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ucky Encounter From the Game Turned Into Reality RAW novel - Chapter 301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301화
63. 평화를 위해(4)
“젠장, 어쩔 수 없군.”
“그래. 한번 해보자.”
서로를 적대해 오던 천왕과 마왕들이 한마음으로 동의한다.
그에 미카엘 천왕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 2단계를 실행하기로 했다.
“아드리안의 권능은 공간을 비틀거나 조종하는 걸로 보여, 만약 녀석이 우리의 계획을 알아챈다면 신역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거야.”
“누군가가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건가?”
“그래. 최대한 요란하게 시선을 끌며 시간을 벌어야 해.”
그야말로 척하면 척.
같은 목적을 갖고, 같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그들은 이야기가 굉장히 잘 통했다.
그동안 대체 왜 적대해 왔나 싶을 정도로.
“내가 나서지.”
“내가 나서마.”
미카엘의 이야기에 천왕과 마왕 각 한 명씩 나섰다.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를 상대로 시선을 끌며 시간을 번다는 것은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
이들 중 누가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겠냐만, 그럼에도 한발 앞으로 나선 이들을 보며 나머지 동료들은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미카엘은 그런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들이 시간을 끌어줄 동안 우린 준비한 텔레포트 장치를 가동시킨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공간이동 준비를 해야 하기에 우선 본진을 후퇴시키고, 그러는 동안 적들의 시선을 끌 미끼 역할의 천왕과 마왕이 날뛰기 시작했다.
세피아 여신이 기거하는 신역에 도달하기 위해 이들은 ‘차원 돌파석’이란 장치를 만들어냈다.
해당 장치는 사전에 준비해 두었기에 가동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에아는? 데려갈 거야?”
에아는 강력한 전력이다.
하지만 미카엘은 지상에서 홀로 돌아온 에아를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녀석이 하나 있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생존 과정에서 아드리안과 결탁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차라리 버리자고.”
“하긴.”
잠시 후.
다행스럽게도 차원 돌파석이 안정적으로 가동되었다.
-지이잉! 팟!
거하게 어그로를 끌고 있는 두 천왕과 마왕에게 시선을 빼앗긴 건지, 아드리안은 이들을 방해하지 않았고, 천왕과 마왕은 무사히 신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이 신역인가?”
파릇파릇한 풀들이 바람에 춤을 추는 넓은 초원.
그 초원과 어울리지 않는 완전무장 상태인 이들이 한껏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곳 어딘가에 여신의 본체가 있을 터.
그들은 여신의 흔적을 찾아 움직였다.
“초원에 묻히고 싶었나 보네? 취향 존중할게.”
“!!!!!!”
그런데 그때였다.
한껏 긴장하고 있던 천왕과 마왕들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엔 있어선 안 되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 어째서 네가?”
“잠깐, 데스스타는 어디 간 거지?”
더불어 천왕과 마왕들의 주요 전력인 자폭 병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같이 이동해 왔을 터인데…….
* * *
요란하게 어그로를 끌고 있는 천왕과 마왕의 속셈이 너무 뻔히 보여서 무시했다.
어차피 내버려 두면 내가 마련한 안배가 움직일 테니 말이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내가 마련한 안배는 바로 로드 엑시드.’
나와 함께 신족으로 거듭난 루카스 대공의 참전이다.
그는 내가 신경 쓰지 못하는 곳에서 아군이 위기에 빠지면 등장하기로 한지라 천왕과 마왕이 난리를 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머지 놈들이 무얼 하려는지 은밀히 살필 수 있었고.
이내 그들의 목적을 알아채는 데 성공했다.
“신역으로 향한다? 여신을 치겠다는 거군.”
너무도 황당한 계획에 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야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썩 나쁘지만은 않은 계획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여신이 피조물을 직접 해하지 못한다는 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룰을 깰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절대 법칙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족과 마족 입장에선 나와 치고받는 것보다 여신과 단판 승부를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마침 여신도 많이 약해진 상태고, 자신들은 막강한 무기를 손에 넣었으니.
신역에서 자폭 병기들이 일제히 폭발하면 여신이라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면 굳이 전투를 치르지 않고 거래를 시도할 수도 있을 테니, 신역을 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어떻게 할래요?”
생각에 깊게 빠져 있을 때, 아르시아가 내게 물어왔다.
여신은 내 어머니다.
어머니를 공격하려는 저 녀석들을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녀석들을 방해하려 했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우주에서 싸우는 것보다 한번 발을 들이면 도주가 힘들어지는 신역에서 정리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라고.
‘내가 신역을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이런 계획을 세웠을 거야.’
여신이 내 어머니이며, 내가 정기적으로 찾아가 티타임을 갖는다는 건 아르시아 외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더구나 여신이 지상과의 관계를 끊은 상태기도 했으니까.
그들 입장에선 내가 신역까지 쫓아올 거라곤 생각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녀석들이 당황한 틈을 노려 신역에서 처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
여신이 직접 그들을 공격하진 않더라도 내 백업 정도는 해줄 수 있을 테니.
조금 약은 생각이지만, 내가 천마족과 싸우는 것도 여신의 뜻을 잇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모른 척하진 않을 거라 판단했다.
나는 아르시아에게 생각을 알렸고, 당연히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난색을 표해왔다.
“신역에서 처리하자고요? 저 자폭 병기가 신역에 큰 타격을 줄 텐데요?”
“그럼 천왕과 마왕들만 신역에 보내면 되지. 여기서 자폭 병기 먼저 처리하고 뒤따라 가는 거야. 어때?”
자폭 병기는 분명 위협적이다.
공격력만큼은 우리의 전력과 비슷한 수준이니까.
만약 천왕과 마왕이 해당 병기를 백업하며 전투를 벌여온다면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충분히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단 소리다.
하지만 자폭 병기 따로, 천왕+마왕 따로 상대한다면 난이도는 확 떨어진다.
“그런 방식이면, 괜찮을 것 같아요.”
결정 났다.
나는 서늘한 미소를 띠며 천족과 마족 진형을 살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즉시 수작을 부렸다.
* * *
드넓은 초월의 형태를 한 신역.
천족과 마족의 왕들은 빛과 함께 등장한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를 보며 당황했다.
“뭘 찾는다고? 데스스타? 아, 그 자폭 병기? 그거라면 방금 처리하고 왔어.”
“무슨?”
“몰랐어? 데스스타는 처음부터 너희랑 같이 안 왔잖아. 너희랑 떨어지자마자 슥삭했는데.”
“…….”
천족 제일의 왕 미카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들이 눈앞의 인물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이다.
고작 인간이 천왕과 마왕을 초월한 능력을 갖고 있단 것도 놀라운데 자력으로 신역에까지 발을 들일 수 있다니.
미카엘은 납득이 되지 않는단 듯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를 노려보았다.
“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겠지?”
이어진 그의 물음에 아드리안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아드리안의 목적은 그들의 목숨이었기에 이제 와서 편의를 봐줄 이유가 없었다.
그에 미카엘은 한껏 억울하단 표정을 지어야 했다.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바보인 줄 아나? 네 녀석이 우리를 끌어들이지 않았느냐.”
천족과 마족을 소환한 에아는 아드리안에게 붙잡혔었다.
하지만 당시 에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론델의 천마족을 끌어들이려 한단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계획에 흥미를 느낀 아드리안은 위험하단 사실을 알면서도 풀어주었다.
결과 천족과 마족은 에아가 만든 게이트를 타고 무사히 지상계에 다다를 수 있었다.
“론델과 지구의 사이가 안 좋거든.”
“뭐?”
“두 세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공통의 적이란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허…….”
인심 쓰듯 알려준 사건의 전모.
아드리안의 이야기를 들은 천왕, 마왕들은 황당함을 넘어 허무해했다.
“고작 그걸 위해서 우릴 끌어들였단 건가?”
그러나 아드리안은 이들의 반응에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단 태도를 보였다.
“여신께서 방치했단 이유만으로 원수지간이었던 천과 마가 서로 손잡고 지상을 침공하려 했으면서 갑자기 피해자인 척이래? 나는 너희의 계획을 방치한 것뿐이야. 너흰 그저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 거고. 누가 보면 음모에 빠진 줄 알겠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을 악당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긴 했으나, 애초에 적대 관계를 구축한 건 천족과 마족들이었다.
아드리안은 그걸 이용했을 뿐이다.
“인공행성에 자폭 병기까지. 전쟁을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놨으면서 질 것 같으니까, 왜 이러냐니?”
“그건…….”
“만약 내게 힘이 없었어도, 지구와 론델의 전력이 만만했어도, 너희가 그렇게 말해왔을까? 아닐걸? 정 전쟁이 싫었으면, 화평을 제안했어야지. 이래 보여도 대화를 시도해 온 상대를 짓밟을 만큼 악독한 성격도 아니거든.”
일방적으로 몰리는 경험을 처음 당해본지라 천왕과 마왕들은 모든 게 억울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어진 아드리안의 조소에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뭐 하나 틀린 말이 없었으니까.
“젠장, 이대로 죽을쏘냐.”
결국,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전투뿐이었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 상황을 반전할 방법은 없었다.
비록 완전한 전력은 아니지만, 전투엔 항상 변수가 따르는 법.
위기 속에서도 천왕과 마왕들은 승리 가능성을 점쳤다.
-챙!
천마족의 왕들이 무장을 갖추고,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도 변신하듯이 무장을 갖췄다.
천족, 마족의 왕 18명과 인간 2명의 전투.
18:2의 싸움이다.
너무도 불리해 보이지만, 아드리안의 눈빛에선 일말의 불안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팟!
하늘에서 금색의 광휘가 아르시아와 아드리안에게 떨어졌다.
그건 각종 상승효과가 딸린 버프, ‘여신의 가호’였다.
설마 여신의 가호를 뒤집어쓴 적과 싸우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미카엘 천왕이 헛웃음을 흘렸다.
“결국, 여신께서도 그쪽 편이란 건가?”
“아니겠냐? 너흰 여신을 치러 온 놈들이야. 잊었어?”
“먼저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협박이 아니라? 자기들도 막지 못하는 강력한 자폭 병기를 가득 끌고 오려 했으면서 뭔 대화.”
“빌어먹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놈이군.”
“뼈 맞아서 그래. 내 말이 틀렸으면 열 받을 일도 없었겠지.”
미카엘은 반드시 승리하여 아드리안의 혀를 뽑아주겠노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챙!
전투가 시작됐다.
선공은 아르시아의 검에서 시작되었으며, 보물 수준의 명검 수백 자루가 아공간에서 튀어나와 그녀를 따라 허공을 유영했다.
아르시아는 아드리안처럼 특별한 권능을 보유하고 있진 않았다.
더욱 많은 어검을 다루고, 극도로 강화된 심검이 그녀의 권능이라 할 수 있다.
완벽한 검.
마주한 모든 적을 베는 검.
그것이 신족으로서 아르시아가 손에 넣은 힘이었다.
“큭!”
“미, 미친!”
심플한 게 최고란 말이 있지 않은가.
아르시아가 검을 휘두를 때면 눈앞의 모든 장애물이 갈라졌다.
그것이 검이건, 갑옷이건, 사람이건 간에.
너무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전투였다.
-콰직! 쾅! 쾅!
반면 아르시아와 달리 아드리안의 전투는 아주 지저분했다.
뜯기고, 터지고, 짓눌리고.
그의 전투는 사람을 벌레처럼 죽였다.
그래서 아드리안과 마주하게 되면 아르시아 이상의 공포심과 혐오감이 일었다.
아무리 천왕과 마왕이란 존재가 만만치 않은 능력을 지녔지만,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를 상대로 1:1은 전투조차 성립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젠장! 젠장! 이 빌어먹을!”
어느새 모든 천왕과 마왕이 죽고 미카엘 홀로 남아 있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강림을 하는 날엔 론델이 발칵 뒤집히던 천왕과 마왕의 끝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미카엘은 급히 동료들을 되살려 보려 했다.
하지만 신역에선 부활 마법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미카엘은 그곳 남은 최후의 천왕이 되었다.
“너희 천족과 마족들의 다음 생은 윤택하고 행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여신께 부탁해 보마.”
“동정이냐?”
“그래 동정이다. 하지만 미안하진 않아. 우린 적으로 만나 서로의 목숨을 노린 사이니까. 네가 패한 건 나보다 약했기 때문이고, 내가 약했다면 반대의 입장이 되었겠지.”
아드리안의 말에 미카엘은 입술을 씹었다.
짙은 패배감에 생존 본능마저 사라졌다.
그런 미카엘을 향해 아드리안이 손을 뻗었다.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팟!
하지만 그때.
지금껏 잠자코 있던 여신이 등장하면서 아드리안은 잠시 손을 내려야 했다.
여신은 슬픔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카엘은 그런 여신을 올려 보며 이를 갈았고, 세피아는 미카엘에게 위로를 전하듯 말했다.
[미안하구나.]미카엘은 답이 없었다.
너무도 화가 나서 말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여신은 말을 이었다.
[아드리안의 말대로 너희의 다음 삶을 보장해 주마. 갈 때 원망만 가져가고, 새 삶을 두려워하진 말 거라.]“젠장.”
그 말을 끝으로 아드리안은 미카엘의 목을 비틀었다.
이로써 신역에서의 전투가 끝이 났으며, 천마족과의 전쟁 역시 완전히 기울었다.
아드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여신에게 말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그녀가 부탁한 평화였다.
그에 세피아는 엉망이 된 신역을 바라보다가 쓰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할 거다. 미래가 다시금 피로 얼룩지지 않기 위해서.”
“그래야죠.”
아드리안과 아르시아는 여신 세피아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