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134)
134. 서리 부족.
[오크 차원]희뿌연 먼지와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
대지는 까맣고, 숲은 사라졌으며, 산은 무너졌고, 강은 메말랐다.
“맙소사! 대체 여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차라리 저 끔찍한 대수림이 나았네······.”
라이너와 크리스티나는 눈앞에 폐허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나도 좀 충격이긴 했다.
엘프 차원과 드워프 차원도 망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환경이 엉망은 아니었다.
이곳은 화산재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흩날리고 있어 숨쉬기도 힘들었다.
“쿠오크! 타일러여! 돌아가자.”
쿠훌린이 다가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와서.”
“쿠오크! 이런 폐허 속에 살아남을 오크는 없다.”
쿠훌린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레드불 제사장이 다가왔다.
“쿠오크! 타일러여! 인정하기 싫지만, 쿠훌린 족장 옳다. 이 세상은 재만 남았다.”
“쿠오오오!”
“쿠오크!”
힘없는 오크들의 울림이 처량하다.
그들이 이곳을 떠났을 때 이미 세상은 불바다였다.
쿠훌린의 말로는 이 땅을 이렇게 만든 것이 화염의 거수라고 했다.
그가 묘사한 생김새를 듣자마자, 난 단번에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레기우스와 불카누스!
레기우스는 이데아 제국의 위대한 열두 기사였으며 화염의 마법사였고, 불카누스는 거신 시대의 마지막 화염의 드래곤이었다.
열두 기사와 수많은 영웅이 힘을 합쳐 이 땅을 침범한 초거수를 죽였으나, 레기우스는 죽은 초거수의 포자를 흡입해 온몸이 화염에 이글거리는 괴물이 됐고, 불카누스는 포자와 초거수의 피를 마시고 거대해졌으며 화염과 재를 뿜어내는 저주받은 거수가 됐다.
이 오크 세상을 멸망시킨 것이 두 괴수였다.
어떻게 그 괴수들이 오크 차원으로 왔는지, 왜 이 세상을 폐허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파괴하고, 또 파괴했으며, 거수는 더 커졌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덩어리에서 화염의 괴수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화염 괴수들이 오크들을 공격했다.
‘아쉽지만, 여긴 내가 봐도 가망이 없겠어.’
비공정 위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푸른색 식물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물이 없었다.
이곳은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에테나가 말했다.
“타일러님! 혹시 이곳도 섬 지역이 있으면 그쪽으로 피하지 않았을까요?”
난 쿠훌린을 쳐다봤다.
“오크들이 바다 건너 큰 섬에 피신할 가능성은 없어?”
“쿠오크! 오크는 큰 배를 만들지 못한다. 바다 못 간다.”
한가지 희망이 사라졌다.
에테나도 오크어를 할 줄 알기에 함께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크를 왕창 구해가려고 난민 기지에 들려 추가로 완성된 드워프제 비공정 5개를 추가해 총 11대나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이 비공정엔 오크 해병대 100명과 11척의 비공정을 조종할 엘프 200명, 기간트 기사 넷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돌아가야 한다니······.’
오크는 워낙 많이 먹기에 일부러 주변 영지와 헬다임까지 가서 식량도 엄청나게 챙겨왔건만······, 이제 다 소용없었다.
그렇게 체념하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
“쿠훌린, 혹시 이곳에도 추운 지방이 있나?”
“쿠오크! 북쪽은 너무 춥다. 식량 부족하다. 오크 살지 않는다.”
“하지만 오크는 추위에 강하잖아. 피신했을 수도 있지.”
쿠훌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모르니까 북쪽으로 가볼까요?”
에테나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화염 괴수들이라 추운 곳에선 위력이 떨어질 거고, 왠지 나라면 뜨거운 열기를 피해 추운 지역으로 올라갔을 것 같았다.
그때 제사장 레드불이 그의 몽둥이를 들고 말했다.
“쿠오크! 옛날에 북쪽 얼음에 땅에 서리 부족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그들이 아직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가볼 만하겠는데?”
잠깐 고민했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확인은 해봐야 했다.
“기수를 북쪽으로 돌려라!”
“네!”
촤르르르르!
우린 북쪽으로 향했다.
***
비공정은 구름 위를 날아간다.
두 달이나 북쪽을 항해가고 있었지만, 아직 산맥은 보이지 않았다.
희박한 공기 때문인지, 호흡이 힘들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매우 추웠다.
하지만 이 아래는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져 있었기에 이곳 하늘이 백 배쯤 나았다.
엘프나 인간들은 갑판 안쪽으로 들어가 추위를 피했지만, 나와 오크들은 북쪽 대륙의 스토막 산맥을 찾고 있었다.
스토막은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맥으로 수천 미터의 높이와 1년 내내 눈과 얼음에 덮여 있는 산맥이었다.
그곳이라면 오크가 생존할 가능성이 있었다.
턱벅! 터벅!
쿠훌린이 선미 갑판으로 올라았다.
“쿠오크! 타일러여! 고맙다.”
“생뚱맞긴! 우린 형제라며? 형제가 이 정도는 해야지.”
“쿠오크! 그대는 정말 대족장의 영혼이 깃든 자다. 나 쿠훌린, 늘 감사하다.”
평소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은 오크였다.
그들의 감정 표현은 분노하고 함성을 지르는 것이 전부였지만, 오늘 쿠훌린은 뭔가 달랐다.
“다른 오크도 너희와 성향이 비슷해?”
“쿠오크! 오크도 부족마다 다르다! 인간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오크는 용맹한 자를 최고로 치며, 거짓말하는 자를 배척한다. 그리고 은혜는 반드시 갚는다. 모든 오크 똑같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다른 오크 부족도 이들 사이얀족처럼 은혜를 갚는다는 말이었다.
그건 인간보다 확실히 낫다.
“쿠오크! 타일러여! 저길 봐라!”
쿠훌린이 놀란 표정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엔 거대한 대륙이 보였다.
아니 저건 구름 위로 솟은 산맥이었다.
“오! 절벽에 눈이 있다.”
“쿠오크! 눈 덮인 숲도 보인다!”
“쿠오오오오크!”
갑판에 오크들이 흥분해 소리를 질렀다.
눈에 덮인 숲이었지만, 그것은 아직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증거였다.
어쩌면 레드불 말처럼 아직 살아있는 오크 일족이 있을 수도 있었다.
“좋아! 다들 꽉 잡아라! 산맥을 넘는다!”
휘이잉! 휘이이이잉!
거센 눈보라가 친다.
화산재만 보다가 하얀색 눈보라를 보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거대한 산맥이 회색 구름을 막고 있었고, 산맥 너머는 하얀 얼음의 땅이었다.
하지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쿠오크! 타일러여! 이런 곳에서 어떻게 오크를 찾는가?”
쿠훌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나도 궁금하다.
높은 산맥과 혹독한 날씨 때문에 아직 화염 괴수들의 공격을 받지 않은 듯싶었다.
그렇게 산맥 안쪽으로 한참을 날아가자, 조금씩 눈발이 약해졌다.
그리고 시야가 트이자, 눈 덮인 거대한 숲이 보였다.
“오크도 추울 테니, 불빛이나 연기를 찾아라!”
“쿠오크 알았다!”
난 그래도 레어 조끼를 입고 있었기에 추위를 막아주고 있었지만, 오크 해병들은 지금 강습 갑옷도 입지 않고, 맨살로 갑판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강습 갑옷은 아무래도 시야가 제한적이라 지금은 벗고 있었다.
“쿠오크! 연기다! 연기가 보인다!”
선수에 있는 레드불이 소리쳤다.
저건 희망의 연기였다.
멀리서 보니, 사방은 눈과 얼음에 덮여 있었는데 일렁이는 커다란 호수가 보였고, 무슨 일인지 그 주변만은 푸른색이 가득했다.
‘아래에 용암이라도 흐르나?’
가까이 다가가자, 호숫가에 수백 채의 집들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를 쳐다보는 오크들도 보였다.
저곳은 오크 마을이었다!
오크들이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쿠오크! 타일러여! 우릴 근처에 내려다오!”
오크들이 우릴 적인 줄 알고 공격할 수 있기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비공정을 착륙시켰다.
그리고 오크 해병들이 내려서 오크 마을로 향했다.
우린 잠시 호숫가에서 기다렸다.
“신기하네요. 여긴 봄날처럼 따뜻해요.”
에테나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나도 호숫물에 손을 넣어봤다.
얼음같이 차가운 줄 알았는데, 물이 미지근했다.
그리고 호수에 물고기도 산다.
“영주님, 여기라면 오크가 계속 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크리스티나가 물었다.
“이 상태를 지속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산맥 아래 세상은 이미 망했어. 여기도 오래 버틸 순 없을 거야.”
크리스티나와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영웅 기사들의 표정이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들은 이곳까지 오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몇 번이나 부딪쳤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비공정을 타고 가다가 B등급 이상의 괴수를 발견하면 무조건 사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A등급 괴수 5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했을 땐, 정말 다들 죽을 뻔했다.
하지만 내가 드라우켄을 꺼내자,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됐다.
물론 기사들은 경악했지만.
그리고 수백 마리의 늑대 괴수 무리와 만났을 땐, 30기나 되는 내 그림자 기사단을 보고 다시 경악했다.
그때부터 기사들은 내 말이면 아예 죽는시늉까지 한다.
나더러 거신이 내린 마법사라나.
진짜 거신 마법사도 있는데······.
“저기 오네요.”
라이너가 쿠훌린과 오크들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쿠훌린, 어떻게 됐어? 내 말은 전했어?”
“쿠오크! 타일러여! 지금 이곳엔 저들의 족장이 없다. 이곳은 노인과 여자, 아이만 있다.”
“그래?”
“쿠오크! 남쪽 얼음 협곡에 가면 족장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오크 일족의 족장도 그곳에 있다.”
“얼음 협곡이라, 그리 이동하자!”
쿠훌린이 정보를 알아 왔다.
이곳은 산맥 내부에 거대한 분지였고, 이런 따뜻한 호수가 십여 개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은 원래부터 크로우족이라는 서리 오크 부족이 대대로 살던 곳인데, 북쪽에 다른 2개 부족이 괴수에게 쫓겨 도망쳐 합류해, 현재는 3개 부족 만여 명이 넘는 오크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음 협곡에서 족장들과 오크 전사들이 산맥으로 들어오는 화염 괴수를 막고 있다고 했다.
‘만 명이 넘다니, 이거 오크들을 다 옮기려면 3번은 왕복해야겠네······.’
하지만 그건 행복한 고민이었다.
오크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까.
우린 지금 그 얼음 협곡을 향해 가고 있었다.
***
눈보라 치는 협곡 위쪽에 비공정을 내렸다.
그리고 쿠훌린과 오크 해병들이 먼저 내렸고, 우린 이번에도 기다렸다.
잠시 후 쿠훌린과 피부가 회색인 서리 오크들의 안내를 받아 협곡 아래로 이동했다.
이곳은 협곡 중간에 있는 거대 동굴이었다.
“쿠오크! 난 크로우족 족장 호빌테다! 다른 오크들은 우릴 강철 서리 부족이라고 부르지.”
“쿠옥! 난 카이와족 족장 아나키드다!”
“쿠오크! 난 아라파족 족장 랑가스다!”
세 명의 오크 족장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7천 명의 부족원을 거느린 서리 족장이 가운데 앉았고, 3천 명의 부족원을 거느린 카이와족 족장이 오른쪽에 앉았다. 그리고 2천 명의 부족원을 거느린 아라파족이 왼쪽에 앉았다.
특이한 것은 서리 부족은 키가 다른 오크들보다 한 뼘은 컸고, 카이와족은 족장과 대전사가 모두 여자인 모계 부족이었다.
“반갑다! 난 타일러다!”
“쿠오크! 쿠훌린 족장에게 들었다. 대족장의 영혼을 잇는 자여! 말하라! 우린 선조의 말을 듣겠다.”
난 오크들에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쿠훌린과 사이안족 오크를 예로 들었다.
세 족장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서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쿠오크! 우리 크로우족은 화염 괴수를 잘 막고 있다. 그리고 수천 년간 살아온 조상의 땅을 떠나지 않는다!”
“쿠옥! 우리 카이와족도 이 땅을 떠나지 않는다!”
“쿠오크! 아라파족도 이 땅에 남을 것이다!”
설득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아무래도 얼음 협곡을 오르는 화염 괴수를 잘 막고 있었기에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산맥 안쪽에 있는 따뜻한 거대 분지에 먹을 것이 있었으니 계속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크로우족은 이곳에서 수천 년을 살았으니까.
“쿠오크! 타일러여! 그대는 할 만큼 했다. 저들의 의지가 확고해 꺾을 순 없다.”
쿠훌린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도 오크들이 많이 살아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은 시한부 인생.
언젠간 모두 죽을 것이다.
뿌우웅! 뿌우웅!
밖에서 뿔나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무슨 소리지?”
“쿠오크! 화염 괴수가 올라온다!”
“쿠옥! 대족장의 영혼을 잇는 자에게 우리 실력을 보여주자!”
“쿠오크! 쿠오크!”
우린 족장들을 따라 협곡을 막고 있는 오크 요새로 갔다.
이곳은 과거 서리 오크 부족과 북쪽의 오크 부족들이 전쟁을 치를 때 사용했던 요새로 서리 오크의 땅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쿠르르르!”
“콰르르륵!”
그리고 저 멀리 협곡을 향해 달려오는 붉은 괴수들이 보였다.
‘오크가 어떻게 싸우는지 잠깐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