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87)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86화(87/213)
Ep. 86
희나의 손을 잡고, 그녀의 오피스텔에 도착하기까지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손을 꼬옥 잡은 채, 침묵 사이를 걸어 집에 도착했다.
무언가를 옮기고 있었는지, 열려 있던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앞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닫힌 문을 열기 위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희나야, 비밀번호─”
“눌러 줄래? 네 생일이야.”
“아.”
그렇군.
바로 숫자 네 개를 치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든 오라는 의미로 알려준 거겠지. 내 생일이라 잊어 버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어지간히도 열심히 청소를 해 놨는지 정말 먼지 하나 없을 만큼 깨끗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지금은 거실에 볼 일이 없기에, 희나와 함께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책상 옆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두 개의 베개. 그리고 침대 옆에 무드등 같은 것이 놓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방 안을 한 번 눈으로 훑고 나서, 말없이 서로 코트를 벗고 한 쪽에 걸어두었다. 그 상태로 잠시 둘 다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바로 시작할 수는 없었고, 씻기도 해야 하는데 이게 희나의 방이다 보니 먼저 말을 꺼내기가 좀 애매했다.
그렇게 잠시간 서로 엉거주춤하게 침대 앞에서 마주 보며 서 있다가, 이내 희나가 창문 쪽에 다가가 커텐을 전부 쳐 놓기 시작했다. 바깥 햇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다음에는 방의 불을 꺼 버린 다음 침대 옆에 있는 등에 전원을 넣었다. 그러고 나니 마치 밤에 작은 불빛 만을 남겨둔 것 같은 방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희나도 희나 나름대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이것저것 생각해놨구나.
거기까지 준비가 되자, 희나가 평소답지 않은, 굉장히 긴장한 듯한 얼굴로 딱딱하게 말을 꺼냈다.
“그, 여, 연후야!”
“응!”
“내, 내가 먼저 씻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는 도망치듯 방을 나가버린다. 그녀가 나가면서 문을 닫자,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희나도 그렇겠지만, 나도 너무 긴장돼서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순간 뇌가 멈춰버렸다. 이건 리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희나의 집이다 보니, 내가 먼저 ‘씻고 올래?’ 라고 말하는 것도 뭔가 쉽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특별한 일을 눈 앞에 두고 있으니까.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잠자코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내 가방 안에서 필수 준비물을 꺼내 무드등 옆에 슬쩍 올려두었다. 물티슈와 콘돔, 윤활제를.
근데 올려두면서 보니, 근처에 내 윤활제와 비슷한 것이 하나 올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로션 같아 보이지만, 로션은 아닌. 혹시나 해서 손에 들고 확인해 보니, 이것도 윤활제였다.
희나도 샀구나. 내가 깜빡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근데 왠지 모르겠지만, 이런 걸 보고 나니 조금 마음이 놓이면서 긴장이 살짝 풀렸다.
그래, 희나도 나도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긴장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용기 내서 먼저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지.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곧 씻으러 갈 것이고, 희나가 보일러도 올려 놓았는지 집이 점점 따뜻해지기에 입고 있던 니트도 벗었다. 안에 검은색 이너도 있으니까.
그 상태로 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희나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만 말 그대로 만지작 거리고 있을 뿐, 지금 상황에서 톡을 하거나 웹서핑을 할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앉아 있기를 약 15분 가량 지났을까.
-달칵
문이 열리면서, 희나가 들어왔다. 방에서 나갔을 때와 똑같은 옷을 입은 채로. 곧 있을 일 때문인지, 샤워를 해서인지. 상기된 얼굴로 조그맣게 말을 꺼낸다.
“미안, 오래 걸렸지…?”
“아니야. 나 지금 갈까?”
“응. 옷 챙겨 왔으면 들고 가. 나 깜빡해서… 우리 저번에 샀던 칫솔 같은 거 다 안에 있어. 수건도 안쪽 서랍장에 있고.”
빨개진 얼굴로 조곤조곤 말해준다. 왜 그대로 입고 왔나 했더니 아까 그냥 나가버려서 옷을 못 챙긴 거구나.
그녀의 말을 듣고 내 메신저 백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원룸 치고 꽤 넓은 집 만큼이나, 화장실 겸 욕실의 크기도 상당히 넓은 편이었다. 심지어 옆에 작게 반신욕 용으로 쓸 만한 욕조도 있고.
둘이 들어가기엔 조금 아슬아슬하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희나라면 분명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화장실 앞에서 옷을 전부 벗고, 들어가서 몸을 씻었다. 혹시라도 땀냄새가 나진 않을까, 빠르게 구석구석. 씻으면서 저번에 샀던 샤워볼이 걸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차마 지금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물기에 젖어 있는 걸 보니, 조금 전에 희나가 사용한 것 같은데.
저걸 쓰자니 자극이 너무 강했다. 이미 하반신 이슈가 역대 최대급이라서. 아무튼 깨끗한 것도 좋지만, 저 샤워볼을 써서 몸을 씻는 희나를 상상했더니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빠르게 샤워를 마무리하고, 물기를 닦은 후 가방에서 속옷과 이너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오늘 입고 왔었던 슬렉스를 다시 입고 나서, 가방과 수건 하나를 챙겨 방으로 돌아갔다.
-달칵
방 문을 열자,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내가 꺼내 놓은 윤활제와 콘돔을 살펴보고 있는 희나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들어가자 화들짝 놀라며 침대 위에 떨어트리긴 했지만.
“빠, 빨리 왔네!”
“응.”
희나는 여전히 긴장이 많이 되는지, 말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아까 낮에 데이트 할 때의 침착함과는 백만광년 정도 떨어진 느낌이라, 그 갭이 좀 귀여웠다.
나는 방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천천히 희나에게 다가갔다. 침대 위에 올라가, 그녀가 뒤집어 쓰고 있는 이불을 살며시 당기려고 하자.
“으으…”
희나가 새빨개진 얼굴로 이불을 붙잡고 있었다. 설마 벌써 속옷만 입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이내 그녀가 힘을 풀자, 이불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인 것은, 새하얀 캐미솔 원피스를 입고 있는 희나의 모습이었다. 아주 살짝, 안 쪽의 속옷이 비쳐 보이는.
순간 말을 잃었다.
단순히 노출만 따지면, 이것보다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었던 것이 더 심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희나는, 이 어두운 방에서 무드등의 빛 사이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관능적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얼굴은 새빨갛고, 몸은 오들오들 떨고 있음에도.
그 상태로, 힘겹게 내게 손을 뻗는 그녀를 보며 정신을 차렸다. 희나가 이러고 있는 만큼, 내가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나는 희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동시에 크게 움찔거리는 그녀의 옆으로 간 다음, 몸을 돌려 나란히 앉았다.
“희나야.”
“으, 응?!”
“우리, 조금 이야기부터 하자.”
“이야기…?”
“응.”
부드럽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 희나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본다. 언제 봐도 비단결 같이 아름답고 또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이 찰랑인다.
“자, 이리로 와.”
흘러 내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겨 주고, 오른팔을 옆으로 길게 뻗은 다음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냉큼 내 품에 몸을 던지듯 기대어 왔다.
강아지처럼 품에 파고들어 오는 희나의 어깨를 감싸며, 살며시 끌어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간 많으니까, 얘기 좀 하면서 긴장부터 풀자. 솔직히 나도 쫌 부끄럽고 긴장도 되는데… 우리가 그동안 엄청 바랐던 거잖아.”
“응…그렇지…”
“저기 무드등은 새로 산 거야? 저번엔 없었던 것 같은데.”
“그저께 엄마랑 쇼핑하다가, 눈에 들어와서 샀어. 색이 이쁘길래.”
“예쁘긴 하다. 빛도 적당하고.”
“그치? 저렇게 무난한 스탠드 형이 아니라 고양이 모양도 있었는데, 그건 빛이 너무 약해서.”
“고양이 무드등? 습, 좀 귀엽겠는데.”
“그래서 나도 고민 많이 했어. 그거 너무 귀엽더라구.”
평소의 희나답지 않게 너무 긴장해서 조금 떨었을 뿐이지, 한 번 물꼬를 틀어주자 금세 즐거운듯이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자취는 어때? 며칠 혼자 자 보니까.”
“좋아. 가끔 좀 쓸쓸하긴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재미있어.”
“그래?”
“응. 마치 어렸을 때 비밀기지 만들었던 것처럼, 뭔가… 나만의 성이 생긴 느낌?”
“오~ 좀 알 것 같은데.”
“후후, 근데 아직도 밥 차리는 건 힘들어… 왜 실력이 안 늘지…”
희나는 내 가슴에 한 손을 올리고, 온 몸을 내게 기대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내 옆구리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그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 쳐주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으로, 다시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내 손길을 즐기듯, 희나가 머리를 조금씩 틀며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나, 좀 전까지 너무 바보 같았지?”
“아니? 귀여웠는데?”
“정말?”
“응. 너야 항상 어른스러웠으니까, 그렇게 긴장한 건 처음 봐서 엄청 귀여웠어.”
“창피해…”
“귀엽다니까 왜 창피해. 자, 입술.”
그 말을 시작으로, 서서히, 하나씩 시작해간다. 내 말에 얼굴을 들어 올려 살며시 입술을 겹쳐오는 그녀. 조금은 갑작스럽게,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는 연인 사이의 교류를, 대화를 나눈다.
-쪽, 쪽
처음에는 가볍게, 몇 번이고 입술을 맞대었다. 그러면서 한 번씩 시선을 교환하기도 하고, 입술이 아닌 볼이나 입가 주변에도 입을 맞춘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얼굴 곳곳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점점 더 진하고, 길게.
“하응…”
입술을 물고, 혀로 핥으며, 서로의 입 안 쪽을 탐했다. 그러는 중 혀가 맞닿을 때면, 그대로 얽혀가기도 하며.
“흐응…츄릅”
사탕을 먹듯이, 내 혀가 그녀의 입 안을 휘저을 때 입술로 살며시 붙잡아 빨아들인다. 나 역시 희나가 혀를 밀어 넣어 올 때면, 이빨로 약하게 혀를 긁어주었다.
“츕─”
그러다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고 입술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완전히 입을 겹쳤다. 서로의 콧김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그 상태에서 혀 만을 움직여 타액을 교환한다. 때로는 여린 입 천장을 건드리기도 하고, 그녀의 새하얀 치아를 툭 치기도 하면서.
“응…흐읍..”
잇새 사이로 희나의 신음이 꾸준히 들려온다. 아까 전까지의 긴장은 어디 여행이라도 보내버린 듯, 어느새 목에 팔을 감고 더 정열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하아…”
이윽고, 기나긴 키스 끝에 드디어 서로의 입이 떨어졌을 때, 가느다란 실이 우리의 입술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지근거리에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열망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마, 나도 같은 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 희나에게서 몸을 떨어뜨리고는, 잠시 침대 밖으로 나가 바지를 내렸다. 속옷을 보여준다는 부끄러움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의 이너도 벗어던진 다음 뒤를 돌아보니.
희나도 어느새 캐미솔의 어깨끈을 내려 다리 아래쪽으로 빼내고 있었다. 곧바로 그것을 침대 옆으로 던져버리고는,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 양 팔을 뻗었다.
그때 같이 골랐던, 그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입은 채로.
“연후야, 와 줘.”
이 다음부터는, 역시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천천히, 희나에게 다가가 몸을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