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79)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78화(79/213)
Ep. 78
“작년에 공부할 때도 네가 스트레스 풀 겸 게임 두,세 시간 하는 건 괜찮다고 했잖아. 근데 친구들도 대학생활 하다 보면 같이 겜 하기 힘들 텐데, 혼자 하기도 심심하니 그냥 그 시간에 알바나 좀 해볼까 했지.”
“…….”
“사실 나도 형한테 할만한 곳 있냐고 물어봐 놓고 깜빡 잊고 있었거든. 말 안 해줘서 미안.”
사과까지 섞어서 말을 했음에도, 여전히 희나는 묵묵부답이었다. 딱히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찡그린 것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얼굴이다.
얼어붙은 듯한 그 분위기에, 나도 더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녀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침묵을 깨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부는 괜찮겠어?”
“아마도? 알바를 겜 대신 한다고 생각하면 문제 없지 않을까…? 물론 게임 하는 것보다야 좀 더 피곤하긴 하겠지만, 정윤성네 분식집 급이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아서…”
근데 만약 그 급이면 사죄하고 짧은 기간만 일을 할 생각이다. 공부하면서 겸사겸사 하려는 거지, 알바가 메인이 되면 안되니까. 그래서 일하는 시간도 주 3일, 일 다섯 시간 아래로만 생각했던 거고.
주말 알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그때 알바를 해 버리면 희나와 시간이 너무 틀어져 버릴 것 같아서였다. 재수하면서 너무 이것저것 챙기려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난 희나의 솔루션을 맹신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하루 종일 공부 붙잡는다고 되는 타입이 아니었다. 딱 하는 시간에만 집중하고, 그 외에는 게임을 하던 데이트를 하던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능률이 좋았다.
희나가 말하길 사람이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어차피 한계가 있다고 했으니까.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작정 긴 시간 앉아 있어봐야 정작 제대로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내 경우 효과는 이미 성적 향상으로 증명 됐고.
“어디서 하는 건데?”
“희성이 형이 말해준 곳은 너 자취방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라는데. 우리 집에서도 전철이나 버스 타고 한 20분쯤 걸릴 거라고…”
“그 근처면… 혹시 오빠가 일했던 곳?”
“알아?”
“가본 적 있어. 근데 거긴…”
잠시 곰곰히 생각을 하던 희나의 미간이, 한 층 더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애원하듯 말을 꺼낸다.
“알바, 꼭 해야 돼…?”
“나 알바 하는 게 싫어?”
“그건 아닌데… 아니, 싫을 지도.”
그러면서도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는 것을 망설인다. 내 공부가 걱정돼서 그러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희나도 대학 생활 때문에 평일에는 바쁠 거고, 그런 시간에 잠깐 하는 건데.
어째서 이러는 건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희나를 껴안아 주며 살살 달래보았다.
“어차피 잠깐 하는 건데, 왜. 응? 왜 그러는 건지 말해 봐.”
희나의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려는 건 아니지만, 그간 희나가 해 준 조언들은 전부 나에게 도움이 됐다. 그래서 납득이 가는 이유라면 그냥 안 해도 상관 없었다. 나도 여름 즈음까지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니까. 그 이후부턴 공부에 더 집중하고.
하지만 희나가 계속 시선을 피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에 양 손으로 희나의 볼을 감싸고, 그녀와 눈을 마주보고는 연신 입술을 맞대주면서 물어보았다.
“왜 그러는 건지 말해주라.”
“우으…”
키스를 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하자, 그제서야 살며시 입을 열어준다.
“말하기 창피한데…”
“창피할 게 뭐가 있어. 응?”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너는 좀 그래도 돼. 제발 하고 싶은 거 전부 말 좀 해줘. 다 들어줄게.”
“…대학은 중간중간에 비는 시간이 많잖아. 공강도 있고. 시간표 짜기 나름이긴 하지만…”
“음…자세히는 모르지만, 대충 그렇게 알고 있긴 한데.”
내 대학 관련 지식은, 만화책이나 드라마에서 본 거나 주위에서 말하는 걸 주워들은 정도라.
“시간이 비면, 만나러 가고 싶었는데 너 알바하면 만나기 힘들잖아…”
“나 일해 봐야 주 3일에 하루 5시간인데?”
“그치만, 우리 집에 있으면 그 시간에도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너 자취방 얘기하는 거야?”
“응!”
“거기에 자주 갈 거긴 하지만, 어차피 나도 우리 집에서 다닐 텐데.”
동거는 앞으로 상황 좀 지켜보자며? 왜 마치 같이 살고 있는 것을 가정한 듯한 이야기가 되는 걸까. 내 물음에 들릴 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중얼거린다.
“…어차피, 그러다 보면 같이 살 테니까…”
“어? 뭐라고?”
“아니! 하여튼! 시간 비면 너 공부하는 거 보러 가려고 했는데, 일하고 있으면 보는 시간 더 줄어들잖아!”
“수목금에도 아주 못 보는 것도 아닐 거고, 토일월화에 보는 걸로도 부족해?”
“부족해! 분명 외로울 거야!”
“와우.”
본인이 그렇다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요새는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얼굴을 보고 있긴 했지만. 재작년이나 작년 학교 다닐 땐 어떻게 버틴 걸까. 내가 혼자 공부하거나 친구들 본다고 안 봤던 날들은.
“그럼 보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싫은 거야?”
“그것도 있구…”
“또 있어?”
매일 보고 싶다는 거야 평소의 희나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유였다. 근데 그 외에도 또 있단 말이야? 진짜 너무 궁금했다.
희나는 잠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돼서…”
“뭐가 걱정 돼? 내 성적이?”
“그 카페, 점장님부터 알바까지…대부분 여자란 말야…그래서 오빠가 엄청 좋아했거든…”
“…….”
아직 이름도 모르는, 가보지도 못한 카페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직원,알바들이 대부분 여자였구나. 개인적으론 남자가 많은 편이 더 편한데.
아무튼 내 생각엔 쓸데 없는 걱정이지만, 희나 입장에선 불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대로 나도 희나가 남자뿐인 곳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좀 그렇긴 했을 테니까.
“그런 거 아무 상관 없는 거 알지? 나한테 너 뿐인 거?”
“알아…그래도…”
“네가 정 불안하면 다른 곳 알아봐도 상관 없어. 아니면 사실 안 해도 괜찮고.”
내가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데이트 할 돈도 벌고 스트레스도 풀 겸 하려는 거지, 굳이 희나를 불안하게 하면서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돈이야 용돈을 받는 게 있었고, 스트레스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도 괜찮았다.
뭐, 용돈 만으로 데이트 하려면 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도 돈 안 쓰면서 둘이 잘만 붙어 다녔으니까.
지금 내 1순위는 어디까지나 희나였다.
“하지 말까?”
“…아니야.”
“걱정된다며. 나 진짜 안 해도 상관 없어. 네가 더 중요해.”
그 말에 희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금세 다시 축 처진다.
“그냥… 고집 부려서 미안해. 알바 해도 돼.”
“음…”
말로는 허락 해줘도 조금 석연찮았다. 이걸 어쩐다.
“대신.”
어떻게 더 풀어줘야 할까 고민하는데, 희나가 내 손을 붙잡았다.
“오늘은 조금 아쉽게 지나갔지만.”
“응.”
조금 전의 일을 말하는 거겠지? 순간 나도 모르게 끝까지 진도 뺄 뻔 했던.
“우리, 내 생일 때 같이 있기로 했으니까.”
희나의 눈이 활활 타오른다.
“그날에, 내가 더 이상 불안해 하지 않도록 만들어 줘.”
양 손으로 내 손을 꼬옥 잡은 채,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에게.
“넵.”
그 말 외엔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시간 이후로, 오늘 희나가 내 곁에서 떨어진 순간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팔짱을 끼고 붙어 있거나, 다시 나에게 게임을 시키고는 무릎 위에 앉아서 나를 껴안고 있거나. 여전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하고서.
다만 그 이유는 내 알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마 희성이 형에게 가진 불만인 것 같았다.
“…용서 못해. 전부터 항상 그랬어. 오늘도 하필 그 타이밍에 전화를 해? 죽었어, 진짜…”
나 들으라고 말하는 모양새는 아니었고, 그저 억누르지 못한 불만과 분노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타이밍이 미치긴 했지. 그래도 나름 좋은 일로 전화 준 건데.
“게다가 알바 자리를 줘도 왜 하필 거기를… 집에 가면 봐.”
“…….”
희나에겐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멍청하게 거기서 ‘희성이 형한테 너무 그러지 마, 나 때문에 전화해 준 거잖아.’ 같은 소리를 꺼낼 생각은 없었다.
얌전히 희나의 분노가 조금이나마 가라 앉을 수 있도록, 천천히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혼자서 분을 터뜨리다가도, 내 가슴에 얼굴을 붙인 채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덕분에 게임을 하기도 힘들어서, 한 손으로 희성이 형에게 톡을 하나 보내주었다.
[ 한연후 : 형 오늘 집에 안 들어가는 게 좋을 듯; ]—
다음 날, 면접을 대비해서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셔츠에 니트 맨투맨, 그 위에 코트를 걸치고 나갈 준비를 마친다. 내 알바 건에 대해서는, 부모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어제 희나를 배웅해주고, 집으로 돌아와 희성이 형에게 정확한 장소나 일정을 듣고 난 다음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해봤었다.
“알바? 그래. 이제 스무 살인데 동의서도 필요 없잖아? 하고 싶으면 해.”
“괜찮아?”
“네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그러다가 적성 찾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 엄마 말이 맞다. 너무 대학에 연연하지 않아도 돼. 물론 나중을 생각했을 때 가는 게 분명 너에게 좋겠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음, 안 갈 생각은 아닌데.”
“그것도 좋고. 아직 스물이야. 해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번 해 보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워.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그 할머니가 한라봉 세트 보내주셨더라. 냉장고에 넣어 놨으니 이따가 먹든가.”
“진짜? 지금 먹어야지!”
항상 부모님의 적당한 무관심이 방임 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들어보면 그저 우리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 주셨던 것 같다. 나보다 조금 앞서가는 형들도, 엇나감 없이 각자 잘 생활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항상 수능 날의 내 선택을 스스로 잘 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시는 것도 있고. 나도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떤 후회나 착잡함도 없었다.
얼마 전, 그 아저씨가 결혼하신 날. 아빠에게 문자로 할머니와 함께 환히 웃고 있는 가족사진을 보내주셨었다. 거듭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보고 어떻게 그날의 선택을 후회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을 고작 한 발자국 천천히 걸어가게 되었을 뿐, 그때의 나를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