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92)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91화(92/213)
Ep. 91
처음 집을 보러 갔던 후로 몇 날 며칠이 지나, 드디어 이사하는 날이 되었다. 그것을 위해 청소하는 시간도, 내 옷 등의 짐을 싸는 시간도 설렘이 가득했다.
하루하루가 순풍만범했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합격해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난생처음으로 자취를 해보게 됐으며, 무엇보다 연후와의 관계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 가족들과 함께 짐을 옮기고 있는 이 집에서 곧 그와 함께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우리의 그날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으니.
—
엄마와 함께 집을 청소하고, 아빠와 오빠가 옮겨준 짐들을 풀어 정리한 다음 연후에게 연락을 했다. 연후가 이사하는 것도 도와주고 싶어했지만 나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그를 말렸다. 애초에 내 짐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연후의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 연후 왔다! 여기야~”
때문에 이사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연후를 불렀고, 그는 서둘러서 나에게 달려와 주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그의 모습에 자연스레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떻게 보면 연후에게 있어서 자기 일이 맞을 지도 몰랐다. 이곳은, 조만간 연후의 집이기도 할 테니까.
그리고 그와 손을 잡고 같이 집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렸다. 가는 길에, 이사하기 전까지 있던 일들을 그에게 마음껏 이야기 해주면서.
혼자 너무 신난 것 같아 조금 창피했지만, 언제나처럼 살며시 웃음 지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연후를 보고 있으면, 언제까지고 그의 곁에서 지저귈 자신이 있었다.
“작년에 여름 지나면서 넣어뒀었는데, 어제 정리하다가 찾았거든. 근데 많이 해져서… 올 여름엔 다른 스타일로 맞출까?”
“그러지, 뭐. 그러고 보니 오늘도 룩 맞춰 입은 것처럼 됐네.”
우연찮게도 미리 말을 맞춘 것이 아님에도 같은 가디건을 입고 온 것 또한 기쁨의 한 요소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이 이어져 있는 것만 같아서.
덕분에 더욱더 높은 텐션으로 그의 팔에 달라붙은 채 마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치 이제 막 같이 살기 시작한 신혼부부처럼, 연후가 장바구니를 대신 들어주는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정말로 부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기념 삼아 작성했던 혼인 신고서를 제출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중에 침대 위에서 애교 부리며 애원하면 혹시 들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마트 안을 구경하듯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욕실 용품 매대에 도착했을 때, 앞으로 연후와 같이 사용할 물건들을 골랐다.
“음…내 컵은 민트색으로 부탁해.”
그러면서 연후도 자연스레 자기가 쓸 것을 골라주고 있었다. 분명 동거가 머지 않았음을 그도 느낀 것이리라.
그렇게 하나 둘 장바구니에 넣으며, 마침 새로 사야 할 샤워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샤워볼은 하나면…아니다. 두 개 사자.”
“흐응~? 그렇네? 하나면 충분할지도?”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샤워볼이 하나면 충분하다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나조차도 하나만 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의 말마따나 하나면 충분할 것 같았다.
단 하나의 샤워볼로, 내가 연후를 씻겨주고, 연후가 나를 씻겨주면. 그러면서 점차 야릇해지는 분위기에 서로 몸을 겹치게 되면.
행복해서 죽어버릴지도.
“그래, 하나만 사! 하나면 충분하지! 안 그래?”
내 은근한 말에, 그가 자포자기하듯 그리 말을 내뱉자 나는 곧바로 딱 하나만 넣었다.
“안 쓰는 것도 금지! 감시 할 거야!”
그런 말과 함께.
도대체 어떻게 감시할 거냐는 그의 물음에 당연히 같이 들어갈 거라고 답해주었다. 그는 반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씻겨줄 거니까. 절대로.
그 다음으로 귀여운 욕실 슬리퍼를 고르고, 그걸 끝으로 다음 칸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내 시선에 작은 상자들이 들어왔다.
보는 순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필요하면서도, 내심 없었으면 좋겠다고 언제나 생각해왔던, 고무로 된 피임구.
되도록이면 쓰고 싶지 않지만 그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필요하긴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떤 걸로 할까 고심하고 있었는데, 연후가 나를 말렸다.
혹시 연후도 쓰고 싶지 않은 걸까? 하며 내심 기대를 하는 나에게.
“희나야.”
“응?”
“내가 산 거 있으니까, 여기서 살 필요 없어.”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구나.
후후, 이미 사뒀구나?
그날을 많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절대 나 뿐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을 사용할지, 안 할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그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혹시 아이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가정에.
“1년 쉬면 되지!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나는 너 닮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분명 엄청 귀여울 거야!”
“나야 당연히 너 닮은 딸이 좋지.”
자연스럽게,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물론 나는 결단코 미니 연후를 지지하고 있었다. 미니 희나도 무척 귀엽겠지만, 아빠들은 딸에게 죽고 못 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 아빠도 나에겐 껌뻑 죽는 편이니까.
그렇기에 혹시라도 연후가 나보다 미니 희나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면, 딸에게까지 질투해버릴 것 같았다. 창피해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자취 생활의 시작에, 연후의 사랑에, 앞으로의 기대에. 내 텐션은 끝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식 코너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베이컨 하나 드셔보고 가세요! 거기 신혼 부부 분들도~”
보는 눈이 있으신 판매원 아주머니의 말에, 그 분이 판매하고 있는 베이컨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슬 너무 좋아 보인다~ 남편이 자상하시네~”
심지어 연후까지 칭찬해주시니, 이 얼마나 좋은 분일까.
마음 같아서는 열 팩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연후가 나를 끌고 계산대로 향하는 바람에 더 챙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서서, 그와 나눈 이야기에.
“오늘 기분 너무 좋아 보이는데?”
“응~? 그야 이제 자취도 시작하고. 게다가 아까 들어왔을 때부터─”
“그때부터?”
“조금 전에 그 아주머니 말씀처럼, 정말 신혼에 같이 장 보러 온 느낌이 들었거든.”
“아~ 나도 좀 그렇긴 했어.”
“그치?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너무 좋더라구.”
그저 마음 포근해지는 행복만이 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집에 도착해 마트에서 사 온 것들을 정리하고, 연후가 방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에 그와 함께 내 방으로 향했다. 사양 않고 그냥 들여다봐도 괜찮은데, 이런 사소한 배려도 연후의 장점 중 하나였으니 어쩔 수 없겠지.
잡다한 물건 없이 심플하게 침대와 그 옆에 커다란 책상, 그리고 옷장이 있는 내 방을 보여주었다. 책상 위에는 우리의 사진이 끼워져 있는 액자들이 있었고, 나중에 그가 가져올 컴퓨터를 위해 그 외에는 넓게 자리를 비워둔 상태였다.
그리고 혼자 쓰기엔 너무나 큰 이 침대는.
“침대는, 알지? 네 베개도 준비해놨는데.”
당연히 연후와 함께 잠들 것을 대비한 퀸사이즈였다. 둘이 누우면 살짝 좁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연후에게 안긴 채로 잠들면 분명 여유로울 것이다. 그 상상에 또다시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둘이 침대 위에 말없이 걸터앉았다. 잠시 그 느긋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던 중, 연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13일에, 전철역 앞에서 만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분명 예전부터 약속된 데이트였지만, 그걸 더 확실하게 하나의 일정으로 잡는 그의 말에.
“우리 첫 데이트했을 때 만난 곳에서.”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날의 데이트는, 14일까지 인걸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장소도 완벽히 준비되었다.
우리의 그날을 위해.
—
며칠 후, 스무 살의 생일을 맞이했다. 재작년부터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렸던.
이사한 이후로 연후를 본 것은 딱 하루뿐이었다. 연후도 나도, 머릿속에 오로지 오늘의 일만을 떠올려 제대로 데이트를 즐길 수가 없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나 기다렸던 만큼, 어젯밤 잠도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했다.
며칠간 몇 번이고 했던 방 청소를 또 한 번 하고, 구석구석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어차피 하기 직전에 다시 씻기는 하겠지만.
그리고 그와 만나지 않는 동안, 고등학교 친구와 하루 종일 고심하며 골랐던 스커트와 블라우스, 코트를 입고서 집을 나섰다.
다만 너무 이르게 출발한 터라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역에 도착하고 말았다. 서로 이러지 않기로 약속했었지만, 오늘만은 봐줬으면 했다. 터질 듯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집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를 기다리는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치고는 무척이나 침착한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그토록 바랐던 날이었고,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선. 그저 당연한 일이며,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이었고, 이제는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었다. 그렇기에 몸을 겹치는 일 또한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제 때가 되었을 뿐.
조금 쌀쌀한 날씨 속에서, 분명 즐거울 것이고, 행복하며, 기념이 될 오늘을 상상하며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직 약속까진 시간이 꽤나 남아 있었지만, 나처럼 시간보다 일찍 연후가 도착했다.
“우리 너무 일찍 안 나오기로 약속했었잖아.”
그렇긴 하지만, 결국 너도 일찍 나왔으니까. 쌤쌤이지?
“오늘 너무 예쁘다, 진짜. 세상에서 제일. 그리고 생일 축하해.”
네가 예쁘다고 해주기에, 그렇게 열심히 골랐던 내 옷이 드디어 의미를 찾았어.
“응, 오늘은 나만 믿어. 끝까지.”
어디를 가더라도, 네 뒤를 꼭 붙어서 따라갈게.
그렇게 시작된 데이트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포장마차에 들려 음식을 나눠 먹고,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쇼핑몰 안의 안경점에 들리고. 마지막으로 오락실에서 농구 게임을 즐긴 데이트 플랜.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너의 사소한 배려들이 느껴지는.
도중에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의 첫 데이트를 다시금 돌아보고 있다는 것을. 내가 과거의 너를 떠올리며 해주었던 배려를, 다시금 네가 보여주고 있음을.
그에 감동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오늘 해주는 것들보다, 이제는 오히려 평소의 네가 훨씬 더 자상하고 배려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너는 알고 알고 있을까?
아마 그때를 되돌아 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았으니,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참, 귀여웠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역시 아직은 한 번씩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하지만 뭐 어떤가. 결국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고, 오늘의 메인은 이 데이트가 아닌 그 다음이었으니까.
저녁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었으니, 이 농구 게임이 끝난 후에는 또 어디로 데려가줄까 기대하고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집에 갈까?”
순간 조금 당황했지만, 두근거리는 내 심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도 그것을 바라고 있음을.
“…응. 집에 가자. 나도 가고 싶어.”
“오늘 예쁘게 꾸미고 나왔는데, 벌써 가자고 해서 미안해.”
“아니야. 이런 건… 그냥 네가 한 번 예쁘다고 말해주면 그걸로 됐어. 알잖아.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 이런 옷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네 입에서 나오는, 예쁘다는 그 말 한마디를 위해 입었을 뿐이니까.
그저 네가 나와의 시간을, 더는 참지 못할 만큼 기대해 줬다는 사실이, 그것만이.
나에겐 중요하니까.
—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후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방에 앉혀 놓고, 도망치듯 씻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분명 데이트를 하러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갑자기 연후가 집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이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연후와 보낼 그 시간을 위해, 며칠 전부터 병적일 정도로 집 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인터넷에서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고 필요한 물건도 사두고 그랬는데.
막상 그가 내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떨려왔다. 그와의 행위가 싫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그 순간이 코앞이라고 생각하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그에게 불쾌한 느낌을 단 하나라도 주고 싶지 않았기에 온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내 가슴부터 시작해서, 허리 아래 소중한 부위까지 전부. 최대한 빨리 씻는다고 서둘렀지만, 그럼에도 20~30분 가량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급히 화장실을 나왔다.
방에서 나오기 전에 옷을 꺼내왔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와버린 탓에 아까 입고 있던 옷을 다시 입은 채로.
“미안, 오래 걸렸지…?”
“아니야. 나 지금 갈까?”
“응. 옷 챙겨 왔으면 들고 가. 나 깜빡해서… 우리 저번에 샀던 칫솔 같은 거 다 안에 있어. 수건도 안쪽 서랍장에 있고.”
나와 교대하여 그가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재빨리 입고 있던 옷과 속옷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골랐던 속옷을 입었다. 평범한 속옷들에 비해 정말 중요 부위만을 가리고 있을 만큼 면적이 작고, 은근히 안 쪽이 비쳐 보이는 그 속옷을.
집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입고 나가지 않았었다. 혹시라도 데이트 하는 사이 땀이 나 냄새가 벨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위에 하얀색 캐미솔 원피스를 입고, 이불을 덮었다.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보여줄 각오는 언제나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고, 떨려왔다.
그렇게 이불 아래에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던 중, 무드등 아래 못 보던 것이 올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 놓은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윤활제와 동그란 윤곽이 보이는 작고 네모난 그것.
홀린 듯이 그것들을 가져와 천천히 살펴보았다. 윤활제야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그가 미리 사두었다던 그것은.
“……”
순간 이 콘돔에 무언가를 해버리고 싶다는 못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런 음습한 짓거리 없이, 내 진심을 똑바로 그에게 말할 것이다.
오늘만은, 쓰지 말아 달라고.
-달칵
“빠, 빨리 왔네!”
그리고 그가 도착하자, 화들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재빨리 그것을 다시 제자리로 올려놓고,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다가와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이불을 살며시 당기기 시작했다. 순간 부끄러움에 뺏어가지 못하도록 꼭 붙잡았지만, 금세 힘을 풀어버렸다.
그러자 이불이 내려가고, 그에게 내 차림을 보여주게 되었다. 속옷이 살짝 비쳐 보이는, 내 하얀색 캐미솔을.
아직 속옷까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부끄러움에 말을 꺼내지 못하며 얌전히 앉아만 있는 나에게 그가 다가왔다.
드디어 시작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긴장으로 몸이 굳어 있었는데.
“희나야.”
“으, 응?!”
“우리, 조금 이야기부터 하자.”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옆에 앉아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에게 몸을 기대고 있으니, 점차 편안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를 위해, 나긋나긋하게 대화를 이끌어주는 그의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긴장이 풀렸고.
“귀엽다니까 왜 창피해. 자, 입술.”
이윽고, 대화 끝에 그가 키스를 요구해왔을 때.
내 몸과 마음은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다.
“흐응…츄릅”
언제나와 같은, 진한 키스를 이어가며.
“응…흐읍..”
평소보다 훨씬 더 흥분되는 마음에 새어 나오는 신음을 막지 못하고.
“하아…”
키스가 끝났다.
동시에 침대 밖으로 내려가 옷을 벗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천천히 캐미솔의 어깨끈을 내렸다.
이내 그가 하반신을 가려주는 팬티 한 장만 남긴 채 뒤를 돌아보자.
나는 야하디 야한 내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완전히 드러내며, 그에게 양 팔을 내밀었다.
“연후야, 와 줘.”
나를 안아 줘.
사랑한다고 속삭여 줘.
내 몸을 네 마음대로 갖고 놀아 줘.
내 처음을, 가져가 줘.
—
그토록, 수없이 바라왔던 순간이 눈 깜짝할 새에 끝나버렸다.
우리의 첫날밤은, 내가 그간 상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아팠고, 기분 좋았으며, 너무나 행복했다.
내 소중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이 통증 또한 연후가 만들어 준, 새겨 준 것이기에 그마저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 부탁을 들어준 그가, 피임구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더욱 기뻤다. 지금도 내 안에, 따뜻한 것이 느껴지고 있었음에. 안전한 날이기에 했던 부탁이었지만, 내심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담주부터 여기서 지낼까.”
그가 동거를 결심해준 덕에 정말로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그와 이런 시간을, 이보다 더 큰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훨씬 더 자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넘칠 듯한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그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잘 잤어?”
여전히 나를 안아준 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잘 잤냐고 물어봐 주고, 이어서 키스까지 해주는 연후가 곁에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연후의 얼굴이라는 것이 어찌나 좋은지.
이것이 오늘 뿐만이 아니라, 내일부터도 이어진다는 사실에.
“응…흐히힣… 연후야아~”
바보 같은 웃음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그와 함께 씻으러 간 화장실에선, 아침의 생리 현상에 힘들어 하는 그를 도와주었다.
거부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연후를 위해 그런 행위를 해주는 것이, 나에겐 커다란 기쁨이었다.
—
그때부터, 내가 꿈꾸던 둘만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함께 몸을 씻고, 나란히 서서 양치도 하고. 그 다음엔 같이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그러는 중에 은근슬쩍 내 엉덩이를 만지는 연후의 손길을 받아들이기도 하며.
어제까지는 키스였을 그 스킨쉽이, 이제는 조금 더 야한 느낌으로 변한 것이 좋았다.
그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만졌으면 했다. 내 몸 어디든 간에, 그가 원하는 만큼 마음껏.
“그럼… 가슴이랑 엉덩이 중에 어디가 더 좋아?”
연후가 좋아하는 곳을 앞으로 더 어필하고 싶은 마음에 했던 질문이지만, 그는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결국 둘 다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귀여운 남자친구였다.
“앞으로 만지고 싶은 만큼 만져도 되니까, 엉덩이든 가슴이든.”
“대신, 내 것만 만져야 돼. 알았지?”
절대로 사양하지 않았으면 했다.
내 전부는, 네 것이니까.
그래도, 혹시라도 다른 여자의 것을 만진다면 내가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니까. 주의해줬으면 좋겠지만.
식사를 마친 이후부터도, 최고로 행복한 집데이트가 이어졌다.
침대 시트를 정리해서 세탁방에 맡긴 다음, 연후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와 같이 폰을 보거나 혹은 그에게 안겨 있거나.
“내일은 잠깐 나갔다 올까?”
“으응~ 15일까지 집 데이트하기로 약속했잖아~”
“그렇긴 한데, 나 여기서 같이 지낼 거 말씀드려야지.”
“가자!”
그와 내일부터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음, 키스 마크 한 번 도전해 볼까? 어제 앞쪽에 한 건 안 생겼던데.”
그가 만들어 준 키스 마크를,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며.
“아! 생겼어!”
“그래? 아니, 잠깐. 앞에 하면 어떡해? 내일 아저씨 뵈러 가려고 했는데!”
나 역시 그에게 키스 마크를 남겨 주다가, 그에게 혼나기도 하면서.
딱히 특별한 일은 없어도, 그저 둘이서 보내는 그 사소한 시간들이 좋았다. 그렇게만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저녁이 되었을 만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저녁 식사로는, 그가 해주는 요리를 먹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푹 쉬었으면 했기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까지 끝마치고, 또다시 둘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잘 시간이 되자 나란히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후야.”
“응?”
“나, 지금 너무 행복한 거 알아?”
“나도.”
“정말?”
그러면서 베시시 웃고는, 오늘 하루동안 점차 괜찮아진 몸 상태에 용기 내어 그에게 말을 꺼냈다.
“하루쯤 지나니까…”
“응?”
“나, 괜찮은 것 같아.”
“…그래?”
“응.”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눈치채 준 연후가 나에게 다가와 키스를 했다.
첫날밤은, 행복했지만 고통이 곁들여져 조금 아쉬웠다. 그 고통마저 기뻤던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그러니 지금부터 시작되는 두 번째 밤은.
조금 더 기분 좋기를 바랐고, 연후 역시 어제처럼 나를 너무 배려하지 말고 원하는 만큼 마음껏 해주기를 바랐다. 나를 생각해 주기 보다, 나로 인해 그가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랐다.
내 몸은, 언제든 오로지 연후를 위해 준비되어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 어느 때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