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3)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2화(3/213)
Ep. 2
“네. 다리는 재활─ 회복 …성이 없는 것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마취를 한 것인지, 진통제 덕분인지 당장 느껴지는 통증은 없었다. 그래도 혼자서는 당장 몸을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평소에 그리도 까불거리던 오빠에게 내가 몇 번이고 재촉 해서야 받을 수 있었던 손거울에는, 고름이라도 스며 나온 것인지 누렇게 뜬 붕대에 감긴 내 얼굴이 보였다.
“……”
멍청한 생각이지만, 편하게 살아온 벌을 받는 건가 싶었다.
내가 내 삶이 그토록 쉽고 편하다고 느낀 것은 화목한 가정과 내 외모 덕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가족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지고, 그토록 예쁘다고 칭찬 받던 내 얼굴은 절반이 뭉개져 있었다. 심지어 혼자서는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모든 게 망가졌다.
힘이 빠진 손에서 거울을 내려놓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도, 오빠도 나에게 무언가 이것저것 말해주었지만 귀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햇빛이 강렬해 밖을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 즈음.
“…희나야.”
연후가 찾아왔다.
아마 오빠가 연락 해줬겠지. 몇 번 얼굴을 본 적도 있었고 연락처도 교환 했었으니.
하지만, 눈을 뜬 직후엔 그토록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차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사귄 이후에 그는 나에게 얼굴 말고도 내 담백한 성격이나 장난기 등등 다른 부분도 좋아했고,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나를 좋아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예뻤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지금 내 모습을, 나 자신보다도 연후가 마주하게 한다는 게.
그런 마음에 차마 그를 보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많이… 아팠지?”
조심스럽게 안아주며 그리 물어오는 그의 목소리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흑…아파…나…다리도…안…흐흑…안 움직이고…얼굴도…”
그 목소리에.
그 온기에.
마음이 복받쳐 올라 흐느끼며 말하면서도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자 연후도 억지로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안아주었다.
“괜찮아. 다 나을 수 있을 거야. 아까 살짝 얘기도 들었는데 다리도 재활하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더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계속 옆에 있을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랑보다는 좋아함이.
두근거림보다는 편안함이 더 느껴졌던 내 남자친구가.
그 이상의 말보다는 그저 조용히 안아주고 있는 연후가.
너무도 고마웠다.
—-
그 후로 시작한 수개월간의 재활은 쉽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내 몸은, 다리는 더 움직여주지 않았고, 당장의 몸의 고통보다는 마음의 고통이 더 컸다.
그간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들이나 대학교의 선후배 등. 한번씩 병문안을 와주고, 걱정해주고, 웃으면서 병실을 나가고 나면.
그 이후로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일이 있건 없건 항상 새로운 메시지로 가득 찼던 핸드폰은 놀라우리만치 잠잠했다. 정말로 친했던 몇 명의 친구와 연후 외에는 한순간에 연락이 사라졌다.
그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로 깊게 교류한 것도 아닌데 꾸준히 연락을 해준다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니까.
다만.
그 연락이 끊긴 시점이 대부분 병문안을 왔다 간 직후라는 것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알고 있다.
나와 친해진 계기는, 보통은 내 예쁜 얼굴 덕분이었다는 것을. 그것을 악용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다가온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나는 그런 나를 적당히 잘 이용해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그렇게 쉽게 친해진 사람들이 쉽게 떠나갔을 뿐이니까.
내, 일그러진 반쪽 얼굴을 보고.
그걸 인정하고 있음에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슬펐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을 만큼.
그럼에도 죽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나를 위해 내 앞에서는 어떻게든 웃음 지어주는 내 가족이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Yo! 희나! 오빠 왔다!”
“오빠는 무슨 오빠야. 수업은 잘 들었어?”
“어. 개노잼이었어. 진짜 과제 도랐…”
하루도 빠짐없이, 단 1분이라도 이곳에 들려주는 연후 덕분이었다.
사고가 나고, 면회가 가능해진 지 어느덧 몇 달. 그 몇 달의 기간 동안 연후는 매일같이 찾아와 주었다.
혼자 2학년이 되어, 안그래도 실력보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와서 수업도 힘들고 여러모로 바쁠텐데도.
계속, 와주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숨겼으나, 이제는 체념하고 드러내고 있는, 내 흉측하게 일그러진 반쪽 얼굴을 항상 마주하면서도.
“아 참. 정윤성 혹시 기억해? 걔도 같이 왔어. 이따 저녁 먹기로 해서.”
“너 고등학교 동창? ”
“어 맞아. 밖에서 기다린대서 잠깐 세워둠.”
“같이 들어오지.”
“그 놈 자주 보는 사람 아니면 낯 가려서… 처음 봤을 때도 불편해 했잖아”
“아…그랬지? 같이 놀자고 했더니 도망쳤던 거 기억나네.”
매일같이 나누는 사소한 대화를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아 열심히 입을 열었다.
지금처럼 면회시간 막바지에라도 찾아와 주는 고마운 남자친구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싶어서.
하루종일 했었던 진전 없는 재활 운동도.
한순간에 사라진 사람들로 인해 흔들린 멘탈도.
연후가 와 준 순간만큼은 전부 잊을 수 있었다.
“아 오늘 너무 늦게 왔네.”
“됐어. 와줘서 고마워… 얼른 가. 친구 기다리겠다.”
“알써. 내일 오전에 재활 있댔지? 내일은 조금 일찍 올게.”
매일매일 오는 게 힘들 테니 하루쯤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구원이었으니까.
변함없이, 사귀기 전부터 눈에 띄었던 연후의 밝은 미소는.
이제는 없으면 안 될 내 보물이었다.
하루라도 보지 못한다면 울어버릴지도 모를.
“응. 내일 봐.”
“갈게~”
서서히 멀어지는 발소리.
연후가 나간 병실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휠체어의 바퀴를 굴렸다.
휠체어에 타고 있을 때 화장실을 가두는 편이 좋을 테니. 지금 몸 상태로는 침상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조차 굉장한 운동이었다.
-끼익
연후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느릿느릿 천천히 바퀴를 움직이면서 화장실로 향하던 그 때에, 기역자 코너를 앞에 두고 머지 않은 위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근처 병실 면회객이 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 시간도 많이 늦었다. 그러니 아마도 연후가 잠시 화장실에 들려서 아직 출발하지 않은 거라 생각했기에 살며시 다가가던 도중.
“너 근데… 걔랑 계속 사귈거냐?”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가 기억에 무척이나 흐릿하게 남아 있는, 연후가 말했던 친구의 목소리란 걸 깨닫고 움직임을 멈췄다.
“뭐, 희나?”
“어.”
“당연하지 임마”
“니가 좋다면 상관 없는데… 걔 거의 가망 없다며. 다리.”
“…후. 좀 힘들어 보이긴 하더라.”
-움찔
알고 있었다.
재활을 시작한지 몇 달인데 모를까.
아직까지도 차도가 없는데 앞으로 나을 거라고 믿고 있는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가족과 연후가 기뻐했으니까.
그렇기에 기계적으로 하고 있었을 뿐.
다만 그런건 사소한 부분이었다. 연후의 친구가 한 질문은, 연후를 보지 못하는 시간 동안 내내 자신을 괴롭히는 주제였으니까.
지금의 나를 연후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가.
너무나 궁금하고, 또 두려웠다.
만약.
만약에라도.
나를 두고 간다 하면.
절대 붙잡지 못할테니까. 고마워서라도. 미안해서라도.
“그… 여기에서 이런 말 하기 뭐한데 진짜 괜찮겠냐? 계속 만난다고 하면 앞으로 더 힘들건데…”
“음…”
잠시간 말이 없었다.
손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갑작스런 긴장감에 구토감마저 느끼는 나와는 달리.
연후는 언제나처럼 경쾌하게 말을 이었다.
“니 말 듣고 좀 생각해봤는데.”
“근데?”
“안 헤어짐.”
“왜?”
나도, 나도 궁금해.
도대체 왜?
그에 대한 연후의 대답은, 무척이나 명료했다.
“그냥… 그냥 좋으니까.”
“가끔 희나가 좀 힘들어 하더라.”
“재활도 생각대로 안되고… 이것저것 있겠지.”
“아마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웃으면서 그러자고 할지도 몰라.”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만큼 희나가 날 좋아하는 건 아니었거든.”
“거기다 내가 매일 찾아오는 거 조금 미안해 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근데 그런 거 다 좆도 상관없어.”
“걔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난 그냥 걔 좋으니까 안 헤어질 거고 내 여친 보고 싶으니까 계속 오는 거야.”
“의무감이나 동정 그런 거 아니고.”
“사실 내가 그렇게 좋은 놈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도 첨엔 그런 건가 싶었는데. 학교에서 은근히 희나 뒷담 까는 새끼들마냥 마음이 식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거 아니더라.”
“매일 보고 싶고, 보고 나면 좋아.”
“처음 사귀었을 때처럼.”
“걍 내가 너무 좋아하는 듯”
정말 별거 아닌 이유였으면서도 그 무엇보다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되는 말이었다.
‘좋아하니까’
흐느낌이 새어나올까 입을 틀어 막고, 오열했다.
연후의 말대로, 연후에게 호감은 있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해서 사귀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귈수록 점점 더 그에게 끌리는 것이 있었고, 캔버스 물들이듯 내 마음을 천천히 적시며 들어왔다.
그럼에도 사랑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후와 시작한 것이 내 첫 연애였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기엔 경험이 없었다.
만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보던, 한 사람만을 생각하고, 내 삶 전체가 그 사람에게 휘둘리는.
그런 정열적인 마음은 몰랐다.
몰랐었다. 깨닫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빛나던 내 모습도, 지금의 흉측한 모습도.
불필요한 말 없이 그저 좋아해주는.
그가 좋았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연후가 와주기 만을 바라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와 했던 대화를, 데이트를 곱씹고.
그가 와주기에 재활운동도 빠짐없이 하고.
혹시라도, 망상에서라도 몸이 낫게 되면 그와 어디를 갈 지 생각하는.
그런 내가 있었다.
그저 고마움 뿐이 아닌. 그의 얼굴에, 그의 표정에, 그의 몸짓에, 그의 한마디에. 그 모든 것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그런 내가 있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사랑을 배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더 많이 만나서, 더 많은 곳에 놀러 가서, 더 많이 데이트를 하면서.
지금보다도… 훨씬 더 좋아할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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