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219)
-스윽
그 상태로 희나는 내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어 주었고, 나도 잠시 이야기가 끊긴 틈을 타 한 쪽 손을 희나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내 손바닥에 살며시 무게가 담기기 시작한다. 희나가 얼굴을 살짝 기울이며, 볼을 밀착시켰다.
동시에 내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매끈매끈한 그 감촉은 정말 질리지가 않는다.
잠시 그렇게 희나의 볼을 조물딱 거리고 있으니, 희나가 서서히 얼굴을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쪽!
몸이 유연하기에 별 무리 없이 허리를 굽혀 내 입술에 뽀뽀를 하는 그녀.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직 열 번도 안 했네.”
“응. 나 오늘 자고 갈 거니까, 잘 때 천 번 할 거야.”
“음… 백 번만 하면 안 될까? 그 시간 쯤이면 나 엄청 졸려할 건데.
“괜찮아~ 너 잘 때 내가 알아서 구백 번 더 할게.”
“와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천 번의 뽀뽀를 예고하는 여자친구의 당찬 모습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오늘은 자고 가니까 잘 때 저만큼 한다는 거지, 자고 가는 거 아니었으면 내 입술은 이미 희나의 입술에 막혀서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스킨십을 하는 것보다 더 중히 해야 할 이야기도 없긴 했다. 하루 24시간 중 못해도 최소 12시간은 같이 있었으니까.
물론 우리가 과거로 돌아온 만큼 가지고 있는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빡세게 훗날을 대비할 수도 있긴 하나,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이미 합의를 봤다.
느긋하게.
그저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당장 활용할 만한 지식도 없었다. 주식 정보라도 좀 알면 좋겠지만, 희나는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고, 나도 병문안을 갈 때를 제외하곤 공부에만 전념했던 터라.
얼추 대형주들이 전체적으로 올랐다는 건 알고 있지만, 디테일하게 어떤 것이 얼마쯤이나 올랐는지 같은 것은 잘 모른다.
만약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딱히 자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주식이 오를 거니까 투자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면서 부모님을 자연스럽게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어차피 나나 희나네 집이나 크게 부족함이 없는 편이었으니, 너무 급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생각은 버린 것이다.
우리의 꿈은,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평범하게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그리고 언젠가 결혼을 해서, 둘만의 삶을 이루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였으니까. 이미 지나왔던 미래에서 이루지 못한, 그런 평범한 삶이 말이다.
“으음~”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노크하듯 꾸준히 허리를 숙이며 한 번씩 뽀뽀를 하던 희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걸로는 부족한가 보네.
이젠 정말 희나의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연후야. 잠깐만 일어나 줄래?”
“알았어.”
무얼 할 생각인지, 나를 일으켜 세운 희나가 곧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베개를 하나 가져왔다. 그리고 그걸 거실 바닥에 내려 놓은 뒤, 나를 다시금 바닥에 눕힌다.
“흐후후…”
동시에 희나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누워 있는 내 위로 올라와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겹치기 시작했다.
“츕…”
나는 그 키스를 받아주며, 희나가 내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강하게 껴안아 주었다.
“쪽! 쪽!”
“이구, 희나야.”
“응, 말해~ 쪽!”
호응해 주는 내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술 뿐만이 아니라 코나 볼, 이마, 목에도 열심히 입술을 붙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 행위를 막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방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아? 침대가 더 편할 것 같은데.”
“쪼옥… 침대에서 이러고 있으면 낮잠 자버릴 것 같단 말야.”
“아, 하긴. 백퍼 잘 것 같긴 해.”
그리고 그 말에 곧바로 수긍했다. 어느새 8살이 된 우리였지만, 아직도 낮잠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다.
딱 이 시간 쯤에 몸이 편안해지면 스르륵 눈이 감겨버린다. 그건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몸이 좀 더 자라면 괜찮아지려나.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되는데, 낮잠으로 보내면 아깝잖아~”
“그래그래. 뽀뽀 더 할래?”
“응!”
그 후로 희나의 뽀뽀가 끝없이 이어졌다. 왜 다른 걸로 놀지 않고 이러고만 있냐고 하면, 그다지 놀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게임도 앞으로 10년 이후까지 나올 게임들을 섭렵하고 있는 내가, 지금 시절의 게임에 푹 빠져 즐기기도 힘들었다. 해봐야 약간 레트로 감성으로 즐기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운동장이나 놀이터에 놀러 가는 것도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사실 둘이서 그네에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주변을 산책하는 건 꽤 즐겁긴 하다. 하지만 그러다가 반 친구들을 만나면 바로 붙잡혀 버린다.
그렇게 붙잡히고 나면 그때부턴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을 상대해 주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학교가 끝나고 나서도 그러는 건 피하고 싶었다.
“으응… 연후야.”
“왜?”
내 얼굴 전체가 희나의 타액으로 뒤덮힐 즈음, 희나가 뽀뽀를 멈추고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꺼내는 말은, 최근 내 가장 큰 고민 거리 중 하나였다.
“이따가… 나랑 같이 목욕할 거지?”
바로 같이 하는 목욕에 관한 것.
“어… 우리 이제 초등학생인데…”
“아직 1학년이잖아~ 괜찮지? 나랑 같이 하겠다고 말하는 거다?”
“음…”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요구하는 희나에게 바로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사실 이제껏 같이 목욕한 날이 꽤 많았다. 4살 때 다시 만나 이제야 8살. 무척이나 어린 나이이기에, 가족들이 어디 놀러가거나 이렇게 한쪽 집에 자러 갔을 땐 우리를 같이 씻겨줬었다.
물론 아직 육체적으로 성적 욕구가 생길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남사스럽다는 생각은 들어도 그냥저냥 같이 씻었었다.
솔직히 좀 부끄럽긴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다니는 꼬맹이 주제에 부끄럽다며 따로 씻겠다 말하는 것도 이상하니 거부하지 못했다.
8살인 지금도 확실하게 육체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슬슬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같이 욕실에 들어가면 그냥 몸만 씻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알몸으로도 나에게 엉겨 붙어 오는 것이 희나였으니까.
게다가.
“희나 너 씻을 때 너무 빤히 쳐다보잖아.”
“왜에~ 결혼할 사이인데 뭐 어때! 연후 너도 나 봐줘~”
당당하게 자기의 몸을 봐 달라고 요구하는 여자친구님이다.
희나는 과거로 돌아오면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진 것일까?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아무튼 이런 식으로 희나가 애교를 부리면 결국 지는 것은 나다. 여기서 확실히 한 번 끊어줘야 했다.
“그럼 올해까지만이야. 내년부터는 따로 씻을 거야.”
“싫어!”
“…그럼 내후년?”
“싫어~”
“언제까지 같이 씻으려고.”
“그냥 계속 같이 목욕하면 안돼?”
“안돼.”
내후년만 되어도 같이 목욕한다 하면 내가 아저씨한테 죽지 않으려나.
—
목욕 건으로 희나와 투닥거리다가, 희성이 형과 선후 형이 집으로 돌아와 넷이서 같이 놀았다. 그리고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올해 중학생이 된 정후 형도 돌아온 뒤.
“며느리, 맛있어?”
“네에! 너무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
“네, 어머님!”
우리 가족에 희성이 형, 희나까지 낀 대인원이 식사를 했다. 이 둘이 우리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것도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었다.
집에 희나는 물론 희성이 형 전용 식기까지 따로 있을 정도다.
“넌 자고 간 댔지? 난 집에 간다~ 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히 계세요!”
“희성아, 아저씨가 차로 데려다 줄게.”
식사가 끝난 후엔 아빠가 희성이 형을 차로 데려다 주고.
“나 비누칠 해주라~”
“아휴, 알았어.”
“손으로 해줄 거야?”
“아니. 샤워 타올로.”
“난 손으로 해줄래…흐후훟…”
“……”
욕망으로 넘치는 희나와 결국 함께 목욕도 하고.
“입! 야압!”
“어이구, 며느리가 안마를 해주니 너무 시원하네.”
“여보, 그렇게 시원해?”
“다음엔 아버님도 해드릴게요!”
“흐허헣, 그래?”
“네! 얍!”
희나가 고사리 같은 손을 열심히 내려치며 엄마와 아빠의 등을 안마 해주고 나서야.
또 하루가 끝을 보이고 있었다.
오후 11시. 나와 희나는 침대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누운 채로 이야기를 나눴다.
“고생 많았어. 힘들었지?”
“연후야아… 나 힘이 너무 약한 것 같아…”
“푸흡, 너 진짜 온 힘을 다해서 내려친 거지?”
“응…”
옆에서 보기에도 그냥 희나가 해줘서 좋아한 거지, 안마라는 의미에서는 엄마나 아빠나 기별도 안 간 것처럼 보였다.
뭐, 그래도 기뻐하셨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엄마랑 아빠랑 엄청 좋아하시던데, 뭐.”
“그럼 다행이지만…”
“그나저나 그냥 잘 거야? 지쳤으면 안아주기만 할까?”
“아니!”
안마를 제대로 못해서 시무룩해 하는 희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자 그리 말을 꺼내니 곧바로 힘찬 대답이 돌아왔다.
동시에 아까 낮에 거실 마루바닥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위로 올라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 보며 눈을 빛내는 그녀.
“연후야, 피곤하면 자도 돼. 알았지?”
“네가 뽀뽀해주고 있는데 어떻게 자.”
“그럼 같이 해줘!”
“네이…우웁.”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되돌아와 소꿉친구가 된 우리지만, 하루하루 엄청나게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가 특별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로가 옆에 있음을 실감하며 이렇게 지내고 있었다.
매년 늘어가는 뽀뽀 횟수를 몸으로 체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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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나가 함께하기에 지루하지 않은 8살 인생이고, 희나와 함께하는 것 외에는 내 흥미를 끌게 없었지만 나름 즐거운 일이 있긴 했다.
예를 들면 운동회라던가.
사실 운동회 자체가 즐겁다기보다는, 이 날의 분위기가 동심과 그리움을 자극했다. 수많은 학부모님들에 동네 주민들까지 와서 구경을 하는, 이 떠들썩한 분위기가 심금을 울린 것이다.
게다가 율동이나 줄넘기, 달리기 등등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많은 것도 좋았다. 반에서 슬기로운 생활 같은 수업 듣는 것보다 천 배는 낫지.
“봤어? 나 1등!”
“응응! 엄청 빠르다~ 멋있어!”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연습할 때는 봐주지 않고 같은 반 남자애들을 압살해줬다. 이거야 뭐, 내가 과거로 돌아와서 빠른 건 아니고 원래 어렸을 때 발이 빨랐던 편이라. 중딩 즈음부턴 점점 고만고만해졌지만.
희나는 운동 신경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거의 내 전담 응원 단장으로만 활동했다. 자기 달릴 때도 나만 보고 있고, 그거 아닐 때는 근처로 와서 날 응원하는 등.
다만 그렇다고 해서 희나가 참가하는 경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무려 2인 3각을 나랑 같이 하게 된 것이다.
원래는 희나가 아닌, 다른 발 빠른 여자애가 한 명 있어서 그 애랑 반 대표로 짝이 지어졌었는데.
“선생님. 제가 연후랑 할래요.”
“희나는 친구들이랑 같이 세연이랑 연후랑 응원해주자~ 응?”
“제가 할래요.”
“친구들이 공평하게 하나씩 할 수 있게 선생님이 열심히 고민했거든~ 희나는 달리는 거 별로 안 좋아했으─”
“제가 할 거에요.”
“음… 세연이도 하고 싶어했는데, 희나가 이번 한 번만 양보해 줄…”
“세연아~ 2인 3각 내가 연후랑 같이 해도 돼? 응? 괜찮지? 그치? 고마워~”
“……”
“세연이가 괜찮대요. 제가 연후랑 할게요.”
“그래… 그러렴…”
내가 다른 여자애랑 서로 허리를 잡고 달린다는 게 굉장히 못마땅했던지, 처음으로 희나가 선생님께 고집을 피우며 자리를 꿰차버린 것이다.
선생님도 처음에는 희나를 설득하다가, 희나가 세연이라는 친구에게 자리를 뺏… 아니, 쟁취해 오자 결국 허락해 주었다. 다행히 세연이가 얼빠라서 희나를 많이 좋아했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희나한테 뭘 양보해줬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더라. 역시 우리 희나야.
아무튼 1학년의 2인 3각이야 넘어지거나 어물쩡 거리지만 않으면 거의 1등이기 때문에, 그걸 목표로 수업 시간에 둘이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그 후 맞이한 운동회 당일.
거의 억지로 뺏어온 2인 3각 자리였지만, 희나에게 승리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다.
“연후야아! 여기여기! 같이 김치 해~”
“희나야…! 지금 경기 도중이야! 우리 이대로만 가면 1등인…”
“엄마! 찍어 줘!!”
“쿡쿡, 거기서 멈추면 어떡하니~ 정말… 우리 딸 때문에 미안해요~”
“아들. 며느리랑 사진 찍는 게 더 중요하지, 달리기가 중요하니?”
둘이서 호흡을 맞추며 영차영차 달리던 중, 트랙 중간 쯤 우리 부모님들이 계신 위치에서 발을 멈춰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 허리를 양 팔로 꼭 껴안은 채 웃으며 촬영을 요구하는 그녀.
“쟤네 뭐야~ 너무 귀엽다~”
“여자애 진짜 예쁘지 않아?”
아무래도 1학년 꼬마들이기에, 주변 학부모들도 쟤네 지금 뭐하고 있냐는 반응보다는 그저 귀엽다며 웃기 바빴다.
나 역시 이 상황에서 희나를 억지로 끌고 달릴 수도 없으니, 결국 깔끔하게 포기하고 같이 자세를 취했다. 어차피 지금 다시 출발해봐야 꼴찌였고.
운동회 1등 한다고 상금 주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미안하다! 반 친구들아!
“김치~”
“김치~”
-찰칵!
—
운동회처럼 커다란 행사 외에도, 나와 희나가 친구를 팔아서 보게 된 경시 대회 역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런 시험이 재미있을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가 자신감에 차 있기 때문이겠지. 당연히 잘 볼 것이라는 자신감.
수학경시라는 게 단순한 계산 능력보다는 사고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경시대회에서 만점을 받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는데.
“……”
“다음번엔 침착하게 하면 돼~”
“나 같은 게 다음은 무슨…”
“아이, 왜 그래~ 뽀뽀해 줄 테니까 힘내~”
희나는 백 점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 문제를 틀려버렸다. 어려운 문제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쉬워서 빨리빨리 넘어가다 보니 덧셈 하나를 잘못해서 틀렸다.
대학교에서 한창 공부하던 놈이, 아무리 4,5년 정도 머리를 비우고 살았다지만 초등학교 1학년 수학 문제를 틀려? 이게 사람인가?
나는 그 어처구니 없는 실수에 스스로에게 자괴감 MAX를 찍고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우리의 성적을 보고 난리가 나셨다.
“세상에~ 둘 다 너무 잘 했어! 언니, 이거 영재 학교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영재 학교는 무슨… 그래도 대단하네.”
“엄청 대단하지!”
희나네 부모님이든 우리 부모님이든, 성적보다는 그저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을 더 좋아하실 분들이지만, 그래도 시험 성적을 잘 받아오는데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평소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맨날 껴안고 뽀뽀만 하던 애들이 시험을 이렇게 잘 봤으니.
엄마는 물론 아빠까지도 눈에 띄게 좋아하시는 걸 보니 자괴감이 눈 녹듯 사라져갔다.
효도를 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걸 보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두 분이 저렇게까지 기뻐하실 일을 한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아, 있긴 있었다.
희나 처음 데려갔을 때 엄청 좋아하셨지. 무진장 마음에 들어했으니까.
“연후야. 수학이 재미있어? 학원 보내줄까?”
급기야 학원 얘기까지 나온 상황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빠에게 말했다.
“아니. 희나랑 둘이서 공부할래.”
“그래?”
학교 수업만으로도 지루해서 힘들어 죽겠는데 학원까지 가면 정신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아빠도 굳이 억지로 보낼 생각은 없으셨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히죽 웃음을 머금은 채 다시 내 성적표를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이거 앞으로 공부하는 척도 좀 하면서 시험 있을 때마다 전부 봐야겠는데?
“있지, 나 연후랑 같이 또 시험 볼래!”
“하고 싶으면 해야지! 아빠가 다른 시험 뭐 있나 알아봐야겠다!”
희나도 그녀를 끌어안은 채 한껏 기쁨을 표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이전에 미리 약속했던 말을 전했다.
부모님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나중에 중학교에 올라갈 때를 대비해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놓을 생각이었다.
중학교는 기본적으로 뺑뺑이지만, 그래도 이런 수상 경력이 많으면 학교 측에서 슬쩍 뽑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언제나 희나가 나에게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나도 희나가 곁에 없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아빠~ 그만 놔 줘! 나 연후랑 뽀뽀하러 갈래!”
“…아빠한테는 안 해주고?”
“놔 줘어!”
“그래…”
단호한 희나의 대답에 아저씨가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옆으로 달려와 팔짱을 끼며 볼에 뽀뽀를 시작하는 희나.
“웅~ 쪽!”
희나의 뽀뽀에는 이유가 없다. 말 그래도 그냥 하고 싶어져서 온 거겠지.
그나저나.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 없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
운동회 때도, 갖가지 경시대회를 나갈 때도, 소풍을 갈 때도.
그렇게 언제나 둘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올 한 해의 막바지인 크리스마스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올해도 연후한테 선물을 줬네~! 연후는 뭘 갖고 싶다고 빌었어?”
“게임기여!”
“그랬구나~ 그럼 선물을 볼까? 과연 연후가 갖고 싶어하던 게임기일까~ 아닐까~”
아주머니가 한껏 분위기를 띄우면서 내가 포장을 푸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사실 보나마나 플레O 스테이션2가 들어있겠지만, 최대한 기대하는 척 연기를 하며 리본을 풀고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내었다.
이게 아닐 수가 없는 게, 며칠 전에 아빠랑 아저씨가 커다란 양말을 하나 구해왔었다. 갖고 싶을 걸 쪽지에 써서 그 안에 넣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