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02)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101화(102/213)
Ep. 101
5월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희나와의 기념일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할 만한 것들을 알아보았다.
비싼 물건을 사 주는 것은, 받을 땐 기뻐하더라도 다음부턴 같이 상의 하자면서 은근히 날 혼내는 터라 패스. 비슷한 이유로 어딘가 비싼 식당을 예약하는 것도 패스.
그렇게 안 될 만한 것들을 제하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결국 기본적으로 나 혼자 마음대로 뭘 하려고 하는 것부터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그럼 둘이서 계획을 짜고 여행을 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거였다. 국내가 아니라 언젠가 희나에게 장난삼아 이야기 했던 것처럼, 가볍게 1박으로 일본 온천 여행이라도.
일단 돈은 충분히 있었다. 내가 스트레스 풀이 겸 꾸준히 하고 있는 카페 알바의 알바비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정말 일본으로 가게 되면 부족하겠지만 정후 형 찬스를 쓰면 되니까.
애시당초 모은 돈을 쓸 일이 없었다. 희나와 가끔 바깥에서 데이트를 하긴 하지만, 나가도 큰 돈을 쓸 만한 일은 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집 데이트였다. 친구들과도 다들 성인이 돼서 바쁜 만큼 자주 얼굴을 보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재수생인 나는 집 안에 처박혀 공부를 하거나, 주 3일 잠깐 알바를 다녀오는 것이 생활 패턴의 전부였다. 공부도 희나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돈 들어갈 일이 많지 않았고. 고3때처럼 공부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희나한테 물어보면 됐으니까.
덕분에 4월 모고 성적도 좋았다. 진짜 작정하고 하면 희나랑 같은 학교 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그 정도로 빡시게 하면 여름 지나기 전에 번아웃이 올 테지만.
하여 집에서 공부만 한 것은 아니고, 이전에도 그래왔듯이 공부 시간 외에는 게임을 하거나 최근에는 유튜브를 보면서 요리 수련을 했다.
“어때, 괜찮아? 잡채는 처음 도전해 보는 건데.”
“너무너무 맛있어!”
“디테일한 평가는 안 될까? 매번 그냥 맛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치만 맛있는데… 이리 와. 얼마나 맛있는지 행동으로 보여줄게!”
-쪽!
나보고 오라더니, 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내 목을 껴안으며 찐하게 키스를 하는 희나. 그녀의 입술과 혀에서 느껴지는 잡채의 맛을 보니, 확실히 괜찮게 한 것 같기는 했다.
난 시발,이 아니라 세상에. 잡채라는 게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줄 처음 알았다. 그냥 갑자기 내가 먹고 싶어져서 도전해 봤는데 그렇게 빡셀 줄이야.
그래도 힘들게 만든 것을, 희나가 먹고 기뻐하는 걸 보면 항상 요리를 해 주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이 맛에 요리 공부를 빼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안 하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야 해서.
아무튼 일상 생활이 그렇다 보니, 돈이 나갈 구석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요리 재료를 살 때는 엄마 카드를 이용하고 있으니.
덕분에 꽤나 많이 모였기에, 내 저금 만으로도 희나랑 둘이서 일본 여행을 다녀올 정도는 충분했다. 물론 간다고 하면 분명 희나도 돈을 보태겠지만.
그렇다고 내 맘대로 여행을 결정할 수는 없었고, 희나 일정도 생각해야 하니 쓸데없이 서프라이즈를 할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둘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한 다음, 같이 계획을 짜는 것도 즐거울 테니까.
—
분명 즐거웠어야 했는데.
“…….”
우리의 2주년이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점점 희나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닌 게, 나에게 딱 달라붙은 채로 어두워져 있는 것이다.
“무슨 일 있어?”
걱정이 돼서 그렇게 물어봐도.
“아니… 너 공부해. 나 얌전히 있을게…”
“그, 그래…”
그렇게 말하며 매미처럼 내 등을 껴안고만 있었다. 혹시나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그런 마법의 날 때문인가 싶었지만, 나도 희나 주기를 대충 아는데 그날도 아니었다. 게다가 희나는 그날이어도 상태가 심해지지 않는 편이라 이렇게 다운되지도 않는다.
며칠째 그 상태가 이어지자, 하루는 리아에게까지 연락을 했었다. 희나랑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고, 그러다 보니 나랑도 얼굴을 맞댄 적이 있어서 연락처 교환 정도는 해놨었다.
[ 한연후 : 혹시 희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요새 상태가 좀… ] [ 박리아 : 어? 난 너랑 무슨 일 있는 줄 알았는데… 시험도 잘 본 것 같은데 요새 맨날 저기압이라…ㅠㅠㅠ ] [ 한연후 : 그래? 흠… 암튼 ㄳ ] [ 박리아 : 아냐 🙂 그래도 너랑 문제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다행이다! 다음에 희나 기분 풀리면 셋이서 한잔 콜? ] [ 한연후 : ㅇㅋㅇㅋ ]하지만 리아도 이유를 모른다고 하니,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랑은 최근 젠가로도 즐겁게 놀았을 만큼 잘 지내고 있었고, 이번 대학 중간고사도 잘 봤으며, 집안에도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에 대해서 끙끙 앓다가, 진짜 2주년이 코앞까지 다가와 별수 없이 그냥 희나에게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어정쩡하게 넘어가지 않고, 대답해 줄 때까지 물어볼 요량으로.
“희나야.”
“응…?”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내 팔을 꼭 붙든 채로 축 처져 있는 희나를 불렀다. 사실 힘이 없다기보단, 어딘가 불안에 떠는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 곧 사귄 지 2년이잖아.”
“……”
“그러니까 그날 같이 여행 가지 않을래?”
일본 정도야 몇 달 전부터 예약하지 않아도 충분히 갈 수 있다는 주변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비수기이기도 하고. 하여 지금이라도 가겠다는 말만 하면 바로 예약을 할 텐데.
희나가 아무리 저기압이라고 한들, 내가 이렇게 제안을 하면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돼.”
“어? 싫어?”
내 팔을 더 강하게 붙잡으며 거절하기에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쪽에서 직접적으로 뭘 하자고 하는 것을 거절하는 건 처음이라서.
혹시 진짜 나한테 뭐 불만 있나, 싶어져서 나까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을 때.
희나가 애처로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우리 2년째 되는 날은,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될까?”
“집 데이트 하자고?”
“응…나, 그날은 그냥 같이 있고 싶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서 둘이.”
“그래?”
마침 그날은 주말이라 내내 함께 있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희나가 세세한 기념일들에 특별한 일을 하며 챙기는 것보단, 그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걸 더 중시하긴 했어도 이번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작년 1주년때도, 2주년이면 모를까 1주년은 공부도 해야 하니 그냥 넘기자고 했었으니까.
문득, 근래 희나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태가 안 좋아진 날 이래로 이렇게 의견을 꺼낸 것은 처음이었으니.
“너 요새 기분 안 좋은 거, 우리 기념일 때문이야?”
“…….”
내 물음에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그게 정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나 전혀 감이 안 잡혀서… 왜 그날을 그렇게 신경 쓰는 지 말해줄 수 있어?”
고개를 아래로 하여, 희나의 얼굴을 살짝 올려다보며 가능한 한 부드럽게 이유를 물었다. 그럼에도 입을 앙다문 희나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쪽
그 후엔 손으로 그 위를 쓰다듬어 주면서, 천천히 설득하듯 말을 이었다.
“나 너랑 여행 가고 싶어서 엄청 기대하고 있었거든. 그동안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 2,3일쯤은 공부도 쉬어도 될 것 같아서.”
“…….”
“여행 가는 거 부담스러우면 집에서 보내도 상관없어. 그런데 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래. 무슨 일인지 말해줄래?”
“부담되는 거 아니야…”
“그래?”
“…나 있지…”
드디어 말문을 열려는 그녀에게, 숨결이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 하며 조용히 경청해주었다. 서서히, 그녀의 조그마한 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에, 꿈을 꿨는데…”
“무서운 꿈이었어?”
“응…우리, 2주년 데이트 때, 너 만나려고 나갔다가…”
“응.”
“기다리는데, 네가…흑… 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말을 해주는 도중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나는 호들갑 떨지 않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끝까지 말해주길 기다렸다. 솔직히 마음속으론 조금 안도하고 있었다.
어디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악몽으로 인해 그러는 것 같았으니까. 희나가 그런 것에 그렇게까지 신경 쓴다는 점이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그래서…히끅, 네가…네가…”
“많이 다쳤어?”
“죽…흑, 흐아아앙…죽어서어…”
“내가?”
“흐, 흐흑…응…히끅…연후를…너를…흡… 더 못 보게 돼서…”
꿈 속의 이야기임에도, 정말 겪었던 일을 말하는 것 마냥 서럽다는 듯이 펑펑 울며 말한다.
그쪽 세상에선 내가 숨졌었구나!
“울지 말고. 뚝. 나 지금 옆에 있으니까. 응?”
“흑, 어디…가지 말고…흐윽… 옆에 있어줘…”
“옳지. 그것 때문에 불안했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이리 와. 안아줄게.”
그대로 희나가 품에 안긴 채,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런 희나를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 주면서, 머리로는 잡다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희나도 이런 소녀적인 감성으로 불안해 할 때가 있구나, 같은.
나도 어렸을 때 악몽 꾸다가 울면서 엄마랑 같이 잠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슨 느낌인지는 대충 알 것 같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렇게 몇 날 며칠 동안 불안에 떤 적은 없었다. 보통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졌으니까.
하지만 진실을 숨기기 위해 얼버무리며 거짓을 말해줬다고 생각하기엔, 섹스할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감정이 격해진 희나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어쩌면 집에서 가족에게 사랑받으면서 지내다가, 밖에 나와 살게 돼서 불안한 마음이 점점 축적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동거 초창기부터 내가 같이 살기는 했지만. 그래서 내가 죽는 꿈을 꾼 건가?
정말, 세상 그 어떤 연인보다도 둘이 지내는 시간을 길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안해하면서 이런 꿈까지 꿀 줄이야.
내가 어떻게 더 해줘야 희나가 안심할 수 있을까.
그냥 아예 진짜 내가 가족이 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려나. 혼인 신고서에 도장 찍어버리고, 서류상으로도 완전히 희나의 것이 되어버린다면.
음.
결혼하면 왠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설마 그러겠어?
잠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지만, 금세 멈추고는 다시금 희나를 달래줄 방법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