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6)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15화(16/213)
Ep. 15
내 앞에서 얼굴을 붉힌 채 온 몸을 꼬며 우물쭈물해 하는 희나의 모습이 굉장히 신선했다. 그래서 이대로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꽤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으니 계속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서 희나의 손을 잡고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 들어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고, 정류장에서도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다.
야외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눌 생각이지만 그냥 앉기엔 좀 미안했으니 둘이서 마실 음료수도 하나씩 사서.
이 와중에도 자기가 사주겠다며 지갑을 꺼내려는 그녀의 한결같음에 감탄마저 나온다.
하지만 지옥같았던 알바 덕분에 계좌가 넉넉해질 예정인 내가 그걸 용납할 순 없었고, 빠르게 계산을 마친 후 야외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잠시 바라보고 있자 희나 쪽에서 먼저 입을 연다.
“그, 연후야? 내가 그러려던게 아니고.. 오, 오늘만 온 거야!”
“오늘만?”
“…..미안. 사실 매일 왔어.”
난 진짜 오늘만 왔나 싶어서 되물은건데 1초만에 자백한다.
아니 매일 왔었다고?
“친구가 말해줬지..?”
“확실하게 말해준 건 아닌데 돌아나가면 누구 있을 거라는 듯이 말하긴 했지. 근데 어떻게 알았어?”
“………어제도 보고 있다가 걔랑 마주쳤거든..”
“걔가 너 얼굴을 아나? 아, 프사 봤을 테니 알겠구나.”
“비밀로 해준다고 했으면서…”
희나 같은 애가 흔한 것도 아니고. 나랑 톡 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프사인데 그놈도 금방 눈치챘겠지.
아무튼 나도 모르게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니.
“그냥 말해주지 그랬어.”
“걱정할까 봐.. 사실 안에 들어가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엄청 바빠보여서.”
“하긴, 왔어도 신경은 못 써줬겠지만. 그래도 매일 그렇게 서 있었으면.. 힘들지 않았어?’
“아냐~ 매일 오긴 했지만 내내 있던 건 아니고, 공부하다가 우리 매번 만날 때쯤 나와서 한 두시간씩?”
그것도 충분히 길어보이지마는.
“근데 볼 게 있나? 나 쉴 새 없이 일하는 것만 주구장창 보였을 텐데.”
“응! 너무 재밌었는데?”
재미요?
“재미?”
“응!”
“재…미를 느낄 게 있나?”
누가 일하는 걸 지켜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니. 혹시 스타x업 컴퍼니 같은 게임 좋아하려나.
“그냥 연후 너 열심히 일하는 것도 보기 좋았고, 그리고 그 앞치마!”
“주황색 그거?”
“응응! 그거 입고 있는 모습 너무 귀엽더라~ 가까이서 사진 찍고 싶었는데!”
“……..그렇구나?”
난 그거 거기 유니폼이니까 별 생각 없이 입었지, 절대 내 돈 주고 사지 않을 거라 생각할 색상과 디자인이었는데.
“아무튼, 그냥 구경하려고 온 거야?”
“응.. 너무 보고 싶었는걸.”
그래도 매일같이 몇 시간씩 서 있으면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 주말에 만나면 될 텐데 그렇게까지 올 필요는 없지 않을까, 등등의 이야기를 꺼내봤자 의미가 없을 거라는 걸.
오늘을 포함한 최근 열흘간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지금 당장은 수긍하다가 비슷한 일 있으면 분명 또 이렇게 올 거라 생각된다.
그러니 굳이 쓸데없는 말을 하기 보다는.
“나도 일하면서 니 생각만 했어.”
“정말..? 정말정말?”
“응. 너도 봐서 알겠지만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거든.”
“손님 엄청 많았지? 너무 잘돼서 얼마나 맛있을 지 조금 궁금하더라.”
“그럼 다음에 같이 한 번 가볼래? 금요일이나 주말은 그나마 사람 좀 적을 것 같은데.”
“응! 약속?”
“약속.”
뭐 하나 있을 때마다 새끼 손가락 걸고 이러는 게, 좀 어린애 같기도 하지만 뭔가 둘만의 시그널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아무튼 힘들어서 때려치고 싶었는데, 진짜 너만 떠올리면서 힘낸 거야.”
“예를 들면?”
“음, 중간중간에 해준 톡도 기뻤고, 우리 마지막으로 봤을 때 니가 해준…..아.”
“후후, 그거 말이지?”
“……….응, 그거. 그거 생각하니까 없던 힘도 나더라고.”
중딩도 아니고 볼에 키스해 준 정도로 뭐 그러나 싶지만, 뭔가 입 밖으로 말하기에는 조금 쑥쓰러웠다.
반면에 희나는 그런 내 모습이 오히려 귀엽다는 듯 웃으며 날 바라본다.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해줄게.”
“정말로?”
“응.”
“그럼… 지금?”
언제든지 해준다는 말에 욕망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암만 해준다 했어도 너무 바로 급발진했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어색하게 웃고 있자, 희나가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쪽
그리고 그때처럼 가볍게 볼에 키스를 해주는 그녀.
“그건 그렇고 연후야.”
“으, 응?”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잔향처럼 부드러움과 조금의 촉촉함이 느껴지고 있어,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내 귓가에, 그녀가 조곤조곤 속삭였다.
“내일, 우리집에 놀러올래?”
———–feat. 윤성
오늘도 집에서 노예처럼 엄마의 일을 돕고 있는 나, 정윤성은.
용돈이 인질로 잡혀 갖가지 재료들을 손질하는 와중에 상념에 잠겨 있었다.
친구인, 한연후에 대해.
한연후, 급할 땐 별 의미 없이 한연이라고 불러대는 내 친구는, 중학교 1학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참 한결같은 녀석이었다.
또래에 비해 조금 왜소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굳이 친해질 생각은 들지 않는 전형적인 아싸인 나에게.
연후는 너무나 신기한 사람이었다.
괜찮은 편이긴 하나 그렇게까지 얼굴이 잘생긴 것도, 그때 당시는 성적이 꽤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생긴 거랑은 달리 입도 꽤 험하고, 딱히 먼저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아도.
언제나 주위엔 친구들이 많았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내 체구와 성격이 합쳐져 친구를 잘 못 사귈 뿐이지, 스스로 아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그리 쉽게 타인과 거리가 좁혀지는 한연후가 부러웠다.
동시에 고마웠다.
일단 처음만 말을 트고 나면 그럭저럭 쉽게 거리를 좁히지만, 그 처음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나에게.
같은 반이 된 후, 우연찮게 가까운 자리였던 덕에 그 녀석이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주었고 그에 어떻게든 한마디 두마디 대꾸하다보니 어느새 상당히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연후와 친해진다는 것은, 같은 반의 모든 애들과의 관계에 교두보가 놓아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그리하여 중1때 그 녀석을 중심으로 이어진 인연이 내게도 연결되어 다른 애들과도 여럿 친해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이어졌다.
“미친, 너네 가게 존나 바쁘네.”
더욱이 연후와는 내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을 정도까지 더욱 더 가까워졌다.
이녀석과 떨어지면 고등학교는 어쩌나 싶은 마음에 스트레스성 탈모까지 잠깐 왔던 터라.
학교 발표 나는 날 아침에 화장실에서 긴장감을 못 이겨 구토까지 했었던 것은 평생의 비밀이었다.
다만, 한연후의 단점이라고 해야할 지, 성격이라고 해야할 지.
“너 강주현이랑 아직 연락 하냐?”
“어? 아니? 끊긴 지 좀 됐지?”
“접때 니 왜 톡 답장 안하냐고 뭐라 했었는데 그놈.”
“아~ 아마 귀찮아서 안 했었을걸.”
누구라도 눈 앞에 있으면 금새 친해지고 잘 놀지만, 조금이라도 ‘몸의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지는 게 너무나 빨랐다. 본인은 귀차니즘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스스로도 그렇게 멀어진 인연에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강주현’은, 내가 곁에서 지켜봤을 때 중학교 시절 한연후와 가장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놈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친했음에도 한동안 멀어지자 순식간에 마음이 식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그렇다는 걸 잘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사이가 멀어졌구나, 하고 마는.
아마 나도 같은 고등학교를 배정받지 못했으면 지금쯤 연락이 끊겼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계속해서 먼저 연락 하더라도 분명 귀찮다며 몇 번 연락을 씹다가 내 쪽이 지쳐서 그만두었겠지.
다만 같은 학교에 오게 된 지금에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이놈은 대학교라도 가지 않는 한은 연애는 생각도 못하지 않을까 싶었다.
고작 몇 정류장 떨어진 고등학교에 간 친한 친구조차 그렇게 연락이 끊겨버리는데, 다른 학교 여자랑 꾸준히 연락하면서 사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다.
“여친, 괜찮은 거 같음?”
까놓고 말해서 예쁘건 어쩌건 애매하게 지내다가 금방 헤어질 거라고.
왜냐? 매일 얼굴 도장이라도 찍지 않으면 이 놈은 금새 마음이 식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그렇고. 존나 잘해줘서.”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매일같이 느껴지거든.”
듣기로는 매일같이 찾아와서 둘이 조금씩 데이트 하는 모양인데, 그 행동은 정답이었다고 본다.
생각 이상으로 여자애 쪽에서 적극적이구나, 해서 이번에 가게 도우미로 부르는 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손이 급한 것도 있었고.
최근에 여친 때문에 우리 그룹과 어울리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기에 약간 질투가 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역시 연애 감정이랑 친구와의 우정은 좀 다르기도 할 테니까, 며칠 안 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하여 분식점 알바로 부른 지 4일째.
홀 정리를 하는 연후를 두고 일반쓰레기를 내다놓으러 낑낑대며 뒷골목에 가져다놓은 후. 나온 김에 바람 좀 쐬며 조금만 느긋하게 돌아가자 싶어서 한바퀴 돌아서 돌아가던 그 때.
약간 떨어진 곳에서 우리 매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자애가 눈에 띄었다.
뭐하는 사람이야? 하면서 옆을 지나가며 슬쩍 얼굴을 확인해보자.
“아.”
그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서로가 누군지 눈치챘다.
“…연후 여친?”
“연후 친구?”
나야 프사로 봐서 안다 쳐도 내 얼굴을 어떻게 알고 있는 지는 의문이었지만 뭐 우리끼리 찍은 사진이라도 본 적 있나 싶었다.
다만, 초면의 사람을 대하는게 굉장히 어려운 나로써는 그 이후로 자리를 떠나지도, 그렇다고 무언가 더 말을 꺼내기도 힘들어 어물쩡 거릴 때.
그녀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하지만 연후한테는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어….그, 알면.. 좋아할 것 같은데…요..?”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쓰길래 나도 덩달아 존대로 답했다.
“늦게 돌아다니면 연후가 많이 걱정해서요. 부탁드릴게요.”
“네..뭐..”
다급함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태도에, 되려 내 긴장이 약간 풀리면서 먼저 입을 열 자신감이 솟아났다.
“혹시… 매일 오신거에요?
“……네..”
내 질문에 수줍게 대답하는 이 가냘픈 체구의 여자애를 보자, 질투고 나발이고 갑자기 한연후에 대한 살의가 차올랐다.
그래, 이 정도 되니까 니가 그렇게 사귈 수 있는 거구나.
부럽다. 한연후 개새야.
“연후한텐 말 안할게요. 그럼.”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고개 숙이는 그녀를 뒤로 하고, 가게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저 정도로 노력해준다면, 저 태도가 계속된다면 한연후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지난 5년간, 그 어떤 친구를 만나도 한연후는 변함 없었다.
금새 친해지고, 멀어지면 바로 식어버리고.
그런 담백한 태도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는.
하지만 한연후가 누군가를, 아니 저 아이를 훨씬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의 감정으로는 부족했다.
그런 건 느낌이 조금 다를지언정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게조차 느끼고 있을 테니.
그것보다도 훨씬 커다란.
그래.
이를테면, ‘사랑’을 배운다면.
그걸 배웠을 때의 한연후가 어떨 지는, 내게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결코 지금보다 나빠질 건 없을 것이다.
고맙기도, 부럽기도.
또한 얄밉기도 한 친구지만.
부디 저 아이가 변화의, 성장의 계기가 되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 그건 그렇고 진심 존나 예쁘네.
한연후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