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176)
176. 타일러 대공.
이번엔 직접 안드레아스를 맞이하기 위해 거대 비공정 후미에 있는 착륙장으로 향했다.
“어서 오시오. 안드레아스 경.”
“휴! 다행히 시간에 맞춰왔소.”
비공정에서 내린 안드레아스는 눈에 띄게 핼쑥해졌다.
마치 지난 보름 동안 한 끼도 안 먹은 사람처럼.
“들어갑시다.”
안으로 들어간 그에게 차를 대접했다.
안드레아스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곤 말했다.
“기다려주어 고맙소.”
“기다리는 게 뭐가 어렵겠소. 설득하는 게 어려운 거지. 그리고 난 약속을 지켰을 뿐이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오. 나부터도 그렇고.”
말을 하는 안드레아스의 얼굴 살은 많이 빠졌는데, 왠지 표정은 편해 보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이 저럴까?
“그래, 루이스 황자의 허락은 받으셨소?”
“내가 경에게 말한 것들은 전부 허락하셨소. 우리가 이기지 못한 이유가 타일러 경이란 소리에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짓기도 하셨지만, 이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셨소.”
“그런데 루이스 황자가 안드레아스 경을 그냥 순순히 보내주다니 그건 좀 의외인데?”
안드레아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사실 내가 포로로 가는 건 말하지 않았소.”
“뭐요?”
“그걸 말했다간 날 보내지 않으실 게 뻔한데, 어떻게 말하겠소. 그냥 내 발로 투항한 것으로 해주시오. 그럼 덜 속상하시겠지.”
“투항이라······.”
“어차피 포로로 가나, 투항해서 가나 다시 가디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가 아니요. 윌리엄 원수가 날 살려 둘 것 같지도 않고.”
그는 이미 자기 죽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루이스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군주된 자가 자기 부하를 적국의 포로로 보내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지금처럼 투항이라면 루이스의 자존심을 조금은 지켜줄 수 있었다. 물론 루이스나 부하들은 모두 사실을 알겠지만.
“알겠소. 투항으로 말해두겠소.”
안드레아스가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 마셨다.
“차향이 아주 좋소. 내 나이면 이런 차나 마시며 소 일거리나 해야 하는데 전장이라니······.”
안드레아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동안 너무 힘들었소.”
난 왠지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가끔은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그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벌여놓은 일이 태산이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니 나도 유유자적한 영주 생활은 당분간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안드레아스도 더는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아베르크 제국과 항복 협상은 누가 할 것이오?”
“라몬 후작과 세르게이 대장이 맡게 될 거요.”
“라몬 후작이라면 큰 손해는 보지 않겠군.”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소.”
“안드레아스 경의 얼굴이 반쪽이 된 거 보면, 루이스 황자에게 뭔가 남긴 것이 아니오? 예를 들어 앞으로 제국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계획 말이오.”
안드레아스가 피식 웃었다.
“남기긴 했소. 절대 타일러 경의 적이 되지 말라고 말이오.”
나도 피식 웃었다.
왠지 진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언제 우리 쪽 이데아 제국 발굴지에 한 번 찾아가 보시오.”
“······?”
“누가 발굴지 입구 기지와 지키는 병력을 초토화해서 발굴 작업은 중지됐소.”
살짝 뜨끔했다.
내가 다 박살 냈거든.
“그런데 거긴 왜?”
“발굴지 중간쯤에 신전 같은 것을 발견했소. 우리 마도 공학자들은 도저히 뭔지 모르겠다고 하더이다.”
“신전?”
“지하로 이어진 길을 발견했는데, 계속 따라가다 보니 거대한 신전 입구 같은 장소가 나오지 뭐요. 그런데 문에 무슨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지 기간트로도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소. 경이라면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걸 왜 내게 말해주는 것이오?”
“어차피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고, 거신들이 그렇게 깊숙이 신전을 지은 것을 보면 뭔가 안에 중요한 것이 들어있지 않겠소?”
“그러니까 그걸 왜 내게?”
“일종의 뇌물이오.”
“뇌물?”
“좋은 보물이라도 나오면, 우리 가디언 제국과 루이스 저하를 잘 봐달라는 뇌물이오.”
“허!”
안드레아스는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줄 알았더니, 마지막까지 루이스와 가디언 제국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정말 좋은 보물이라도 발견한다면, 그냥 내가 아주 잘 써주지.
“한번 가보긴 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시오. 나도 들어갈 수 있을진 모르니까.”
거신 마법사인 알리사에게 물어봐야겠다.
안드레아스가 차를 마시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꾸었나 보오. 아베르크 제국을 점령하고 대륙을 장악하는 꿈을 꾸다니.”
안드레아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 전쟁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다니······.”
“전쟁을 누가 막겠소. 인간이 있는 이상 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요. 차라리 내가 가진 것, 내 사람들을 지키는 일에 힘쓰는 것이 낫지.”
“하하! 타일러 경의 말이 맞소.”
안드레아스가 크게 웃더니 날 쳐다봤다.
“경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소만?”
“?”
“대륙 정복 말이오.”
“에이! 옆에서 헛바람 넣지 마시오.”
난 손을 휘휘 저었다.
“차 잘 마셨소. 타일러 대공 저하.”
“뭐요?”
“이제 공국의 왕이 아니시오. 그러니 대공으로 불러야지.”
“듣기는 좋군.”
안드레아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공 저하, 그만 갑시다.”
“그럽시다.”
안드레아스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제 아베르크 제국에 투항하러 가는 것이다.
난 전진했던 병력을 뒤로 물렸고, 안드레아스를 윌리엄 총사령관에게 인계했다.
그렇게 가디언 제일의 노장은 내 손을 떠났다.
***
항복 협상은 생각보단 빠르게 진행됐다.
물론 난 그 자리에 참석하진 않았다.
아베르크는 하나라도 더 빼앗으려 하고, 가디언은 하나라도 더 주지 않으려는 싸움이었다.
아베르크와 가디언은 자신들의 정보를 이용해 서로의 전력을 알아보았고, 실사 같은 작업도 병행했다.
그렇게 약 500기의 마장기와 중형 비공정 15척, 소형 비공정 20척을 인계받았다.
룩급 마장기와 비숍급 마장기도 제법 많았기에 오리지널 마장기는 넘겨받지 않았다.
이것이 가디언 제국의 전력의 30%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베르크 제국 협상단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100개의 강습 마장기가 생겼다.
이제 당분간 기간트 생산은 필요 없었다.
마장기의 마석 배터리 부분만 개조해서 쓰면 충분하니까.
그럼 남은 괴수 부산물은 오로지 초거대 비공정과 오리지널 기간트 생산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
[아베르크 제국 수도 에르가드]수도 외곽에 내가 탄 거대 비공정이 멈춰 섰다.
마르틴 국왕이 찾아왔다.
“타일러 후작, 아! 아니지. 타일러 대공, 그럼 우린 먼저 가서 기다리겠소.”
“전승절 기념일이 내일입니다. 참석하시고 가시죠.”
“내가 있으면 케인 황제가 얼마나 불편하겠소. 오줌을 지릴지도 모르오.”
“제가 있으니 제 뒤에 숨을 겁니다.”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아무튼, 우리 기사들도 집을 너무 오래 떠나 있었소. 타일러 경이 오기 전까지 휴식을 줄 생각이오.”
“하긴 이번에 다시 대수림으로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그게 좋겠네요.”
사람이 매일 싸울 순 없으니까.
쉴 땐 쉬어야지.
“비공정은 잘 쓰겠소.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아 다행이오.”
“그럼 곧 다시 뵙겠습니다.”
“고생하시오.”
아리칸의 병력이 내게 올 땐 중형 비공정 20척이었지만, 돌아갈 때, 중형 비공정이 40척이 되어 돌아갔다.
그리고 록체스터 대영지의 기간트 공방도 내가 곧 아리칸으로 옮겨줄 테니, 그들은 나와 함께 해서 많은 것을 얻어 갔다.
그래서 다시 수인족 차원으로 넘어갈 때, 마르틴 국왕과 크루세이더 기사단은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전승절 기념일]아베르크 제국이 가디언 제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가디언 제국의 서부 일대와 18개의 도시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지난 300년 역사 동안 역대 황제 중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케인 오르도 황제가 해낸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고.
그리고 황제가 직접 참가하는 논공행상과 대연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랬기에 아침부터 헬가우스 호가 부산했다.
“조금 어색하긴 하네요.”
어깨가 훤히 드러난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에테나가 자꾸 드레스를 만지작거렸다.
“오늘만 참아.”
“네······.”
“근데 나는 왜 드레스를 입으라는 거야?”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실 족장이 미간을 좁혔다.
“넌 내 경호야. 옆에 딱 붙어 있어.”
“칫! 지가 젤 강하면서.”
마지막으로 앨리슨이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 잘 어울리는데!”
“아이참! 어색해 죽겠어요.”
“아니야. 키가 커서 그런지, 드레스가 아주 잘 어울려.”
“그럼 다행이고.”
“이제 시집가도 되겠어.”
“삼촌부터 먼저 가시죠. 이제 서른이 되신 건 아시죠?”
“어? 기념일에 늦겠다. 어서 가자.”
난 먼저 비공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세 미녀도 함께 비공정에 타고 황궁 외성에 마련된 기념식장으로 향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있었다.
황제와 황실에서 이혼녀인 6황녀와 이제 14살인 11황녀까지 동원해 나와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첩보를 찰스 그레빌 전 정보국장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다수의 귀족 가문에서 미인계를 써서 나와 혼담을 추진하려고 수작을 부릴 것이다.
그게 귀찮아서 이 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이다.
에테나는 세계수의 열매를 먹고, 엘프계 최고의 미녀로 거듭났고, 청초한 분위기를 풍겼고, 마르실은 섹시하고 농염한 매력이 풍기는 미녀 엘프였다.
그리고 앨리슨은 나이도 어리고, 젊고 귀여운 미녀를 담당했다.
이름하여 미녀 군단.
이렇게 세 사람이 내 옆에 있으면 웬만한 여자는 오징어가 되기 때문에 감히 옆으로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의 잘생김 때문에 날파리가 꼬이는 것도 방지하고.
“세상에!”
“오! 타일러 후작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무슨 소리야. 이미 제국을 구했잖아!”
“아! 그런가? 아무튼, 너무 부럽다······.”
나와 세 미녀가 지날 때마다 주변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이래서 옛날 판타지 소설에서 하렘물이 인기가 있었나 보다.
왠지 함께 걷는 내 어깨도 올라가는 것 같고.
난 윌리엄 사령관과 시안 황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두 사람과 가볍게 인사하고, 황제가 나오길 기다렸다.
우리 셋이 모이자, 주변엔 아무도 다가오지 못했다.
차세대 제국의 실세들이 모인 것이니까.
물론 차세대라고 하기엔 윌리엄 사령관의 나이가 좀 많긴 했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 폐하 납시오!”
케인 오르도가 자신의 딸인 6황녀의 부축을 받고 걸어 나왔다.
논공행상과 연회를 겸하는 자리라, 그 역시 화려한 복장과 평소에 너무 무거워 잘 쓰지 않던 황제관까지 쓰고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논공행상은 빠르게 진행됐다.
먼저 윌리엄 총사령관의 활약상을 법무관이 십분 넘게 떠들었고.
“윌리엄 호세스 원수를 육해공군 통합 사령관에 임명하고, 공작의 작위를 내린다.”
마지막에 황제가 치하했다.
“와아아아!”
사방에서 박수 세례가 터졌다.
내가 일등공신 어쩌고 하더니, 상은 높은 사람부터 받았다.
두 번째 역시나 공을 먼저 한참을 떠들고.
“시안 오르도를 동부군 사령관에 임명하고, 새로 영입된 동부 영토의 국왕으로 임명한다.”
“와아아아!”
왕이라······.
황태자가 아니라 시안에게 왕이란 자리를 주었다.
그건 자신의 후계자가 시안 오르도란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계속 황제를 해 먹겠다는 소리였고.
“타일러 빈스 후작은 앞으로 나오시오.”
척척척!
한쪽 무릎을 꿇고, 황제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법무관이 내 공을 먼저 나열했다.
그런데 달랑 1분 만에 끝났다.
요약하면 그냥 공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가 한 일이 훨씬 더 많은데, 뭔가 많이 빠진 것 같다.
뭐, 상관은 없었다.
난 받을 것만 받으면 되니까.
“타일러 빈스 후작에게 대공의 작위를 내린다. 록체스터 대영지와 북서부 6개 영지를 하사한다.”
황제가 대공을 상징하는 반지를 내 손에 직접 끼워주었고, 공식 문서를 건네주었다.
짝짝짝짝!
“와아아아!”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고, 함성이 가장 컸다.
내가 대공이라니······.
기분이 살짝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