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irlfriend Is Very Good to Me RAW novel - Chapter (93)
여자친구님이 너무 잘해줌-92화(93/213)
Ep. 92
아침에 일어났을 땐 조금 긴장했었다. 간밤에 희나를 짓궂게 많이 괴롭혔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녀라도 조금은 화가 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잠들어 있는 걸 깨우고 사과할 순 없으니.
일단 몸을 일으키자마자, 희나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 밤에 하지 못했던 뒤처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아무리 피곤해도 정리를 하고 잠들어야 한다는 점일까.
지금 하려니 이미 얼룩질 대로 얼룩진 시트 등 여러모로 굉장히 힘들었다. 심지어 분위기에 타서 바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번엔 수건도 안 깔았고.
그렇게 지난밤을 반성하며 시트를 제외한 곳들의 정리가 끝나갈 즈음, 희나가 어느새 눈을 떴는지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전부 끝냈기에, 긴장감에 몸을 굳히며 거실에서 얌전히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씻고 나서 옷까지 다 챙겨 입은 희나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부비부비
나를 꼭 껴안으며 얼굴을 부비적 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잤어?”
“응!”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어쩐지 얼굴에는 윤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잠시간 애교부리듯 몸을 부비던 그녀가, 이내 몸을 일으키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
“흐응~흥~”
어쩐지, 희나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제는 반쯤 울면서 지쳐 쓰러졌었는데.
그녀도 나도 평소에 아침을 가볍게 먹는 편이기에, 오늘도 시리얼을 준비하려는 것 같았다. 찬장을 열고 접시를 꺼내고 있는 희나에게, 살며시 다가가 슬쩍 물어보았다.
“어제 내가 좀 심했지? 혹시 몸은 좀 괜찮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나에게, 그녀는 즐거운 듯 웃음을 흘리며 답해준다.
“응~? 어제? 너무 좋았는데? 아! 모닝 키스 안 해줬지?! 빨리 해줘!”
“아, 미안.”
-쪽
어제 일 보다 아침에 키스를 안 해준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듯한 그녀의 말에, 서둘러 입술을 겹쳐주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나 병실에 있었을 때 이 얘기도 했었지. 아침,점심,저녁에 집 나갈 때랑 들어올 때는 무조건 키스를 해 달라고 했던가.
그리고 그 키스를 받고 나서는, 다시금 미소 지으며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도 내 시선을 잡아 끄는 돌핀 팬츠와 얇은 티셔츠 한 장만을 걸친 채.
보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희나를 보며 깨달았다.
언제나 어른스럽고, 나를 이끌어주며, 가끔은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내 여자친구님은.
밤에 괴롭힘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
식사를 마치고, 어제 이야기했던 대로 오늘은 양 가에 들려서 허락을 받을 생각이었다. 사실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은 아니고, 그냥 스리슬쩍 앞으로 이 집에서 같이 좀 지내겠다고 전달하는 정도일까.
그리고 집에서 출발하기 직전, 어제 입은 옷을 그대로 다시 입고서 거실에 앉아 기다리는 나에게, 그녀가 방에서 나와 옷 두 벌을 보여주었다.
“연후야, 어떤 게 더 좋아? 이쪽 니트랑 블라우스 중에.”
“둘 다 예쁜…근데 어차피 위에 코트 입을 거잖아.”
“그래도~ 하나 정해 줘.”
“그럼 니트로. 오늘 밖에 춥다더라.”
“알았어!”
내 초이스에 고민 없이 방으로 들어가 그걸 입고 다시 나왔다. 오늘은 연청바지에 하얀색 니트, 그리고 카키색 코트를 걸치고 있는 그녀. 평범한 차림새였지만 희나가 입고 있으면 왜 이렇게 귀여운지.
그렇게 같이 집을 나서기 직전에도.
“웅~”
말없이 입술을 모은 채 내게 입을 들이밀고 있는 그녀에게.
-쪽
또 한 번 키스를 해줬다. 키스야 평소에도 참 많이 하고 있긴 했지만,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이제 진도를 끝까지 빼서 그런 것인지, 마치 이미 동거하고 있는 듯한 지금의 상황에 들떠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후흫, 이제 가자~ 어머님께 들린다고 톡 드렸어.”
“진짜? 난 그냥 갈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가기 전엔 말씀 드려야지. 그리고 언니도 있다던데?”
하필 이럴 때 윤정 누나가 있냐. 워낙 자주 오니까 거의 반반 확률이긴 하지만.
우리가 꺼낼 이야기를 듣고 꺅꺅 난리를 칠 누나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희나와 데이트를 즐기는 것처럼 팔짱을 낀 채 느긋한 걸음으로 집에 도착하자, 동거의 ㄷ자도 꺼내기 전에 이미 윤정 누나는 하이텐션 그 자체였다.
“꺅!! 아침 귀가!! 둘이 아침 귀가했어!! 어머님!! 보셨어요?! 한정후!! 한선후!! 빨리 나와 봐!!”
“제발…제발 조용히 좀…그리고 이제 점심이거든…”
아니, 왜 얼굴 보자마자 온 가족을 소집하려고 하냐고. 버스터 콜이야?
집이 떠나갈 듯한 누나의 새된 목소리에, 형들도 잠시 거실로 나왔다. 하지만 둘 다 우리를 한 번 스윽 훑어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그 모습에 속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나를 배려해서 라기보다는, 솔직히 형제끼리 이런 낯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간 거겠지만서도.
다행히 누나도 그런 형들을 더 붙잡지는 않고, 우리와 함께 거실에 앉아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희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취는 어때? 할만한 것 같아?”
“응. 좀 재미있어. 언니 말대로 물티슈 잔뜩 사놨는데, 있으니까 엄청 편하더라.”
“그치, 그치? 이 언니가 또 자취 경력이 길잖아~ 언제든 궁금한 거 물어봐!”
“고마워, 언니.”
그리고 둘이서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그걸 내버려두고,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어.”
“나 희나네 집에서 지내도 돼?”
“그러던가.”
예상은 했지만 너무 쿨한데.
“공부도 소홀히 안 하고 거기서 열심히 할게.”
“너야 항상 열심히 했으니까. 어디 있던 잘 하겠지.”
그러면서도 나를 믿어주는 듯한 말을 덧붙이자, 묘하게 감동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짧은 대화였음에도,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려고 하는 것을 참아내었다.
어쩐지 묘하게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을 하는 게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래서 오늘부터 공부할 거랑 옷 좀 챙겨가려고.”
“챙겨 줘?”
“음, 아니. 알아서 할게. 내가 당장 입을 것만 가져갈 거니까.”
그리고 거기서 희나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어머님. 이참에 연후 입는 것만 빼고 제가 정리 도와줄게요. 혹시 근처에 의류 수거함이 따로 있을까요?”
“그건 모르겠네. 마침 쓰레기 봉투 큰 거 남아 있으니까 안 입는 건 다 버리렴. 어디 줄 곳도 없고.”
“네, 어머님.”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희나와 함께 내 방으로 향했다. 뒤따라온 윤정 누나도 같이.
“누나는 왜 와?”
“왜에~ 한정후 바쁘다고 안 놀아준단 말야~”
“왜 누난 맨날 한가한데.”
“나도 바쁘거든?! 그러다가 시간 날 때만 여기에 있는 거거든?!
한 달의 1/3 쯤은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어차피 희나랑 꽁냥 거릴 것도 아니고, 옷 정리를 하려는 거라 누나 도움도 받을 겸 내보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닥에 앉아 침대 아래 쪽의 서랍장들을 열어 옷을 꺼내려는 찰나, 다시금 누나의 입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땠어?”
“뭐가?”
“너희 어젯밤에!”
“…….”
와, 어떻게 이런 걸 이렇게 면전에 대고 다이렉트로 물어볼 수가 있냐. 남자랑 여자의 차이인가?
남자들은, 아무리 마이웨이의 극한인 선후 형이라도 나와 희나의 앞에서 이런 걸 대놓고 물어보진 않을 텐데. 아니, 애초에 이 화제를 꺼내지도 않겠지.
너무나 직설적인 누나의 물음에, 벙찐 채로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옆에서 희나가 양 볼을 손으로 감싸더니 수줍게 입을 열었다.
“너무 좋았어…”
“잠깐, 그만하자!”
희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대로 이어졌다간 내가 수치사 해버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는 다시금 새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 희나 반응 보니까 진짜 엄청 좋았나 보네?! 그럼 혹시─ 웁!!”
날 공기마냥 신경 쓰지 않기에 그냥 손으로 누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솔직히 여자들끼리 모이면 별의별 이야기를 다 꺼낸다는 걸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이 그런 화제로 부끄럼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알겠고, 이해는 하겠는데.
제발, 제발 내 앞에서는 하지 말아줬으면 했다.
그 마음을 담아, 정말 진심을 다해서 누나에게 부탁했다.
“내 앞에서는 그 얘기 안 하면 안돼? 진짜, 제발.”
“웁- 푸하! 갑자기 입을 막으면 어떡해! 어휴, 하여튼 부끄럼은 많아 가지고!”
내가 부끄럼이 많은 게 아니라, 이게 정상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다행히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 살짝 뾰루퉁한 얼굴을 하더니 더 이상 그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희나도 굳이 먼저 말을 하진 않았고, 덕분에 그제서야 서랍장에서 내 옷을 하나씩 꺼낼 수 있었다.
“뭐부터 가져갈까? 옷장에 자리는 좀 비어 있지?”
“빈 공간이 많진 않은데… 여름 옷은 다음에 와서 챙기고, 맨투맨이나 바지부터 가져가자. 외투는 어떡하지? 많이 못 걸어 놓을 텐데.”
가져갈 옷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우리에게, 누나가 도움을 주었다.
“너희 어차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 거 아냐? 연후도 공부하느라 집에 붙어 있을 거고. 그럼 오늘 입은 코트에 가디건만 하나 챙겨~ 코트도 무난해서 여기저기 맞춰 입기 괜찮아 보이는데.”
“오, 천재.”
“흐흥~ 이 누나가 좀 똑똑하지!”
쓸데 없는 말만 하지 않으면, 참 좋은 누나인데. 뭐만 있으면 바로 텐션이 하늘을 뚫어버리니.
그 외에도 옆에서 이것저것 조언을 해준다.
“이너가 제일 많이 필요해. 원룸은 보일러 좀 오래 돌려도 가스비 그렇게 많이 안 나오거든? 그래서 집에선 맨투맨이든 뭐든 입을 일이 별로 없단 말이야. 특히 남자들은.”
“오케이. 바지도 집에서 입는 건 반바지만 챙길까?”
“긴 것도 하나 챙겨. 쓰레기 버리러 나가거나 편의점 갈 때 편하게 입을 거 필요하니까.”
“연후야! 그럼 우리 전에 같이 샀던 츄리닝 가져가자!”
“아~그거. 작년 봄에 조깅한다고 산 거 있었지.”
그런 식으로 가져갈 옷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았다. 아빠가 출근하실 때 차를 끌고 가시기 때문에, 엄마나 형한테 차로 옮겨 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일단 손으로 들고 갈 수 있는 정도만.
아, 차라리 희성이 형을 여기로 부를까? 희나네는 아주머니 쓰시는 차가 한 대 남아있을 텐데.
웬지 모르게 막 대하게 되는, 희성이 형에 대한 양심 없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꺼낸 옷들을 쇼핑백과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윤정 누나가 갑자기 음흉한 웃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후훕…”
“뭔데, 그 웃음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너네 참 찐~하다 싶어서.”
“뭘 새삼스럽게.”
진짜 새삼스럽게. 심지어 누나는 우리 데이트에 자주 난입도 해 온 터라 더 잘 알고 있으면서.
하지만 이내, 누나가 더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러나 싶어서 쳐다보고 있자, 침대를 퍽퍽 치면서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유를 말해주었다.
“풉…너, 크후훕… 목에 그거 진짜 몰라?”
“목? 목이 왜…..아!!!!!”
누나의 말에, 그제서야 떠올랐다.
어제 희나가 내 목에 남겼던 키스 마크가!
바로 한 손으로 목을 가리며, 희나에게 소리쳤다.
“이희나!! 왜 말 안 했어?!”
그런 내 외침에, 희나가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는 듯 말꼬리를 늘리며 대답한다.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알면 안 가렸을 리가 없잖아!”
“흐후훟…”
“웃지 말고!”
그러나, 내가 뭐라 하든 그저 웃음을 흘리기 바쁜 희나와 윤정 누나의 모습에, 더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플 것 같았다.
하, 씨. 생각해 보니 목폴라로 갈아 입으려고 우리 집부터 들린 거였지… 미치겠네, 진짜. 이거 엄마도 봤을 거 아냐.
아까 그래서 엄마 표정이 그랬던 거구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