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2)
2. 전출.
“그러니까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단 말이야?”
“네. 제가 누군지, 이곳이 어딘지, 부모님과 가족이 누군지도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하아!”
더블란은 땅이 꺼질 정도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평소 타일러는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는 어리숙한 사내였기에 내 말이 거짓말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듯했다.
“쓰벌, 좆 됐네. 난 더블란 중위다. 네놈 상관이고, 너는 타일러 빈스 소위다. 기억해라.”
“네.”
“너 이 새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여기 앉아 있어. 아무래도 대장님께 보고해야겠다.”
더블란은 날 혼자 두고 밖으로 나갔다.
여긴 3층 구석에 있는 내 집무실.
내부는 좁았으나 깔끔했고, 책상과 의자, 책장, 옷걸이가 하나씩 있었다.
더블란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일어서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와! 공기 죽이네.”
이런 신선한 공기가 대체 얼마 만인가.
마치 숨만 쉬어도 건강해지는 느낌.
‘개새끼들 핵은 쓰지 말라니까!’
갑자기 전생의 기억이 떠올라 부아가 치밀었다.
초거수를 공격한 수백 개의 핵폭발 위력은 강력했지만,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지구 멸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문제는 폭발의 영향으로 지구 곳곳에 화산이 터졌고, 지진이 발생해 피해가 몇십 배나 커졌다는 것이다.
백두산이 터져 한반도가 화산재에 뒤덮이고, 중국과 일본의 화산들이 연이어 터지고, 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것도 이때였다.
게다가 카르마탄은 죽지도 않았고.
‘멍청한 정치인들부터 싹 다 죽였어야 했는데······.’
녀석들 때문에 지구 멸망이 가속화됐기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일을 떠올려서 뭐하겠는가.
이제 난 헌터 고강해가 아니라 타일러 빈스 소위다.
내 이름을 다시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중세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들어왔다.
건물 바로 앞엔 넓은 정원이 있었고, 담장 너머엔 커다란 광장이 보였다.
광장 가운데 분수가 뿜어지고, 주변엔 찻집이 줄지어 있었다.
사람들은 찻집 테라스에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다.
‘세상 평화롭네······.’
푸드드득!
광장 위로 비둘기 무리까지 날아오르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왠지 이런 세상이라면 여유롭고 즐거운 중세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긴 전생에 그만큼 싸웠으니, 이젠 좀 쉴 때도 됐지.’
이번 생은 욕심부리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저 내 한 몸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헌터 능력.
그리고 수도에 3층짜리 저택 하나와 땅도 조금 사고.
집안일은 해야 하니까 하인도 몇 명 두고, 결혼도 해야 하니까 돈도 좀 벌어 놓고, 번화가에 찻집이나 몇 개 차려, 노후 대책도 좀 하고.
아니면 영주나 한번 해봐?
이 몸의 아버지도 영주였다.
그가 옆에서 본 영주는 한 지역의 왕이나 다름없었으니, 전생에 해보지 못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슬기로운 이계 생활을 그려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내 몸뚱어리 수준으론 중세 라이프를 즐기긴커녕 뒷골목 강도를 만나도 죽을 판이었다.
게다가 영지에서 도망쳤다고 해도 백작부인이 날 가만히 놔둘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우선 나를 지킬 마법인형부터 만들어야 했다.
나머진 그다음이었고.
문제는 마법인형을 만들기 위해선 운명의 실에 연결된 상태로 방금 죽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걸 어디서 구하지?’
전생엔 사방이 전쟁터였기에 어디나 상관없었지만, 이곳은 제국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제2의 수도라 불리는 할데가르.
황제의 직할 영지이자, 헬다임 장벽에서 나오는 괴수 부산물과 마석을 가공해 기간트를 만드는 황실 공방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추밀원 소속의 정보국 본부가 있는 곳으로 치안이 매우 안정된 곳이다.
한 마디로 마법인형을 만들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쓰읍! 장벽으로 가야 하나?’
전생에 괴수와 지겹게 싸웠지만, 마법인형을 만들기 위해선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으로 가야 했고, 여기서 제일 가까운 전장이 헬다임 장벽 너머였다.
하지만 난 정보국 소속 장교.
명령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는데······.
쾅!
“동작 그만!”
더블란 중위가 발로 문을 차고 들어왔다.
“너, 이 새끼! 방금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지?”
“아닌데요.”
“아니긴, 창문에서 물러서!”
내가 한발 물러서자, 더블란 중위가 다가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가지고 당장 여기서 나가!”
종이를 건네받았다.
[전출명령서]헬다임 장벽 도시로 가라는 명령서.
내 소속 부대장인 슈나인 중령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지금 가는 겁니까?”
“그래! 광장을 가로질러 가면 기차역이 있다. 그곳에서 2시간 후에 헬다임으로 가는 열차가 있으니, 그걸 타라!”
“하지만 짐을 챙기려면 시간이······.”
“네놈 숙소에 있는 짐은 따로 부쳐주겠다. 그러니 당장 이 도시에서 사라져!”
옷걸이에서 정모를 꺼내 쓰고, 허리에 검을 찼다.
그리고 도끼눈으로 노려보는 더블란에게 경례했다.
“충! 그럼 가보겠습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어서 꺼져!”
난 그길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어째 일이 잘 풀리네.’
하긴 슈나인 중령도 똥줄이 탔겠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은 치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여기서 시한폭탄은 나고.
지금 제국의 실세는 추밀원이었고, 정보국은 그런 추밀원의 중추 기관.
이곳은 황제의 눈과 귀가 되어 제국 전역을 감시하고 정보를 모으는 곳으로 미국의 CIA 같은 곳이었다.
황립 사관학교 출신도 아닌 내가 엘리트들만 온다는 정보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슈나인 중령의 의도였다.
내 아버지는 제국 남부 국경을 지키는 변경백.
최근 테레니스 영지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었기에 장자인 내게 영지의 정보를 빼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장자였지, 사생아에 힘도 능력도 없는 타일러가 영지에 대해 아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계속된 회유에도 알아내는 것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치워버렸을 테지만, 그래도 개리 해링턴 빈스 백작의 핏줄이니, 볼모로서 이용 가치는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자살을 시도하고 기억상실증까지 걸리자,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잘못되면 모두 슈나인 중령이 책임져야 할 테니까.
‘열차 여행이라······.’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
[할데가르 역]수도 에르가드와 8개의 대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는 그야말로 제국의 젖줄이었다.
마력 엔진 열차 한 대로 수백 톤의 물자를 나를 수 있었고, 수십 톤이나 나가는 기간트를 여러 대 옮길 수도 있으며, 제국에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교통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이용 가격이 비싼 편이라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지만.
‘으리으리하군.’
망하기 전 서울역이 이 정도였을까?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제국 최대 규모의 기간트 공방이 같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역 규모는 매우 거대했다.
“헬다임, 삼등석 한 장 주세요.”
역무원이 날 보고 움찔한다.
솔직히 기분이 별로였다.
역으로 오는 내내 사람들은 나를 보면 고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여기 있습니다.”
열차표와 거스름돈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등석 표를 잘못 주셨네요.”
“아, 아닙니다. 정보국 장교의 경우 이등석에 남는 자리가 있을 땐, 업그레이드해드리는 것이 관행입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정보국이 좋은 점도 있구나.
출발 시각은 좀 남았지만, 바로 열차로 향했다.
“거기 조심해!”
“천천히!”
치이이익! 쿵! 철컥!
일꾼들이 1.5m 길이의 묵직해 보이는 원통을 엔진 옆에 꽂는다.
마석 배터리다.
저게 없으면, 이 커다란 열차는 그저 깡통에 불과하다.
그건 기간트도 마찬가지.
인간의 마나만으론 한계가 있으니까.
‘마석 배터리가 열여섯 개나 들어가네.’
열차가 비싼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의 열차는 폭이 상당히 넓었고, 바닥에 레일이 3개였다.
이건 기간트 때문이었다.
제국의 철도와 열차는 기간트를 쉽게 옮기고자 만들어졌고 발전해왔다.
‘무슨 병사들이지?’
플랫폼에 많은 병사가 보였고, 그들은 열차를 타는 사람들의 신분증과 짐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 열차에 아주 높은 사람이 탄다.
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더 안전하고 좋지.
“충! 실례하겠습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십시오.”
신분증을 꺼내, 병사에게 내밀었다.
병사가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 있던 장교가 다가와 병사에게서 내 신분증을 뺏어 들었다.
“정보국 장교께서 이 열차엔 무슨 일이십니까?”
군청색 제복에 은색 줄이 3개.
대위였다.
“헬다임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요?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전출명령서를 꺼냈다.
대위는 명령서와 신분증을 자세히 살펴봤다.
“할데가르에서 헬다임 장벽으로 전출이라······.”
말끝을 흐렸지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좌천이냐는 거겠지.
할데가르는 정보국 본부가 있는 곳이고, 헬다임은 제국 최변방 오지였으니까.
“이제 됐습니까?”
“아! 여기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네. 그럼.”
내 계급은 소위였지만, 대위도 함부로 하진 않았다.
난 열차로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이등석은 방처럼 되어 있었다.
한 방에 총 4명이 쓸 수 있었고, 의자가 침대나 마찬가지였기에 다리를 쭉 펴고 누울 수도 있었다.
헬다임까진 일주일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고, 당연히 열차에서 먹고 자고 해야 했지만, 삼등석은 자리도 좁고 퀴퀴한 냄새도 살짝 났다.
이 세상도 서민은 고달픈 인생.
물론 이 열차에 탔다는 것은 그래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참고로 가도를 따라 이동하는 역마차를 이용하면 이십 일이나 걸린다.
‘근데 내가 무슨 괴물인가······.’
이등석까진 지정 좌석이 따로 없었기에 먼저 앉는 것이 임자.
그런데 난 혼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날 보자 움찔거리며 다른 자리로 이동했고, 반경 10미터 이내엔 사람이 없었다.
어째 추밀원의 정보국이 미국의 CIA가 아니라,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같은 느낌인데?
아무튼, 덕분에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삐이이이익! 삐이익!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덜컹!
열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한번 둘러볼까.’
자리에서 일어서 삼등칸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신분증을 다시 검사했다.
정보국 장교가 좋긴 좋아.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졸지에 신분증 검사를 2번이나 받은 똥 씹은 표정의 승객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안전제일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백작부인이 군대에 있는 날 죽이려 사람을 보내거나 감시자를 붙였을 수도 있으니까.
이등석과 삼등석, 역무원까지 주변의 사람들과 운명의 실을 연결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운명의 실타래 – 219/300]생각보다 승객이 많진 않았다.
이제 난 나와 연결된 200여 명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헬다임까지 중간에 서는 역은 단 하나.
이들은 당분간 나와 기차 여행을 함께 할 사람들이었고, 운명의 실을 연결만 하고 있어도 스킬 경험치가 오른다.
일등석도 한번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입구에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 그냥 돌아왔다.
철컹! 철컹!
‘기차 여행이라, 낭만 있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자, 폐허가 된 지구와 끔찍했던 전생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개를 흔들고, 눈을 떴다.
그만 좀 떠올라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열차는 빠르진 않았다.
시속 60km 정도?
전생에 KTX를 타본 사람들이라면 답답해 속이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 풍경을 보기엔 딱 적당한 속도.
푸른 숲과 저 멀리 우뚝 솟은 산들이 보였다.
북부의 산과 숲은 타일러의 고향인 남부의 평야와 다른 멋이 있었다.
‘어라? 이것들은?’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삼등칸에서 두 명이 움직였다.
화장실을 가는 사람도, 식당칸에 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뭐야? 스파이더맨이야?’
하나는 열차 지붕에서 다른 하나는 열차 바닥에 매달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검 손잡이를 잡았다.
아무리 지금 내 몸뚱어리가 허접스러워도 20년이나 헌터로 구르며 괴수와 싸운 나였다.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일등칸으로 도망갈 수도 있고.
최단 루트라면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려나?
스르릉!
검을 뽑고 잔뜩 긴장했다.
‘어라? 그냥 지나가네?’
두 놈은 내 자리를 지나쳐 식당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 일등칸으로 향하는 거구나!
이 열차엔 상당히 높은 사람이 탄 것은 분명했다.
이놈들은 그 귀빈을 노리고 있었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아니지! 이럴 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다면?’
진급이란 두 글자와 슬기로운 이계 생활이 눈에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