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53)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52화(53/213)
Ep. 52
여름이 지나고, 느긋한 일상들을 넘어 어느덧 가을의 막바지.
방학 이후 8월부터 10월까지는 방학 직전과 비슷한 날들을 보냈다.
주에 이틀 정도는 학교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그 외의 날들은 희나에게 도움을 받아 모의고사 중심으로 배우는.
물론 틈틈이 희나와의 데이트 또한 충분히 즐기면서. 게다가 이제는 우리 둘만의 데이트가 아닌, 가끔씩 내 친구들과 섞여서 노는 날도 있었다.
사실 친구들과 만나는 날인데 희나가 난입해와서 얼떨결에 그랬던 거긴 하지만.
“그거 알아? 한연후 중딩 때 교생 실습 온 수학 쌤 있었는데 엄청 좋아했었던 거.”
“미친?! 야! 그 입 다물…”
“그래? 굉장히 흥미롭네. 더 이야기 해줄래?”
“희나야, 저거 다 개수작이야. 나 믿지?”
“믿어. 그래서? 어떤 분이셨는데?”
다만 날 음해하려는 쓰레기 같은 모함이 판쳤기 때문에, 이 녀석들과 희나를 만나게 하는 건 결코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수학 선생님도 뭐 이성적으로 좋아한 게 아니었다. 내가 반장이라 그냥 딴 놈들에 비해 이야기 할 기회가 더 많았고, 그러다가 조금 친해졌을 뿐.
솔직히 이제는 이름이나 얼굴도 가물가물 한데.
아무튼 친구들을 포함해 모였을 땐 보통 이런 느낌이었다. 다같이 어디 놀러 갈만한 정도는 아니었고, 같이 이야기 좀 나누다가 헤어지는.
그 외에도 생각보다 윤정 누나와 같이 만나는 날이 꽤 많았다.
누나가 희나를 좋아하는 것도 있었고, 희나도 누나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서로서로 만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셋이 보거나, 혹은 우리 형까지 껴서 넷이서 만나는 경우가 왕왕 있는 편이었고.
“정후 오빠. 연후 눈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서, 혹시 새벽 두 시 넘어서 게임 하는 거 보이면 저한테 연락 부탁드려도 될까요?”
“보이면 해주지 뭐.”
“감사합니다.”
“안 한다니까.. 나도 그땐 졸려.”
“어? 연후 너 저번 주에 같이 레이드 돌았..”
“아 누나!! 쉿! 그때, 그때만 그랬잖아!”
“연후야?”
“잘못했습니다..”
희나는 내가 게임을 하는 것 자체는 신경 안 쓰지만, 내 시력이 걱정되는지 밤늦게까지 하는 것에는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를 위해 우리 형과도 가끔 톡을 하는 모양이고.
솔직히 주말엔 좀 늦게까지 할 때가 있긴 했지만.
하, 정후 형은 진짜 보는 순간 노빠꾸로 다 알려줄 텐데.
이게 또 걸리면 그냥 ‘하지 말랬지!!’ 하면서 혼내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어쩔 수 없지..’ 하면서 풀이 죽어버리는데, 그걸 보는 순간 그 날은 죄책감으로 몸부림치게 된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새벽 중에는 게임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스파이를 어디까지 심어놨을지 알 수가 없으니.
상태 메세지를 로그아웃으로 해놓고 혼자 pc게임을 즐기는 게 아닌 이상, 온라인 게임은 분명 내 주위 누군가가 접속해 있을 텐데 백퍼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정후 형, 윤정 누나, 희성이 형 이 셋은 백퍼 보는 순간 알려줄 거고, 윤성이나 수황이 놈도 조금 수상했다. 얘들도 희나 연락처를 일단 받기는 해서.
그래도 내가 걱정돼서 그런 거라니 별 수 있나.
아무튼 그런 만남도 자주 가지며, 하루하루가 지나 벌써 11월.
내가 나름 공부 머리도 있었고, 그간 꾸준히 해 온 보람이 있게 성적은 우상향 중이었다.
이 정도면 희나와 같은 대학까지는 어떨지 몰라도, 그럭저럭 서울권에 있는 대학을 노려볼 정도는 된다 싶었다. 지금 당장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 향상이 3학년까지 이어진다면.
그래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며 노력하던 그 사이.
코 앞으로 다가온 빼빼로 데이를 두고 고민하게 되었다.
“희나가 이런 과자같은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도 챙기는 게 좋겠지?”
“말이라고 해? 우리가 빼빼로 먹고 싶어서 그런 날 챙기는 줄 알아!?”
저녁 늦은 시간, 여느 때처럼 우리 집에 놀러 와 있는 윤정 누나에게 내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물어보다가.
“희성이 형한테 물어봐야겠다.”
“걘 그냥 챙겨주라고 하겠지. 그런 애들이 기념일 같은 거 생각보다 잘 챙겨주거든”
“아냐. 의외로 이 형이 희나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잘 판단해 주더라고.”
“그래? 걔 좀 시스콤 같아서 아닐 것 같은데..”
“그건 쌉인정이요”
뒷담 아닌 뒷담을 하면서 희성이 형에게 톡을 남겼다.
[ 한연후 : 형형, 낼 빼빼로 데이인데, 희나한테 빼빼로 챙겨주는 게 좋겠지?]약간 답정너 느낌이긴 했다. 이렇게 물어보면서도 한편으론 주위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적당한 선물용 빼빼로를 찾아보고 있었으니까.
마침 폰을 하고 있었는지 금세 답장이 왔는데.
[ 희성이 형 : 아니, 사지마라 ]희성이 형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적당히 사와, 라고 할 줄 알았는데.
[ 한연후 : 희나가 과자 잘 안 먹으니까? 그래도 기념일인데 챙기는 게.. ]우리가 100일 이런 건 안 챙기더라도, 세상 커플 다같이 즐기는 이런 이벤트는 또 넘어갈 수 없어서.
원래 나는 100일도 딱딱 세서 챙겨주고 싶었는데, 희나가 어차피 매일이 기념일 같으니 괜히 날짜에는 연연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굳이 한다면 2주년부터 신경 쓰자고.
왜 1주년은 건너 뛰냐니까 그때는 고3 이라 패스 하자던데. 다만 내 생각에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냥 2년째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성인이 된 다음이라 그런 건가?
[ 희성이 형 : 너까지 살 필요 없다고. 이미 빼빼로 존나게 많으니까 ] [ 한연후 : 어? 희나가 샀어? ] [ 희성이 형 : ㅇㅇ 걔야 너까지 사온다고 하면 그것도 좋아하긴 하겠지만, 내가 진심으로 하는 충고다. 넌 사지 마라. ] [ 한연후 : 아 왜!!! ] [ 희성이 형 : 이런 ㅆ.. 하지 말라면 하지 좀 마, 시꺄! 소화제는 챙겨 놓고 ] [ 한연후 : ??? ]빼빼로 데이라고 해봐야 그냥 그거 좀 나눠 먹고 끝나는 거잖아. 많다고 해봐야 뭐 얼마나 많겠어.
게다가 사실 빼빼로보단, 마침 주말이라서 같이 놀이공원이나 다녀 올 생각이었다. 기말도 한 달쯤 남았으니 지금 타이밍에 스트레스 좀 풀어주고, 겨울 방학 전까지 열심히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영문을 알 수 없는 희성이 형과의 톡을 중단하고, 일정 물어볼 겸 희나에게 연락을 했다. 아마 좋다고 하겠지만.
[ 한연후 : 똑똑 ] [ 희나 : 무슨 일이야? ]사귄 지 몇 달이나 지난 지금도 희나의 칼답에는 도무지 적응이 안됐다. 나랑 같이 있을 때가 아니면 정말 폰만 바라보고 있는 듯.
[ 한연후 : 주말에 놀이공원 갈래? ] [ 희나 : 갈래!! 내일? 모레? ] [ 한연후 : 나는 아무 때나 상관 없는데. 너 편한 날에. ] [ 희나 : 그럼 모레 가자! 내일은 우리 집에 와 줄래? ] [ 한연후 : ㅇㅋ 그리고 희성이 형한테 들었는데, 혹시 빼빼로 많이 샀어? ] [ 희나 : 내일 빼빼로 데이니까♡ 너도 산 거 있으면 들고 와! 없으면 괜찮구~ ] [ 한연후 : 사실 오늘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 [ 희나 : 그럼 그냥 와ㅎㅎ 우리 집에 많이 있으니까 ] [ 한연후 : ㅇㅋㅇㅋ 그럼 항상 가던 시간 쯤에 갈게. 점심 좀 넘어서 ] [ 희나 : 응♡ 잘자, 사랑해♡♡♡♡♡ ] [ 한연후 : 나도 사랑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희나의 톡을 보며, 희성이 형이 나에게 뭘 경고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한 번 더 톡을 보내 물어봐도 확실하게 대답해 주지도 않고.
윤정 누나한테도 희성이 형과 희나의 톡을 보여주며 물어봤지만.
“놀이공원…나도 같이 가면 안돼..?”
“형이랑 가십쇼.”
조언은 커녕 뻘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딜 데이트에 끼어들려고. 안 그래도 동네에서 희나랑 만나면 매번 난입할 각 재더니만.
“걘 이씨!! 요새 그런덴 잘 안 가준단 말야!! 그리고 또 어디 갔냐고!!”
“그러게, 형 어디 감?”
분명 아까 전까진 근처에 있었는데.
옆에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누나를 두고, 주위를 휙휙 둘러보자 안방에서 걸어 나오는 큰 형이 보였다.
형의 눈이, 내 옆에서 바닥에 뒹굴고 있는 누나를 향하고 있었다.
“쟤 뭐하냐.”
“이 사람이 또 데이트 따라오려고 하는데 처리 좀.”
“몰라아!! 나도 놀이공원 갈래!!”
“놀이공원? 제주도 안 가고?”
“뭐?!”
바닥을 두들기면서 괴성을 지르다가, 형의 말에 벌떡 일어나는 윤정 누나.
“저번에 가고 싶다며. 우리 알바도 없고 지금 갔다 올만 하겠던데.”
“한정후…!!”
“표가 어떻게 될 지 몰라서 말 안 했는데, 취소표 떠서 구했으니까 돌아가서 옷이나 챙겨 놔. 내일 일찍 출발할 거니까.”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연후야! 희나한테 안부 전해주고!!”
“그려, 누나도 내일부터 잘 놀다 와.”
10초 전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며 우당탕탕 집을 나서는 누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 구세주를 보았다.
“타이밍 지렸고.”
“넌, 놀이공원 간다고?”
“어. 시험 전에 한 번 놀고 또 집중해야지.”
“흠.”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준다.
“뭔데?”
“내 카드.”
“형 카드는 갑자기 왜?”
“자유이용권 이걸로 결제하면 할인 많이 되니까 써라.”
“진짜?”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카드 할인이라는 건가?!
“돈은? 형 계좌로 넣어?”
“됐다. 그거로 두 장 해봐야 3,4만원인데. 여친이랑 놀다 와.”
“미친… 감사, 압도적 감사…”
“난 내일 나가서 월요일에 돌아오니까 수고하고.”
“땡큐! 누나랑 잘 놀다 와!”
그러면서 방으로 돌아가는 형의 뒷모습은, 아이x맨 못지 않은 간지가 서려 있었다.
역시 형 밖에 없다! 떼쓰는 누나도 치워주고, 카드도 빌려주고!
마침 빼빼로는 희나가 샀다고 하니, 자유이용권은 형 카드로 하더라도 밥은 내 돈으로 사면 딱일 것 같았다.
며칠 전에 또 윤성이네 분식집 헬프를 이틀간 했더니 돈도 좀 생겼고.
일요일을 위해, 내일은 희나랑 과자나 먹으면서 체력 충전 해야겠네.
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다음 날.
빼빼로 데이인 11월 11일 토요일.
느즈막이 잠에서 깨어나,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희나네 집에 도착한 오후 시간.
이제는 거의 우리 집 마냥 편히 들어가게 된 그녀의 집에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내 눈을 의심했다.
“…..정말 많구나.”
어제 희성이 형이 많다고 말은 해줬어도, 그래봤자 희나가 빼빼로를 많이 사면 뭐 얼마나 샀겠어- 하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책상 위 가득 올려져 있는 갖가지 빼빼로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희나는 문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나를 두고, 바닥에 앉은 채 싱글벙글한 얼굴로 상자를 하나 뜯고 있었다.
그 다음 빼빼로를 꺼내 한 손에 들더니.
“우리 빼빼로 게임 할까?”
그렇게 말하고는 입에 무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왜 어제 희성이 형이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저걸 다 먹을 때까지 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