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16)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115화(116/213)
Ep. 115
수능 날 아침에 일어나,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
아, 드디어 해방이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게임이나 축구, 농구와 같이 좋아하던 운동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전부 포기하고 공부에만 전념한 것이다.
그래도 희나와의 밤 생활은 계속 이어졌지만.
덕분에 여전히 우리의 관계는 돈독하다 못해, 사랑이가 나오면 바로 둘째가 생겨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때부터는 무조건 피임을 하겠지만서도.
어쨌든 성적은 꾸준히 우상향 했고, 뒤늦게 내신을 조금만 더 관리할 걸─ 이라는 후회가 나올 만큼 등급이 올라왔다. 마지막 모의고사보다 조금만 더 잘 보면, 서연대도 충분히 시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희나의 헌신적인 과외가 큰 힘이 되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는, 실시간 쪽집게 과외가 가능했으니. 24시간 내내.
“수험표 챙겼지? 속은 괜찮아?”
“딱 좋아.”
어느덧 임신 6개월 차에 들어서, 겉보기에도 확연히 느껴질 만큼 배가 불룩 나온 희나는, 그 몸을 이끌고 내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주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고 평소처럼 준비를 하고 있으니 주위에서 더 난리를 친다.
“우리 사위~ 이거 점심 김밥이니까 잘 챙기고. 더 든든하게 먹으면 좋을 텐데…”
“아니에요. 잘 먹겠습니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 하던 만치만 하면 돼.”
“넵, 열심히 할게요.”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나보다 더 안절부절 못하시며 소란을 피우셨고. 다만 나는 딱히 크게 긴장은 안 됐다. 말이 두 번째지 작년엔 수험장 근처에도 못 가서 사실상 첫 수능이었음에도.
그동안 내가 말도 안 되게 열심히 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몸과 마음은 굉장히 편한 상태였다.
꼼꼼하게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호들갑으로 난리인 집을 나서서, 배웅해 주려는 희나와 함께 아파트 입구까지 나오자.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탕!
희성이 형과 정후 형이, 웬 집채만한 차를 끌고 와서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뭐야? 뭔데?”
“뭐긴 뭐야. 타라. 시험장 가까워서 금방 가니까 멀미도 별로 안 할 거고. 넌 무조건 이거 타고 가야 돼.”
“너한테 거부권은 없다. 가자, 한연후.”
“버스 타고 10분이면 가는 곳을 무슨…”
“자기야, 타자. 나도 같이 갈 거니까.”
희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올라 타더니 나를 불렀다. 운전은 희성이 형이, 정후 형은 왜 왔는지 모르겠지만 조수석을 점거했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쩐지 기분 좋은 헛웃음이 나왔다. 작년 일도 있었으니 아마 내가 걱정돼서 이러는 것 같은데.
형 말마따나 굉장히 가까운 곳이라, 멀미 때문에 컨디션을 망칠 위험도 별로 없긴 하다.
그래서 얌전히 차에 올라타 넷이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마. 그냥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알았지?”
“알았어. 너야말로 몸 조리 잘 하고 있어. 나 수능 보고 나면, 이제부터 내가 수발 다 들어 줄 테니까.”
“됐어. 난 옆에만 있어주면 돼. 우리 자기 화이팅! 사랑이도 아빠 힘내라고 전해 달래!”
“고마워. 사랑이도 고마워~”
“야! 끝나면 어디 가지 말고 걍 교문 앞에서 딱 대기해라! 데리러 올 거니까!”
“네이~”
걱정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형들이나 희나가 그걸로 마음이 편해진다면 따라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의 학교가 시험장이었기 때문에, 몇 분 걸리지도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 사고 없이, 아무런 문제 없이.
-쪽!
“연후야, 이따 봐!”
“응, 이따 봐. 형들도 고마워!”
희나가 해 준 응원의 키스를 받고, 이른 아침부터 나를 위해 어디서 커다란 차까지 공수해 온 형들에게도 감사를 표한 뒤, 느긋하게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자신감은 하늘을 뚫었고, 딱 좋은 정도의 적당한 긴장감이 나를 고양시켰다.
그렇게 당당한 발걸음으로 수능을 보러 들어가.
몇 시간 뒤.
상상을 뛰어 넘는, 내 인생 최고의 성적으로 재수를 마무리 했다.
—
“크…! 부어!!!”
“꺄~ 멋있다, 한연후!”
우리 집. 이젠 우리 집이라고 하는 게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희나네 집에서, 나는 당당하게 목구멍으로 술을 붓고 있었다. 마시는 게 아니라 정말 들이 붓는다는 느낌으로.
주위에는 우리 가족을 비롯해 희나네 가족까지, 마치 올해 초 새해 때처럼 양 가족들이 전부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내 수능 대성공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시험지를 보는 순간부터 느낌이 좋았고, 정말 막히는 것 하나 없이 술술 문제가 풀렸다. 난이도 있는 문제들조차 언젠가 희나에게 해설을 받은 적이 있는 타입의 문제들만 보인 것이다.
하도 잘 풀리니 도중엔 ‘내가 제대로 푸는 거 맞나?’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답을 맞춰보니, 희나의 수능 성적에 근접한 점수가 나와버렸다. 학원 사이트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예상 등급이나 백분위를 봐도, 딱히 이번이 유난히 쉬웠던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뭐다? 과는 좀 타협을 해야 할 수도 있지만, 서연대로 향하는 길이 확실히 열린 것이다. 2학기부터는 희나와 동기가 될 수 있는 기회가!
게다가 이 성적이 기쁜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운으로 잘 본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노력으로 이루어 낸 성적이라는 점이다. 조금 운이 좋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찍은 것도 아니고 결국 나온 문제들을 내가 전부 잘 풀었던 거니까.
가족들이야 내 성적이 어떻든 간에 축하 파티를 열어주려는 생각이었는지, 내가 돌아왔을 땐 이미 전부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 성적을 듣자 더욱 기뻐하며 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아빠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으, 머리야… 뭘 또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시작부터 너무 달린 탓인지, 알딸딸한 정신으로 아빠의 말을 받았다.
“앞으로 좀 편하게… 그렇게는 힘들겠구나. 새아가는 지금부터가 제일 중요하니까, 네가 잘 돌봐주고.”
“그거야 뭐. 당연하지.”
“아버님, 연후는 항상 잘해줘요. 매일매일요.”
“그래?”
희나의 말에 기분 좋게 웃으시고는 아빠도 한 잔 홀짝이신다.
“그래… 우리도 사돈댁도 많이 도와줄 테니까, 다른 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에만 집중해.”
“네, 아버님.”
“고마워, 아빠.”
“한연후, 뭐하냐!! 잔이 비었잖아!!”
잠시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어느샌가 선후 형이 옆으로 와서는 내 맥주 잔에 소주를 채우고 있었다. 날 죽이려고 하는 건가 했지만, 오늘 같은 날에 뺄 수도 없으니.
-꿀꺽!
단숨에 들이켜고는 다시금 잔을 들어 올렸다.
“한 잔 더!!”
“사위, 오늘 아주 죽어보자는 거지~?”
“장모님은 저한테 한 잔 받으세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뭘 헤어질 것처럼 그래? 앞으로도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낼 거잖아~”
“어… 그런가?”
“야, 니 없으면 이희나 히스테리 두 배로 심해지는 거 모르냐? 걍 우리 집에 박혀 있어라, 진짜.”
“오빠,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자꾸 그러면 나중에 사랑이 절대 못 안게 한다.”
“…존나 치사하네.”
그런 식으로 무척이나 떠들썩한 이 축하 파티에 웃음을 멈출 길이 없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1년 간의 재수가 전부 보답 받은 느낌이었다. 만약 성적이 이 정도로 잘 나오지 않았어도, 오늘만큼 후회없이 시험을 봤다면 분명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점점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에, 생각보다 심하게 많이 마셔버려서 희나의 어깨에 잠시 머리를 기댔다.
시작은 내 축하를 위한 자리였지만, 어느샌가 부모님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형들과 누나는 무슨 일인지 차에 대한 화제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많이 취했어?”
“음… 조금? 근데 정신 나갈 정도는 아니야. 잠깐 쉬면 괜찮을 것 같아.”
“그래? 더 취해도 되는데.”
“또 이상한 영상 찍으려고?”
“귀여운 영상이거든~”
우리가 막 스무 살 됐을 때의, 그 추태의 기록을 언젠간 반드시 없애리라.
그리 다짐하면서, 살며시 희나의 배에 손을 올렸다. 얼마 전 정밀 초음파도 한 번 찍었었는데, 이제는 아기의 모습이 점차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사랑이가 세상에 나올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사랑이 지금도 움직여?”
“으응, 지금은 자고 있는 것 같아. 아까부터 얌전했거든.”
이제는 희나가 그리 좋아하던 밤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 같이 이렇게 사랑이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내년 초면 벌써 출산 예정일이었다. 그 사실에 불안함과 막연한 두려움도, 한편으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귀여울 우리의 아이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다만 요새는 가끔 희나가 힘들어 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어서 빨리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직 준비도 안 됐고, 많이 부족한 아빠였지만.
사랑만큼은 얼마든지 줄 자신이 있었으니까.
“정말, 고생 많았어.”
어딘가 아련해진 기분에 잠시 멍하니 있자, 희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보다 네가 더 고생이지. 오늘은 좀 괜찮아? 어제 소화 잘 안 됐었다며.”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더라. 사랑이도 기쁜 날인 거 알고 도와주나 봐.”
“착하네, 우리 사랑이.”
사랑이를 칭찬하는 내 목소리에, 희나가 작게 웃는 것이 귓가에 들렸다. 참 예쁜 웃음소리였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부터, 희나는 가끔 창피하다면서 그걸 가릴 때도 있었지만.
어쩐지 내 눈에는 그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예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냥한 눈길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있을 때 특히 더.
“이따가 잘 때 키스 많이 해 줄 거지? 어제는 일찍 잠들어서 별로 못 했잖아~”
“너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해줄게. 한동안은 공부고 뭐고 절대 손 안 댈 거니까. 밤 새도록 해도 돼.”
“정말~?”
“고럼. 아니면 지금부터 해줄까?”
“흐후훟…”
그 말에 아까보다 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그 푼수 웃음을.
여전히 이런 귀여운 모습도 가득한, 내 여자친구님이 사랑이를 낳아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가해진 시간에 희나의 수발을 들어주고 있다 보면. 아마 어느새 우리가 사랑이를, 사랑이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이제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