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80)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79화(80/213)
Ep. 79
잠시 떠올랐던 어제의 기억을 지우며 집을 나섰다. 어떻게 보면 내 첫 알바일 수도 있는 카페를 향해서.
물론 윤성이네 집에서 알바를 자주 했었지만, 그건 알바이면서도 뭔가 친구를 도와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돈도 많이 받고 빡신 일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윤성이도 같이 있고, 조금 실수를 해도 헬프의 개념으로 간 거라 대충 넘어가줬으니까.
이번엔 형식상이긴 해도 정식으로 면접도 보고, 근로 계약서도 작성한 다음 일을 하는 것이라 느낌이 많이 달랐다.
설마 그 형식상의 면접을 개같이 봐서 떨어지진 않겠지? 내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해서? 같은 걱정이 약간 들었다.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집에서 출발하고 대충 25분 정도 지났을까, 오늘따라 전철 타이밍이 안 맞아서 생각보단 조금 늦게 카페 근처의 역에 도착했다. 출근하게 되면 이런 것도 감안해서 움직여야겠네.
점심 직후라 그런지, 한산한 전철역을 스윽 둘러보며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왔냐? 어디야.
“나 지금 전철에서 내렸어. 위로 올라가?”
─올라와라. 2번 출구다…
희성이 형의 목소리가 피곤한 듯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어제 잠을 설쳤나? 아무튼 전화를 끊고 서둘러서 걸음을 옮겼다. 지금도 상당히 여유롭게 움직인 거긴 하지만, 괜히 늦거나 딱 맞춰 가는 것보단 일찍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역에서 도보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고 나니, 바로 근처에 희성이 형이 보였다. 근데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그 옆에서, 희나가 굉장히 무감정한 얼굴로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본 적이 없던 그 표정이, 어딘가 무서워서 다가가려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는데, 희나 쪽에서 먼저 나를 발견했다. 동시에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게 핀다.
“연후야아~”
-와락
어제 그토록 달라붙어 있었음에도 부족했는지, 나에게 안겨와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나는 그녀를 살짝 안아주면서 희성이 형을 바라보았다.
“희나도 같이 왔네? 형은 왜 이리 피곤해 보여?”
“하… 니 알바 하나 소개해 주다가 내가 참…”
“아…”
“앞으로 너한텐 전화도 안 할란다…”
아무래도 어제 일 때문에 희나한테 많이도 시달렸나보다. 다크서클 가득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것을 보면. 마음 속으로 형에게 애도를 표하며 희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같이 가려고?”
“나는 거기 근처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을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 끝나면 데이트하자!”
“알았어. 그럼 바로 갈까? 일찍 가서 나쁠 거 없잖아.”
“그래…따라와라.”
마치 심한 숙취라도 하는 것 마냥, 형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다. 그 모습에 조금 걱정이 됐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희나의 분위기를 보면 그때까지도 뭐라뭐라 한 것 같아서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희나의 기분이 우선이라.
그리고 어제 전화 건 타이밍이 좀 미치긴 했지. 마치 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절묘했으니까.
형의 뒤를 따라 역에서부터 한 5분 정도를 걸으니,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내가 그간 주위에서 봤었던 흔한 프렌차이즈 카페는 아니었다.
이름은 [ cafe MELA ]
프렌차이즈가 아니다보니 근처에 없기도 했고, 만약 있었어도 조금 비쌀 것 같아서 아마 와보지는 않았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전체적으로 모던하고 깔끔하면서, 슬쩍 보이는 자잘한 인테리어도 예쁘다 보니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느낌. 당장 안으로 보이는 손님들도 대부분 여자였다. 아니면 커플이거나.
생각해보니 근처에 있었으면 희나랑 같이 와봤으려나. 희나네 집 근처에 자주 들리는 본거지 같은 카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카페 순회를 하기도 하니까.
도착한 카페 앞에서, 긴장된 마음에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잠깐 주변 둘러보고 올게. 끝나면 전화해 줘.”
희나는 힘내라며 내 볼에 키스를 해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같이 안 들어가나 싶었지만, 내 면접인데 여자친구까지 따라오는 것도 모양새가 좀 이상하긴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속이 편해진 듯한 희성이 형과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오세요~ 어? 희성 오빠다! ”
들어가자마자 직원 한 분과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형에게 아는 척을 하는, 웨이브 진 긴 갈색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모자를 쓴 여자 직원 분.
“오냐. 누나는 안에 있어?”
“점장 언니? 사무실에 있지! 근데 뒤에 그분이 혹시? 우리 카페 뉴페이스?”
“아, 안녕하세요. 한연후 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데 이 여직원분은, 단순히 인사를 받아주는 게 아니라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갑자기 정자세를 취하더니, 양 손을 배에 올리고.
“안녕하세요.”
90도로 나에게 인사를 박았다. 그 모습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
똑같이 90도로 인사를 돌려주었다. 이게 뭐지? 하고 있는데 옆에서 희성이 형의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새로 올 때마다 그 짓 좀 하지 마라. 뭐냐, 대체.”
“왜~ 이거 한 번이면 사람이 대충 감이 온다니까? 바로 반응해 주는 거 보니 느낌 좋다! 잘 할 것 같아!”
“됐다. 걍 들어가자.”
“앗! 아직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는데!”
“나중에 해라.”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나는 조금 뻘쭘하게 그 뒤를 따랐다. 꽁트 같은 지금의 대화에 카페 손님 몇몇이 이 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조금 창피하기도 했고.
형을 따라 들어가는 도중, 카운터 쪽에 있는 또 다른 여자분과는 말 없이 서로 살짝 고개를 까딱이며 지나쳤다.
-달칵
카운터 옆 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로 꽤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벽 쪽에 놓여져 있는 컴퓨터 앞에, 금색 단발이 눈에 확 들어오는, 흰색 셔츠에 앞치마를 메고 있는 여성분이 보였다. 이 쪽을 돌아보는 얼굴이 꽤 이지적이신. 아마 점장님이겠지?
“어라, 일찍 왔네?”
“피크 타임 끝날 즈음이라 걍 바로 왔지. 야, 인사해라. 여기 점장님이시다.”
“안녕하세요! 한연후라고 합니다!”
“넵, 반가워요. 저는 차 린이에요.”
의자를 돌려, 싱긋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그녀. 생각보다 굉장히 젊은 분이라 속으로 조금 놀랐다. 점장님이시라길래 나는 적어도 30대 중후반에서 40대쯤 되는 분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그럼 바로 면접을 볼까~ 이쪽 자리에 앉아주세요. 희성이는 잠깐 밖에 있고.”
“아메 한 잔 마셔도 돼?”
“응, 3천원.”
“와, 개치사하네.”
“지아가 중간 마감 중인데, 그거 도와주면 공짜!”
“걍 안 마실란다…”
그 대화를 끝으로 희성이 형이 문을 닫고 나가자, 사무실 안에는 나와 점장님만 남게 되었다. 나는 조금 전 점장님이 가리킨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이력서를 꺼냈다.
점장님이 말없이 그 종이를 받아 들고, 내용을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 어디보자. 희성이한테 어느정도 얘기는 들었거든요? 연후 씨가 올해 스무살에, 재수 하면서 일 하신다고?”
“네. 구하시는 파트 근무 시간이 딱 제가 원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음, 원래는 더 진지하게 이런저런 질문도 하는데 희성이 소개이기도 하고, 사실 이런 파트타임 알바는 어차피 복불복이라~ 여러가지 물어보는 게 크게 의미가 없거든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윤성이네 분식집만 봐도, 면접 땐 그렇게 괜찮은 사람일 수가 없었는데 막상 출근하고 보니 며칠 뒤에 도주하는 게 허다하다고 하던가.
“게다가 연후 씨 재수하게 된 이유도 들어서 사람 됨됨이도 얼추 알 것 같고.”
“하하…”
창피한 일은 아니지만, 묘하게 칭찬해주는 듯한 점장님의 어조에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믿고 바로 채용할게요. 우리 근무 시간은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수목금 다섯 시부터 열 시까지인데, 바뀔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일단은 그 시간인데, 시프트에 따라 한 번씩 점심 때 출근하게 될 수도 있어요. 혹시 괜찮아요?”
“점심 때면 정확히 몇 시죠?”
“피크 타임이라고 해서 가장 바쁜 시간대인데, 연후 씨가 나오게 되면 시간은 11시부터 4시 반까지에요. 물론 일에 조금 익숙해진 다음에 부를 거고.”
“일하는 시간이 5시간 반인가요?”
“아, 희성이가 그걸 말 안 해줬구나. 마감 때도 5시부터 10시 반까지에요. 그 중 30분은 식사 시간이고.”
“아하~ 네, 괜찮습니다!”
“대답 씩씩해서 좋네요. 듣던 대로 인상도 좋고. 인기 많겠어요?”
다행히, 내가 은근히 걱정했던 것처럼 경직된 분위기의 면접이 아니어서 마음이 많이 편했다. 희성이 형 말마따나 거의 형식적인 면접이었고, 점장님도 잡담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주신 덕분에. 이렇게 립서비스도 해주시면서.
“남고에 다녀서 인기는 딱히…”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음, 정확한 출근 일이나 시급은 여기 근로 계약서에 적힌 대로고… 따로 궁금한 거 있어요?”
점장님이 내미신 근로 계약서를 눈으로 훑어 보았다. 대부분은 이미 희성이 형에게 들은 터라 한 번 재확인하는 느낌으로.
“제가 지금은 보건증 기간이 만료됐는데, 출근일까지만 드리면 될까요?”
“넵, 그때 주시면 돼요. 해본 적 있는 거 같으니 알겠지만, 검사받고 보건증 나올 때까지 한 일주일 걸리니까 참고하시구요.”
“그거 외엔 지금 당장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이거 작성하면서 다시 한번 설명해 줄게요. 여기부터─”
점장님과 근로 계약서 내용을 확인하며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이름이나 주소 등을 작성한 후 사인까지 끝마쳤다. 총 두 장을 써서 한 장은 점장님이, 남은 한 장은 내가 챙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폰 번호 교환도 했고.
“2월 말에 다시 연락 할게요. 까먹으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념으로 음료나 한 잔 마시러 갈까요?”
그러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 밖으로 향하는 점장님. 진짜 뭣도 없이 금방 끝나버렸다. 20분도 안 걸린 것 같은데. 애초에 그냥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의미로 부른 듯한 느낌이었다. 겸사겸사 근로 계약서도 작성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카운터에서 다른 직원들이랑 잡담을 하고 있는 희성이 형이 보였다.
“뭐야, 벌써 끝났어?”
“응. 연후 씨, 마시고 싶은 거 있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탁드립니다.”
사실 달달하거나 과일 음료 같은 것을 좋아하지만, 공짜로 받는데 그런 걸 부탁하기는 좀. 받아서 희나랑 같이 마셔야지.
“지아야, 아메 한 잔만~ 아, 혹시 인사 했어요? 오늘은 헬프로 나와주긴 했는데, 3월부터 연후 씨 마감 때 출근하면 매일 볼 거에요. 마감조 에이스!”
아까 서로 고갯짓으로 인사하긴 했지만, 다시금 크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한연후라고 합니다.”
“저는 유지아에요. 잘 부탁해요.”
“나나! 나는 이채아! 안녕하세요! 잘 부탁해! 요로시꾸! 23살입니다! 지아랑 동갑!”
“아, 이 친구는 기억할 필요 없어요. 아마 한 달에 한 번 볼까말까 할 거에요.”
“너무해~”
아까 들어올 때 나와 90도로 인사를 나눈 게 이채아 씨. 그리고 앞으로 나와 같이 근무하시게 될 분이 유지아 씨. 굉장히 차분해 보이는 누나였다. 채아 씨처럼 엄청 친근해 보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말을 하면서도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 것이 상냥할 것 같았다.
덕분에 속으로 조금 안도했다. 같이 근무하게 될 분이 대하기 어려운 타입은 아니신 것 같아서.
아무튼 지금 계신 분들이랑은 인사도 다 나눴고, 어차피 출근 일도 꽤 멀었으니 커피만 받고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근데 움직이기 직전에, 희성이 형이 음료 한 잔을 더 요청했다.
“아, 누나. 나 한 잔만 더 받아가도 돼?”
“두 잔이나 마시게?”
“아니. 동생이 근처에 있어서. 걔 주려고.”
“뭐야, 예전에 가끔 왔던 그 여동생? 아! 그러고 보니 연후 씨랑 사귄다면서?”
희성이 형에게 이미 들었는지, 깜빡 했었다는 듯 점장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채아 씨에게 격한 반응이 나왔다.
“어?! 오빠 여동생이랑 사귄다고?! 대박… 걔 진짜 예쁘던데!”
희나가 좀 예쁘긴 하지. 나는 그 감탄에 웃음으로 답하며, 지아 씨에게 다가가려는 형을 붙잡았다.
“형, 나 이거 희나랑 나눠 마시면 돼.”
“응? 그럼 그러던가.”
“그런 흥미진진한 화제를 던지고 그냥 가버리는 게 어디 있어! 궁금하잖아!”
“나중에 얘 출근하면 들으시고. 그럼 우리 간다.”
“난 근무 시간 안 겹치는데!”
“연후씨, 3월에 봐요!”
“네, 그때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언니! 우리 3월에 회식해! 꼭 썰을 들어야겠어!”
마치 윤정 누나를 떠오르게 하는, 혼자서 최소 2인분의 시끌벅적함을 담당하는 듯한 채아 씨를 뒤로 하고, 점장님과 지아 씨에게 한 번씩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카페를 나왔다.
무사히 끝난 면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혹시 희나가 돌아왔나 확인차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 안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 30분은 넘게 있었으니 돌아왔을 법도 한데.
역시나, 카페 건물 끝자락에서 미소 띤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는 희나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내내 있었던, 면접이 끝나기 전까지의 긴장된 마음이 완전히 풀린 덕에, 더 반가운 마음이 들어 한걸음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어서 와. 면접은 잘 봤어? 전에 봤던 분들 아직도 계시더라. 다들 예쁘시지? 아주 즐겁게 이야기하던데? 어땠어?”
“……”
분명 웃고는 있는데, 어딘가 가시 돋친 희나의 말에 아까랑은 다른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진짜는 지금부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