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64)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63화(64/213)
Ep. 63
“뭐하냐고? 공부하지 뭐하겠냐. 내일이 수능이거든.”
─아~ 난 그런 거 안 봐서 모릅니다만?
“그래. 분식집에 뼈를 묻어라.”
─시발…
윤성이와 통화를 하며 적당히 문제집을 넘기고 있었다. 말은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수능 전날까지 너무 머리를 혹사시키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보는 둥 마는 둥.
다른 애들은 그간 공부를 열심히 했건 안 했건, 오늘은 컨디션을 조절하며 다들 내일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이 녀석만큼은 그 모든 굴레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이미 취직처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헬게이트와 다를 바 없는.
“와, 근데 어떻게 거기서 일 할 생각을 하냐. 살 수 있겠음?”
─그러지 마.. 나도 벌써 막막하다고.. 내년 3월부터 니들은 대학생이지만 나는 분식집 정직원이다..
“그래도 월급 많이 주신다 했다며.
─월급 많이 받는다고 버틸 곳이면 우리가 아직도 알바를 구하고 있지는 않겠지.
“인정”
그래도 저기서 알바했던 나날도 나름 추억이었다. 고3이 된 이후로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도와주러 간 적이 없었으니까. 각 잡고 공부하고 있으니 윤성이도 나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나 대신 김수황이 두어번 갔다고 들었는데.
─이희나는? 오늘은 안 만나냐?
“톡은 하고 있는데,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시험 잘 보고 만나기로 했지.
─걔랑 같은 대학 가능?
“불가능”
─단호한 거 보게. 수능 대박 나도 불가능?”
“로또급으로 잘 보면 가능할지도?”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고 성적이 평균 2였으니 찍는 거 다 맞고 존나 잘 보면 비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 내가 평균 2등급이라니. 희나에게는 몇 번을 감사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설령 이번 수능을 망치더라도 희나를 만나기 전 내 성적보다 수백배는 더 잘 나올 것이다.
고2 봄여름에는 잘 봐야 3등급 한 두개 나올까 말까에, 대부분 4등급 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지금은 조금 망친다 싶으면 평균 2.5 정도 되려나?
─그래도 인서울은 하겠네.
“가다가 뭔 일 생겨서 시험을 못 보지 않는 이상은 그럴 듯”
─시험 보는 도중에 거짓말처럼 배가 아프기 시작하면?
“이 새끼 전화 걸어서 악담을 퍼붓고 있네.”
─넝담~ 그럼 내일은 못 볼 거고. 이번 주 주말쯤에 한 번 모일래?
“그러던가. 희나한테는 말해둘게.”
─잘 말해라, 진짜. 니 데리고 갈 때 걔 얼굴이 어떤지 모르지?
“희나 모함하지 마라.”
─모함이 아니라… 아니다. 암튼 내일 시험 잘 봐라.
“오냐.”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기고, 펼쳐 놓기만 했던 참고서도 그냥 덮어버렸다. 내일이 드디어 수능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도저히 공부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동안 노력했던 것이 결과로 나오는 날이니까.
최근 일,이 주간은 윤정 누나조차도 우리 집에 들르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다. 예민할 테니 당분간은 자주 안 오겠다고.
사실 별로 상관없었다. 생각보다 내 신경 줄이 굵은 건지, 공부하는 중에 누가 돌아다니든 근처에서 이야기를 하든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배려해서 그러는 거니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뭐하니까.
생각해 보면 나도 형들 수험 기간이었을 때마다 집에선 조용히 놀았던 것 같다.
-드르르릉
다시금 울리는 폰의 진동에, 누가 걸었는지 확인할 것도 없이 바로 통화를 눌렀다. 분명 희나일 것이다.
공부를 위해서긴 하지만 요 몇 달간 거의 매일같이 보다가, 오늘만은 서로의 집에서 쉬기로 한 만큼 톡만으로는 부족해져 전화를 걸어줄 거라고 예상했다.
사실 아까 전도 당연히 희나인 줄 알았는데, 정윤성이 예상치 못하게 톡이 아닌 전화를 걸었던 거고.
“여보세요?”
─연후야~ 컨디션은 좀 어때?”
“괜찮지. 근데 공부할 기분은 안 나더라.”
─오늘은 공부 하지 말고 푹 쉬기만 해. 근데 통화 길게 하던데, 누구였어?
“아아~ 윤성이가 수능 끝나고 주말쯤에 같이 놀자길래.”
─그래? 나랑은?
“걔들 안 보는 날이 너랑 노는 날이지 뭐.
─좋아, 이쁜 말 합격!
희나와의 연애 사업은 여전히 평탄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더 가까이, 자연스레 서로를 대하고. 더 편해지고.
그럼에도 그녀의 꽃이 핀 듯한 환한 웃음을 볼 때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마. 내일 시험이라고 평소보다 일찍 자려고 하지도 말고. 항상 자던 시간에. 알았지?
“네, 엄마.”
─내일 버스나 택시보다는 전철을 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막힐 수도 있고, 혹시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학교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봐!
“알았어, 알았어. 너는? 컨디션 괜찮아?”
─응. 최고야.
“다행이네. 내일 시험 끝나고 뭐할까? 저번에 보고 싶다던 영화 볼래?”
─으응, 내일은 집에서 같이 쉬자.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줄래?”
“오케이~”
고작 1년 반.
벌써 1년 반.
희나와 함께 한 시간이 그만큼이나 됐다. 그녀는 여전히 예쁘고, 머리는 더 좋아졌으며, 아직도 나에게 너무나 잘해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 것이 또 1년 반이라는 시간이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나면 곧 내가, 희나가 기다리던 날이 온다.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상황에서도,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그 한 가지 변명만으로 모든 것을 미뤘지만.
이제 곧인 것이다.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책임질 수 있는 그런 나이가.
─그럼 잘 자!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 꼭 하고!
“너도 잘 자. 사랑해~”
─나도 사랑해! 꿈에 찾아갈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로에 한 잔 준비해 놔?”
─부탁해~ 굿나잇! 쪽!
그녀의 키스 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직 잘 시간까지는 텀이 좀 있어서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몸을 풀었다. 연이어 전화를 오래 했더니 몸이 다 뻐근하네.
팔과 목을 돌리면서 터덜터덜 거실로 나가자, 얌전히 티비를 보고 있는 부모님과 형들, 그리고 윤정 누나가 보였다.
최근에 잘 안 오더니 오늘은 또 있네. 조용해서 있는 줄도 몰랐다.
“통화 끝났니?”
“응. 엄마, 내일 싸주는 도시락 김밥 맞지?”
“그걸로 해 달라며. 다른 거 먹고 싶어?”
“아니, 그냥 확인해 본 거야.”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았다. 최근 일주일간은 일부러 점심에 김밥을 먹기도 했고.
확인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다들 조금 부담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후 화이팅!! 내일 시험 잘 봐!!”
“시험 잘 봐라.”
“망하면 나랑 게임 작업장이나 돌리자. 수입 낭낭하다.”
누나와 정후 형, 선후 형이 차례로 응원의 한마디를 해준다. 선후 형은 좀 의심스럽긴 하지만, 너무 부담 갖지 말라는 거겠지.
“아빠가 데려다 줄까?”
“괜찮아. 괜히 탔다가 멀미하면 망해.”
“흠, 전철로 간다고?”
“원래 버스 탈까 했는데, 희나가 혹시 모르니까 전철 타라고 해서.”
“그래. 희나 말 잘 들어. 전철이 좋겠다.”
다들 그렇지만, 아빠가 특히 희나를 너무 좋아한다. 이런 며느리감이 또 없다나. 그야 나도 희나만한 여자친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잠시 몸 풀면서 물 한잔 하려고 나왔다가 가족들의 응원을 받고 방으로 돌아왔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최근까지 공부도 잘 됐고, 마지막으로 본 모의고사 성적도 좋았다. 가족들도, 내 여자친구도 언제나 내 힘이 되어주었다.
적당한 정도의, 기분 좋은 긴장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거 내일 완전 대박 날 각이 날카롭게 섰다.
—
수능 당일.
어젯밤의 컨디션이 그대로 이어져 아침부터 상태가 절호조였다. 아까 전에 모닝콜을 걸어준 희나도 컨디션이 무척 좋다고 했으니, 오늘 나만 시험을 잘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았다.
집에서 나갈 시간이 되자, 선후 형을 제외한 가족들이 일찍부터 일어나 현관 앞에 모여 있었다.
“아들 화이팅!”
“땡큐, 아빠!”
“열심히 해라. 혹시 잘 안돼도 너무 맘 상하지 말고.”
“아, 당연하지. 망하면 선후 형이랑 게임 작업장 돌리러 간다. 형도 콜?”
“하… 진짜 한선후. 연후한테 쓸데없는 말이나 하고… 열심히 했으니까 분명 잘 볼 거야! 힘내!”
“고마워, 누나.”
“슬슬 출발해. 늦는 것보다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그래야지. 김밥 잘 먹을게, 엄마.”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험표나 필기구 등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빼먹은 것이 있나 체크하고 집을 나섰다.
수능 날이다 보니 나 같은 수험생을 제외하곤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날씨도 화창했다.
[ 희나 : 나 이제 학교 들어갈 거라 전원 꺼 놓을 게! 끝나고 봐! 연후 화이팅! 사랑해♡ ]가는 도중에도 희나와 톡을 나누고 있었으나, 나보다도 일찍 움직였는지 금세 톡이 끊기고 말았다. 그녀의 마지막 톡을 확인하면서 전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점점 강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다스렸다. 운이 좋게도 전철이 바로 와준 덕분에, 출발한 지 20분도 안 돼서 학교가 있는 역에 도착했다.
전철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수험생들조차 얼마 보이지 않았다. 희나가 무척 빨리 도착했을 뿐이지 나도 나름 일찍 움직였으니까.
오히려 앞 쪽 계단 초입 즈음에는, 조금 무게가 있어 보이는 가방을 들고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고 계시는 할머니가 한 분 있었다.
“아이고.. 오늘따라 왜 이리 힘이 드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을 정도로 한탄하며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신다. 그걸 보고 계단 위까지 만이라도 도와드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좋은 일 한 번 하고 나면 오늘의 운이 조금 더 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게다가 조금이나마 있던 다른 수험생들은 이미 멀찍이 위로 올라갔고, 주위에 따로 도와드릴 사람도 없어 보였으니까.
“…어?”
그러나, 그쪽으로 향하며 몇 계단을 채 오르기도 전에. 서서히 몸이 기울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우 모션을 보는 듯 천천히, 휘청 거리며 뒤로 넘어간다.
어떡하지? 받쳐드려야 하나?
그러다가 어디 잘못되기라도 하면?
조금만 다쳐도 시험 볼 때 지장이 많을지도 몰라.
근데 저렇게 넘어지시면 많이 위험할 텐데.
어떻게 해야─
그 찰나의 순간, 무수히 많은 생각과 고민이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내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재빨리 몸을 날려 오른팔을 쭉 뻗었다. 이미 반쯤 넘어간 할머니의 어깨를 잡고, 가능한 한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내 몸을 쿠션 삼아서.
-쾅!
“윽─!!!
그대로 같이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
-찌릿
“으, 아─”
동시에 오른쪽 팔꿈치에 엄청난 격통을 느꼈다. 한 순간 올라온 그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그런 와중에, 하나의 외침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 시발! 수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