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63)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62화(63/213)
Ep. 62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변화된 관계로.
크리스마스를 우리 집에서 보낸 만큼, 31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새해맞이는 내가 희나네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 집은 새해라고 딱히 어딜 가거나 무얼 하는 것이 없었으니까. 정후 형도 누나랑 또 1박으로 놀러 갔었고.
문제가 있다면, 희나가 나를 자기 방에서 재우려고 했던 점일까. 아주머니는 그저 웃으셨고, 아저씨는 희나를 말렸으며, 희성이 형은 그런 거 관심 없고 그냥 같이 게임하자고 나를 불렀다.
물론 나야 당연히 희성이 형과의 게임을 선택했고.
“나보다 오빠가 더 좋아? 결혼반지까지 줬으면서!”
“그냥 커플링인데..”
뭐, 별다른 일 없는 날이었다. 형과 게임을 하다가 그 방에서 잠들고, 일어나서는 희나네 가족과 아침을 먹었다. 그 후엔 친척 집에 들려야 한다며 다들 가버렸지만. 그래도 남의 집에서 밥을 먹는데 생각보다 어색함이 적었다.
크리스마스를 우리 집에서 보낸 것을 계기로 서로의 집안이 무척 가까운 사이가 됐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라는 느낌으로.
잘 된 일이긴 하지만, 점점 희나의 리미트가 해제되는 것 같아서.
음.
모르겠다.
—
1월에 있던 내 생일에는, 그야말로 하루 종일 희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혹시 자기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냐고 묻길래, 내가 크리스마스 때부터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메이드 코스프레의 욕망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그 옷을 입은 채로 나에게
‘무엇이든 시켜만 주세요, 주인님.’
같은 대사라도 하는 날에는, 졸업할 때까지고 뭐고 내 강철 같은 인내심이 박살 날 것 같아서 참았다.
결국 선물로는 같이 스포츠 매장에 가서 내 농구화를 사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다만 좀 비싼 걸 골라주길래 한 번 사양했더니.
‘우리 결혼반지, 비싼 거 사줬잖아. 거절하면 나 화낼 거야.’
라고 강하게 밀어붙이기에 얌전히 선물을 받았다. 그보다 자꾸 결혼반지라고 주장하는 터라 매번 식은땀이 흘렀다.
희나 생일만 지나면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설마 생일에 바로 혼인 신고서를 들고 오진 않을 거라 믿었다.
그 실낱같은 믿음을 품은 채로 데이트를 즐겼다. 거리를 거닐고, 같이 케이크를 먹고.
평소에도 많이 챙겨주는데, 이 날은 정말 아기 돌보듯 더 섬세하게 챙겨주는 희나의 손길을 즐기며.
—
2월, 발렌타인 데이 겸 희나의 생일.
며칠 전부터 내가 선물을 사지 못하도록 희나가 선수를 쳤다.
선물 대신 이번에는 자기가 원하는 걸 해달라고. 아직까지도 결혼반지,가 아니라 비싼 커플링을 맞춰준 걸 신경 쓰더라.
그리고 그에 수긍하고 나니, 정말로 혼인 신고서를 가져왔다.
농담 아니고 진짜 놀랐다.
다행히 희나도 진심은 아니었고, 기념 삼아 한 장 작성해서 지니고 싶다는 귀여운 부탁이기에 부담 없이 적어주었다.
결혼할 때는 이런 걸 쓰는구나, 하면서 나름 재미있기도 했고.
그 후에는, 역시 우리 희나답게.
“이거 보여?”
“녹은 초콜릿이네. 이거 퐁당 쇼콜라 속에 있는 그런 거지?”
“비슷할까? 내 발렌타인 데이 선물이야.”
“맛있겠다! 그 막대로 퍼먹으면 되는 거야?”
“아니. 잘 봐.”
그러면서 옆에 있던 나무 막대기로 초콜릿을 한 번 찍더니, 자기의 볼에 묻혔다.
그걸 보는 순간 희나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빼빼로 데이의 추억이 솟아올랐다.
“초콜릿, 먹어 줄 거지?”
배시시 웃고는 혓바닥에도 초코를 묻히며 말하는 내 여자친구님.
생일인 희나의 요망에 따라 강아지처럼 그녀의 얼굴을 할짝댔다.
볼부터 시작해서 코나 입술 등 얼굴 곳곳에 이어, 손가락에 묻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연후야. 이쪽도 부탁해!”
“거기는 좀..”
“오늘 내 말 다 들어준다며~”
어쩐지 난방을 켜고 옷을 편하게 입고 있더라니. 조금 헐렁한 티셔츠 목을 살짝 내리며, 그녀의 곧게 뻗어 있는 쇄골 부분에도 초코를 묻히고는 기대감 섞인 눈으로 나를 기다린다.
“다른 곳은 안될까?”
“흐응, 그럼 선택해 볼래?”
인내와 욕망 사이에서 죽을 만큼 갈등 중인 속마음을 숨기고 거절했다.
그러자 묘한 웃음을 흘린 그녀가 티의 아래쪽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새하얀 배를 조금 드러냈다.
설마.
“여기랑, 내 배랑. 어디가 더 좋아?”
“……..”
“둘 다 해줘도 난 좋은데.”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촉촉한 눈으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여기서 더 빼는 것은 불가능함을 직감했다.
그렇기에, 나는 얌전히 수그리고는 처음 희나가 원했던 위치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할짝
“히얏-”
귀에 들리는 희나의 신음성을 애써 무시하며 미션을 클리어했다.
그렇게 초코희나 먹방을 하며 집 데이트를 했고, 헤어질 즈음에는 희나가 나를 꼭 껴안더니 내 귓가에 한마디를 속삭였다.
“이제, 1년 남은 거 알지?”
당연하지.
나도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아줄래..?
—
3월 14일, 화이트데이.
이때는 이미 개학을 한 터라,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만나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희나가 비싼 사탕 말고 그냥 좋아하는 맛 몇 개만 가져오라고 하길래 챙겨서 갔더니.
-바스락
“이거부터 먹어볼까?”
그렇게 말하고는 내 입에 사탕을 하나 넣어주고, 싱글벙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본다.
잠시 후, 희나가 자신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나, 사탕 선물해 줘.”
희나랑 사귄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저 요망한 발언을 무슨 의미로 내뱉은 건지 바로 눈치챘다.
순간 장난기가 돌아서, 그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새 사탕을 까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자.
“으으응!!”
내 손을 붙잡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그 모습에 잠시 웃음 짓다가, 희나의 뒷머리를 붙잡고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내 입에 있던 사탕을 혀로 밀어 그녀의 입에 넣어주고는 입을 뗐다.
키스도 많이 해봤고, 무언가를 같이 나눠 먹어 본 적도 수없이 많았지만. 이렇게 먹던 것을 입으로 옮겨주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어쩐지 조금 야한 느낌.
“이거 맛있다~ 다음엔 어떤 거 먹을래?”
환히 웃으며 다음 사탕을 고르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더 할까.
종일 그렇게 사탕 키스만 하다가 헤어졌다. 고3이라고 해도 하루쯤 공부 안 할 수도 있지 뭐.
—
그런 기념일들을 제외하고는 정말 공부에 열중하는 나날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희나와 같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덕분에 게임까지 줄여가며 매일 참고서와 문제집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오히려 희나나 가족들이 나를 걱정했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올 여름에는 크리스마스에 이어 두 번째 가족 모임이 생겨버렸다.
우리 가족과, 희나네 가족이 모여서 바닷가에 놀러 가기로 한 것.
사실 처음에는 그냥 남아서 공부를 할 생각이었지만, 희나가 애교를 부리며 이틀만 같이 놀자고 하는데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보다 애초에 희나와 같이 가는 건 줄 알았으면 거절도 안 했을 텐데.
난 그냥 우리 가족 여행인 줄 알았지.
공부에 진심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 같이 모여 바다에 도착하니 공부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연후! 바나나 보트 타자!”
“오, 땡큐 희성이 형! 공짜 보트는 거절할 수 없지!”
“이 새끼 자연스럽게 얻어 타려고 하네. 하, 고삼이라 봐줬다.”
의외인 것은 희성이 형이 이런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한다는 점일까. 분명 여자친구도 있고 따로 여행 계획도 짰었다고 하는데, 이 모임이 확정되자마자 다 때려치우고 이쪽에 꼈다고 한다.
한 번은 희나와 그에 관해서 이야기도 나눴었는데.
“너랑 노는 거 엄청 좋아해서 그래. 마음에 드나 봐.”
“스읍.. 이걸 좋아해야 하나? 약간 소름이…”
“오빠가 아무리 잘해줘도 넘어가면 안 돼. 알았지?”
“아니, 당연하지….”
희나의 소름 끼치는 발언은 차치하고, 나랑 노는 게 재밌다고 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도 희성이 형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고.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라.
아무튼 교류가 늘어나면서 점점 강하게 느끼게 됐다. 이거 완전 친척 만나는 것 같다고.
단순히 나와 희나의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저녁은 어떻게 하실래요? 횟집에서 한 잔..?”
“그럽시다.”
아저씨와 아빠는 얼굴 볼 때마다 술부터 찾으시는 술 친구가 됐다. 주량이랑 안주 입맛이 비슷하시다나.
“정후도 아직은 이른데..”
“어머, 일찍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아~? 옛날에 그런 거 유행했잖아~ 어린신부!”
“나야 별로 신경 안 쓰지만 저쪽에 미안해서 그렇지.”
“그래? 그럼 연후 때는 신경 안 써도 돼~ 희나가 자기가 먹여 살리겠다던데?”
“요리라도 가르쳐야 하나.”
그리고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이제 서로 말도 놓으실 정도다. 나이대도 같으시고, 두 분 다 외향적인 타입이셔서 잘 맞는가 보다. 우리 엄마가 마냥 쿨시크 해 보여도 의외로 나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셔서.
그렇게 서로서로 가까워지니, 이젠 바다 여행도 같이 오게 됐고. 정말 빼도 박도 못할 것 같은 상황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저 멀리 보트를 빌리러 간 희성이 형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희나가 내 팔에 매달려왔다.
공부만 하던 나날 중에 붙잡혀 온 것이기에, 작년의 수영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수영복 새로 사고 싶었는데.”
“에이, 예쁘니까 괜찮아. 작년 생각도 나고.”
그게 벌써 1년 전인가.
희나의 음모(?)로 인해 둘이서 한 방에 묵고, 해변에서 선크림도 발라주었던.
앗차, 떠올려서는 안됐다.
몸이 반응해버리니.
“이번에도 선크림 발라줄 거지?”
“아니.”
“왜에!!”
“내년에 발라줄게. 니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약속한 거다?”
내년을 기대하라는 나의 단호함에 그녀가 순순히 물러섰다.
내년? 하지 말라고 해도 해줄 거다.
얼마 남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버티고 또 버텼는데 고작 반년을 더 기다리지 못한다면 그간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속으로 결심하며, 고개를 돌려 희나를 보았다. 태양빛 아래 반짝이고 있는, 그녀의 새하얗고 매끈한 피부를. 잡티 하나 없이, 굉장히 부드러운.
아, 선크림 정도는 그냥 발라줄까.
—
여름이 지난 후로는 다시금 잡념 없이 공부에만 매진했다. 희나를 따라잡는 건 반쯤 체념한 채로.
내 성적도 굉장히 급성장했지만, 희나의 성적은 천상계 중에서도 탑티어였다. 원래도 잘 했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9월 모고에 전과목에서 두 문제 틀린 거 보고 이건 안되겠다 싶더라.
희나도 진학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 중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괜찮은 상위권 대학에만 들어가면, 정말 장학금을 받으면서 같은 학교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을 볼 것인지.
솔직히 같은 대학에 가서 캠퍼스 커플로 지내는 것에 로망이 있긴 하다. 가능하다면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희나의 가능성을, 미래를 막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내가 지금 목표로 보는 대학들을, ‘목표로 잡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온 것만으로도 희나에게 하루에 108번씩 그렌절을 올려야 할 정도니까.
작년에 희나랑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 나 자신도 놀라웠다.
오죽하면 엄마가 희나한테 과외비를 챙겨주려고 했을까.
물론 희나는.
“아니에요, 어머님. 남편ㅇ..아니 남자친구 공부 도와주는 건데 그러실 필요 없어요.”
“너 일부러 그렇게 틀리는 거지?”
“말실수라니까.”
그런 식으로 능청스럽게 넘어갔지만.
그래서 따로 돈을 주지는 않았으나, 엄마에게 학업용 카드를 하나 받게 되었다. 나나 희나가 공부에 필요한 걸 살 때는 무조건 그거로 긁으라고.
이것까지는 과연 희나도 거절할 수 없었는지 나름 편하게 사용했었다.
그렇게 희나의,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서.
데이트도, 친구들과 노는 것도 최소한으로 줄이며 공부에 열중해오길 어느덧 1년.
드디어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