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11)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110화(111/213)
Ep. 110
서둘러서 하던 식사를 마무리하고, 희나와 소파에 마주 앉아 사태 파악을 시작했다.
생리를 멈췄다는 게, 그거 맞지?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겠지?
“보통 임, 임신을 하면 생리를 멈추는 거, 맞던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
후, 심호흡. 심호흡.
날아갈 것만 같은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았다.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당연히 아이를 지운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런 선택을,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그저 희나의 대학과 내 수험. 그리고 이 사실을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것. 그 외에도 여러가지 현실적인 여건들이 이리저리 엉키며 머릿속을 헤집었다.
심장은 철렁하고, 손발은 차가워질 만큼 당황스럽지만, 가능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내가 그렇게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희나는 어떡하겠는가.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심정이 불안정할 것은 분명 희나일…
-히죽히죽
“……”
아니, 왜 이렇게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어? 이희나 지금 불안한 거 맞아?
아무리 그동안 쉽게 아기나 임신 이야기를 꺼냈어도, 막상 일이 닥치면 여자애인 만큼 당연히 어찌할 줄 몰라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여자친구님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양손으로 자신의 배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하늘로 승천할 것만 같은 입꼬리를 간신히 억제하고 있는 그녀.
“희나야.”
“응?”
“…조금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너 좋아하고 있는 거지?”
“아, 아니? 어떡하지? 일단 같이 산부인과 가볼까?”
“입꼬리부터 좀 내려주지 않을래? 너 근래 들어 최고로 행복해 보이거든?”
“……히히.”
“아니…..풉…아, 이희나 진짜…크흡… 프하하하하핫!!”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만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그냥 반쯤 정신이 나간 것일 수도 있다.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이 어떡할까? 이러고 있는 희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하고 있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한참을 웃다가, 진정이 될 즈음 희나에게 말했다.
“후… 일단 산부인과부터 가보자. 확인도 해봐야 하고, 만약 임신이 아니면 생리 멈춘 거 걱정되니까 간 김에 진찰도 받고.”
“응, 알았어! 나 바로 준비할게~”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가는 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파에 몸을 기대고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혹시를 대비해 진찰도 받을 겸 임신 테스트기 쓰는 것보다 바로 가보는 게 확실하겠지.
근데 임신이면 어떡하냐, 진짜.
—
몸이 무척 건강한 덕분인지, 희나는 생리 주기가 굉장히 일정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솔직히 거의 백퍼센트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별 과제 같은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게 영향을 줘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진 채, 택시를 타고 급히 가까운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부인과 안에는 평일임에도 몇몇 부부나 여성 분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계셨고, 아무래도 어린 커플로 보이는 우리가 그 앞을 걸어가니 은근히 시선이 모였다. 희나가 예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혈압이랑 몸무게 확인 끝났고,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전혀 신경 쓸 틈이 없었고, 접수를 마친 후 희나의 손을 꼭 잡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사람 많다~”
“그러게. 어디 몸 안 좋은 덴 없지?”
“만약 임신했어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거 없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럼 다행이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희나에겐 걱정과 불안 같은 것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희나보다 내가 더 긴장한 상태로, 사형을 선고 받은 죄인 마냥 잠자코 있기를 약 한 시간.
우리를 부르러 온 간호사님의 안내에 따라, 의사 선생님과 짧은 면담 후에 바로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되었다.
면담 내용은 별 거 없었다. 그전에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해 봤는지, 혹시 낙태를 생각하고 있는지 정도만 물어보더라. 아마 우리 나잇대 같은 경우엔 지우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검사 후 잠시간 대기하고 있자, 다시금 선생님이 우리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눈앞에 닥친 현실을 확실히 선고 받았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시는 초음파 사진으로.
“6주입니다. 여기 보시면 아기집이랑 난황이 잘 자리 잡은 게 보이시죠?”
“네!”
“…넵.”
하얗고 동그란 부분 안에 조그맣게 있는 게, 우리의 아가라고 한다. 뭔가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조막만한 게 커져서 아기가 된다는 것이. 이미 아기인가?
“산모 분도 건강하시고, 지금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셨지만 앞으로 미식거림이나 가슴 등에 통증이 있으실 수도 있어요. 그리고─”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인지, 나름 침착하게 설명을 듣고 있을 수 있었다. 앞으로 주의해야 할 점들이나 이후 내방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나도 희나도 귀를 열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들었다.
한창 설명을 해 주시다가, 도중에 컴퓨터를 조작해서 동영상 같은 것을 하나 틀어주셨다. 그러자 거기서 아까 보여준 초음파 사진의 영상이 재생 되었고, 이내 무언가 요상한 소리가 섞여 나왔다.
“소리를 잘 들어보시겠어요?”
-부웅! 부웅! 부우부웅!
그 말에 집중하고 들어 봤지만 당최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빠르게 달리는 차에서 창문을 열었을 때 들리는 바람 소리?
하여 둘 다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자, 웃으면서 그것의 정체를 알려주셨다.
“이게 산모 분 안에 있는 아가 심장 소리에요. 5,6주차 쯤부터 확인이 가능한 건데 다행히 이번에 듣게 되셨네요.”
“이, 이게요?”
“네. 신기하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냥 바람 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게 아기의 심장 소리였다니. 초음파 사진으로는 생각보다 크게 와닿지 않았던, 정말 하나의 생명이 희나의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 그제서야 실감되었다.
그리고 그건 희나도 마찬가지였는지, 어느샌가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뚝, 뚝
“이게… 우리 아기…”
“괜찮아?”
“응… 연후야, 들었지? 심장 소리, 엄청 건강한 거…?”
“당연하지. 엄청 크더라. 기차 지나가는 줄 알았잖아.”
“흑… 우리, 우리 아가래… 이게… 연후랑…히끅…너랑, 내 아이… 흐아앙…”
이윽고,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오열한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고갯짓으로 양해를 구하고는, 희나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나 역시 눈앞의 생명에 감동하긴 했지만, 희나는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느낀 것 같았다. 어쩐지 더 이상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저 희나와 우리 아기를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막연한 다짐만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물론 우리는 새 생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렸고, 앞으로 수없이 많은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겠지.
나와 희나를 위해.
우리의 아기를 위해.
—
그 후 희나가 진정되기를 같이 기다려주신 의사 선생님께, 나머지 알아야 하거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아기의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가 되면 병원에서 산모 수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나, 처음 받았던 초음파 검사 외에도 다양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 등을. 필요하면 약도 먹어야 하고.
하여 곧바로 병원에서 몇 가지 피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앞으로의 내원 일정을 잡은 뒤 귀갓길에 오를 수 있었다. 손에는 오늘 받은 산모 수첩을 든 채로.
다행히 보험 처리가 된 덕분에 많은 검사를 받았음에도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나오진 않았다. 검사 결과도 아무 이상 없이 무척 좋았고.
그렇게 뭔가 정신 없었던 산부인과 방문이 끝나고, 갈 때와 마찬가지로 희나와 손을 꼭 잡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나란히 소파에 앉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친 몸을 쉬게 해줬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던 중, 갑작스레 희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싫은 거 아니지…?”
“뭐가? 임신한 거?”
“응…”
정말 이제와서?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뒤늦은 질문이었다. 산부인과에 갈 때까지만 해도 신나 있었고, 돌아오는 길에도 시종일관 배를 매만지며 미소를 짓고 있었으면서.
지금에서야 어두운 낯빛으로, 조심스럽게 묻는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주었다.
“싫을 리가 없잖아. 그냥,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까 당황한 거야.”
“정말…?”
“당연하지. 부모님들께는 내일 말씀드리기로 했으니까, 오늘은 우리 아기 태명이나 생각해 보자.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사실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다. 걱정은 없지만 그 이상으로 책임감이 솟아나고 있었고, 내일 부모님들께 말씀 드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그렇지만 그게 희나의 임신에 대해 뭐라고 쓴소리를 내뱉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임신의 책임 절반은 나에게 있으니까.
“그럼, 그럼 우리 아기 낳아서 키우는 거지?”
“아니, 같이 산부인과에서 예약도 잡아 놓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랬지…흐후훟… 응, 맞아. 우리 아가, 건강하게 낳으려면 열심히 가야겠지?”
“그래야지. 그리고 너 앞으로 주방은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아니, 잠깐. 너 대학 어떡하지? 방학 끝나면 3,4개월 차인데 절대 안정해야 하잖아.”
무리해서 다닌다고 하면 절대 말릴 것이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로 중요하니까.
그런 내 물음에 이미 생각해 놨다는 듯 가볍게 희나가 답해주었다.
“1학기는 마쳤으니까, 2학기부터 휴학해야지.”
“그렇게도 휴학이 돼?”
“응. 사유도 있으니까. 만약 너 같은 대학 오면 내년 2학기부턴 같이 다닐 수도 있겠다.”
“와, 부담 주는 거? 딱 기다려. 내가 우리 아기한테 맹세컨데 같은 대학 가고 만다.”
“후후, 화이팅!”
다행히 희나의 대학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내년 2학기 복학이면 아이를 낳고도 몸조리 할 시간도 있을 것이고. 그 후에는 아주머니…아니, 장모님의 도움을 받으면 될 테니까.
그럼 남은 건 나인데, 내 공부에 대해선 더 고민할 것이 없었다. 알바 당장 그만두고 수능까지 무조건 올인하는 것 밖에는.
희나와 같은 대학을 다니며 캠퍼스 커플이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 이제는 아기와 희나를 위해, 우리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얼추 우리들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가 끝나고, 화제는 다시금 아기에 대한 걸로 가득해졌다.
“아까 아가 심장 소리 들었을 때, 나 너무 신기했어.”
“나도 그래. 진짜 이 안에 우리 아기가 있구나, 하는 게 확 느껴지더라.”
“응…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뭔가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겠지? 심장이 그렇게나 뛰었는데.”
“그렇지 않을까? 스읍, 벌써부터 그러는 게 싹수가 보이는데… 운동 시켜줘야 하나? 예체능은 빡셀 텐데.”
“푸흐흡…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한테 무슨 소리야~”
그런 대화를 나누며, 나는 희나의 배에 살짝 손을 올린 채 그녀와 함께 살며시 그곳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지금 만큼은 희나도 자기 배를 만지고 있는 걸로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상냥한 눈으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 보고 있을 뿐.
한동안 둘이서 말없이 배를 쓰다듬고 있다가, 희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사랑이.”
“응?”
“우리 아가 태명, 사랑이로 하면 안 될까?”
“네가 그게 좋으면 나야 괜찮은데. 좀 흔하지 않나?”
“흔하고 말고 같은 건 상관 없구… 그냥,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사랑스러워서. 연후 너도, 우리 아가도. 그래서 그거밖에 떠오르지가 않아.”
“그러자, 그럼.”
사실 내가 지어주는 것은 정말 자신이 없었으므로, 희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게다가 예쁘기도 하고.
사랑이.
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기니 굉장히 좋은 이름 같았다. 마치 정말 나와 희나의 사랑이 구현화 된 것 같아서.
연신 사랑이를 부르며 웃고 있는 희나의 모습에, 내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꼈다.
이제 스무 살.
아이는 커녕 내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법적으로 성인이 됐을 뿐 그저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우리였지만.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 지, 정말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하고 있는 이 순간에, 더없이 힘을 얻고 있었다. 내 앞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내 여자친구를 보고 있으면, 이를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사랑이, 엄마 아프지 않게 얌전히 있어야 해. 알았지?”
“…후, 후흐흫… 엄마… 응. 나 이제 엄마지?”
“그렇네요, 사랑이 엄마.”
“그거 좋다… 너무 좋아요, 사랑이 아빠.”
스스로를 엄마라고, 나에게 아빠라고 말하며 환히 꽃피어진 희나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