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41)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40화(41/213)
Ep. 40
7월 중순.
여름답게 햇빛이 쨍쨍하여 더워 뒤질 것 같은 날씨 속에서, 세찬 바람을 스치며 널찍한 카니발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 안에는, 나를 비롯해 계곡 여행 멤버인 내 친구들이 타고 있었다.
운전은 감사하게도 서울까지 우리를 픽업하러 와주신 신의현의 고모님.
희나와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고 며칠이 지난 후, 이전에 계획했던 여행을 가는 것이다. 다만 당초 계획과는 달라진 부분이, 1박이 아니라 2박 3일 일정이 되었다.
덕분에 어젯밤에 희나가 조금 풀이 죽어 있었다. 마지막에는 웃으면서 헤어지긴 했지만.
서울까지 왕복 픽업해 주시는 의현이 고모님이 우리 때문에 오늘내일 장거리를 왔다 갔다 하시는 것도 번거로우실 거고, 마침 이틀 뒤에 서울에 일이 있으시다고 하셔서 그것에 맞추게 된 것이다.
숙소비에 이어 교통비까지 굳어서 정말 다행이었지만, 안 좋은 점은 기차로 왔을 경우에는 멀쩡했을 내가 차멀미 때문에 고생하게 되었다는 것.
나는 멀미가 날랑 말랑하는 속을 진정시키며 조수석에 앉은 의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나 남았지?”
“내 기억이 맞다면 앞으로 한 시간 정도?”
“휴.. 그나마 쌩쌩 달려서 다행이다. 막혔으면 중간에 토 했을듯..”
“힘들면 말해. 고모! 조금 더 가면 휴게소 하나 있지 않아요?”
“있어~ 왜, 들릴까?”
나를 배려하며 해주시는 말에 급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오늘 생각보다는 멀미를 안 해서..”
“힘들면 말하렴. 잠깐 들리면 돼니까.”
“네, 감사합니다.”
걱정해 주시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창 쪽에 머리를 기댄 채 폰을 들었다.
딴 놈들은 멀미도 안 하는지 아까 전부터 폰으로 유투브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폰 화면을 보고 있으면 점점 속이 안 좋아지는 탓에 이렇게 잠깐씩만.
[ 한연후 : 아직도 한시간 남았다.. 내리고 싶어..] [ 희나 : 멀미 심해..? ㅠㅠ 우리 연후 어떡해.. ] [ 한연후 : 그래도 아직 참을만하니까.. 이따가 또 톡 할게 ] [ 희나 : 응.. 되도록이면 시선을 먼 곳에 둬! 그러면 조금 덜 할 거래 ] [ 한연후 : ㅇㅋ ]희나에게 생존 신고를 날려준다. 폰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보내자마자 칼답을 해준다.
다만 짧은 시간 톡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뱃속이 울렁거려온다. 그럼에도 이렇게 억지로라도 톡을 보내는 이유는 희나의 부탁 때문이었다.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차 출발하고 나면 30분마다 한 번씩 톡 보내줄 수 있어?’
’30분마다? 알았어. 이번엔 절대 안 까먹고 보낼게. 어차피 차에서 할 것도 없고.’
‘응! 고마워! 사랑해!’
저번에 몇 시간 동안 답장을 안 했던 후부터는, 가능하면 폰을 이전보다 더 자주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희나의 톡에는 되도록 칼답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번에 계곡 가면서도 폰을 절대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무조건 그럴 생각이었다. 게다가 저리 말하며 뭔가 불안한 듯이 내 손을 꼭 잡던 희나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라, 30분이 아니라 거의 15분마다 톡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내 멀미가 심하다는 걸 희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 자체는 짧게 했었지만.
톡을 보내자마자 희나의 조언을 떠올리며 저 멀리 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르르릉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울리는 폰.
희나면 확인하고, 다른 사람이면 무시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희나의 톡이었다.
마지막으로 보내고 5분도 안 지났다. 하여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톡 대화방을 열었더니, 짧은 동영상 파일이 와 있었다.
지금까지 사진은 많이도 받아왔지만 이런 영상 파일을 보낸 것은 처음이어서, 순간 멀미도 잊고 바로 다운을 받았다.
알뜰통신사 무한 요금제라 데이터 걱정도 없었다. 어차피 영상 자체도 5초짜리 짧은 거긴 했지만.
다운로드가 금방 끝나고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러자 바로 내 눈에 보인 것은, 화면에 가득 차 있는 희나의 얼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희나가 입술을 모으더니 쪽- 소리를 내면서 마치 키스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작 그것뿐인 영상이었고, 그 아래에 톡이 이어져 있었다.
[ 희나 : 이거 보고 기운내♡ ]“……..”
이희나 진짜!
귀여워 죽겠네!
오로지 귀엽다,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목덜미에 묵직한 손길이 느껴졌다.
어떤 놈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내 뒷자리에서 김수황이 굳은 얼굴로 손을 뻗고 있었다.
폰에 머리 처박고 유튜브나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걸 또 훔쳐봤네.
“좋냐?”
“그럼 안 좋겠냐?”
“하….이 ㅅ..후. 욕 하면 안되지.”
운전석에 의현이 고모님이 계셔서 그런지 평소처럼 막 던지지 않고 욕지기를 한 번 참아낸다.
그래도 개념은 달려 있어서 입을 놀리는 것도 때와 장소를 구분할 줄 아는 녀석.
하지만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는지 주위에 딴짓하는 놈들을 전부 주목시킨다.
“야! 지금 폰질 할 때가 아니라고! 방금 한연이 뭔 동영상 받았는지 아냐?”
“야동이라도 받아 왔냐?”
“적당히 봐라 좀.”
“여친이 키스하는 영상 찍어서 보내줬더라.”
“뭐여?!”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놈들이 그 말에 자세를 바로 하고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진짜 하루가 멀다 하고 빡치게 하네.”
“여기에 묻어버리고 가면 안 되나?”
“하.. 그때 피방 찾아왔던 걔지? 진짜 한연 시….ㅂ..”
“그러고 보니 휴게소 가까운 곳에 공동묘지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 공동묘지를 왜 찾아, 미친놈아.
살벌한 소리를 꺼내는 그 놈들 사이에서, 조용히 듣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끼어드셨다.
“연후랬나? 연후는 여자친구 있나 봐?”
“아, 넵.”
“요즘엔 너희 때도 다 사귀고 그러는구나~ 의현아, 너는? 여자친구 있어?”
“…………..없는데요..”
“그래? 다른 친구들도?”
“……..네.”
“어머..”
아마 별생각 없이 물어보신 거겠지만, 뭔가 숙연해졌다.
묘해진 분위기에 아주머니도 말 끝을 흐리셨다. 그리고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셨다.
안타까운 녀석들. 하긴, 남고에 학원도 안 다니는 놈들인데 여자를 어디서 만나겠냐.
나도 희나가 고백해 준 거 아니었으면 마찬가지였을 것을.
내 옆자리에서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 현우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힘내라.
모쏠새끼들아.
—
차로 수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곳은, 양양의 한 산골.
차에서 내리자마자 2층짜리 단독 주택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그나마 가까운 이웃들도 띄엄띄엄 꽤 거리가 있는 곳들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에 보이는 것은 그냥 산 뿐이었다.
오면서 들어보니, 나이가 들어서 퇴직을 하신 후 여기서 취미 삼아 작게 밭을 만들어 이것저것 기르시며 유유자적 살고 계신다고.
한가하다 보니 우리가 갈 계곡도 고모부님 주도 하에 주민들과 만드신 거라고 한다. 대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시고. 거기까지가 의현이 친척분들 땅이어서.
뭔가 자연인 같은 느낌인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시란다. 이런 곳에서 살려면 유튜브랑 드라마 없이는 절대 안 된다나.
다만 오는 길이 비포장 도로에 좀 험하다 보니 자식 분들도 쉽게는 못 찾아온다고 하시더라.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가져온 짐들을 던져버리고, 의현이의 안내에 따라 곧장 계곡으로 향했다.
“여기서 머냐?”
“한 5분? 고모부랑 근처 주민들이 길 만들어둔 게 있어서 거기로 조금만 걸어가면 돼.”
“오~ 야! 모여봐! 존나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은데 사진 한 방 박고 가자!”
희나한테 보내줄 겸, 애들을 모아서 셀카 자세를 취한다.
“아, 김수황 시바 대가리 좀 줄여봐!!”
“그냥 대충 찍자. 저새끼 대가리 짤리는 건 솔직히 쩔 수 없음.”
“쳐먹은 게 대가리로만 가나 진짜.”
“내 대가리한테 왜 그래..”
“야야!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찍고 나서 사진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한 놈 대가리가 반쯤 짤려있었다. 그래도 눈부터는 보이니까 뭐.
그 후에도 잠시 단체샷 컨셉을 고민하면서 토론했다.
한 장만 찍기에는, 드디어 차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멋진 자연 경관과, 맑은 공기와, 멀리 놀러 왔다는 사실에 업된 기분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러다가 결정한 것이 어렸을 적 티비에서 봤던 전대물 컨셉 사진.
“파x레인저 포즈가 뭐였지?”
“그거 시리즈마다 다 다를걸. 찾아볼까?”
쓸데없는 디테일을 챙기고 있는 씹덕 윤성이와 의현이를 뒤로 한 채, 나는 곧바로 양 팔을 벌리며 외쳤다.
“나 한연후! 메가포스 레드가 되기 위해 태어난 남자!”
“한연 또 지랄났네…..나 김수황!! 간지 그 자체 메가포스 블랙!!”
“나 그거 본 적 없는데.. 블루도 있겠지? 포즈 뭐냐.”
나와 김수황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옆에서 현우가 어물쩡 거리고 있자 폰으로 포즈 검색하던 둘도 잽싸게 옆으로 붙어왔다.
“모르면 꺼져! 나 정윤성! 메가포스 블루!”
“나, 나는 신의현! 메가포스 실버!”
“진짜 미친놈들…”
우리끼리 있기에 할 수 있었던 이 남 보여주기 창피한 지랄을, 뒤늦게 따라오신 의현이 고모부님께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조금 쪽팔린 건 있었는데, 역시 친구들이랑 놀면 뭔 짓거리를 해도 재미있는 법이라.
그러고 나서는 다들 흥분된 발걸음으로 계곡을 향해 빠르게 앞서가버렸고, 나는 희나에게 사진을 보내주면서 느긋하게 뒤따랐다.
산골임에도 LTE가 잘 통해서 다행이었다. 역시 인터넷 통신 강국.
[ 한연후 : (사진) (사진) (사진) ] [ 한연후 : 계곡 들어가기 전에 애들이랑 찍음 ㅋㅋ] [ 희나 :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다~ 근데 정말 주위에 산 밖에 없네? ] [ 한연후 : ㅇㅇ 진짜 가까운 곳에 아무도 없어. 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 [ 희나 : 그러게ㅠ 벌써 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그 말에 즉석에서, 아까 희나가 보내준 영상과 같은 것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렌즈를 향해 키스하는 듯 쪽 소리를 내는 영상을.
[ 한연후 : (동영상) ] [ 한연후 : 너도 이거 보고 힘내! ] [ 희나 : ♡♡♡♡♡ 귀여워!! 엄마랑 오빠한테 보여주고 올게!! ]?! 아니, 뭐라구요?!
[ 한연후 : ? 뭐? 아니 잠깐만안돼 보여주짐남맘ㄴㄹ] [ 한연후 : 희나야!! 안돼! 제발!!] [ 한연후 : 희나야? 희나야!!!!!]내 필사적인 톡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었다. 아마 내가 보낸 동영상을 재료로 바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듯 싶었다.
조만간 찾아뵐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얼굴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