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7)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6화(7/213)
Ep. 6
집에 도착해 멍하니 세면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바로 누워버렸다. 너무 많은 일이 있던 하루였기에,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웃으며 넘겼던 신천지 썰이, 사실 신천지가 아니라 진짜 고백이었던 것. 오늘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한 번 고백 받은 것.
여자친구가, 생긴 것.
믿기지 않게도 꿈이 아니었고 바로 조금 전까지도 열심히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덕분에 평소보다 늦어져서 좀 전에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 올 정도였다.
“……”
시발 지금 팽이 돌리면 안 멈추는 거 아니야? 알고 보니 인셉션 중이라던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조차 ‘리얼루다가 그런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
“사귀기로 했으면서 이제서야 물어보는 게 정말 미안한데..”
“응.”
“너 이름이 뭐야?”
“…아, 그렇네.”
본인도 생각지 못했던 지 아차, 하는 얼굴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귀여웠지만.
어디보자.
“이- 희나. 희나.. 성화여고 맞구나.”
“후후, 응. 맞아. 근데 조금만 더 불러줄래?”
“뭘?”
“내 이름.”
“…희나야?”
“응! 연후야!”
세상에나. 부처님 알라님 하느님.
부끄러운 와중에 기쁜 이 오묘한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양 볼에 손을 올리고 있는 희나의 모습에 속으로나마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었다.
얘가 진짜 내 여자친구라고?
환희로 가득찬 마음을 당장에라도 하울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억눌렀다. 너무 칠칠맞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는 허세를 한껏 담아 계속 대화를 했다.
“어? 우리집에서 그렇게 멀진 않네?”
“버스타고 세 정거장쯤? 금방이야.”
“이따가 바래다줄게.”
“그럼 정류장까지만 부탁해도 될까?”
“당연하지. 아, 근데 이 근처에 무슨 일로 왔던 거야?”
가끔 내 물음에 오묘한 얼굴을 하긴 했지만.
“으응, 별 거 아니었어. 그리고 며칠 전부턴 그냥 너 보러 왔던 거고.”
“아하, 그렇구나?”
“연후 너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내가 원래 웃는 상이라”
“응~ 그건 나도 알지만… 정말 그것 뿐?”
“미안. 솔직히 기뻤어.”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형이 두 분이나? 형제끼린 많이 싸운다던데.”
“음… 한 재작년까진 게임 때문에 가끔 싸우긴 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어. 형들이랑 평소에도 생각보다 잘 놀고.”
“나도 오빠랑 가끔 투닥거리긴 해도 싸우진 않으니까. 그런 느낌일까?”
“비슷할지도?”
“나중에 한 번 인사 드려야지.”
“….어, 그러게.”
희나의 마음이.
“저기서 타면 바로 가는 거 있어.”
“한 10분이면 오겠네.”
“응…연후야, 오늘 고마웠어.”
“아니, 내가 바보같이 착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고맙지.”
“으응, 아니야. 그냥, 내가 다 고마워.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
“사진, 찍으면 안될까? 같이.”
“그거 오히려 내가 무릎 꿇고 부탁하면 네가 해주는 거 아니야??”
“후흣, 타임 세일이야! 지금이라면 무릎 안 꿇어도 해줄게!”
“감사합니다, 선생님…”
너무나 다이렉트로 전해져 와서.
내 쪽이 부끄러워 질 정도였다.
특히나 사진을 찍기 위해 위해 내 바로 옆에 희나가 찰싹 달라붙어서 포즈를 취할 땐, 희나의 향기가, 숨소리가, 고개만 돌리면 바로 닿을 정도로 가까이 느껴져서.
부디 사진에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 찍히지 않길 기도했다.
-찰칵
“시간만 있었으면 훨씬 더 많이 찍는 건데..”
“….다음 번에 같이 또 찍자.”
“응, 그래야지! 아까 찍어 준 번호… 이제 톡에 떴다. 이쪽으로 사진 보내줄게?”
“응.”
“한 장뿐이라 아쉽긴 한데… 사진 잘 나왔다.”
“그러게. 개, 아니 엄청 잘 찍네?”
“연후가 멋있어서 그래! 이거 프로필 사진으로 해둘게.”
“그건 아닌… 그럼 나도.”
나도 프로필 사진으로 해둬야…
[ 김수황 : 한연 이 십새기 왜 아직도 접속 안함? 집 가까워서 한 게임 돌리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 [ 정윤성 : ㅋㅋㅋㅋ 알고보니 신천지가 개쌉소리였고 ㄹㅇ 고백 받아서 지금 데이트 하는 중? ] [ 김지윤 : 씨발 목을 쳐라! ] [ 이현우 : 그새끼 사지가 왜 4개인지 알고 있냐? 4일에 걸쳐서 분질러 버릴 수 있기 때문임. ] [ 김수황 : 야자 10시팀 빼면 다 접속했쥬? 이새끼만 안들어오쥬? 딱걸렸쥬? ] [ 정윤성 : 한연후 형한테 컴 자리 뺏겼나본데…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새끼 지네 형한테 자리 뺏겼으면 폰을 안 볼 리가 없음. 근데 컴도 안하고 폰도 안본다? 킹리적 갓심 들어간다. ] [ 신의현 : 휴.. 애들아, 연후 너무 의심하지 말자. 설마 연후가 우리한테 말도 없이 그럴 리가 없잖아? ] [ 김수황 : ??? : 헤으응, 연후야.. 너 집에 안가도 돼? 친구들이랑 게임한다며..십새끼 : 그 모쏠찐따새끼들은 지들끼리 놀라고 해ㅋ 난 여친이랑 놀거니까ㅎㅎ ] [ 정윤성 : 소년탐정 김수황 ㄷㄷ 할아버지 대신 내 명예 걸어줌. ] [ 정윤성 : 어? 숫자 줄었다. 이거 봤네? 한연후씨, 톡 보셨네요? 왜 안 오십니까? 혹시 ㄹㅇ입니까? 씨발새-끼야 ]
폰에서 톡을 켜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매일같이 상주하던 톡방에 들어가자, 눈에 보이는 게 이거였다.
이런 존나 날카로운 새끼들 같으니라고. 이걸 어쩐다. 늦은 거야 걍 똥싸다 늦었다고 하면 되는데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
내가 폰을 보면서 잠시 멈춰서 있자, 희나가 내 옷자락을 잡으며 슬며시 다가왔다.
“연후야, 너도 프로필로 해 줄 거지…?”
“아, 당연하지. 잠깐 친구들 톡 보느라!”
그래, 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귀엽고 예쁜데 이 십새끼들이 무슨 상관이야? 오히려 내가 세상 천지에 외치면서 자랑하고 싶다.
내 프로필 사진에, 내친김에 배경 화면까지 희나와의 투샷으로 설정해놓고 바로 폰을 덮었다.
단톡방 알림도 껐다.
무서웠다.
“버스 벌써 왔네.”
“다음 번,이 아니라 내일은 내가 그쪽으로 갈게. 계속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이. 전혀! 그래도 너 야자하고 그러면 너무 늦잖아.”
“너도 매일 늦게 왔었으니까..”
“아냐아냐. 사귀기 전이었으니까 그랬지. 너도 공부하느라 힘들고 그럴 텐데, 모레 토요일에 보자.”
“음..”
야자 시간에 공부 안하고 적당히 놀면서 시간 때우니까 그냥 째고 만나러 간다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이겠지?
“그럼 토요일에 볼래?”
“응! 아, 그럼 먼저 가볼게. 여기까지 바래다줘서 고마워.”
“고맙긴. 조심해서 들어가~”
“응~ 연후 너도!”
—
다시 떠올려봐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순간들.
하지만 폰에 전원을 키면.
딱 붙어서 희나와 같이 찍은 사진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후흐흐흐흫”
그걸 보고 있으니 차오르는 기쁨을 주체 못하며 요상한 웃음소리가 끝없이 새어 나온다.
이걸 어떻게 참을까.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이 기분을.
내 장담컨데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이보다 더 행복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깟 로또 1등이 대수야?
이 애가 내 여친인데!
-띠링
그런 와중에 알람 소리에 재빨리 톡을 킨다.
분명 희나일 거라 생각하며 화면을 보았다.
[ 희나 : 응, 지금 씻고 나왔어~ ] [ 롤배그겜방허접들 : 이 개 씨 발 새 끼 를 찾 습 니 다 ! ! ! 300+ ]위에는 희망이, 밑에는 절망이 보였다. 저건 차마 못 열어보겠다.
열 명도 없는 방인데 어떻게 벌써 저렇게 쌓였나 싶다. 질투에 찬 짐승들 같으니라고.
사소한 건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바로 희나와의 톡을 이어간다.
[ 한연후 : 나도 지금 막 나왔어ㅎㅎ 보통 몇 시 쯤에 자? ] [ 희나 : 12시 즈음? 보통 이 시간에 잠깐 공부하고 자~ ]와오. 성실하네.
[ 한연후 : ㄷㄷ.. 공부 잘 할 것만 같다.. ] [ 희나 : 음, 조금? ] [ 한연후 : 나도 열심히 해야겠네 ] [ 희나 : 화이팅! 다음에 내가 공부도 가르쳐 줄게! ] [ 한연후 : 진짜? 와.. 희나 선생님.. ] [ 희나 : ^_^ ! 토요일엔 어디 갈까? ] [ 한연후 : 그러게.. 음.. ] [ 희나 : 급하게 약속 잡은 거니까 너무 억지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같이 돌아다닐래? ] [ 한연후 : 나야 좋지! ] [ 희나 : 그럼 그렇게 하자ㅎㅎ 시간은 점심 쯤으로, 밖에서 같이 점심 먹을까? ] [ 한연후 : 너만 괜찮으면? ] [ 희나 : 그럼 일찍 보자! 일단 11시쯤으로 생각해두고 정확한 시간은 내일 저녁에 다시 얘기할까? ] [ 한연후 : 넵 ]톡하면서 느끼는 건데 희나가 굉장히 주도적이었다. 내가 뭔가 생각하거나 고민할 틈도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상대를 리드하는 타입인가 싶었다.
남자로써 내가 확실하게 이끌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희나 쪽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주는 게 솔직히 너무 좋았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 특히.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희나와 톡을 하면서 보냈다. 놀랍도록 화제가 끊이질 않게 대화를 이끌어주는 희나에게 감탄하면서.
[ 희나 : 그럼 잘 자 ! ] [ 한연후 : 희나 너도~ (고양이가 잠드는 이모티콘) ] [ 희나 : ㅎㅎ 귀여워~ (강아지가 방긋 웃는 이모티콘) ] [ 한연후 : (고양이가 심쿵사해서 쓰러지는 이모티콘) ]잘 자라는 인사 뒤에도 이모티콘으로 한 10분가량은 더 주고 받은 뒤에야 내일을 기약하며 톡이 끊겼다.
이것이, 연애?
이게 여자친구인가?
이 좋은 걸 나는 이제서야 안 거야?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표현이, 만화에서나 나오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내 착각이었다.
세상은 아름다웠다.
내일도 희나와 톡을 주고 받을 생각에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도 입꼬리만은 올라가 있었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다시 시작된 희나와의 톡에 행복했던 아침이 지옥으로 곤두박질 친 것은 교실에 도착하고 난 후부터였다.
“하하, 어서오렴 연후야. 여기 네 자리를 마련해놨어.”
“저, 선생님들? 우리 문명인답게 대화를 하는 것이─”
“우리 연후, 지랄하지 말고 어서 이리로 오지 않을래?”
그렇게 말하며 내 친구였다고 생각한 악마놈이 가리킨 곳은 교실 한구석 바닥이었다.
…레고가 깔린.
하, 망할.
담임쌤 오는 시간에 맞춰서 아슬아슬하게 등교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