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230)
어쩐지, 굉장히 귀여웠다.
—
이어서 다가온, 우리가 함께 맞이하는 첫 여름방학.
우리는 당일치기로 바다 여행을 갔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갔다가, 새벽에 도착하는 늦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으로. 왠지 희윤이가 버스를 타는 것을 썩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늦은 시간에 다시 타고 돌아올 수 있는 교통 수단이 버스 밖에는 없었다.
“연아야, 다리 아프지? 이 위에 앉아.”
“캐리어 위에 앉아도 돼? 나 무거워서 이거 망가지는 거 아니겠지?”
“네가 뭐가 무거워. 너무 가벼워서 쓰러질까 봐 걱정인데.”
“야, 그거 진짜 개오바인 거 알지?”
둘이서 커플룩을 맞춰 입고, 출발하는 기차역에서부터 둘이 꼭 달라붙은 채 꽁냥거렸다.
그 뒤 속초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고, 드디어 도착한 바닷가에서는.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 아니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예뻐서. 수영복 잘 어울려. 정말로.”
“…고마워.”
큰맘 먹고 입은, 비키니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맨살이 많이 보이는 타입의 파레오 수영복을, 남자친구가 거리낌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강렬한 반응에 흡족하면서도 조금 부끄러운, 모순적인 마음을 안은 채 나도 힐끗힐끗 희윤이의 여기저기를 눈으로 훑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던 것도 잠시. 둘이서 물놀이나 모래 장난을 치며 열심히 놀다가, 근처에 열려 있는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간식거리도 사 먹으며 그날 하루를 즐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두어 시간 전. 어둠이 내려앉은 해변가를 둘이서 손을 잡고 거닐던 중.
“연아야.”
“응?”
“고마워.”
“뭐가?”
“나랑, 사귀어줘서. 내 고백을 받아줘서.”
“……”
그때부터 이어진, 아련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희윤이의 기나긴 고백. 그에 내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오히려 내가 백 번, 천 번 고맙다고 절해야 할 이 사귐에 이런 감사를 듣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에.
“야, 이희윤.”
“어? 읍!”
멱살을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겨, 내 입으로 이 녀석의 입을 막아버렸다. 덕분에 무드는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는 그런 첫키스가 시작되었지만.
잠시 후, 나를 살며시 껴안아주며 더욱 진한 키스를 해주는 희윤이 덕분에.
나름 로맨틱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시작된 우리의 사귐이었고, 덕분에 존재했던 묘한 거리감을 서서히 좁혀가던 우리였으나.
이날을 기점으로, 더욱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이 자식,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절대 손을 안 대네.”
“손 대줬으면 했어?”
“?!?! 너, 너! 언제 왔어!”
“방금. 그보다 네가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나 안 참는다?”
“……”
“응? 연아야.”
“마, 맘대로 하던가…”
이런 저런 것들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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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매일매일 즐거이 떠드는 거실.
소파 앞 탁자에 모여 앉은 우리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제일 심각한 것은 희나였다. 서른 후반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그 미모를 잃지 않고 있는, 내 아름다운 와이프 말이다.
나도 희나와 사랑이의 도움으로 나름 관리를 해서 아직 주름은 거의 없었지만, 역시 희나에 비하면 아저씨였다. 슬프다, 슬퍼.
아무튼 희나는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채로 턱을 괴고 있었고, 사랑이도 그 옆에서 마찬가지로 얼굴을 굳히고 있었지만.
-히죽
은근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는지 슬쩍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귀여운 막내, 소망이는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 몸을 기댄 채 오늘도 폰 게임을 즐겼다.
슬픈 사람과, 슬픈 척 하는 사람, 별 생각 없는 사람, 그리고 내심 이게 이럴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까지.
우리가 한창 떠들썩할 화요일의 조금 늦은 저녁 시간에 왜 이러고 있느냐면, 그것은 어젯밤 희나가 가져온 비보 때문이었다.
—
“자기야… 나 어떡하지…?”
“왜? 무슨 일 있어?”
어젯밤.
여느 때보다 더욱 늦은 시간에 퇴근한 희나가, 퇴근하자마자 시무룩한 얼굴로 나에게 안겨왔다. 나는 혹시 회사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다정히 아내를 안아주며 연유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듣게 된 그 이유는.
“나… 다음 주부터 해외 출장이야… 보름이나…”
“흐음. 음.”
“어떡해…”
“어? 그게 끝이야?”
“그게 끝이냐니!! 보름이라니까!! 보름이나 자기 얼굴을 못 보는 거라고!”
“…정말 큰일이네! 우리 어떡하지?”
놀랍게도 뭐 프로젝트가 엎어졌거나 부하 직원이 큰 실수를 했거나 사내 정치에 잘못 엮였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큰일은 아니었다.
그냥 해외 출장이었다. 전에도 가끔씩 갔었던. 다만 희나가 그간 어떻게 커버를 했는지 가더라도 일주일을 넘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번엔 상대적으로 꽤 긴 일정이기는 했다.
다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여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공감해 주기가 조금 힘들었다. 물론 희나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나도 희나를 보름이나 못 보면 꽤나 쓸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애들이랑 지내다 보면 그 정도야 금방인… 아, 희나 입장에서는 나 뿐만 아니라 애들도 다 못 보니까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쩌지 하고 있는 귀여운 아내에게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 오늘. 희나가 퇴근한 후 저녁에 가족이 전부 모여 회의를 하게 된 것이다.
—
사실 회의를 한다고 해도 나랑 소망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발언권이 없는 것이다. 소망이는 아직 많이 어려서 그렇고, 나는 둘 중 한 명의 편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한사랑. 오늘부터 주말까지는 엄마가 아빠 독점할 거야. 그렇게 알아.”
“안 돼! 엄마 내일부터 나랑 비슷한 시간에 퇴근한다며! 그럼 나는 언제 아빠랑 놀아!”
“엄마는 보름이나 아빠 못 보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인정 해, 안 해?”
“으으…!”
두 사람의 열띤 토론은 희나의 일방적인 공세로 끝이 날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보름이나 함께하지 못 한다는 게, 사랑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감해 줄 수 있는 사안이었나 보다.
게다가 일주일만 참으면 역으로 사랑이나 소망이가 날 독점하게 되는 것이니까.
다만 사랑이는 분한 얼굴을 하다가도, 희나가 출장을 가고 난 후를 떠올렸는지 입가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반대로 희나는 자신의 뜻대로 나를 독점하게 되었음에도 얼굴이 꽤나 어두웠다.
상반된 두 사람의 분위기에 눈치를 보면서, 나는 어느샌가 내 무릎에 자리 잡은 소망이를 꼬옥 껴안았다.
“그리고 엄마 가기 전까지 소망이도 아빠한테서 잠깐 졸업하고.”
“엄마, 나도?”
“둘 다 이번 기회에 아빠한테서 좀 떨어져 봐야겠어. 아빠 힘들게 맨날 붙들고 있으면 어떡해.”
“흥, 아빠가 하나도 안 힘들다고 했거든? 그러는 엄마야말로!”
“엄마는 괜찮아!!”
“나도 괜찮거든!!”
두 사람이 다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을 때, 소망이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 아빠랑 놀면 안 돼?”
“음… 일주일만 소망이가 엄마한테 양보 좀 해줄래? 그 다음에 아빠가 다시 많이 놀아줄 테니까.”
“알았어. 나중에 엄마 많이 힘들 테니까 내가 양보할게.”
“우리 소망이 너무 어른스럽네… 착하다, 착해.”
그리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질 것만 같았다. 열살 아들내미가 이렇게나 의젓한데, 서른 여덟 아내와 열여덟 딸내미는 저리 싸우고 있으니.
아무튼 마지막까지도 투닥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나왔다. 희나가 출장을 가기 전까지 약 일주일 간은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나를 독점하는 걸로.
물론 내 의견은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이게 가장인 것인가.
—
그 후 수요일부터, 평소보다 훨씬 더 격렬한 희나의 어택이 시작되었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출장 전까지 오후 6시 즈음에는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된 내 아내는, 곧장 소파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후후, 자기야~”
-쪽!
내 무릎 위에 올라타고는, 아이들이 보던 말던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스킨쉽을 했다. 평상시에는 이보다 퇴근이 훨씬 늦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소망이나 사랑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희나가 많이 양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일주일 간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달라붙어 온 것이다. 심지어 손만 씻고 바로 온 덕분에 정장 차림 그대로 말이다. 하얀 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희나는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섹시했다.
가끔 내가 부탁해서 이 차림으로 야한 걸 할 때도 있을 만큼.
아무튼 이 상태로 내게 애교를 부리고 있는 내 아내를,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은 부러움으로 가득해 보였다.
“…내일부터 쭈랑 놀다 와야지.”
“누나. 나도 같이 놀아도 돼?”
“그럴래? 소망이 주은이 누나랑 놀고 싶어?”
“응. 주은이 누나 좋아.”
“그럼 같이 놀자~ 쭈도 좋아하겠다.”
이 꼴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는 것인지, 내일부터 늦게 돌아올 거라 다짐하는 사랑이의 말에 소망이가 편승했다.
우리 아이들의 반응이 걱정되어 그쪽으로 귀를 열어 놓고 있었는데, 한동안 사랑이가 소망이를 데리고 놀아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이게 좋은 기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아들 딸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지만, 그 때문에 친구들과 소원해 지는 것은 절대로 원치 않았으니까.
내가 내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듯이, 중고등학생 때의 교우 관계는 평생을 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으웅..”
“희나야. 그냥 방에 들어가자. 사랑이랑 소망이 불편하겠다.”
“그럴까? 그럼 나 금방 씻고… 아니지, 같이 씻자!”
“음…”
그 말에 다시금 슬쩍 아이들 쪽으로 눈을 돌리니, 사랑이가 소망이를 껴안고 내일 뭘 할지 정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희나의 부탁(?) 때문에 일부러 떨어져 있어 주는 것 같은데, 슬쩍 같이 들어가도 괜찮겠지?
물론 우리 아이들도 나와 희나가 종종 같이 씻는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대놓고 그러기는 좀 그랬으니까.
착한 우리 아이들의 배려도 있겠다, 나도 다음 주부터 출장으로 고생할 아내 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다.
양팔로 내 목을 껴안고 있는 희나를 살짝 올려다보며,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럼 오늘… 우리 희나 구석구석 깨끗히 씻겨줄까?”
“…! 응! 부탁해!”
내 말에 환해진 얼굴과 불타오르기 시작한 그 눈동자를 보니, 아무래도 안방 화장실에서 씻어야 할 것 같았다. 거실 화장실에 비해 많이 좁긴 하지만.
희나의 분위기를 보면 그냥 씻겨주는 것 만으로 안 끝날 것 같은데, 거실 화장실의 욕탕을 쓰기에는 방음 문제가 좀.
—
그렇게 평일 동안.
희나는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애교를 부렸고, 나 또한 그걸 열심히 받아주었다. 사랑이와 소망이도 그런 엄마를 위해 일부러 늦게 집에 오거나, 같이 있더라도 둘만 있을 수 있도록 많이 배려를 해주었다.
요새 주은이를 포함해 셋이서 노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지, 조금 걱정이 될 정도로 늦게 들어오기도 하더라.
물론 걱정은 걱정이고 나 역시 오랜만에 희나와의 둘만의 시간에 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희나의 출장까지 3일이 남은 금요일 초저녁.
사랑이와 소망이는 오늘도 주은이와 놀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우리는 거실에 앉아 느긋하게 영화를 보았다. 희나는 내 다리 사이에 들어와 앉아 있고, 나는 그런 희나를 뒤에서 껴안고 있는 상태로.
그러던 중 갑자기 희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흐후훟…”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거 기억 나? 우리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우리 집에서 이렇게 같이 영화 보던 거.”
당연히 기억난다. 그때 첫키스 하려다가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 들어오셔서 못하지 않았었나?
“너네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지?”
“응~ 우리 첫키스 실패했을 때!”
“이야… 진짜 추억이네. 20년 전이잖아.”
“그러니까. 그것도 정말 오래됐네…”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아련히 그날을 떠올리는 듯한 희나. 그리운 추억이긴 하다. 아마 사진첩 뒤져보면 그날에 같이 찍은 사진도 꽤 많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한 손으로 앞에 앉아 있는 희나의 턱을 살며시 붙잡고 내 쪽을 향하도록 힘을 주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돌려지는 희나의 고개에, 나 역시 살짝 머리를 옆으로 틀어 희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벌써 몇 천, 몇 만 번을 했을 지 모르는 키스를 짧게 끝내고 희나를 보며 웃음 지었다.
“그때 이렇게 하려고 했었나?”
“으으음~ 만약 했으면 더 진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긴, 우리 희나가 이렇게 예쁜데 이걸로 끝냈을 리가 없지?”
“그렇지~”
그 풋풋했던 시절에 첫키스를 그렇게 할 리는 없었겠지만.
결국 영화는 뒷전으로,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나와 마주 보게 된 희나와, 다시 한 번 기나긴 키스를 이어갔다.
한동안 숨이 막힐 정도로 진한 스킨쉽을 나누고서, 희나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내일 오랜만에 데이트 하자. 둘이서만.”
“사랑이랑 소망이가 이렇게 도와주는데 당연히 해야지.”
“흐후훟… 맞아. 우리 애들 진짜 너무 착해~”
이전에도 간간히 둘이서 데이트를 할 때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토일 주말 내내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리 딸내미가 어지간하면 놔주지 않았었으니.
그렇게 주말의 데이트 약속을 잡고, 우리는 무얼 할지 하나하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마치 고등학생 시절처럼.
들뜨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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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가온 주말 아침.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나서 나와 희나는 외출 준비를 마쳤다. 여전히 커플룩을 좋아하는 우리 아내님의 요청에, 둘이서 예쁘게 옷도 맞춰 입고서.
“다녀와~ 소망이는 내가 잘 돌볼게!”
“엄마,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둘 다 고마워. 그럼 다녀올게.”
“문 단속 잘하고!”
나를 두고 매일 투닥거리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살짝 앞서 걷는 희나의 발걸음에서, 숨길 수 없는 기쁨과 들뜬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이렇게 여유로운 거 진짜 오랜만이지?”
“네가 많이 바빴으니까. 그 회사 일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냐?”
“후후, 그러게 말야.”
우리는 곧바로 어딘가로 향하지 않고 천천히 산책을 하며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기본적으로 희나가 많이 바쁘기도 하고, 평소에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땐 떠들썩함이 기본이었기에 이런 느긋한 여유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희나와 깍지를 낀 손은 부드럽게 겹쳐져 있었고, 살며시 내 쪽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은 언제나 그랬듯 사랑과 애정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시선이었지만,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라는 것을.
이런 아내 님의 헌신을, 20년 동안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것은 계속될 테니까.
—
며칠 전부터 틈날 때마다 오늘 뭘 할 지에 대해 고민해왔지만, 사실 크게 특별한 무언가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놔두고 우리끼리만 멀리 놀러 가고 싶지는 않았으니.
하여 우리가 선택한 것은 그저 평범한 데이트였다. 하는 것은 평범하더라도, 우리 둘이서만 긴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언제나 사랑이와 소망이가 곁에 있었으니까.
“우리가 안 본 영화가 19금 달린 거 밖에 없네.”
“가끔은 괜찮지 않아? 이따가 우리도 할 건데~”
“하긴. 이걸로 예열 좀 할까?”
주말에는 주로 집에서 다같이 붙어 지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족 나들이를 나오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들이의 코스 중엔 영화관이 껴 있을 때가 많아, 우리는 그때그때 개봉하는 어지간한 영화들은 전부 섭렵했다.
사랑이가 친구들에게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화나, 소망이가 좋아하는 히어로물 영화 등.
덕분에 오늘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지 않은 영화 중, 볼 만한 것은 19금이 달린 로맨틱 코미디물 뿐이었다.
그리고 약 두 시간 뒤.
분명 영화를 다 봤는데, 솔직히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영화였고, 그래서인지 주변에 앉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상영 시간 내내 희나가 대담한 손길로 내 몸 이곳저곳을 터치하며 놀았다. 나 역시 지지 않고 맞받아쳐 주었고.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 남은 게 없었다. 손놀림에 집중했기에.
결국 몸만 잔뜩 달아오른 채 팝콘이랑 콜라마저 남기고 나와버린 것이다.
“자기야, 우리 그냥 하러 갈까?”
“솔직히 좀 땡기긴 하는데 조금만 참자. 오랜만에 데이트하는 거잖아.”
“그치~ 그럼 키스라도 해줘.”
“입.”
“웅~”
-쪽
이제 막 정오가 된 시간에 바로 행선지를 변경하려는 희나를 말리고, 조그마한 입술에 키스를 해주었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성욕이 강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희나는 딱히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예전부터 성욕이 왕성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진 느낌.
아무튼 잠깐의 키스로 희나를 달래준 뒤 영화관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아~”
“아.”
서로에게 먹여주고, 또 받아먹으며.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조금 주책 맞은 거 아닌 가 싶긴 했지만,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희나가 워낙 동안이라 커버가 되는 면도 있었다. 약간 젊은 커플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 후에는 가까운 카페에서 식후 커피도 한 잔 즐기고, 또 느긋하니 주변을 걸어다니고 있으니.
“쿡…”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나왔다.
“자기야, 왜?”
“아니… 그냥. 즐거워서.”
“흐응~?”
갑작스런 내 웃음에 희나가 연유를 물어봤지만, 내가 답해줄 말은 정말 그것뿐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아내와의 데이트가 정말로 즐거웠다.
둘이서 길거리를 걷고 있으면, 우리가 그동안 했던 무수히 많은 데이트가 하나하나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산책을 할 때도 있었고, 종일 룸카페 같은 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방탈출 카페나 동물 카페, 혹은 낚시 카페 등 이 근방의 이색 카페는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스티커 사진, 배팅 센터, VR게임 등등 정말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그건 희나와 둘만일 때도 있었고, 친구들이 함께 일 때도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였을 때도 있었다.
20년의 세월 동안, 이 동네에서 정말 수없이 많은 추억을 겹겹이 쌓아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나는 변함없이 희나와 손을 잡고 이 거리를 거닐고 있다.
“우리 지금까지 이 근처에서 데이트 하던 거 떠올렸더니, 뭐랄까. 뭔가 재미있더라고.”
“그래? 우리 앞으로도 데이트 많이 할 건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
“가족 나들이도 데이트로 치는 거야?”
“데이트는 우리 둘이 나왔을 때만 데이트지!”
“사랑이랑 소망이가 이런 기회를 더 주려나?”
“둘 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생기면 아빠한테서 졸업하지 않을까?”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