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76)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75화(76/213)
Ep. 75
새해 첫날 이후로도 술자리는 꾸준히 있었다. 이제는 정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많이 마시는 일은 없었지만. 희나랑도 약속했다. 자기 있을 때 빼고는 절대로 많이 마시지 않기로.
그렇게 아직 같이 마셔보지 못한 친구들과도 마셨고, 수황이와 윤성이를 비롯한 친구들과도 다시 한번 자리를 가졌다. 이번엔 희나 없이.
다행히 이 녀석들은 내 만취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놓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만나기만 하면 그날의 추태를 술 안주 마냥 입에 올리고 있었다.
개열받네.
심지어 막상 멀쩡한 상태에서 다시 술을 마셔보니, 내가 우리 중에선 제일 잘 마시는 편이었다. 그때는 새벽에 너무 퍼마셔서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지.
한 보름 정도를 그런 식으로 술에 빠져 지냈다. 그래도 재수를 대비해서 매일 조금씩이나마 공부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기나긴 수험 생활의 고통에서 해방된 친구들을 따라, 여러 모임에 끼는 날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중학생 때의 친구였던 주현이도 한 번 만났고. 만나러 가기 전에 도끼눈을 뜬 희나를 달래줘야 하긴 했지만.
“강주현? 누구야? 네 친구들 중에 그런 이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여자애? 중학생 때 친구야? 아니면 네가 잠깐 사귀었다던 걔?”
“아니, 중딩 때 같이 놀던 남자앤데… 그리고 예전에 그건 사귄 거 아니라니까… 하, 정윤성 이놈은 쓸데없는 얘길 해서…”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러 갔었다며?”
“그거 말곤 아무것도 안 했어. 진짜로. 손 잡고 키스하고 이런 건 너랑만 했다니까. 화 풀어.”
“화 안 났거든? 딱히 의심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 본 거야.”
“……”
눈썹을 아래로 향하게 해놓고는 아니라고 말해도 말이지.
나도 당시에는 이 정도면 사귀고 있는 건가?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거 말고는 뭐 한 것도 없었다. 그마저도 반 갈라지니 소원해졌고. 그걸 가지고 사귀었다고 하기에는 좀.
특히나 지금 희나와 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연애 경험의 하나로 치기에는 너무 뭣도 아닌 것들이었다. 희나 만나기 전까지 그냥 모쏠이었구나, 나.
아무튼 그런 사소한 문제도 가끔 생기긴 했지만, 성인이 됐음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이 같이 단기 알바를 하자는 얘기도 꺼냈다. 돈 좀 벌어서 가까운 일본으로 해외 여행을 가보자는 계획이었는데.
“여행? 응, 괜찮아. 비록 나는 첫 해외 여행을 연후 너랑 가고 싶었지만, 그런 나를 두고 네가 가고 싶다면 상관 없어. 다녀와.”
희나가 밝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해준 덕에 바로 포기했다. 어디 한 번 가볼 테면 가 보던가, 라는 압박이 팍팍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나도 희나도 해외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중학생 때 가족들과 싸이판에 다녀온 적이 있었고, 희나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홍콩에 여행을 갔었다고 들었다.
아마 가족이 포함된 것이 아닌, 우리끼리 가는 여행이라는 의미에서 말한 건가 싶었다. 무조건 자기랑 먼저 가야 한다는 걸까.
“그럼 나중에 둘이 일본에 온천 여행 갈까? 저번에 짤방으로 봤었는데 진짜 좋아 보이더라. 아, 디즈니 랜드도 좀 끌리는데.”
“갈래! 지금 당장도 갈 수 있어!”
“지금 당장은 우리가 돈이 없지…”
정말 당장이라도 출발 할 것처럼 방방뛰는 희나를 진정시켰다. 최근에 하도 술을 많이 마시고 다녔더니 이제 용돈도 거의 없는 마당에 해외는 무슨.
부모님께 한 번만 보내 달라고 하면 아마 보내주실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이제 스물도 되었고, 올해엔 재수까지 해야 하는 마당에 철없이 그런 소릴 꺼내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말한 것 마냥 알바까지 해서 가는 것도 좀 그렇고. 못해도 한 달은 해야 여행 비용이 나올 텐데 그때 쯤이면 희나도 바쁠 것이다. 입학 준비도 해야 하니.
기념비적인 우리의 첫 해외 여행은, 가더라도 더 마음 편한 상황에서 가고 싶었다. 내 재수도 끝내고 말이지.
게다가 이제 둘이 여행을 가게 되면 정말 그간 참아왔던 모든 것을 해금하면서 지낼 텐데, 먼저 거사도 치뤄둬야 하고.
그날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으니까.
—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다. 희나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같이 있다가, 오늘은 볼일이 있다는 말에 만나지 않았다. 아저씨와 외출을 한다는데 조금 전부터 톡도 끊긴 걸 봐서는 바쁜 것 같았다.
그렇게 오후 2시 즈음까지는 공부를 했고, 그 후로는 간만에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작년부터 방학 시즌에는 항상 희나랑 붙어 있다 보니 게임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가끔 붙잡고 있을 때면 평소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자주 못해서 그런가.
희나가 같이 있을 때도 게임을 하기는 한다. 다만 할 때마다 항상, 희나가 내 무릎 위에 앉아 품속에 파고들기 때문에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거기서 가만히라도 있으면 모를까, 게임 화면에 몰입하고 있으면 자꾸 목에 키스를 하는 통에.
본인 말로는 내가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도 좋다는데, 집중하게 해주질 않으니.
아무튼 방에서 혼자 놀고 있는 중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오늘은 윤정 누나도 없었으니 아마 엄마일 것이다. 둘 말고는 노크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들어와~”
내 말에 문이 열리면서, 역시나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레 내 침대 위에 앉고는 나를 바라본다.
“왜?”
“너 재수할 거면 학원 보내줘?”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낸다. 괜히 사람 불안하게 하는 서두를 생략하는 우리 엄마가 참 좋았다. 내용은 좀 뜬금없었지만. 아니지, 나 재수하는 거야 다 알고 있는데 그렇게 뜬금없는 건 아닌가.
조금 진지한 이야기인 것 같기에 하던 게임을 멈췄다. 그리고 의자를 돌려 나도 엄마를 보았다.
“아직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근데 작년에 하듯이 하면 굳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희나가 계속 가르쳐준대?”
“응. 작년만큼 붙어서 가르쳐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희나 덕분에 공부 습관이 들어서.”
무려 오늘도 이 한가한 시간에 게임보다 공부에 먼저 손이 갔을 정도였다. 내 여자친구에겐 정말 천 번을 감사해도 모자를 정도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엄마가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하는 것보단 혼자 있는 게 집중은 잘 되고?”
“별 차이 없긴 한데… 뭐, 그렇긴 하지.”
“그럼, 너 밥은 지을 줄 알아?”
“뭐요? 밥?”
학원 얘기보다 한 삼백 배는 더 뜬금없는 화제가 나와버렸다. 갑자기 웬 밥?
“거야 당연히 할 줄 알지. 나 가끔 도와준 적도 있었잖아. 내 김치찌개 맛 몰라?”
“희나보다 잘하긴 하더라.”
“아…”
엄마의 말에 안타까운 한숨이 나왔다. 희나의 요리 솜씨는 참 신기했다. 분명 레시피대로 만들고, 그래서 맛도 나쁘진 않은데 항상 뭔가 미묘했다.
저번엔 엄마와 함께 우리 집 저녁 식사를 차려 준 적도 있었는데, 엄마가 평가하길 사람이 못하는 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인간미가 있다나.
그때 희나 표정이 어땠는지는 차마 표현할 수가 없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님이 요리도 못하는 며느리라 생각하시면 어쩌지?’ 하면서 거의 울려고 했었다.
나름 연습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요리만큼은 참 나아지질 않더라. 어찌 보면 개성이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별로인.
“흐음…”
“갑자기 그런 건 왜? 나 독립해?”
솔직히 자취에 대한 로망과 꿈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1년을 더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마당에 그냥 집에서 노력하는 게 낫지 않을까. 굳이 불필요한 지출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고, 혼자서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상념이 끝났는지 다시금 말을 꺼냈다.
“너 요새 공부 종일 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게임하는 거 보니까.”
“응. 벌써부터 그렇게 빡세게 하면 못 버틸 거라던데.”
“희나가 그래?”
“어.”
“잘됐네. 오늘부터 엄마랑 같이 점심이랑 저녁 만들자.”
“이게 뭔 소리여.”
—
놀랍게도 엄마의 요리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밥 먹을 시간이 가까워 지자 정말 나를 데리고 나와서 하나하나 가르쳐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하루 종일 공부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희나가 요리 못하는데 나중에 결혼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맨날 배달 음식 시킬 거야?”
그런 소릴 들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재수생이긴 해도 아까 말했다시피 계속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게임하는 시간 줄이고 엄마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나쁠 건 없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엄마가 가정한 ‘결혼이라도 하면’이라는 것은 상당히 훗날의 일일 터인데, 뭔가 단기 집중 강습을 해주는 것 마냥 빠르게 내 머릿속에 때려 넣어주고 있었다.
기본적인 밥이랑 찌개 정도는 얼추 할 줄 아니, 식사 준비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과 도구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찬들은 엄마나 사돈댁이 챙겨줄 테니까 이런 건 나중에 흥미 생기면 네가 알아보고.”
“어…”
“그래도 밥이랑 찌개는 할 줄 알아서 다행이네. 오늘부터 찌개 종류만 늘리자.”
“그…응. 알았어.”
그렇게 완성된 오늘 저녁의 메인 메뉴는, 엄마의 훈수를 바탕으로 내가 만든 된장 찌개였다. 고기도 몇 점 넣어서 내 취향에도 맞춘.
“된장찌개 맛있는데?”
“그러게. 한연후 니가 만들었다고? 걍 공부 때려치우고 이쪽으로 진로 잡아라.”
정후 형은 외출 중이라 없었지만, 아빠와 선후 형의 평가는 굉장히 좋았다. 전에도 가끔 만들었을 때 나쁜 평가는 없었는데, 엄마의 훈수까지 더해지니 꽤 맛있긴 했다. 내가 손맛이 좀 있나 보다.
시작이 좀 어이없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은 좋았다. 이런 맛에 엄마들이 요리하는 건가 싶었다.
나도 앞으로 맛있으면 맛있다고 얘기라도 해줘야지.
그리고 다음 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어제 된장 찌개가 호평을 좀 받았더니 요리 의욕이 순간 급상승했다. 그래서 점심에 엄마가 부르기도 전에 나와서 같이 상을 차렸다.
물론 어제의 된장 찌개가 남아 있었기에 또 비슷한 걸 하진 않았지만, 그 외에 평소에 무난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계란 말이에 도전해봤다.
그러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계란 말이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은근히 어렵기도 했고.
덕분에 처음 하나는 아주 개박살을 내놨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럭저럭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맛이야, 뭐. 계란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맛이 없을 수가 있나, 이게. 희나도 계란 후라이는 맛있게 할 것이다.
그렇게.
오늘 점심에는 선후 형과 돌아온 정후 형의 칭찬을 받으며 한창 기분 좋던 그때.
희나가 집으로 찾아 왔다.
혼자가 아니라, 오늘 출근을 하지 않으셨는지 차를 끌고 오신 아저씨와 함께.
오늘 들린다고는 했지만, 아저씨까지 오실 줄은 몰랐기에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연후야! 집 보러 가자~”
“…….??”
집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