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46)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45화(46/213)
Ep. 45
그래, 어제의 실패에 연연하지말자.
그렇게 마음먹고 오늘도 집을 나섰다. 어제도 막판에 그 개성적인 노래 솜씨에 조금 웃어버렸을 뿐이지,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근데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하면 화내겠지?
아무튼 오늘은 특별히 장소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 아니라, 희성이 형 말마따나 컨셉을 잡는 느낌으로 가보기로 했다.
상남자 스타일로.
솔직히 컨셉인 걸 나도 알고 희나도 알 테지만, 그냥 희나가 오늘 하루 내 행동으로 인해 웃어줄 수 있다면 충분했다.
“나 왔어! 오늘 어디로 갈 거야?”
-쪽
언제나처럼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희나가, 내 입술에 살짝 버드 키스를 하면서 행선지를 묻는다.
그에 순식간에 풀어지려는 표정을 관리하면서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이희나!”
지금부터 할 익숙치 않은 행동에, 속으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희나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부러지지는 않을까 싶은, 얇디 얇은 팔이 다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그리고 힘을 주며 내 쪽으로 잡아당긴 다음, 당황한 희나의 얼굴을 코 앞에 두고 말했다.
“가자. 오늘은 따라오기만 해.”
무심한 듯 시크하게.
속으로 크- 이거 완전 상남자, 같은 생각을 하며 몸을 돌렸는데.
“한연후.”
삐졌을 때를 제외하곤 어지간하면 나를 풀네임으로 부르는 법이 없던 희나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길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개망했다는 것을.
“이런 거,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이희나, 남자친구한테 무슨 말을…”
포기하지 않고 컨셉을 지켜봤지만.
“연후야. 착하지? 응?”
조금 전 내 무심한 듯 시크하게가 같잖아 보일 만큼, 웃는 듯 차가운 분위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희나의 모습에 바로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미안. 그냥 니가 좋아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해봤어…”
“으응, 아니야. 네 마음은 기뻐. 네가 그냥 했을 리는 없고, 나랑 하는 데이트 생각해서 해 준 거잖아?”
“그렇긴 한데…”
“나야말로 예민하게 반응해서 미안해. 그래도 그런 거 연후랑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
타이르듯, 내 손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간다.
“오빠가 여자친구 만날 때 그런 느낌이거든. 그런데 오빠가 조금.. 오빠를 좋아하긴 하지만, 워낙 자주 애인이 바뀌는 편이라.”
아니, 이 형은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진짜로 그러고 다닌단 말야?
하기사. 끌려 다니기 보다는 끌고 다닐 것 같은 타입처럼 보이기는 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그래서 날 생각해준 마음은 기쁘지만, 조금 과하게 말했어. 미안해…”
“아니, 아니야! 미안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내가 미안해, 응?”
도리어 희나가 풀이 죽어버리자, 급히 달래주며 살짝 허리를 굽혀 희나와 눈 높이를 맞췄다.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고, 평소처럼 웃으며 눈을 바라보자 금세 같이 웃어주는 것이, 다행히도 희나의 기분 또한 금방 풀린 듯 싶었다.
그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역시 어울리지 않는 헛짓거리는 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응?”
“갑자기 왜 그런 거야? 누가 가르쳐줬어? 친구?”
누구냐고 말하면 희성이 형이긴 하지만, 내가 조언을 구한 것이니 만큼 여기서 이름을 팔긴 미안했다.
“그냥 혼자 생각한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누구야? 설마 오빠야?”
뭐지, 이 소름돋게 날카로운 촉은.
족집게처럼 파고드는 희나의 물음에 우물쭈물하고 있자, 다시 한 번 풀이 죽어버린다.
“나한텐 말해주기 힘든 거구나…”
“아니…”
“괜찮아.. 말 하기 힘들 수도 있지…”
뭐지? 분명 나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인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한 거지?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 이제 막 만났는데, 이렇게 기분이 다운된 희나를 달래주면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해, 형!
“희성이 형! 희성이 형이야. 어제 데이트 상담을 잠깐 했는데, 이런 스타일로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양심 따위 내버리고 이름을 팔자, 좀 전의 풀이 죽은 모습은 어디 갔는지 희나가 음산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후후…역시 오빠구나? 그래, 너 주위엔 그런 걸 가르쳐 줄 만한 사람이 없어.”
“…그런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확실히 희성이 형 같은 사람은 내 지인 중에선 없던 타입이니. 잘 놀 것 같은 그런.
내 의문에는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희나.
“그래.. .고작 하루이틀만에 연후한테 이상한 물을 들인다 이거지…? 너무 친해지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
형, 진짜 미안해.
—
속으로나마 희성이 형에게 사과하며, 평소와는 다르게 어두운 기운을 풀풀 내뿜는 희나를 이끌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의 데이트 장소는 룸카페.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예뻐서 사진 찍기에도 좋고, 여기에서 파는 크로플이 맛있다고 정평이 난 곳이었다.
솔직히 그런 걸 찾아가서 먹지도 않는 편이고, 그 외의 어필 포인트도 인터넷으로 찾아본 거라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와 보니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 기본 금액만 내고 나면, 사람만 많지 않을 경우 룸 안에서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어도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스터디 카페를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둘이 시간을 보내다가 바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희나도 마음에 드는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근처 장식물 앞에 나를 불러서 둘이 사진을 한 장 찍고 입실.
신발을 벗고 입구 쪽에 팻말을 ‘이용중’으로 바꿔 놓았다. 이러면 밖에서 확인하고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누가 일부러 머리라도 들이밀지 않는 이상 지나가면서 내부를 보기는 힘든 구조였다.
어차피 멀리 나가지도 못할 거라면, 차라리 이런 것이 희나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해서 어제 두시간동안 검색해서 찾은 곳이었는데.
“여기 좋다~”
다행히도 희나의 반응이 매우매우 긍정적이었다.
긍정적이다 못해, 내 옆 자리에서 온 몸을 부비면서 내 허리를 잡고 있는 폼이 근래 들어 최고로 행복해 보였다.
역시 희나는 그냥 이건가? 별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둘이서 시간 보낼 장소를 찾는 게 답이었던 걸까?
어려운 듯 하면서도 굉장히 쉬운 내 여자친구에, 묘하게 마음이 착잡해진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고, 희나에게서 풍겨 오는 은은한 체리향을 느끼며, 나도 살짝 머리를 기울여 희나에게 달라붙는다.
“고마워, 연후야.”
“뭐가?”
“아까 내가 과민반응하긴 했지만, 그래도 날 위해서 많이 생각해줘서. 정말로 너무 기뻐.”
“아냐. 어제도 그렇고 나름 고민해봤는데, 실패한 것 같아서 아쉽네.”
둘만의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에.
포근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하나씩 속마음을 꺼낸다.
“어떤 걸 고민한 거야?”
“음, 뭘 하면 네가 조금 더 기뻐해줄까, 하는 거?”
“흐후후후-”
희나 특유의 푼수 같은 웃음 소리에, 오늘의 할당량을 달성했음을 깨달았다.
“아, 오늘 치 달성?”
“이쁜 말? 합격!”
딱히 다이렉트로 칭찬하는 게 없어도, 내 솔직한 생각이 희나에게 꽂히면 되는 거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은 일일 퀘스트의 합격 라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희나가 웃음을 멈추고는 찬찬히 말을 이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
“응?”
“무언가를 해주려는, 그런 마음은 기쁘지만.. 나는 평소대로만 있어줘도 충분히 좋아.”
“응…”
“네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점에, 이미 행복하니까.”
“알았어.”
그 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까지 못해줬으니까, 그 만큼을 갑자기 만회하려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기는 했다. 이런 마음의 문제는, 게임의 퀘스트처럼 몰아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니까.
다만 내가 생각하고 깨달은 것 또한 잘못된 건 아니었을 거다.
어제오늘의 삽질도, 결과적으로 희나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으니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미 알고 있잖아?”
“뭐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네 행동이 뭔지.”
“음─”
그거야,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잠시 고민하는 듯한 신음성을 내자, 마치 그때처럼 희나의 손이 얼굴 위로 올라간다.
-톡톡
입술을 두드리는 그 모션에, 동물원을 다녀온 지 좀 됐음에도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향수인지 아니면 오늘의 립밤에서 나는 것인지, 희나의 입술에 다가갈수록 체리향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뭔가 키스에서도 그런 맛도 나는 것 같아서, 입을 겹침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희나의 입술을, 혀를 빨아들였다. 당연하게도 타액에서 체리 맛이 나지는 않았지만.
물론 아주 잠깐 사이의 일이었고, 금세 입을 떼 버리자 곧바로 칭얼거려온다.
“연후야아.. 조금 더어..”
얼핏 떼를 쓰는 듯한 그 모습에,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이게 답인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매일 끌어안고 키스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고민했던 건데.
다른 방도를 고민하기에는, 희나가 너무 쉬운 여자친구였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냥 키스 한 번이면 다 풀리고, 아무것도 안 하다가 키스 한 번 해주면 행복해하는.
알고 있긴 했지만, 참 복잡한 마음이다.
결국 희나가 만족할 때까지 키스를 해줬다.
한참 후에 입을 떼고 나서야, 그녀가 홍조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뭔지도, 알고 있지?”
스킨쉽과 애정 표현을 같이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나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말해주었다.
“사랑해, 희나야.”
“참 잘했어요~”
그러자 어린아이에게 칭찬하는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대로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에 내 얼굴 전면에서 그녀의 볼륨감이, 한여름이기에 무척이나 얇은 옷차림 너머로 확연히 느껴졌다.
거기에 아까 전부터 내 코를 찌르던 체리 향이.
그녀의 체취가.
너무나 강렬해서,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멍하니 그저 안겨만 있는 나의 귓가에, 희나가 속삭이듯 읊조린다.
“아까 오면서 봤는데, 여기 옆 방에 아무도 없더라.”
마치 유혹하는 것처럼, 그리 말을 하면서도 나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빼지 않는다.
평생 이대로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내 손이 그녀의 허리 아랫부분으로 향하고 싶어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윽고 나는, 내 머리를 감싸고 있는 희나의 팔을 잡아서 풀어내었다. 머리에 가해지던 힘이 사라지면서, 이 행복한 시간에 끝을 고한 다음.
어딘가 열기가 서려 있는 희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거 알아? 여기 크로플이 진짜 맛있다더라. 내가 가서 사올게.”
“….어?”
뜬금없는 내 말에 당황하는 희나를 두고, 비치 되어 있는 슬리퍼를 신으며 룸을 벗어났다.
내가 진짜.
희나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그저께 희성이 형조차 바다 여행에서의 내 의지에, 결심에 감동해서 나와 금세 친해진 것이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선을 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희나의 가족들 모두가 내 행동을 칭찬해 주고 나를 믿어주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한순간의 유혹에 넘어갈 수는 없었다.
최소한 졸업 전까지는, 강철 같은 의지를 보여주리라.
잠시 후.
내가 크로플과 음료를 들고 돌아왔을 땐, 다행히 희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편히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둘이서 사이좋게 크로플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날도 4시간가량 공부에 집중하고 나서 헤어졌다.
역시 어울리지 않는 짓 하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잘 해주자는 생각과 함께.
—
[ 희성이 형 : 야이 너 이새끼!! 그걸 다 나한테 뒤집어 씌워?! ] [ 한연후 : 나는…속죄할 것이오… ] [ 희성이 형 : 넌 진짜 담에 보면 뒤졌다!! ] [ 한연후 : 아, 그럼 난 이 톡 희나한테 보여줘야지 ] [ 희성이 형 : 와……………..너…하…..] [ 한연후 : ㅎㅎ;; ㅈㅅ..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