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226)
지난 삶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삶에서도 윤정 누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중에 형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내가 착하기도 하고 내 특유의 포근한 미소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나.
나야 형이랑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었고, 형이랑 사귀고 있는 누나라니까 친절하게 대했던 것 뿐이었지만. 게다가 누나가 워낙 친근하게 잘 대해줘서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맛있는 걸 사주는 데 어떻게 안 좋아해?
“둘 다 오랜만이야~!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누나도 올만.”
“나도 언니 엄청 보고 싶었는데~”
“그치, 그치?! 꺄~ 희나는 오늘도 귀엽고 예쁘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가까운 역에서 형 커플과 합류했다. 누나는 만나자마자 희나를 껴안으며 난리를 쳤다.
누나가 형과 사귄 지는 2년이 넘었지만, 우리와는 아직 자주 만난 사이가 아니라서 톡이나 전화도 조심스럽게 보내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얼굴을 본 오늘 그 마음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희나를 껴안고 있는 윤정 누나와 그런 누나의 포옹을 기쁘게 받아주고 있는 희나. 그리고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와 정후 형, 거기에.
“됐고 밥부터 먹읍시다. 나 존나 배고파.”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재촉하는 희성이 형까지. 총 다섯 명이 이 자리에 모였다. 최근 외박도 자주 해서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우리 만나는 건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다. 저번 주에도 평일 내내 안 보이더만.
그래도 희나 말로는 희성이 형 노는 스타일이 예전에 비해 엄청 건전해진 거라고 한다. 우리 회귀 전, 이맘때의 희성이 형은 정말 하루가 멀다하고 곁에 있는 여자가 바뀌었다고. 잘생긴 얼굴 값을 했었나 보다.
지금이야 게임을 하든 지방에 놀러 가든 무진장 싸돌아다니긴 하지만 딱히 문란하게 노는 건 아니었으니까.
“니껀 니가 알아서 사라. 우린 얘네 둘만 사줄 거니까.”
“개치사하네, 진짜. 근데 뭐 먹는디?”
“오마카세.”
“아씨, 비싼 거 먹네. 런치로 조져도 한 3만원은 들…”
“8만원짜리.”
“……”
정후 형의 무미건조한 대답에 희성이 형의 입이 다물어졌다. 동시에 내 입도.
아니, 런치로 가는데도 8만원이라고? 뭐 어디서 밥을 먹으려는 거야?
원래는 밥을 얻어먹고 나머지 노는 비용은 우리가 낼 생각이었는데, 밥 가격부터가 장난이 아니었다. 형이랑 누나가 큰 지출을 하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정했던 건데, 이러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뭐 그렇게 비싼 걸 먹어. 그냥 다른 거 먹자. 런치 뷔페나 가.”
“그거 맞지. 그냥 적당히 먹고 노는 거에 돈을 쓰자고. 뭔 8만원이야, 시바. 나 못 따라간다고!”
진심을 다해서 형을 말렸다. 하지만 정후 형은 우리의 말을 들은 채도 않으며,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예약 다 했어. 바로 가야 돼.”
“아니… 아, 미치겠네! 희나야!”
“왜~?”
“인당 8만원짜릴 예약했다는데 이거 어쩌지?”
“뭐?”
내 말에 희나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윤정 누나를 떼어내고 형에게 다가갔다.
“정후 오빠, 다른 거 먹어. 너무 비싸잖아.”
“……”
“귀 막지 말고! 정말… 언니!”
“아아아아아!! 몰라!! 이미 예약했어!! 안 먹어주면 나 여기서 울 거야!!”
“그게 무슨…”
정후 형도 희나에게는 단호하게 말을 할 수 없었는지 희나가 다가오기도 전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았으며, 윤정 누나는 그냥 떼를 쓰듯 막무가내였다.
스물 두 살이나 먹은 성인 둘이 그런 식으로 고집을 피우자 희나도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특히 윤정 누나의 이런 모습은 희나도 처음 봤을 것이다. 나는 회귀 전에도 자주 봤던 거라 익숙했지만.
그리고 우리는 결국 형과 누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한 명은 아예 듣지를 않고, 한 명은 애처럼 떼를 쓰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와 희나는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얼굴이 새파래진 희성이 형과 함께.
“…잠깐, 설마 내 자리까지 같이 예약한 거야? 나 8만원 없… 형 아니지? 누나!”
—
그렇게 다같이 도착한 일식당.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후 형은 희성이 형 몫까지 전부 내줬다. 덕분에 희성이 형은 희희낙락하며 열심히 초밥을 주워먹었고.
내가 초밥은 꽤 좋아해도 회는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 오묘한 입맛을 지니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곳은 꽤 맛있었다. 비싼 값을 한다고 할까. 물론 8만원이나 내고 먹을 거냐고 하면, 또 오진 않을 것 같지만.
희나도 처음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느낌으로 있다가, 이내 평소의 페이스로 돌아와 이것저것 나를 챙겨주기 바빴다.
“계란말이 맛있다~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 아냐?”
“맛있긴 해.”
“여기, 아~”
“아.”
자기가 반을 깨물어 먹고, 남은 계란말이 초밥을 나에게 먹여주는 희나. 나는 군말 없이 입을 벌려 그걸 받아먹었다. 희나는 소식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중간중간 내가 같이 먹어줘야 다 먹을 수 있었다.
“연후야, 누나 것도 먹을래? 이런 데서 나오는 계란 초밥은 너무 달아서 누나 잘 안 먹거든~”
“땡큐.”
그리고 윤정 누나 역시 굉장히 흐뭇해하는 얼굴로 나에게 자기 몫을 조금씩 주었다. 마치 우리의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것 마냥, 이런 스킨십을 하고 있는 우리를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뭐, 나를 챙겨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것도 잘 받아먹었다. 누나는 아니겠지만, 나는 2년이 아니라 8년을 알고 지내왔으니까. 저 말이 사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어차피 왔으니 괜히 빼는 것보단 맛있게 먹어 주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한껏 즐긴 우리와.
그런 우리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는 정후 형, 윤정 누나.
“존맛 지렸고.”
옆에서 맛나게 잘 쳐먹고 있는 희성이 형까지.
기왕 모였는데 선후 형만 없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 인간이야 원래 집 밖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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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향후 최소 3년 간은 먹을 일이 없지 않을까 싶은, 고가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노래방으로 갔다.
여기서 소화를 좀 시킨 다음에 멀티방에 가서 간식을 먹으면서 게임을 하자는 계획이었다. 진부하지만 그냥저냥 여럿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평범한 루트였기에 다들 이견은 없었다.
“아, 무슨 아이스크림을 쳐먹어! 예약부터 싹 조져야지!”
“잠깐, 희성이 너 양심적으로 하나만 해. 나 우리 귀염둥이들 노래 듣고 싶으니까!”
“나는 안 부를 건데?”
“왜에~ 희나야~ 한 곡만 불러줘~”
“싫어!”
룸 안에 들어와서, 희성이 형과 윤정 누나는 곧바로 자기들 18번 곡을 예약하고 있었고, 정후 형은 들어오면서 챙겨 온 아이스크림을 먹었으며, 나와 희나는 얌전히 탬버린을 들었다.
나도 보통 노래방에 오면 곧바로 예약으로 한 줄 꽉 채우는 타입이지만,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양보하는 편이다. 그리고 희나는 노래를 잘 못 부르기 때문에 절대로 마이크를 잡는 일이 없었고.
희나의 노래는 단둘이 올 때나 한 번씩 들을 수 있지, 다른 사람들도 같이 왔을 땐 절대로 부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노래를 잘 못하는 희나도 무진장 귀여웠지만, 본인이 엄청 부끄러워해서.
계속 졸라 보았으나 협상의 여지가 없는 희나의 단호한 거절에 체념하는 누나. 결국 노래방 리모컨을 들고, 한창 노래를 부르고 있는 희성이 형 뒤로 번호를 예약한다.
“연후야. 너는 뭐 부를 거야?”
“글쎄. 일단 저 인간들 좀 지치고 나면 생각해 보려고.”
“지금 하나 불러주면 안돼?”
“듣고 싶은 거 있어?”
“나한테 들려주는 사랑 노래~”
“사랑 노래라.”
솔직히 나도 노래방에선 무지성으로 고음을 내지르는 노래들을 선호하긴 하지만, 우리 희나가 사랑 노래를 듣고 싶다는데 어쩔 수 없지. 발라드 함 조져볼까.
앞에서 난리를 치는 두 명이 양심적으로 예약곡을 하나씩만 걸어 놨었기 때문에, 그 바로 뒤에 노래를 하나 더 예약했다.
“쏘리 지르는 눼가!!!”
“췜피언!!”
“음악에 미취는 눼가!”
“췜피언!!!!”
잘들 논다.
목을 푸는 시간 따위 필요 없다는 듯, 이미 온몸으로 열창하고 있는 두사람의 쇼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연이어 두 곡을 그렇게 내지르고 나서야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에 마이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희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빛이~ 들어 오면~”
그렇게 시작된 내 발라드.
희성이 형은 듣는 둥 마는 둥 다음 노래를 예약하고 있었고, 정후 형은 동영상을 찍고 있었으며, 윤정 누나는 어느새인가 희나 옆에 딱 달라 붙어서 ‘꺄아~’ 거리며 새된 환호성을 내뱉고 있었다.
참고로 희나는 애절한 짝사랑 노래나 남녀의 치정이 섞인 가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을 속삭여주는 타입을 좋아해서 선곡도 그에 맞춰주었다.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아~”
“연후 노래 잘 부르네?!”
“한연후 쫌 부르지. 이희나는 쌉음치인ㄷ… 컥!”
희성이 형에게 쿠션을 던져 입을 막은 희나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나는 본인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함에도 내가 이렇게 불러주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노래방에 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내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원래 이런 건 1절만 부르는 게 국룰이긴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누가 행복하게 노래를 듣고 있는 희나를 막을 수 있을까.
덕분에 마지막까지 열창을 하고 난 후, 누나와 희나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좋다아~ 희나는 좋겠네! 연후가 이렇게 로맨틱해서~”
“흐후훟, 너무 좋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희나가 내게 껴안겼다. 강아지처럼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좋아하는 그녀. 나는 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정후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안 불러?”
“동영상 좀 보내고.”
엄마랑 아주머니한테 보내는 거려나.
아무튼 나도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었다. 희나에게 불러주는 것인 만큼 온 힘을 다했기에 앉아서 조금 쉴 생각이었다.
헌데 그런 나에게 건네지는 마이크가 하나.
“지금부터 시작인데 뭘 앉아 있어? 달릴 시간이다.”
“아니, 나 희나랑 여기서 좀 쉴…”
“연후 너도 놀아~ 나 네가 부르는 거 들으면서 톡 보내고 있을게. 어머님한테 연락 한 번씩 드리기로 했어.”
“그래?”
그렇다면이야.
희나의 권유에 내가 마이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형과 누나가 살며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후, 분위기를 보아하니 멀쩡한 목으로 여기서 나갈 수 없겠군.
“샤우팅 메들리 조질 거니까 쉴 생각하지 마. 전부 1절만 간다.”
“중간부턴 내 선곡인 거 알지? 희성이 너, 템포 따라올 수 있겠어?”
“오~ 누나 자신 있나 본데? 오늘 함 볼까? 한연후! 뒤쳐지지 마라!”
“그래! 뒤쳐지면 두고 간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사람들아.”
놀러 온 거니까 적당히 하라고.
—
목이 쉬도록 노래방에서 소리를 내지르고, 나와서는 곧바로 멀티방으로 향했다.
“여어, 히사시부리.”
“이걸 오네.”
웬일로 집 밖에 나온 선후 형까지 합류해서.
원래 사람은 많을 수록 재미있는 법이었고, 이 여섯 명이서 웃고 떠들며 잡다한 게임을 하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즐거웠다.
이렇게 과거로 돌아와, 희나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은 물론 나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행운이자 행복이었지만.
우리 형들과 희성이 형, 거기에 윤정 누나까지. 이 멤버가 이 시기부터 만나서 같이 놀 수 있는 것 또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하… 군대 가기 전에 존나 놀았네.”
“선후 형이랑 희성이 형은 동반 입대로 간다고 했지? 정후 형은 왜 같이 안 가? 어차피 비슷할 때 간다며.”
“동반 입대는 두 명까지만 가능하니까.”
“아, 그래?”
“어. 대충 전역 시기만 맞춰서 가야지.”
다만 형들이 한꺼번에 군대로 가게 되어, 한동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안타까웠지만 말이다.
신나게 게임을 즐긴 후 멀티방을 나와서, 가볍게 저녁을 해결하다가 나온 군대 이야기. 침울한 얼굴로 한탄하던 희성이 형이, 이내 표정을 바꾸고 이죽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갔다 오면 니도 금방인 거 알지?”
“으…”
놀리는 것에 짜증이 난다기 보다는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아직 가려면 4,5년은 남았지만 그 정도야 금방이었다. 회귀한 지 벌써 12년이 지났는데, 그 시간은 정말 순식간이었으니까.
한순간에 입맛이 달아나 얼굴을 찌푸렸다. 헌데 그런 내 옆에서 희나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군대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희나가 말이다. 그렇게 순수한 미소를 지은 채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꺼낸다.
“연후는 현역으로 안 갈 건데?”
“뭐? 사지 멀쩡한 놈이 뭘 현역으로 안 가? 저놈은 백퍼야.”
“아닌데? 연후는 상근인데?”
“…? 니가 상근 같은 건 어떻게 알고… 그보다 그건 아무나 가는 줄 아냐? 완전 개운빨이야.”
“백퍼센트인데? 나랑 아이 낳으면 무조건인데?”
“……”
어린 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엄청난 말을 꺼내 버리는 여자친구님.
동시에 우리 모두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건 또 언제 조사했대냐. 아니, 그보다 진짜 애 낳으면 상근 직빵이야?
밥 먹던 손을 멈추게 하는, 희나의 충격 발언에 오로지 윤정 누나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응응. 정후는 이미 늦었지만 너네는 그것도 괜찮겠다. 희나 너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둘 다 좋아~ 연후 닮은 딸도, 연후 닮은 아들도!”
“난 너 닮은 딸이나 아들이 더 좋은… 이게 아니지.”
어지간하면 희나 편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겠지만, 이건 너무 급발진이었다. 솔직히 형들도 그렇게 생각할…
“난 모르겠다. 니들이 알아서 하겠지. 근데 개인적으로 여자애가 더 좋을 것 같다.”
“조카 낳으면 유모차는 내가 사줌.”
“난 모빌이라도 사줘야 하나?”
놀랍게도 정후 형이나 선후 형 뿐만이 아니라, 이 화제를 꺼낸 희성이 형도 어쩐지 조카를 바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당연한 일인데 생각지 못했다는 것처럼.
근데 이 사람들이 뭐라는 거야, 지금. 군대 상근으로 빠지려고 애를 낳는 사람이 어디 있어?
뭔가 이 상황이, 저 발언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이 자리에서 나 뿐인 것 같았다.
군대 이야기에서 갑자기 조카 이야기로 화제가 급변하고, 형들과 누나가 그 이야기로 한껏 달아오르고 있는 것을 희나는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는 듯이.
—
저녁 식사 후.
형들과 헤어지고 둘이서 산책을 했다. 여름이 다가왔지만 해가 지니 꽤나 선선했다. 밤바람을 맞으며 익숙한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아까 나왔던 이야기를 다시금 이어가면서.
“희나야. 아이 낳자는 거 진심이야?”
“응.”
“그렇구나.”
한 치의 망설임 없는 그 대답에 따로 돌려줄 말이 없었다. 근데 군대 상근으로 빠지려면 못해도 20대 초반에는 애를 낳자는 건데, 그래도 되는 걸까.
희나와의 아이를 보는 것은 나도 대환영이었다. 싫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결혼은 고민할 여지가 없는 미래였고, 희나를 닮은 아들딸은 무조건 보고 싶었으니까.
“있지, 연후야.”
“어?”
“나 너 없으면 안돼. 2년이나 못 보는 거 절대 불가능해.”
“그거야 나도 그렇지만…”
어정쩡하게 12년을 같이 지낸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보다도 훨씬 가까이서 함께 살아온 것이 우리였다.
조금 떨어져 있어 보는 것이 서로의 소중함을 되새길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소리는 우리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그런 것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충분히 느껴보았으니까.
“부모님이 허락해 주시려나.”
희나가 이 정도로 단호히 결심을 했다면 나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까놓고 군대를 상근으로 빠질 수 있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걱정하는 단 한 가지는, 우리 부모님이나 희나네 부모님의 허락을 어떻게 받느냐는 것. 그냥 말도 없이 멋대로 아이를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빨리 아이를 낳게 되면,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님께 돌아갈 테니까.
허나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희나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
“괜찮아.”
“응?”
“고등학생 때만 아니면 엄마나 어머님도 좋다고 하셨어~”
“……”
“그러니까 내년부터 3년 간은 우리 피임 잘 하고 스무 살 때 낳자!”
“와우.”
주변이 환해질 만큼, 무척이나 밝게 웃으며 내년부터의 엣찌 계획, 그리고 스무 살의 아이 계획마저 세워 놓은 희나에게 그저 감탄만 나왔다.
생각해보면 부모님들 입장에선 저거라도 지켜지면 다행이라고 여기셨을 것이다. 아마 이미 우리가 할 거 다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려나.
12년을 사귀어 왔는데, 16살인 지금도 매일 같이 자고 있는데 야한 거 한 번을 안 했다는 것도 좀 말이 안 되긴 했다.
그리고 희나의 계획은 그렇게 추상적인 부분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 연말에 한 집에 모여서 다들 술 엄청 마시잖아.”
“아, 그치.”
연례 행사니까. 우리 말곤 전부 성인이기도 하고. 게다가 그날 만큼은 적당히 마시는 게 아니었다. 진짜 쓰러질 만큼 마셔버린다. 심지어 우리 엄마랑 아주머니까지도.
“어느 쪽에서 모일진 모르겠지만, 가족들 전부 잠들었을 때 택시 타고 다른 쪽 집으로 가자.”
“아하…”
“알았지?”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확인을 요하는 그녀. 내년 1월 1일이 되자마자 우리의 처음을 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것도 안 된다고 하면 나 못 참는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당연히 괜찮지. 준비할게.”
“흐후훟…”
내 동의에 희나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때부터 한동안 말없이 걸으며 둘이서 저녁 산책을 만끽했다.
1월 1일에 첫경험이라.
솔직히 지금 당장도 참기 힘든데 해가 넘어가면 어차피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희나가 디테일한 계획을 짜 놓은 것에 조금 당황했을 뿐이지.
단순히 야한 거나 아이 계획 뿐만 아니라, 슬슬 미래의 일들을 생각해 볼 때가 되긴 했다. 우리는 4년 뒤에도, 40년 뒤에도 함께 있을 테니까.
생각보다 자녀 계획이 무척 빨라지긴 했지만, 부모님들이 암묵적으로 허락한 듯 했으니 괜찮겠지.
물론 그렇다고 조급해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우리는 아직 16살이니까. 천천히 하나씩, 희나와 정해가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다음 주에는 느긋하게 집 데이트나 할까? 하루만 아빠랑 드라이브 다녀오고. 이제 방학이니까 아무 때나 가도 괜찮지만.”
“그래~ 그럼 아버님한테 피크닉 가자고 말씀드리자. 내가 도시락 쌀게!”
“…아니? 나 네 손에 절대 물 한 방울 안 묻힐 건데? 내가 싸줄 건데?”
“아이 참~”
그나저나 우리 아이 나올 때쯤이면 희나 요리 실력이 조금은 늘어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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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끝나고 피방 고?”
“기역.”
“서붕! 니도 고?”
“학원 감. 수고.”
“아씨발 뭔 근원이여.”
“개십새야, 니가 대신 쳐 가주던가.”
“지송~”
교실의 뒤편에 건들거리는 자세로 떠드는 아이들.
“야야, 올영 들렸다가 코노 갈래?”
“올영은 왜? 살 거 있어?”
“이지아 틴트 새로 나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