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35)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134화(135/213)
Ep. 134
“아, 희나 화났는데 무슨 게임이야.”
혼란스럽긴 했지만 저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로 정신이 나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거부에도 불구하고 희성이 형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니가 여기서 고민한다고 답이 나와? 왜 저러는지도 모른다며. 그럼 존나 별 일 아닐 거라니까? 심각한 거면 분위기 조진 순간 딱 생각난다고.”
“아니 그래도…”
“기껏해야 니가 스킨쉽 까먹었거나 그런 레벨의 문제로 저러는 거겠지. 기념일도 아니잖아.”
기념일? 기념일이라.
우리가 별다른 기념일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희성이 형이 저리 확실히 아는 건진 모르겠지만, 기념일은 아니긴 했다.
심지어 우리의 굵직한 기념일들은 내가 전부 알람으로 맞춰 놓기도 했고. 문제는 맞춰 놔도 딱히 하는 게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희나는 생일 외에는 딱히 챙기는 기념일이 없었다. 그나마 신경 쓴 것이, 아직도 왜 그랬는지 모를 2주년 때의 그날 뿐이다. 엄청 불안해 했었던.
기본적으로 희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나랑 같이 있는 것이지, 그런 자잘한 날을 하나하나 챙기는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앞으로 챙길 만한 기념일은 사랑이의 돌 정도일까. 그날 만큼은 희나가 벌써부터 어떻게 할까~ 즐겁게 이야기를 할 정도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랑 희나의 생일 근처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우리 셋 다 생일이 거의 비슷하네.
아무튼 희성이 형의 꼬심에 마음이 살쩍 동하기는 했다. 게임 제대로 못 한지 엄청 오래돼서.
“켠왕은 좀 오바고, 쟤 저녁까지는 잠수 탈 거 같으니까 그 직전까지 어떠냐?”
“저녁 전까지라…”
“야 시바, 그거 같이 해보자고 산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못했잖아.”
악마의 속삭임처럼, 형의 말이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저녁 전까지도 너무 길고, 아주 잠깐 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게임을 하면서 복잡한 머릿속이 조금이나마 풀리고 나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 한 시간만 할까…?”
“그거지! 게임 한 판 싹 조지고 오면 다 풀려있…”
-달칵
“……”
희성이 신나서 목소리를 높이던 중,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우리 둘 다 곧바로 합죽이가 됐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형은 바닥에 주저 앉아 무릎을 끌어 안고는 더욱 존재감을 지웠다. 나도 식은땀을 흘리며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고.
혹시 희나가 대화를 들었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시선조차 주지 못한 채 그러고 있었는데, 희나 발걸음 소리가 주방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쪼르르
슬쩍 그쪽을 바라보자, 희나가 컵을 들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었다. 한 잔이 채워지자 그 컵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앞 탁자에 물 한 잔과 알약 두 개를 내려놓고는 방으로 돌아간다.
다시금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치 스릴러 한 편을 본 듯한 긴장감이었다. 희성이 형도 그제서야 몸을 일으키고는 땀을 훔치고 있었다.
“와, 존나 놀랐네. 뭐냐?”
“영양제. 나 점심마다 먹는 거.”
“그거 갖다 준 거야?”
“어.”
희나가 갖다 준, 몸 건강 챙기라고 장모님께서 사주셨던 종합 비타민제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점심 즈음에 챙겨 먹었던 거라 슬슬 시간이긴 했는데, 화난 와중에도 굳이 이걸 챙겨주는 희나의 마음씨가 감동적이었다.
그래, 희나가 화났으면 그걸 풀어줄 생각을 해야지 무슨 게임이냐!
덕분에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깜빡한 게 뭐가 있을지.
그런데 그런 내 옆에서, 희성이 형이 재차 꼬드기기 시작한다.
“이거 빼박이다. 개빡쳤으면 이런 거 챙겨주겠냐? 풀리기 직전이라니까. 걍 겜이나 조지자.”
“안 해. 희나 화 풀리면 그때 하던가.”
허나 내 마음은 희나의 영양제 배달로 철옹성처럼 굳건해졌다. 아까 전과는 달리 단호해진 내 대답에, 희성이 형이 탄식했다.
“하… 지금이 존나 각인데…”
각은 무슨. 솔직히 좀 전에 희나한테 들렸으면 사망각이었지.
—
형을 자기 방으로 돌려보내고, 잠시간 더 소파에서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할 수 있는 건 정면 돌파뿐이라는 것. 이 정도까지 고민했는데 답이 안 나오는 거 보면, 분명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어줍잖게 그걸 고민하면서 마음 졸이고 있느니, 그냥 희나에게 달라붙어서 물어보는 게 나았다.
희나가 뭐, 날 때리길 하겠어 아니면 욕을 하겠어? 그냥 아까처럼 귀엽게 화내는 게 고작이겠지.
희성이 형이 마지막까지도 질척거리면서, 그럼 차라리 맞불 놓고 같이 화내 보는 건 어떠냐고도 했지만 그 방법은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내가 화 내려는 순간, 분명 희나가 울고불고 난리를 칠 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 그냥 내가 용서 빌면서 그렌절을 하면 했지.
-두근두근
물론 그런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긴장감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똑, 똑
떨리는 손으로 살살 문을 노크했다. 분유 먹인 지 얼마 안 됐으니 사랑이가 자고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이 방 들어갈 때 노크하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나 만큼은 희나가 안에서 뭘 하고 있던 들어가도 괜찮았으니.
“누구?”
“나야. 들어갈게.”
“…흥.”
어쩐지 아까 전보다 기세가 죽은 듯한 콧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들어오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만 아니라면 무조건 들어갈 생각이었다.
문을 열자, 침대 위에는 사랑이가 엎드린 채로 버둥거리고 있었고, 희나는 상체를 침대에 딱 붙인 채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이가 뒤집기를 성공한 이후로는 조금씩 기어다니기 시작해서, 아마 그걸 봐주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시위하듯 내 쪽을 쳐다보지 않는 희나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옆에 앉았다. 내가 다가감에도 미동 없이 침대에 붙어 있는 그녀.
사랑이는 기어다니기에 진심인 상태라 잠시 방치해도 될 것 같았다. 하여 한 손으로 희나의 허리를 감고 살며시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에 한 팔로 나를 밀쳐내려는 몸짓을 하지만,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저리 가.”
“희나야, 나 좀 봐. 응?”
“몰라.”
“내가 잘못한 거 알려주지 않을래?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 테니까.”
“…흥.”
희나가 방에 틀어 박힌 지 한 여섯 시간은 됐을까. 같이 집에 있으면서도 나와 떨어져 있는 것은, 나보다 희나에게 더욱 고역이었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면, 언제나 사랑이를 안고 내게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이 기본 스탠스였으니까.
덕분에 희나의 몸부림에는 아예 힘이 빠져 있었다. 마치 더 잡아줬으면 하는 것처럼.
나는 아예 희나의 뒤쪽으로 몸을 옮겨, 양 팔로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희나의 뒷덜미 쪽에 입을 붙였다.
-쪽!
동시에 희나의 몸이 움찔거리긴 했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그 부근에 끊임없이 키스를 했다.
그러자 희나가 아까처럼 다시 팔을 등 뒤로 휘적거렸으나, 그 팔도 한 손으로 붙잡고는 그녀의 손가락에 입술을 대었다.
희나의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은 살며시 위로 올리며 야릇한 터치를 시작했고, 잡고 있는 손은 그녀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키스를 했다.
“전부 내가 잘못했어. 사랑해.”
“…뭔지도 모르면서…”
“몰라서 미안해. 한 번만 봐주라.”
“흐읏…”
내 손길과 키스에 점점 달콤한 신음 소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그걸 들으며 나는 희나의 몸이 침대에서 떨어지도록 뒤로 잡아당겼다.
힘 없이 딸려온 희나의 몸을 한 쪽 팔로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옆을 향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 내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 희나의 왼쪽 볼과 입가에 입술을 맞췄다.
-쪽, 쪽!
그러면서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나 자기 이렇게 화나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 알지? 아까부터 보고 싶어서 거실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였어.”
“……”
“응. 너랑 얘기도 못하고 이렇게 안아주지도 못하니까 힘이 안 나더라.”
“…그래?”
내 말에 짧게나마 대답을 해 주는 것을 보니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하여 붙잡고 있던 팔을 전부 풀고 희나의 옆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슬쩍 보이기 시작한 희나의 얼굴은, 굉장히 시무룩해 보였으며 눈가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사랑이가 안전한 위치인지 확인한 후, 희나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면 안 될까?”
“……”
“부탁할게.”
“…자기가 어제…”
드디어!
희나의 화가 풀려가는 것도 물론 다행이지만,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건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뭘 잘못했던 걸까?!
이것만 들으면 오늘 밤에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답답함이 확 풀려서.
잠시 우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던 희나가,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기 전에…”
“응. 내가 자기 전에?”
“…안 해줬잖아…”
“뭘?”
“키스…”
“……??”
그리고 마침내 듣게 된 분노의 이유에, 뇌정지가 와버렸다.
키스? 지금 설마 굿나잇 키스 안 해줘서 오늘 나한테 화를 냈던 거야? 진짜로? 3,4년만에 처음으로 화를 낸 이유가, 굿나잇 키스를 안 해줘서라고? 이게 리얼이냐?
홀리 쉿.
“그, 그것 뿐이야…?”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지간하면 ‘응, 내가 잘못했네. 정말 미안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용서를 빌었겠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희나도 말의 뉘앙스에서 내가 어떤 생각인지 눈치 챘는지, 내 가슴팍을 두드리며 분노를 드러냈다.
“그것 뿐이라니! 나 요새 사랑이도 잘 돌봐주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요리도 연습 하는데!!”
“그거야… 잘 하고 있네. 잘했어. 칭찬해줄게.”
“그래서 매일 힘들지만!! 그래도 자기가 잠들기 전에 키스해 주는 것만 기다리면서 힘내고 있는 건데!!”
“그 정도까지?”
내 굿나잇 키스가 하루의 고단함을 잊게 해줄 정도란 말야?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키스도 안 해주고!!”
“아, 그래서 아침에 그렇게 물어봤던 거구나.”
굿나잇 키스랑 굿모닝 키스 잊은 거 아니냐고.
“요새 자기 바쁘고 힘든 거 알지만! 나는 그게 하루 중에 제일 중요하단 말야!”
“그, 그랬구나?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약속했으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랑! 잘 때랑! 그리고 집에서 나갈 때, 들어올 때마다 키스해 주기로!”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도 한 적이 있긴 했지.
“나랑 약속한 거 다 잊은 거지!”
“아냐. 잊기는.”
“잊은 거잖아! 내가 물어봐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 했었고!”
“음…”
희나가 화난 이유에 대해 대충 감이 잡혔다.
뭐, 아침 저녁 키스를 안 해준 것도 그렇고, 내가 그 약속 자체를 잊었다고 생각해서 많이 서운했던 거구나.
전에 말했을 때도 엄청 강조하긴 했었지만, 희나가 그 정도로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스킨십을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었지.
그래.
솔직히 약속에 대해서는 완전 잊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근데 그걸 까먹은 게 아니라…”
“…그럼?”
“너무 당연하듯 키스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무심코 넘어간 거야. 요새 나 과제가 밀려서 엄청 피곤하기도 했고… 어제는 진짜 졸렸거든.”
“……”
“그래서 그런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너무 띵하더라고. 그래서 잠깐 생각을 못 했어.”
돌고 돌아서 결국 까먹었다는 말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입을 놀렸다.
“그래도 자기한테 키스해주는 거 잊으면 안 됐는데… 용서해주라. 응?”
“…머리 아팠어? 지금은 괜찮아?”
“아까 네가 갖다 준 물 한잔 마시고 나니까 멀쩡해졌어. 고마워. 영양제도 챙겨줘서.”
“아냐… 응… 그래, 피곤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미안해… 신경질 부려서…”
“내가 잘못한 건데 뭐. 내가 미안해.”
휴, 끝났다.
희나 입에서 ‘나도 미안해’ 나왔으면 상황 종료다.
“그래도… 나 자기가 키스 해주는 거 너무너무 중요하니까, 앞으로는 피곤해도 잊으면 안 돼. 알았지?”
“응응. 절대로 안 잊을게. 체크 리스트라도 하나 뽑을까?”
“그거 괜찮겠다. 뽑아서 붙여 놓자. 앞으로 안 잊어버리게.”
“…그래. 내가 이따 프린트해서 코팅까지 해 놓을게.”
“응!”
희나 기분 풀어주려고 그냥 던진 말인데, 정말 뽑자고 할 줄이야.
아무튼 다행히도, 희나의 분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희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까놓고 말해서 약간 어이가 출타한 느낌.
그래도 뭐, 인터넷에서나 볼 법한, 요상하거나 안 좋은 일로 화내고 짜증내는 것보단 훨씬 건전하긴 했다.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이 맞기도 했고. 약속을 했던 것은 사실이니.
“우으아!”
나중에 사랑이도 자기 전에 뽀뽀 안 해주면 삐지는 거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