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66)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65화(66/213)
Ep. 65
병실에 울려 퍼진 큰 목소리에, 놀라서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 누나를 돌려보내고.
여전히 내 품에서 엉엉 울고 있는 희나를 안고 토닥여 주었다. 중간에 희성이 형도 잠깐 들어 왔었는데 눈치껏 이따 다시 오겠다며 나가더라.
한동안 내게 안긴 채로 그리 있다가, 조금 진정되었는지 슬며시 얼굴을 뗀다. 올 때부터 머리는 산발에, 눈물 자국도 덕지덕지, 눈가는 새빨갛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보다 예쁜, 내 여자친구.
“조금 진정됐어?”
“히끅.. 응..”
“옳지. 문 바로 옆이 화장실인데, 잠깐 다녀올래?”
“응…금방 올게.”
한 번 울고 나니 감정이 많이 가라앉았는지, 그제서야 창피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나 보다. 내게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손으로 가리며, 병실에 딸려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얼굴이나 머리를 정리하고 나와서야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남았는지, 내 옆에 딱 붙어 앉아서.
“할머니… 도와드리다 그런 거라며?”
“응. 머리로는 고민 했는데, 몸은 이미 움직였더라고.”
“…….”
내 대답에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내 손을 꼭 붙잡는다. 마치 어디에도 가지 말라는 것처럼, 힘 주어.
그 상태로 잠시 말이 없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전철 타라고 해서….”
“이희나.”
그녀의 말을 끊었다. 걱정도, 불안도, 나에게 화를 내는 것도 괜찮지만, 저런 말 만큼은 해서는 안됐다. 특히 저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은.
오늘 처음으로 희나가 나에게 화난 얼굴을 보여준 것처럼, 나도 조금 성난 듯한 느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잘못한 것도 없고, 그 할머니가 나빴던 것도 아니야. 우연찮게 내가 거기 있었고, 마침 도울 수 있었으니 잘 된 거야. 알았지?”
“..그러네. 미안해.”
“미안하긴. 다 걱정해줘서 그런 거잖아.”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고, 그저 운 좋게 사람을 구할 기회를 얻은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았다. 무엇보다 내 정신 건강에.
“시험은 잘 봤어?”
“응…”
“잘했어. 고생 많았고. 칭찬해줄게.”
화장실에서 한 번 정리를 하고 나왔지만, 여전히 희나의 눈가는 붉었고 무척이나 풀이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내 옷깃을 잡은 채 놓을 기미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쉬지 않고 말을 꺼냈다. 대화를 하면서 그녀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어질 수 있도록.
“어차피 올해에 같은 대학은 힘들었을 거고, 이참에 더 공부해서 너랑 같은 곳에 지원해봐야지.”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럴 필요 없어.”
힘 없는 그녀의 대답에, 기운을 복돋아 준다는 게 쉽지 않음이 느껴진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시간도 널널하고. 아, 이거 팔만 좀 다친 거라 돌아다니는 건 문제 없거든? 이번 주에 데이트 할까?”
축 처져 있던 희나의 고개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로 치솟으며 언성이 높아졌다.
“안돼! 다 나을 때까지 절대 어디 가려고 하지 마!”
“에이, 괜찮다니까.”
“내가 화내는 거 보고 싶어? 절대 안돼!”
나름 희나 기분을 풀어줄 필살기를 꺼낸 건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냥 거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내보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녀가 잠시 도끼눈을 뜬 채 나를 노려보다가, 결심했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 며칠 지낸다고 했지?”
“아마도? 물리 치료 같은 것도 다 받게 해준다고 해서.”
“그럼 내가 같이 있으면서 도와줄게. 어머님한테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그러면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폰을 들어 올린다. 나는 그 말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같이 지낸다니? 면회 시간 끝나면 나가야 하잖아.”
아까 전이나 지금이나 오후 시간 정도는 눈치껏 봐주고 있었지만, 그것도 8시까지가 마지노선이라고 들었다. 그 시간 이후로는 유도리 있게 넘어가 주는 것도 없을 텐데.
“상주 보호자 한 명까지는 여기서 자고 가도 괜찮아.”
“그런 게 있어?”
“응.”
아니, 그런 건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생전 처음 알게 된 토막 지식에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희나가 똑똑하고 여러모로 총명한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런 건 왜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잠깐, 학교는? 내일은 가야 하잖아. 나야 입원했다지만.”
“아침에 잠깐 들렸다가 다시 올 거야. 어차피 점수 확인하고 나면 하는 거 없을 테니까.”
역시 희나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녀의 막힘없는 대답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멍청히 앉아 있는 나를 두고, 희나는 그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아마 아주머니와 우리 엄마에게 각각.
한동안 그렇게 통화를 하다가, 이야기가 다 됐는지 상쾌해진 얼굴로 다시 내 옆에 딱 붙어왔다. 이렇게라도 기분이 좀 풀렸다면 다행이긴 한데.
잠시 미소 짓다가도 내 팔 쪽에 시선이 닿으면 또 눈썹이 추욱 내려가 버리고. 오늘따라 표정 변화가 아주 극적이었다.
아무튼 통화를 끝낸 그 순간부터, 병원에서의 내 자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무엇 하나 하려고 할 때마다 희나가 딱 달라붙어서 도와주려고 했으니까. 움직일 일이 많지 않긴 했지만, 자세 바꾸려고 몸 한 번 뒤척이는 것도 바로 팔을 잡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저녁 식사로 받은 병원식도 혼자서 못 먹게 했다.
“자, 연후야. 아~”
“혼자 먹을 수 있다니까. 게다가 오른팔도 어떻게 잘 움직이면 쓸 수 있…”
“한연후. 그거 당장 안 내려놔?”
“죄송합니다.”
물론 오른팔은 깁스 때문에 굉장히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왼손으로도 밥 먹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데.
그렇다고 내 멋대로 움직이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를 내버린다. 내 앞에서 찡그리는 일이 거의 없던 희나였는데, 오늘은 아주 마음껏 보여주고 있었다.
돌봐주는 건 고마운데,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야, 멀쩡해 보이니 나도 그만 간다. 몸조리 잘하고.”
“어! 와줘서 고마워!”
뒤늦게 다시 들어온 희성이 형은, 그런 꼴을 잠시 지켜보다가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로 그냥 돌아가버렸다.
평소 이상으로 희나가 극성이었으니 이해는 간다만. 설마 여기서 지내는 동안 계속 그러려는 건 아니겠지.
—
“연후야, 엄마 왔다.”
“아, 엄마!! 마침 잘 왔어!! 제발 희나 좀 말려봐!”
내 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던 엄마가 병실로 돌아오자,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부담을 팍팍 느끼게 하는 희나의 지극정성 돌봄 서비스가 결국 도를 넘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와준다니까!”
“화장실에서 뭘 도와줘!! 나 혼자 갈 수 있어!”
“한 손 못 쓰면 힘들잖아!”
“한 손으로 충분하다니까?!”
먹는 거, 마시는 거, 쉬는 거. 전부 옆에서 해주다 못해 이제는 화장실까지 같이 가려고 하는 희나를, 무조건 말려야 했다.
내가 무슨 양 팔이 다 박살 난 것도 아니고, 볼일 보는 거야 왼손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다행히 병상 앞에서 희나와 대치하고 있는 중에 엄마가 돌아와 준 것이다.
“그래, 연후 옷은 여기 다 넣어 놨고. 희나는 이거 받으렴.”
허나 엄마는 내 도움 요청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웃고는 희나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출입증이에요?”
“잘 아네. 그럼 연후 좀 부탁할게. 힘들면 연락하고.”
“네, 어머님. 저만 믿어주세요.”
“안돼! 엄마! 가지 마!!”
내 외침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옷 가방과 출입증을 넘긴 다음 그대로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짜 간 거야?
아무리 희나를 믿고 있다지만 너무 그냥 가버리는 거 아니야?! 아들이 입원했는데! 몇 시간 전까지 감동의 입원 씬이 있었는데!
원망스러운 눈으로 문 쪽을 바라봤으나, 그런다고 떠난 엄마가 돌아올 리는 만무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혼자서 희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눈에 힘을 꽉 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이런 일로 저런 결의에 찬 대장군 같은 모습을 봐야 하는 걸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일단 물어나 보자. 어떻게 도와주려고?”
“그야 당연히.. 바, 바지 벗는 것부터..내가 벗겨줄 테니까…”
내 물음에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는다. 말로 하는 것만으로도 이러면서 벗기긴 뭘 벗겨.
당당히 도와주겠다 말했던 것 치고는, 굉장히 귀여운 그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희나야, 바지는 한 손으로도 벗을 수 있거든?”
심지어 환자복이라 벗기도 더 쉬웠다.
“그, 그래도 서서 볼일 보려면!”
“그것도 한 손으로 돼…”
앉아서 봐도 되고. 내가 왜 여자친구와 이런 낯뜨거운 대화를 하고 있는 거냐.
거기까지 말을 듣고 나서야 희나가 포기한 듯 시선을 돌렸다.
“치..”
왜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걸까. 여기서 내가 못 이긴 척 다 맡겼어야 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첫 거사를 치루지도 못했는데 그런 식으로 보여주는 건 좀 아니잖아.
이 좁은 병실에서 희나와 이런 일들로 하나하나 이야기 하고 있으니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희나야, 우리 규칙을 정하자.”
“규칙?”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조금 과한 것 같아. 대부분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안돼. 그러다가 상처 덧나면 어떡하려고? 싫어. 거절할게.”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고 휙 고개를 돌려 버린다. 이런 반응을 할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부상이 심하진 않지만 어쨌든 사고로 입원한 거고, 그 때문에 울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했으니까.
희나의 마음을 구슬리기 위해선 강력한 것이 필요했다.
“잘 들어봐.”
어텐션 플리즈.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자.”
“무슨 연습?”
뜬금없는 내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솔직히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건 희나를 부채질 하는 거라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간 조만간 억지로라도 화장실까지 따라올 것 같아서.
“나중에 말야.”
“응.”
“우리가 동거… 그니까 같이 살게 되면, 규칙 같은 게 필요할 거 아냐? 예를 들어 가사를 분담하던가 그런 느낌처럼.”
“어…?”
“그러니까 그 예행 연습으로 지금 이 병실에서의 규칙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말 끝을 흐리며 슬쩍 눈치를 봤다. 희나라면 동거라는 그 단어에 분명 뛸 뜻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그녀의 반응이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소란스레 기뻐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희나의 모습을 보자 이거 실수했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마침 병실도 원룸 느낌이 나는데, 우리 같이 생각해볼까?”
“…그래.”
진짜 실수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