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180)
180. 코린트 왕국.
“허! 여긴 완전 천혜의 요새로군.”
비공정에서 내려다본 구름 산맥.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골짜기와 뾰족하고 날카로운 산등성이가 줄지어 있었다.
저길 오르고 넘는 건 괴수라고 해도 불가능할 듯 보인다.
그리고 유일한 입구는 협곡을 지나 굽이진 절벽 길.
저 길은 거신 둘이 걸으면 꽉 찰 것 같다.
‘저러니 괴수가 몰려온다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지.’
지킬 자신이 있는 거다.
하지만 세상이 망하면 거신이라고 버틸 수 있을까?
일찍 죽느냐 조금 늦게 죽느냐의 차이지.
고도를 높여 산맥 위로 올라오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짙은 구름이 우릴 막아섰다.
알리사가 말했다.
“주군,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걸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에테나 고도를 낮춰.”
알리사와 난 절벽 길에 내리고, 에테나는 비공정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조심하세요. 무슨 일 있으면 무전기를 켜세요.”
“그래. 다녀올게.”
내 인형의 집엔 대형 무전기가 한 대 있었다.
그러니 10km 안이라면 연락을 취할 순 있었다.
하지만 굳이 연락할 일이 있을진 모르겠다.
알리사와 길을 따라 올라갔다.
“알리사, 이거 자연적인 구름 아니지?”
“자연적인 구름도 있지만, 이렇게 진한 것을 보면 어딘가 안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비공정으로 코린트 왕국을 공격하려고 했다면 실패했겠네.”
“마법진을 먼저 찾아서 파괴하고 들어가는 방법은 있습니다. 다만 마법진은 저 골짜기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을 겁니다.”
알리사가 가파른 골짜기를 가리켰다.
마법진이 어디 있는지 알더라도 저길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 구름만 보더라도 코린트 왕국을 공격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아직 나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있을 때, 이번에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한참을 오르자 곧 넓은 길이 나왔다.
“이제 곧 성문에 도착합니다. 제가 일단 말을 할 테니, 주군은 그냥 따라오십시오.”
“알았어.”
“저기 거신들을 설득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말은 해봐야지.”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자들이라 이야기가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심해?”
“휴우! 이곳의 마법사들은 특권의식과 우월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몇몇은 마치 자신들이 신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허! 설득은 쉽지 않겠군.”
고개를 흔들었다.
“원로들의 마법 실력은 어느 정도야?”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부분 저보다 떨어집니다. 마나량도 높진 않고요.”
“뭐?”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곳 차원으로 탈출한 마법사들은 차원 마법진까지 쓸 수 있는 뛰어난 마법사들이었다.
“오랜 세월과 여러 세대를 거쳐오면서 실력이 많이 퇴보했군. 선조들이 지하에서 통곡하겠어.”
눈앞에 그 선조인 알리사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사라진 마법이 너무 많습니다. 한 계열에만 해도 수백 개의 마법이 있는데, 지금 코린트의 마법사들은 평생토록 겨우 십여 개의 마법을 익힌다고 합니다. 아마 머지않아 이곳 마법사들의 시대도 끝날 겁니다.”
“그 전에 괴수들에게 끝날걸.”
알리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주군께서 마법서를 잘 챙겨 놓으셔서 다행입니다.”
내 인형의 집엔 메제트의 탑에서 챙긴 마법서가 많았다.
화염과 얼음 관련 마법서가 수백 권이었고, 다른 계열 마법서도 다른 왕국의 관문으로 간다면 얼마든지 챙길 수 있었다.
다만 아베르크 제국 메제트의 탑에 있던 대지 마법책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허! 정말 거대하군!”
구름이 걷히자마자, 거대한 검은색 성벽과 성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은 200미터가 넘어 보이고, 성문의 높이도 5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입구에 기사와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알리사는 기사에게 다가가 뭔가를 건넸다.
“데마르 원로님의 손님이시군요.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기사가 성문 옆에 작은 쪽문을 열어 주었다.
알리사가 내게 손짓하자, 난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기사와 병사들이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세상에! 수인보다 더 작아.”
“그런데 우리와 똑같이 생겼는데?”
“그러게 신기하다.”
자신들과 생긴 건 똑같이 생겼는데, 크기가 작으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한땐 10만이 넘는 거신이 이곳에 살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권력을 잡으며 강제로 인구수를 조절하는 정책을 펼쳤고, 수 세대가 지나자 지금은 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넓은 거리에 돌아다니는 거신이 별로 없었다.
“주군, 이쪽입니다.”
알리사를 따라 걸었다.
길거리에서 가끔 마주치는 거신들은 모두 날 내려다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거인국으로 간 걸리버의 기분이 나 같을 것 같다.
우린 알리사가 알고 있는 원로 마법사의 저택으로 향했다.
***
우린 거대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알리사님, 또 오셨군요.”
“원로님, 오늘은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원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역시 인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타일러 대공 저하십니다. 제가 모시는 분입니다.”
“알리사님께서 모시는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데마르라고 합니다.”
“데마르 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허! 타일러님께서 거신어를 유창하게 하시는군요.”
데마르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리사에게 들으니 우리를 도우려고 하셨다고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저쪽 차원의 거신들이 멸망했고, 이곳에 남은 거신이 전부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은 서서히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고 오래전부터 느껴졌습니다.”
“그래요?”
“인구 1만 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철저한 계급 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마법사들은 마법사들끼리 결혼하고, 기사들은 기사들끼리만 결혼합니다. 병사는 병사들끼리 하고요. 거기서 일정 숫자가 늘어나면 남녀 간의 만남을 아예 통제해 버립니다.”
“독재나 마찬가지군요.”
“그렇습니다. 철저한 통제로 이루어진 사회와 국가에 미래는 없습니다. 실제로 거신의 마법은 점점 퇴화하고, 기사들은 마나를 쌓는 일조차 게을리하고 있어 실력이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거신들은 꿈도 희망도 없고, 그저 의미 없는 삶이 반복되는 겁니다. 전 이것을 탈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원로들과 마법사들의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듣기만 해도 암울한 사회였다.
“그런데 알리사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선조 거신들이 거대 장벽을 만들어 대수림의 확장과 괴수를 막고, 인간으로 진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쪽 차원의 인간은 우리 거신들의 후예니까 도와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원로들이 반대했군요.”
“네. 저들을 설득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뜻을 같이하는 일부 거신들과 코린트 왕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리사가 말했다.
“제가 주군께서 받아주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날 너무 잘 아는군.”
거신이 많을수록 괴수를 막아낼 확률이 올라가지 않겠는가.
이제 본론을 말할 차례였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제가 마탑의 원로들과 마법사들을 만나 직접 설득하겠습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데마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원로들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선조이신 알리사님의 말도 듣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수석 원로인 데스몬드는 괴수 군단을 믿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 거신 기사와 병력을 보내는 것에 무조건 반대하고 있습니다.”
난 알리사를 바라보았다.
알리사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데마르에게 말했다.
“다른 차원에 병력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대군주와 괴수 군단은 이곳 차원에 와 있습니다.”
“네?”
“벌써 수인들을 공격했습니다.”
데마르는 경악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럴 수가! 알리사님께서 말하는 재앙이 결국 이곳에 왔군요.”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차원도 공격받고 멸망했으니, 이곳 차원도 위험할 거라고요.”
“그래도 원로들은 믿지 않을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일단 제가 설득할 수 있게 자리만 마련해 주십시오.”
내 말에 데마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전 이제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이틀 후 마탑 전체 회의에서 원로 자리를 내놓게 되어 있습니다.”
“마탑 전체 회의요?”
“네. 수인들이 마석과 괴수 부산물을 가져오지 않아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는데,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해 수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자는 안건을 전체 회의에서 다룬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 해임안도 다룰 예정이고요.”
“그럼 원로들이 다 오겠네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원로들의 제자들과 중급 마법사들까지 거의 다 모일 겁니다. 소규모 병력이 아니라 코린트 왕국 전력의 절반을 보내자는 투표를 하는 중요한 자리니까요.”
“잘됐네요. 그럼 저를 그곳에 데려다주십시오.”
데마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외부인을 극도로 꺼립니다.”
“괜찮습니다. 건물 안으로만 들여보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휴! 좋습니다. 제 가방에 숨겨서 들어가지요.”
데마르가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주군, 그럼 전 어떻게 할까요?”
“회의장 밖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의 접근을 막아줘.”
“네? 설마?”
“그래 더는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을 신경 쓸 시간이 없어. 지금은 수인들의 힘을 모으고 방비를 철저히 할 때야.”
“저들을 살려 주실 순 없겠습니까?”
“나야 그러고 싶지. 하지만 이대론 이곳의 거신들도 모두 전멸할 거야. 마법사들을 살리려다 왕국의 거신들을 다 죽일 건가?”
알리사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타일러님께서 원로들과 마법사들을 다 죽여요?”
난 데마르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소. 대신 데마르 경께서 남은 거신 기사들과 병사들을 이끌어 주시오. 그리고 함께 괴수 군단을 막읍시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원로들은 코린트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들입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중급 마법사까지 수십 명이 모이는 마탑 전체 회의입니다. 알리사님 같은 고위 마법사 10명이 오면 모를까, 그들을 죽일 순 없습니다.”
데마르 원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알리사는 데마르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럼 주군께서 최대한 설득해주십시오.”
“나도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괴수를 막는 데 쓰고 싶은 사람이야. 내 의식을 들여다봐서 잘 알 텐데?”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살려주십시오.”
“노력해 보지.”
“감사합니다.”
알리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데마르는 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타일러 경께서 그럴 능력이?”
알리사가 피식 웃었다.
“저 같은 마법사는 10초면 죽이실걸요.”
“네? 저, 정말입니까?”
“10초는 그렇고, 한 30초는 걸리지 않을까? 알리사는 워낙 얼음 방어 마법이 뛰어나니까.”
“허!”
데마르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난 데마르를 보며 말했다.
“혹여 잘 아는 마법사나 뜻을 같이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그 전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좋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솔직히 원로들과 마법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빙결의 오브 하나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진짜 위험할 때 사용해야 할 비밀 무기였기에, 이번엔 내 마법인형을 쓸 생각이었다.
물론 내 설득이 잘 통한다면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고 이곳에 기사들의 갑옷을 만드는 거신이 따로 있습니까?”
“뱅커스 가문이 대대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주인 스텐 뱅커스도 원로입니다.”
하긴, 갑옷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갑옷에 마법진을 새겨 넣는 것이 중요한 거다.
마법을 알아야 마법진을 새길 수 있었고.
“혹시, 그 스텐 뱅커스를 따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