컨셉이 있는 영상들이었고, 대충 훑어본 거라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공통점 하나만은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영상의 여배우가, 가슴이 크고 섹시한 타입의 여자라는 것.
나도 예전보다 많이 커져서 그렇게 작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영상 속 여자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분했다.
하지만 내 가슴도 좋다고 말해주는 그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기에 그에게 스리슬쩍 미끼를 던졌다.
“앞으로도 계속 보겠지? 나는 우리 둘만 여기서 사는 줄 알았는데, 이런 모르는 언니들도 같이 살게 될 줄은 몰랐네.”
“아, 안 볼게! 다 지울까? 응? 지금 바로 다 지워도 돼!”
당장이라도 지울 것처럼 말하는 연후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지우기 싫으면 안 지워도 돼. 남자들은 여자친구가 있어도 본다고 하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 줄게.”
그리고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듯한 내 말에.
“휴… 이해해줘서 진짜, 정말 고마워. 이런 게 지워버리면 나중에 꼭 생각나거든. 그럼 냅두는 걸로─”
안도하며 덥썩 물어버리는 연후의 모습을 보자, 머릿속 끈 하나가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계속 볼 생각이라 이거네?”
더욱이 이어지는 내 말에 살짝 시선을 피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있는데도 저런 여자들을!
“당장 지울게! 평생 안 볼게!”
“됐어. 지우든 말든 마음대로 해.”
뒤늦게 정말 동영상을 지우며 그리 용서를 빌었지만, 이미 연후의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밤에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그와 말을 섞지 않았다. 그가 참기 힘들도록, 일부러 아까의 야한 속옷을 입은 채로.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AV속 여자들에 대한 질투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나도, 나도 다 해줄 수 있는데. 코스프레든, 상황극이든, 혹은 장난감을 사용해서 날 괴롭히는 것이든. 그 무엇이든!
내가 다 해줄 수 있는데!
물론 내 한동안의 토라짐이야, 연후가 끊임없이 내 귓가에 대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에 금세 풀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앞으로 안 볼 거지?”
“응응. 절대 안 볼게.”
“만약 보면 컴퓨터 부숴버릴 거야.”
“…나만 믿으라니까.”
그에게 확답을 받아내고.
“연후 네가 원하는 건 내가 전부 해줄 테니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알았지? 코스프레든, 장난감이든. 뭐든지 괜찮으니까.”
“알았어.”
“후후, 그럼 됐어. 사랑해~ 내 억지 들어줘서 고마워.”
“아냐, 억지는 무슨. 나도 사랑해.”
그 말까지 하고 나서야, 완전히 기분을 풀었다. 동영상을 전부 지우는 것도 확인했고, 그런 게 보고 싶으면 앞으로 나한테 말해줄 테니까.
내가 다 해줄 테니까.
하지만 역시 전부 지워버린 것은 연후에게 있어서도 상처였는지, 그날 밤에는 어제보다도 나를 더 심하게 괴롭혔다.
내가 수없이 가버리더라도, 지쳐서 신음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고, 내 몸으로 장난치듯 욕구를 푸는 그의 모습에.
웃으며 잠들 수 있었다.
그래, 연후야.
전부 나에게 해줘.
무엇이라도 받아줄 테니까.
—
그 후로 행복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모든 일상을 연후와 함께 하고, 가끔은 속옷만 입은 채 그를 유혹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내가 새터로 인해 집을 비우게 되었을 때.
연후와 떨어져 그런 곳에 가는 것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저런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출발하는 순간까지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잘 다녀 와. 어디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알았어…사랑해, 연후야. 나 잊으면 안돼.”
“희나야, 너 모레 돌아오는 거 알고 있는 거지? 암튼 나도 사랑해. 이제 가야지. 늦겠다.”
“다녀올게…”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며 질척거리는 나를 달래주던 연후는, 알고 있을까?
나를 달래주고 있으면서도, 자신 역시 마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와 떨어지는 게 너무나 싫다는 것이 표정에서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
그런 슬픈 이별 후에 참석한 새터는, 예상대로 딱히 흥미가 가는 것이 없었다. 이미 비슷한 것을 경험해 보기도 했고, 동기들과 얼굴을 익혀두는 것 외에는 별로 의미가 없는 행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두 시간에 걸쳐 도착하자마자 방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그 직후에 첫 행사인 동아리 소개가 이어졌다.
단순한 소개이지만 생각보다 꽤 장시간의 행사였다. 그것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단호히 쳐냈다.
“이희나랬지? 강의 뭐 들을지 생각해둔 거 있어? 내가 족보 쫙 꿰고 있는 교양 하나…”
“다 정해 놔서 괜찮아. 미안한데 멀미 때문에 속이 좀 안 좋아서. 혼자 있게 해줄래?”
“그, 그래?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
마치 자기는 흑심 따위 없다는 듯 어설프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보면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당연하다는 듯 보이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나마 프로필도 연후와의 키스 사진으로 해 놓았고, 남들 다 볼 수 있도록 왼손을 슬며시 들어 반지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접근하는 남자의 숫자가 적은 편이었다.
그냥 동아리 소개나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물론 나는 동아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연후와 보낼 시간도 부족한데 이런 걸 할 여유가 있을 리 없으니까.
하여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연후에게 톡만 보내고 있었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 마음을 한가득 담아서.
“옆에 괜찮아?”
“응. 리아 너는 동아리 관심 있어?”
“오! 내 이름 기억해줬구나? 역시 버스 옆자리~ 나야 관심 많지!”
“오면서 계속 이야기했는데 잊을 리가 없잖아.”
이 의미 없는 행사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것이 있다면, 리아를 만난 점일까. 버스에서 살짝 긴장한 채로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모습에서, 순수하게 나와 친해지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나도 어쩐지 연후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순한 면이 마음에 들었고.
리아와 둘이 앉아 잡담을 하는 사이, 기나긴 동아리 소개가 끝나고 곧바로 뒤풀이 술자리가 이어졌다.
남녀가 구분 없이 뒤섞여, 서로 인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친해지는 시간.
나와는 관련 없었지만.
“후배, 술 한 잔 해야지?”
“죄송하지만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리고 남자친구랑 중요한 연락 중이라.”
“어, 어… 그래?”
기다렸다는 듯 술잔을 들고 가까이 온 선배에게, 여기 있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사실 아직 폰만 손에 든 채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으나, 연후가 없는 술자리는 의미가 없었다. 취하고 싶지도 않았고.
리아와 둘만 있다면 그나마 조금 마실만 할까. 그 외에는 아직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과 너무 거리를 두는 것도 좋지 않지만, 굳이 불필요하게 가까이 지낼 필요도 없다는 것을 지난 삶에서 배웠다.
“희나 너 진짜 칼같이 거절하네. 나도 너 옆에 있어야겠다! 저런 건 좀 거북해서.”
“응. 나중에 우리끼리 따로 한 잔 하자.”
“그거 좋지! 근데 남친이랑 좋은가 봐? 프사도 장난 아니던데?”
“엄청 좋아. 지금도 만나러 가고 싶어. 당장.”
“우와…장난 아니네. 사귄지는 얼마나 됐어?”
남자들의 치근거림을 상대해 주는 것보다, 리아와 연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천 배는 더 영양가 있었다. 적어도 말하는 동안 내가 즐거울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연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해, 나도 모르게 걸어버린 영상 통화에서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며.
─쪽!
“웅~ 나도 쪽!”
연후와 귀여운 키스도 주고받고.
“근데 너 남친 좀 귀엽다~ 우리랑 동갑이라고 했지? 조금 내 타입-”
“뭐?”
“아, 아니! 내, 내 타입은 아니지만! 그냥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장난삼아 허튼 소리를 하는 리아의 입도 막아주었다. 아무래도 리아와 더 친하게 지내는 것은 보류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정말 이성으로서의 관심이 아예 없으면 저런 장난도 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리아의 장난에 순간 감정이 격해졌으나, 벌써 몇 시간이나 보지 못했던 연후의 얼굴과,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순식간에 마음이 온화해졌다.
정말, 내가 왜 이런 행사 따위에 와 있는 걸까. 연후랑 몸이 부서질 듯 껴안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우리 그만 가볼게. 잘 자, 연후야.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너도 잘 자.
결국 행복한 시간은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통화를 끊자마자, 옆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리아를 뒤로 한 채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자고, 빨리 시간이 지나야 다시 연후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음날. 새터 2일차.
나는 멈춘 것만 같은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땡볕 아래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체육대회 시간 동안은 폰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말이 있어서 연후에게 톡을 할 수도 없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 때문에 눈총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차라리 안 왔으면 안 왔지.
“괜찮아? 들어가서 좀 쉴래?”
“괜찮아.”
그걸 몸 상태가 안 좋은 거라 여겼는지, 리아가 옆에서 걱정해 주었지만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연후가 없어서 그런 것이니, 어딜 가서 쉬든 매한가지였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온 만큼 그 목적을 위해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무거운 몸을 옮겨, 천천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그래도 어제의 일이 있던 만큼 대놓고 집적거리는 사람은 대부분 사라져서 다행이었다.
연후가 보고 싶어.
—
1초가 10년과도 같던 새터가 끝나 드디어 돌아왔다. 더욱이 학교까지 마중 나와서 환히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연후를 봤더니, 온몸에 활력이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서로의 체취를 맡음으로써 마음이 안정되어 간다.
같이 집에 돌아와서는, 연후에게 부탁해 저녁부터 그와 달라 붙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안되는데? 잠도 못 자게 키스할 건데?”
“흐히힣… 응. 연후 네가 원하는 만큼, 많이 해줘. 잠 안 자도 되니까, 얼마든지.”
나를 갈구해 주는 그의 모습에 행복이 전신을 감싸온다. 견디기 힘든 3일이었다. 예전에 연후가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보다, 이번이 더 힘들었다는 것이 확연했다.
나중에 입대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벌써 부터 들 정도로. 하지만 당장 그런 걱정보다는, 그의 사랑을 한껏 느끼는 것이 중요했다.
내 삶이 마치 연후에게 종속된 것처럼,
내 모든 것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떤가.
나는 지금의 스스로가 좋았고.
또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한 것을.
연후에게 안겨 있는, 지금이.
—
새터에서 돌아온 후, 연후도 나도 서로 잠시간 못 봤던 시간 때문인지, 더욱 서로를 붙들고 있어 황홀하리만치 큰 만족감을 느끼던 나날 중.
연후의 알바가 시작되었다.
나도 개강이었지만, 첫날이라 별 거 없이 금방 끝나버렸다. 하여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무데도 가지 말라는 듯 그의 품 안에 쏙 들어가 있었는데.
연후가 떠나버렸다. 나를 두고.
물론 바로 따라갔지만.
그렇게 그의 뒤를 따라 카페에 도착한 후, 자리에 앉아 내가 보게 된 것은. 너무나 사이 좋아 보이는 연후와 직원 언니의 모습이었다. 둘이 서로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을 보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연후의 근처에 여자라곤 윤정 언니 뿐이었기에 이런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 리아도 그렇고, 지금 저 언니도 마치 연후에게 꼬리를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선 불안한 마음이 치솟았다.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되뇌였다.
나는 연후를 믿고 있으니까.
저건 그냥 일을 배우고 있는 것 뿐이니까.
그런데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붙어서 배워야 해?
왜 저 언니한테 상냥하게 웃어주는 거야?
왜 연후한테 눈웃음을 치며 웃어?
어째서 연후의 손을 잡아주는 건데?
안 도와줘도 연후가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그게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리필 해주시겠어요?”
결국 보고만 있지 못하고, 잠시라도 방해해 볼까 싶어서 잔을 비운 뒤 리필까지 부탁해봤지만.
연후의 눈은 나보다 커피를 내리고 있는 직원 언니에게 향해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보고 있었다.
그에 흐트러지려는 표정을 필사적으로 숨겼다. 연후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수 시간 동안 내가 카페에서 한 일이라고는, 차오르는 질투심을 억누르며 그저 그의 일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드디어 그의 근무시간이 끝났을 때, 여전히 웃는 얼굴로 카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연후를 끌고 나왔다.
“먼저 들어가지 그랬어. 기다리느라 힘들었지?”
“하나도 안 힘들었어. 근데 연후야.”
그리고 나를 걱정해주는 그에게.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 언니랑 엄청 즐겁게 이야기 하더라?”
본심이 흘러나와 버렸다. 말해 놓고도 순간 움찔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다른 여자랑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눈길은 나만 받았으면 좋겠어. 사실 알바 같은 거 하지 않았으면 해. 평생 나랑만 같이 있어 줘.
이 모든 걸 다 쏟아낼 수는 없지만.
“같이 일하면서 계속 볼 사람인데, 불편하게 대하면 내가 힘드니까 그랬지. 내 맘 알지?”
“몰라!”
격해진 감정에 그에게 떼를 쓰고.
“갑자기 왜 그러는지 말해줄 수 있어? 전엔 괜찮다고 했었잖아.”
나를 달래주는 그의 상냥함에 기대서.
“아니라니까! 아까 그 언니도 봐! 나 없었으면 더 친한 척 했을 걸!”
내 질투심을 한껏 내보였다.
“그건 모르잖아! 알고 보니 이미 그런 생각일 수도 있고! 첫 눈에 반했는데, 네가 자기 말에 상냥하게 웃어주니까 아, 얘도 나한테 조금 마음이 있나? 하면서 은근슬쩍 너한테 접근할 수도 있잖아! 네가 음료 만들다 힘들어 하면 도와주는 척 터치하고, 이상한 손님 와서 네가 마음고생 하면 옆에서 보듬어 주고! 그러다 같이 술도 한잔 하고! 너 취하면 도와주겠다고 호텔 같은 곳에 데려가서…!”
카페에서 떠오른, 있을 수 없는, 있어선 안 되는 최악의 상상을 그에게 늘어 놓으면서.
그 바보 같은 망상을 토해내듯 쏟아붓고 나자, 그제서야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동시에 창피함이 밀려 들어왔다.
연후는 항상 나를 생각해주고, 나를 배려해주고, 또 내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저렇게 해주는데.
나는 내 욕심만 내보이고, 질투하고.
그렇게 네거티브한 감정에 매몰되려고 할 즈음, 갑작스럽게 그가 내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희나야, 나머진 집에 가서 이야기 하지 않을래? 나 지금 하고 싶은데.”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나를 원한다는 그의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분명 조금 전까지 스스로가 미워질 만큼 안 좋은 감정들에 휩싸여 있었는데. 연후가 몸을 겹치길 원하자, 내 몸은 곧바로 반응하여 그를 원하고 있었다.
연후에게 지금 당장 안기고 싶었다. 참을 수 없을 만치 안쪽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따 다시 얘기해. 어서 가자.”
하여 조금 전까지의 이야기는 내버려두고, 둘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신발장에서부터, 그가 나를 붙잡고 격한 키스를 퍼부었다. 내 온 몸을 더듬으며, 나를 가지고 싶다는 그 마음을 더없이 표현해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할 수 없어 서로의 옷을 벗겨주었다. 찢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격렬하게.
마침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자,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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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간과는 다른, 마치 첫경험을 했던 날처럼 연후가 부드럽게 나를 안아주었다. 마치 오늘의 섹스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라는 듯이.
나를 괴롭혀주는 것도 무척 좋았지만, 이렇게 그가 온전히 나만을 위해 힘을 써 주는 것 또한 좋았다. 자신의 욕망보다, 내 기분 좋음을 우선해주는 것이.
덕분에 날아갈 듯한 황홀감이 느껴지는 한 번의 섹스 후에, 연후와 반신욕조에 들어가 몸을 덥혀주었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이 욕조였다. 처음 내가 상상했던 대로, 연후의 품에 안겨 같이 들어가면 크기가 딱 맞았으니까.
좁은 이 공간안에, 오로지 나와 연후만 있는 것이다. 어쩐지 묘하게 안심되었다. 어렸을 적 나만의 비밀 기지에 들어가 있을 때처럼.
“희나야, 기분 좋아?”
“으응…좋아. 조금만 더 세게 안아줘.”
“오케이.”
그리고 그가 다정하게 귓가에 속삭여주니 이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 상태에서, 그와 서로의 본심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질투는 오히려 내가 맨날 하거든?”
항상 웃으며 나를 바라봐주었기에, 나는 정말로 상상도 못했던 그의 질투심도 엿볼 수 있었으며.
“너 대학에서도 누가 작업 걸까 봐 걱정된다니까.”
“나 그런 거 절대 상대 안 해주는데!”
“알아. 그래도 불안해지거든. 무슨 느낌인지 알지?”
“…응.”
연후 역시 나와 같은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알아. 사랑해, 희나야.”
“내가 훨씬 더 사랑해.”
마지막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저귀면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그를 껴안았다. 내 살갗에, 그의 몸이 그대로 느껴졌다. 동시에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침대 갈 때까지 못 버틸 것 같은데, 가기 전에 한 번만 부탁해도 돼?”
“응! 내가 기분 좋게 해줄게!”
연후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당장 나에게 입으로 해줄 것을 부탁하는 그에게, 정성을 다해 봉사해주었다.
나로 인해 그가 기분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행복했다. 나 또한 그 이상으로 달아올랐고.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동영상도 깔끔하게 지워주었겠다, 언제든 그가 쌓이면 내가 전부 빼줄 생각이었다.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그를 기분 좋게 해줄 것이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