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175)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174화(175/213)
Ep. 174
기분 좋은 봄날.
희나와 처음 만난 이후로, 사랑이를 낳은 후로 몇 번째의 봄을 맞이하는 것일까. 가끔 그런 것을 떠올릴 때면 그저 웃음이 나왔다.
10년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벌써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매일이 너무 즐거웠던 덕분일까. 그냥 순식간에 지나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벌써 중년이라도 된 것 같지만, 놀랍게도 나와 희나는 아직 스물 여덟이었다.
음, 사랑이를 일찍 낳긴 했네.
아무튼 우리 가족은 지금도 예전과 변함 없었지만, 우리의 주변은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큰 형과 형수는 귀여운 아들을 낳았고, 희성이 형은 결혼해서 독립했으며, 덕분에 비어 버린 형의 방은 현재 사랑이가 쓰고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희성이 형의 결혼이었다. 아무래도 많이 친하게 지냈던 만큼, 형이 결혼해서 나가게 되면 시원섭섭하고 또 쓸쓸할 거라 생각하긴 했었지만.
나랑 희나는 희성이 형의 결혼식 날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었다. 가끔 장난을 치다 희나한테 혼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 둘에게 항상 큰 도움을 주었고 의지가 되었으니까.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형이 막 독립을 시작했을 때에는 굉장히 허전했었다. 사랑이도 꽤나 쓸쓸해 했었고.
물론 지금은 그것도 꽤 지난 일이었다.
“아빠! 아이템 그만 써!”
“응~ 안 돼~ 쓸 거야~”
“뭐야아!!”
이제는 8살이 되어, 부쩍 커버린 사랑이가 내 무릎에 앉아 열심히 게임 패드를 조작하고 있다. 지금 둘이서 하고 있는 게임은, 예전에 가족들끼리 가끔 했던 레이싱 게임이었다. 서로에게 아이템을 사용하여 견제가 가능한.
-팡! 팡!
사랑이의 캐릭터가 내 아이템을 맞고 아래로 떨어지자, 엉덩이를 들었다 내리며 불만을 표한다. 사랑이가 나한테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으니, 그냥 가벼운 투정이겠지만.
“이번엔 아빠가 이기겠는데?”
“아아! 아빠아! 나 기다려 줘!”
“그럼 여기서 기다릴까?
“절대 가면 안 돼!”
열심히 뒤따라 오는 사랑이의 위치를 미니맵으로 확인하고, 결승선을 약 3미터 정도 남긴 채 캐릭터를 멈췄다.
물론 귀여운 딸의 부탁이라고 해도 승리를 양보해 줄 생각은 없었다. 도착할 즈음 놀리듯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마지막 직선 도로를 앞두고, 사랑이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로 돌아 내 얼굴을 껴안아 버린다.
당연하게도 내 시야가 완전히 가로 막혔다.
“치사한…!”
“사랑이가 이겼어! 아빠! 내가 세 번 이겼지?!”
사랑이가 내 얼굴을 놔줬을 땐, 이미 나를 추월해서 1등을 하고 난 이후였다. 사실 손은 움직일 수 있기에 먼저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딸이 이런 귀여운 반칙까지 하면서 이기려고 하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앞에서 사랑이가 폴짝폴짝 뛰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할머니이! 내가 아빠 이겼어요!”
“사랑이가 게임을 잘 하네~”
“아빠가 막 나한테 거북이 던지고 했는데! 사랑이가 이겼어!”
“그랬어?”
이내 뒤쪽에 앉아 계신 장모님한테까지 달려가서 자랑을 한다. 장모님은 그런 사랑이를 귀엽다는 듯 쓰다듬어 주셨다. 저 모습을 보면, 독립을 포기하고 같이 살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인 것 같다.
원래는 우리도 올해 즈음에 독립을 할까 고민했었다. 사랑이도 많이 컸고, 희나는 물론 나도 직장에서 그럭저럭 자리를 잡은 상태였으니.
가족들과 같이 살았던 덕분에 그동안 돈도 꽤 모을 수 있었고, 거기에 대출을 좀 많이 끼면 그럭저럭 방을 구할 만한 각이 보이긴 했었다.
다만 청약은 아니었다. 그건 신혼부부로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 결혼 7년 이내라던가 소득이라던가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서.
아무튼 방은 구할 만했는데, 문제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냐고 부탁을 하신 것이다. 희성이 형도 나갔는데 여기에 우리까지 독립하면 너무 적적할 것 같다고.
게다가 두 분의 낙이 사랑이를 돌봐주는 것이라 그런 것도 있었다. 사랑이가 워낙 말을 잘 듣고, 착하고, 그래서 더 귀여운 만큼 떨어지기 싫으셨을 것이다.
때문에 결국, 우리의 독립 계획은 무산되었다. 우리도 늦게 퇴근할 때 사랑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마음 편하기도 했으니까.
사실 꼭 독립을 해야 할 필요도 없긴 했다. 그냥 그 즈음에 예능 프로를 보다가 로망에 불타올라 계획을 짠 거라서.
“아빠! 그럼 내일 나랑 놀러 가야 되는 거 알지? 내가 이기면 가기로 약속 했으니까!”
“그래그래. 어디로 갈까?”
집안을 한바탕 휘젓고 온 사랑이가 다시 내 무릎 위에 앉으며 외쳤다. 아까 게임을 시작하기 전, 5판 3선으로 사랑이가 이기면 주말에 같이 놀러 가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런 거 없어도 사랑이가 원하면 놀러 갈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조건이 달려 있으면 더 재미있으니까.
“내일 나랑 아이스크림 먹고, 놀이터도 가고~ 그리고 계속 나랑 같이 있어야 돼!”
신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리를 휘적이며 말하는 사랑이를 보고 있으면, 나로써는 그저 행복한 마음 뿐이었다.
딸들이 어렸을 땐 아빠를 좋아해도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거리가 생기는 게 일반적이라던데, 사랑이는 아직 그런 편린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물론 조금 과하게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건 그냥 희나의 딸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잠시 흐뭇하게 사랑이를 바라보다가, 희나에게서 온 톡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희나가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늦을 것 같으니 사랑이를 먼저 재워 달라고 해서.
“사랑아. 엄마 늦을 것 같은데 그만 잘까?”
“응! 나 아빠랑 같이 자도 돼?”
“당연하지. 가서 양치하고 오자. 장모님, 저 사랑이랑 먼저 들어갈게요.”
“잘 자~ 난 희나랑 할아버지 기다리다가 잘게.”
“넵.”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이도~”
저녁 먹고 나서도 양치를 했지만, 게임을 하는 중에 같이 과자를 조금씩 집어 먹었기에 다시금 양치를 시켰다. 물론 나도 같이.
“양치는 몇 분?”
“샴 쁀!”
“옳지. 우리 딸 똑똑하네.”
“흐히히!”
굳이 내가 말 하지 않았어도, 사랑이는 나나 희나가 말한 것을 잘 지키는 편이라 아마 알아서 양치를 하러 들어왔을 것이다.
근처에 사는 주은이라던가,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귀엽다가도 속을 썩이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 사랑이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언제나 환히 웃으며 말을 잘 들어 주는 우리 딸은, 자랄수록 더욱 손이 덜 갔다.
아니지. 생각해 보니 손이 많이 가긴 했다. 나랑 노는 걸 하도 좋아하기에, 놀아 준다는 의미에서.
둘이 사이좋게 양치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 입은 뒤 침대에 누웠다. 사랑이가 희성이 형의 방을 쓰기 때문에, 이제 다시 나와 희나만의 방이 된 이곳에서.
근데 일주일에 4,5일은 잘 시간만 되면 같이 자자고 들어온다. 예전에 형들과 형수가 사줬던 큰 침대를 아직도 쓰고 있어서, 사랑이가 이렇게나 커버렸어도 셋이서 잘 때 침대가 좁진 않았다.
희나는 사랑이가 너무 응석을 부린다며 가끔 투덜거리긴 했지만.
“아빠, 아빠.”
“왜?”
이불을 덮고 침대에 나란히 누운 상태에서, 사랑이가 소근소근 나를 불렀다.
“나 추워~”
“전기장판 켜 줄까?”
“아니~ 나 안아줘.”
“그럼 안 추울 것 같아?”
“응. 아빠 따뜻하니까.”
“이리 와.”
“흐힣…”
내가 옆으로 돌아 팔을 들어 올리자,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품에 쏙 들어온다. 나는 사랑이를 안아주며 한 손으로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사랑이가 이러는 것도 뭐, 하루이틀 일은 아니었다. 춥다면서 이러고 있지만, 사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그냥 안아달라고 하니까. 진짜 생김새 뿐만 아니라 행동마저 희나와 판박이었다.
“이제 안 춥지?”
“응… 따뜻해. 아빠 잘 자…”
“우리 딸도. 좋은 꿈 꾸고.”
“네에…”
그 대답을 끝으로 사랑이가 말이 없어졌다.
사랑이는 생활 패턴이 굉장히 규칙적인 편이라, 지금은 시간이 꽤 늦은 만큼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덕분에 금세 고른 숨을 내쉬며 잠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을 등 쪽으로 옮겨, 약하게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도 잠깐 잠이 든 것 같기는 한데.
뒤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하여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니, 잠옷을 입은 희나가 머리를 묶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사랑이가 깨지 않도록 목소리를 죽인 채 입을 열었다.
“왔어?”
“아, 미안해. 나 때문에 깼지?”
“아니야. 고생 많았어.”
“응~ 오늘 진짜 힘들었어~ 그러니까 키스해 줘.”
“그건 괜찮은데, 내가 움직일 수가 없어.”
“하여튼 한사랑. 자기 방 놔두고 매일매일…”
-쪽!
잠시 입을 삐죽이던 희나가, 나에게 다가와 살며시 입술을 붙였다. 그러고나서 침대 위로 올라와 자리에 누웠다. 사랑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그렇게 누운 채로, 내 눈을 바라보며 희나가 소곤소곤 말을 꺼냈다.
“자기는 오늘 별 일 없었어?”
“음…”
“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으면 괜찮은 거 아냐?”
“아무 일도 없어서 문제였어.”
내 말에 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겠지만,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원래 코딩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버그가 생기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근데 너무 잘 되더라고.”
“…응? 그럼 된 거 아냐?”
“아냐… 이상해. 문제가 없을 리 없는데…”
“뭐야~”
몇 년이 지나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현직 개발자라도 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게 프로그래밍이었다.
하긴 뭐, 조만간 문제 생기면 그때 고치면 되니까.
나는 일 생각을 멈추고 팔을 뻗어 희나의 볼을 매만져 주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예쁜…이라기엔 아직 28살이긴 하지만. 하여간 희나는 날이 갈수록 더 예뻐지는 것 같았다.
콩깍지라고 보기엔 여전히 밖에만 나가면 은근히 시선을 탈 정도다. 우리 사랑이도 마찬가지였고.
“내일 사랑이 데리고 나가기로 했는데, 어디 갈까?”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사랑이도 그걸 더 좋아할 걸?”
“난 너나 사랑이가 가고 싶은 곳이 좋은데…”
“우리는 자기랑 같이 있으면 어디든 좋으니까.”
그리 말하며 싱긋 웃는 희나. 그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라 더 말을 꺼내봐야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고 우리는 눈을 감았다. 희나는 늦게 퇴근해서 피곤하기도 할 것이고, 길게 대화를 나누면 사랑이가 깰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일은… 흠. 그냥 사랑이 손 잡고 따라다녀야지.
다음날. 뭐,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겨서 아침에 잠깐 출근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