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35)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34화(35/213)
Ep. 34
분명 웃고 있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나는 물론 친구들까지 이 상황에 얼어붙은 채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차마 그런 걸 물어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한창 떠들썩하던 우리 주위는 한순간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갑작스런 분위기의 변화에 근처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몇몇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어렴풋이 와- 하는 듯한 짧은 감탄사가 들린 걸 보니.
희나의 미모가 어디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의도치 않게(?) 씹어버린 톡도 톡이지만 방금 전에 수황이가 지껄인 헌팅 소리를 들었나 싶어서 더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아까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식은땀에 등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던 중, 희나가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로 내가 아닌 내 옆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연후 친구들이죠? 안녕하세요?”
“어.. .네, 안녕하세요.”
나랑 가장 가까이에 앉은 수황이가 대표로 인사를 받아주고, 나머지는 살짝 고개만 끄덕여주며 답한다.
“잠시 연후랑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넵, 얼마든지.”
“아, 그리고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희나가, 살얼음이 낄 만큼 차가운 아우라를 풀풀 내면서 말을 잇는다.
분명, 눈은 웃고 있는데.
“연후 데리고 헌팅은, 안되는 거 아시죠?”
들었구나! 그래도 내가 주도적으로 낀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거 다 농담이고 사실 저희 계곡 가려고 했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허허…”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지 쭈그러드는 수황이를 보니 저 떡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놈, 조금 더 버텼어야지! 아직 변명을 생각 못했는데!
속으로 욕을 하면서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희나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입에 침이 마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저기, 희나야?”
“응?”
다행히도, 아니 이걸 다행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지 모르겠지만, 대답해주는 모양새가 내 친구들을 볼 때만큼 얼어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에 용기를 얻고 떠듬떠듬 변명을 꺼낸다.
“미안해, 내가 그… 게임에 집중하느라 폰 확인을 깜빡해서…”
“응.”
“평소엔 그래도 중간에 한 번씩 확인하는데, 오늘따라 좀.. 너무 빠져버려 가지고…”
“응.”
“아무래도 열중해서 하다보면 중간에 끊기가 힘든, 그런 게 있잖아? 뭐든지.”
“응.”
“역시 게임은 질병… 잘못했습니다.”
단답으로 대꾸하는 희나에게 이 이상 추하게 변명하는 것도 힘들었다. 솔직히 아까 답장을 보낼 기회가 있었음에도 게임 한다고 안 보낸 것도 사실이니까.
쓸데없이 이것까지 말해서 화를 돋굴 필요는 없으니 조용히 하겠지만.
-끼익
“연후야.”
그녀가 내 오른편 비어 있는 게이밍 의자를 살짝 돌려, 거기에 앉으면서 나지막히 내 이름을 부른다.
어줍잖게 더 말을 꺼내지 않고 얌전하게 경청했다.
“나, 화난 거 아니야.”
“…응, 알아.”
지금 피시방 손님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화난 거 같은데─ 소리가 나올 것 같지만, 희나가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너무 답장이 없어서 혹시 무슨 일 생겼나 걱정이 됐어.”
“미안해. 톡 답장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었는데…”
“아니야. 친구들이랑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리 말하면서 표정을 흐리는 희나의 얼굴을 보자 죄책감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차피 하루종일 조졌을 게임, 그냥 희나한테 답장이나 빨리 할 걸.
몇 시간 전의 어리석은 나를 질책한다.
나를 탓하기보다, 내 행동을 옹호해주려는 이 착한 여자친구를 슬프게 하다니!
분명 희나라면 오늘 있던 일로 나한테 뭐라 하지도 않을…
“물론 연후 너는 시간 될 때마다 톡을 보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었지만…”
“……”
어라?
“나는 그 말만 철썩 믿고 하루 종일 폰만 보고 있었는데…”
“…”
“혹시 게임 끝나고 밖으로 나갔다가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하고 종일 마음을 졸이고 있긴 했었어도, 연후 때문은 아니야.”
“……”
“내가 걱정이 많아서 그런 거지. 내 마음 알지?”
“…….응…”
“알고 있는데 친구들이랑은 헌팅 이야기 한 거야?”
“아니, 나는 말렸는데..”
“그래서 그때 선크림도 다 안 발라 준거야? 다른 여자 보느라?”
“그건 진짜 아닌 거 알지?”
“알아. 그냥 해 본 말이야.”
“…다, 다행이네.”
“그래도 톡은 안 보내줬지만.”
“……”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양심을 사정 없이 찔러 준 덕분에 그만치 내 고개는 땅을 향하고 있었다.
변명할 말이 없다.
잠시간 말 없이 그 상태가 지속되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희나는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우리 때문인지, 지금 주위는 대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손님들이 썩 많은 곳이 아니기도 했지만, 꿀잼각이라고 생각하고 팝콘 뜯으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 같았다.
나라면 그랬을 테니.
그 고요함에, 초조함에 견딜 수 없어져서 슬슬 재차 사과해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희나가 양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고 올려주었다.
다시금 눈을 마주 보게 되면서, 희나가 먼저 용서의 말을 꺼낸다.
“다음부터는 답장 잘 해줄 거지?”
“응. 꼭 할게. 진짜 미안해.”
그에 잽싸게 수긍하며 다시 한 번 사과했다.
내 즉답에 희나의 눈매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한 층 온화해진 어투로 말을 잇는다.
“그럼 됐어. 대신 잠깐 폰 좀 줘볼래?”
“폰? 음..여기.”
갑작스러웠지만 별생각 없이 내 폰을 건네주었다. 딱히 못 보여줄 만한 것도 없고, 둘이 붙어 앉아서 폰을 할 때도 꽤 있었기 때문에 안에 뭐가 있는지는 희나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내 폰을 받자마자 바로 무언가를 설치하기 시작하는 그녀. 이상한 걸 깔리는 없을 테니 만류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용량이 크지 않은 것인지 금방 다운이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잠시간 자신의 폰이랑 내 폰을 동시에 조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려주었다.
뭘 깐 거지?
“뭐 깔았어?”
“응. 연인 어플.”
“연인 어플?”
“서로 위치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건데, 오늘처럼 연락 안되면 너무 걱정이 돼서… 괜찮지…?”
“아, 당연하지. 그런 거면 상관 없어.”
아직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기도 했고, 사실 내 동선이 워낙 뻔한 탓에 희나가 좀 알고 있는다고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이걸로 마음 고생을 조금 덜 한다면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나 역시 희나가 언제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고.
흔쾌히 허락하자 그제서야 희나의 미소가 완전히 돌아왔다.
잠깐 연락이 안된다고 이렇게나 걱정하고, 그것 때문에 굳이 저런 어플까지 깔고 싶어하는 그 순수한 마음에 감동이 내 전신을 감싼다.
어쨌든 이렇게 희나의 분노가 어느 정도 일단락 됐으니 슬슬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근데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응~? 어머님한테 들었는데?”
“…엄마한테? 엄마랑 연락해?”
“몰랐어? 매일 연락 드리는데.”
우리 엄마랑 내 여자친구가 매일 연락을 하고 있는 걸 나는 왜 지금에서야 안 거지? 아니 그보다도.
“불편하지는 않고?”
“불편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먼저 자주 해도 괜찮은지 여쭤보고 하는 거야.”
“그렇구나…”
여자친구가 우리 엄마랑 매일 톡을 주고받는 게 평범한 일일까?
모르겠다. 그냥 희나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하고 넘어가는 것 외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이 문제는 넘어가자. 희나가 좋다면 상관 없지.
거기까지 듣고 나서, 슬쩍 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계속 이 쪽을 주시하고 있었는지, 은근슬쩍 눈치를 보고 있는 내 친구들과 눈이 마주쳤다.
기왕 이렇게 본 김에 서로 소개라도 하지 뭐.
“희나야, 내 친구들이랑 인사하는 거 정도는 괜찮지?”
“응! 아, 처음이라 존댓말로 인사 했는데, 혹시 말 놔도 괜찮을까?”
내 뒤로 시선을 주면서 희나가 그리 말하자 네 명의 모쏠놈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털릴 때는 존나 입 닥치고 있더니, 희나의 분노가 풀린 것이 저 놈들한테도 느껴졌나 보다.
“당연히 괜찮지! 나는 김수황이고…”
“잡 소개는 필요 없고. 얘는 이희나. 니들도 내 프사 많이 봤으니 알지? 그리고 여기 내 바로 옆부터 김수황, 신의현, 정윤성, 이현우야. 윤성이는 저번에 잠깐 봤었다고 했지?”
쓸데없이 길게 늘여 놓으려는 놈의 말을 끊어버리고 내가 간단하게 소개를 마쳤다. 어차피 그렇게 자주 볼 것도 아닌데 더 이상의 호구조사는 필요 없을 테니.
게다가 희나도 얘들한테 딱히 큰 관심은 없을 거고, 내 친구놈들도 희나한테 집적거리는 일은 없겠지만 굳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게 하고 싶진 않았다.
질투 나니까.
“안녕~”
희나는 내 짧은 소개가 끝나자 살짝 손을 흔들며 한번 더 인사를 해주었고, 내게 말이 끊겨버린 김수황이 잠깐 입을 삐죽이긴 했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
아무튼 서로 인사를 나누긴 했는데, 아무래도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프로필 사진 덕분에 나름 익숙하긴 할 지라도 결국 정말로 얼굴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으니. 게다가 친구의 여자친구라는 게 마냥 편하게 대하기는 미묘한 관계이기도 하니까.
“혹시 너 친구 몇 명 불러서 같이 계곡 갈 수 있어?”
이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아까 나왔던 의견에 대해서 말을 꺼내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희나.
“친구들?”
“응. 저기 의현이 친척집 근처에 계곡이 있는데 사람도 많이 안 와서 놀기 좋다고 하더라고. 괜찮으면 너도 친구 불러서 같이 가면 어떨까 싶어서.”
“아아~ 그런데 어쩌지? 대부분 학원이나 과외 받아서 아마 시간 내기 힘들 텐데.”
“그래?”
“으응. 그리고 안 친한데 같이 가면 많이 어색할 수도 있으니까. 미안해.”
“아냐, 미안하긴. 그냥 한 번 물어본 거야. 그리고 가봐야 하루 자고 오는 거긴 하지만, 내가 너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정말?”
뒤에 친구놈들도 있어서 하기 쑥쓰러운 말이었지만, 희나는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진심을 내비쳐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빛내며 희나가 내 손을 잡아온다. 그 조그마한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만끽하며, 말을 더해주었다.
“오늘도 톡 못 해준 건 미안한데, 저녁에 너 보러 가려고 했었어.”
“나도 보러 올 생각이었는데.. 우리 통했네?”
“그러게.”
그리 말하면서 서로 미소를 짓는다.
게임이고 친구고 다 무슨 필요야? 희나 있으면 됐지.
그런 생각으로 손을 놓지 않고 꼬옥 붙잡고 있자, 뒤에서 투덜거림이 들려온다.
“그냥 데이트 하러 가라…”
—
결국 진짜 나와버렸다.
자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희나가 미안해 했지만, 사실 슬슬 파토날 즈음이긴 했다. 저녁 먹을 시간도 다 됐으니.
나나 정윤성처럼 알바 한 번씩 해서 주머니 여유 있는 놈이 많지 않다. 이렇게 피시방 연짱 조지고 나면 밥까지 먹고 갈 돈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여행도 그냥 의현이 고모님댁에 신세 지는 걸로 합의 봤고. 솔직히 어딜 봐도 그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무엇보다 돈도 없는 놈들이 숙소비 굳는다는데 무슨 헌팅같은 개소리를 하고 있는지.
피시방에서 나오고 둘이서 느긋하게 걸어다니는 중 희나가 나를 멈춰세웠다.
“연후야.”
“응?”
“다음부터는 약속 지킬 거지?”
아직 갈굼이 끝나지 않은 걸까? 싶어서 조심스레 흘끗 희나를 봤지만, 딱히 나를 탓하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또 어기면 내가 게임 끊을게.”
“진짜?”
“…..일주일 정도는 끊을 수 있을..지도?”
“어휴, 됐어! 그보다 내일 데이트인 거 알지? 오늘은 네가 걱정시켜서 온 거니까 노카운트다?”
그런 거 상관없이 내일 무조건 만나러 갈 생각이었지만.
“아, 알지~ 근데 내일은 뭐 할까?”
“오늘 조금 고민해봤는데, 동물원 가 볼래?”
“동물원? 가고 싶어? 난 괜찮은데.”
“응! 그럼 가자! 그리고 혹시 기억해?”
“뭘?”
“내 소원 들어주기로 한 거.”
바다에서 돌아올 때 킵했던 그거 말하는 건가.
“기억하지.”
“뭐든지 괜찮아?”
“뭐든 들어줄게. 오늘 진짜 정말 진심으로 미안했으니까.”
그 말에 희나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그럼 내일은 하루 종일, 내가 정한 규칙을 꼭 지키기로!”
“규칙?”
“응, 간단한 거야. 내가 이렇게 손가락을 얼굴에 대면.”
그러면서 실제로 검지와 중지를 붙인 두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올린다.
“거기에 키스해 줘. 언제, 어디서든. 주위에 누가 있든 간에, 무조건.”
“…엥?”
“뭐든지, 한다고 했지?”
그렇게 말하며 어딘가 요염한 웃음을 짓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