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20)
20. 정보원.
방금 내 제스처를 보고 판단한 건가?
그런데 언제 그걸 살폈지?
난 에테나가 날 지켜보는 줄도 몰랐다.
“무슨 말이냐? 인간이 엘프어를 알아듣는다고?”
“그렇습니다. 아까부터 우리 대화를 들으며 상황에 맞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드는 등 알아듣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
마르실이 철창에 바짝 붙어 날 빤히 쳐다봤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푸른 눈동자가 램프 불빛에 일렁거린다.
고작 1미터도 안 되는 거리.
부끄럽게.
“인간,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이냐?”
마르실이 대 놓고 물었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마르실이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휴! 에테나, 인간은 엘프어를 모른다. 아니 엘프어는 정령이 내는 소리를 언어로 만든 것이라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란다. 그리고 이곳 세상엔 정령도 살지 않고.”
“하지만 저 사람은 분명······.”
“어허! 그만해라.”
“네. 마르실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른 엘프들도 에테나의 말을 듣곤 뭔가 찜찜했는지 더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난 바지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정은 딱하지만 더는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잠깐만 고생하면 곧 기간트가 구하러 올 거야.”
제국어로 말하고 몸을 돌렸다.
“응?”
뭔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니 에테나가 팔을 뻗어 내 제복 바지 밑단을 살짝 잡고 있었다.
“저기, 저희를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
“보다시피 저희 실수로 못된 인간들에게 잡혔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장벽 너머로 팔려갈 겁니다.”
그때 마르실이 소리쳤다.
“에테나!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에테나는 내 바지를 잡은 손은 놓지 않고, 고개만 돌려 말했다.
“마르실님을 거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그동안 장벽 너머로 끌려간 엘프가 수백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이라도 돌아온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거야······.”
마르실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이니까.
에테나가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우린 장벽 너머 인간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요. 이대로 운 좋게 장벽을 넘어간다고 해도 시노우엘님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저 인간들의 노예로 살다가 끝나겠지요.”
“하아!”
마르실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에테나, 네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노우엘님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야. 원정대가 세계수 씨앗을 구해 온다고 해도 그것을 품고 키울 수 있는 것은 하이엘프밖에 없어.”
“저도 압니다. 시노우엘님을 구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방법은 아닌 거 같아요.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엘프들이 일제히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도 에테나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마르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가와 에테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에테나, 미안하구나. 어린 너에게까지 이런 짐을 지우게 해서.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한다. 시노우엘님께서 잡혀가신 지 벌써 반년이나 흘렀다. 그 순수한 분께서 잘못되실까 나는 한숨도 잘 수가 없단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만 놔주거라. 여기에 온 것을 보면, 그놈들과 같은 편이 분명하다. 그리고 어차피 그 인간은 우릴 구하지 못해. 방금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을 너도 보지 않았느냐?”
하지만 에테나는 내 바지를 놓지 않았다.
그녀는 울먹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아닙니다. 이분은 그놈들과 같은 편도 아니고, 우릴 구할 능력도 있어요. 그러니 이분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마르실과 엘프들이 안타까움에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헉!”
“뭐야?”
엘프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르실은 뒤로 엉덩방아까지 찧었다.
“이, 인간이 엘프어를?”
난 에테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물었다.
“어째서 내가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그거야 우리를 처음 봤을 때,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셨으니까요. 그리고 엘프를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해하셨습니다.”
“표정으로 그게 다 보여?”
“네. 전 다른 재주는 없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표정을 보고 생각이나 감정을 잘 느끼는 편이에요.”
오! 눈썰미가 대단한데!
“그럼 왜 내가 너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방금 봤다시피 난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평범한 인간이 전진 기지 밖을 혼자 다닌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밖에 동료분이 있거나 그 강철인형에 타고 오신 게 분명합니다.”
강철인형? 아! 기간트를 말하는구나!
그녀는 내가 기간트를 타고 온 기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제발 우릴 도와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지?”
“네? 방금 우릴 도와주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솔직히 말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서 꺼내주는 건, 아주 쉬운 일이야. 그리고 너희를 장벽 밖으로 내보내 줄 수도 있고, 너희가 말하는 시노우엘이란 하이엘프를 찾아줄 수도 있어.”
“네? 정말입니까?”
에테나와 다른 엘프들의 눈동자가 배로 커졌다.
“그런데 이젠 마음이 바뀌었다.”
“대체 왜?”
“너희를 도와줘서 내가 얻는 것이 없잖아.”
“네?”
“설마, 내가 아무런 이익도 없이 너희를 도와줄 거로 생각한 거야? 그럼 진짜 실망인데······.”
이건 사실이었다.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기술로 괴수 부산물을 가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인간들의 호감을 샀다.
비록 결과는 나빴지만, 최소한 대수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은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고, 이 일의 끝을 알면서도 달려가는 불나방과도 같았다.
에테나가 아니었다면, 난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그때 에테나가 뭔가를 결심했는지, 내 다리를 꽉 붙잡았다.
“제, 제가 곁에서 평생을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엘프들을 도와주십시오.”
“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엘프 같은 미인이 눈물을 흘리고 내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이래서 미인계 미인계 하나 보다!
“에테나! 그만하고 이리 오렴.”
마르실은 에테나를 붙잡아 당겼다.
하지만 에테나는 한 손으로 내 다리를 잡고, 다른 손으론 철창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엘프들까지 달려들어 당기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끌려갔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에게 현실을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너희를 이곳에 가둔 자는 내가 죽였다. 그리고 그 부하들은 모두 감옥에 갇혔지. 그 말은 너희는 이제 이곳에서 죽을 거라는 거다!”
“뭐, 뭐라?”
“하지만 방금 에테나가 너희를 살렸다.”
표범 괴수 꼭두각시를 꺼냈다.
“크아앙!”
“조심해요!”
괴수를 보자마자, 에테나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엘프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괴, 괴수다!”
“아! 우린 이제 끝났어!”
다들 바닥에 주저앉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이었다.
“치타! 철창을 부숴라!”
일부러 엘프어로 명령을 내렸다.
“크앙!”
쾅! 콰앙!
치타가 앞발 휘두르자 자물쇠가 박살 나고, 철창이 찌그러졌다.
“잘했어. 치타!”
난 표범 꼭두각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상에!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괴수가 저 인간의 말을 듣고 있어?”
엘프들의 경악한 목소리가 들렸다.
“치타, 들어가!”
“크릉!”
표범 꼭두각시를 인형의 집에 넣었다.
괴수가 허공에서 사라지자, 엘프들은 다시 입을 떡 벌렸다.
“뭐해? 너희는 이제 자유다!”
난 몸을 돌려 먼저 통로를 빠져나왔다.
내 실력은 보여줬고.
이제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볼 차례였다.
동공으로 나오자 짹은 이미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후였다.
난 짹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잠시 후.
엘프들이 동공으로 나왔다.
마르실이 곧장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척!
그녀가 날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내가 당신을 따라가겠다.”
“······응?”
“분하지만 당신 말이 모두 맞다. 우린 능력도 부족하고,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내 한 몸 희생해 시누엘라님을 구할 방법이 생긴다면 기꺼이 당신을 따르겠다.”
“희생이라니?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난 엘프가 필요 없다니까.”
마르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이건 어떠냐? 난 이래 봬도 샤이닝족 최고의 전사다. 1초에 화살 2발을 쏘고, 검을 든다면 인간 병사 열을 상대할 수 있다. 데려가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거다.”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군.”
“그럼 허락하는 거냐?”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제안 하나 하지. 일단 일어나라.”
마르실을 일으켰다.
“난 노예도 필요 없고, 너희 누구와도 종속 관계 같은 것을 맺을 생각도 없다. 대신 내가 너희를 고용하는 계약을 하지.”
“고용 계약?”
“일단 첫 번째 계약으로 내가 너희 모두를 장벽 너머로 데려다주지. 대신.”
“대신?”
“너희가 대수림에서 날 보호해라. 어차피 내가 죽으면 계약은 끝나는 거니까 죽을힘을 다해야 할 거야.”
“설마, 그게 다인가?”
“그래. 그리고 제국에서 시노우엘을 찾는 것은 장벽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서, 다시 조건을 맞춰서 계약하자.”
마르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만약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를 다른 인간들에게 팔아넘기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건가?”
“글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계약하고 안 하고는 너희 자유다. 난 강요할 생각은 없어.”
내 답을 들은 마르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에테나를 보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자 에테나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여기 이분은 절대 약속을 어기실 분은 아닙니다.”
이 녀석 앞에선 거짓말도 못 하겠군.
사실 처음부터 이들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게 큰 이득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스스로 돕지 않은 자들을 동료로 받아들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방금 자신을 희생하며 동료를 구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날 움직였다.
그리고 앞으로 치를 비밀임무와 살루스 전진 기지에서 드워프들을 구할 때, 뛰어난 병사들보다 내 손발이 되고 날 지켜줄 믿을만한 병사가 필요했다.
그런 의미로 이들의 절실한 상황은 꽤 믿을 만했다.
거기에 전진 기지에 엘프어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어디 가서 내 비밀을 말할 위험도 적었고.
“좋다! 하겠다!”
마르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약하지.”
난 손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타일러 빈스. 제국의 중위고, 방금 봤다시피 괴수를 부릴 수 있다.”
“난 마르실 트란도스. 숲의 정령사이자, 샤이닝족의 족장이다.”
서로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엘프와 단기 고용 계약을 맺었다.
어차피 나로서는 드워프 200여 명을 장벽 밖으로 옮기는 거나 엘프 12명 추가해서 옮기는 거나 큰 차이는 없었다.
아직 방법은 고민 중이지만······.
파드드득!
‘때맞춰 왔군.’
입구에서 사마귀 꼭두각시가 누군가 온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난 사마귀 꼭두각시도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엘프들을 데리고 폐광산 입구에서 기다렸다.
‘열두 명의 여전사와 있으니까 든든한데!’
마르실의 말대로라면 엘프 전사 한 명이 인간 병사 대여섯 명을 상대할 수 있다니, 지금 난 소대 병력을 거느린 셈이었다.
“히이이잉!”
“워어”
먼저 말을 탄 병사들이 도착했다.
“타일러 중위님!”
글래디스가 말에서 내려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야.”
난 가볍게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뒤에 여자들은?”
“모두 내 정보원들이야.”
“정보원이요?”
글래디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쿵! 쿠쿠쿵!
뒤를 이어서 기간트 한 대가 양어깨와 이마에 불빛을 비추며 달려왔다.
[타일러 중위! 괜찮나?]라그르 중령이 직접 비숍급 기간트를 타고 날 찾으러 왔다.
그래도 의리가 있는 양반일세.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여기 폐광산 안에 들어가 보십시오.”
[괴수가 이 안으로 들어갔나?]“아니요. 프랭크 대령이 빼돌린 괴수 부산물이 이 안에 있습니다.”
[뭐? 괴수 부산물?]상황이 종결됐다.
부산물을 다 챙기지 못해서 아쉽긴 했지만, 안에 있는 괴수 부산물도 내가 찾은 것이니, 이 또한 큰 공이 된다.
장벽으로 돌아가면 윌리엄 사령관이 또 포상을 해주겠지?
긴장이 풀리자, 피곤이 몰려왔다.
“글래디스, 기지로 돌아가면 여기 내 정보원들에게 숙소를 내주고, 음식도 나눠주게.”
“네? 아! 네.”
“그리고 옷도 좀 알아서 챙겨 주고.”
“네. 알겠습니다.”
이제 난 좀 쉬자!
***
파드드득!
타타탁!
사마귀 꼭두각시가 문을 두드렸다.
여긴 복도 끝쪽에 있는 방.
사마귀가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누군가 내가 있는 방으로 온다는 뜻이었다.
‘인형의 집에 들어가 있어.’
난 사마귀 꼭두각시를 인형의 집에 넣었다.
몸을 일으켜 조끼만 챙겨 입고, 침대 옆에 검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인형의 집을 열었다.
짹은 산처럼 쌓인 부산물 위에 홀로 앉아 고독을 씹고 있었다.
‘짹, 신호하면 나와!’
[네, 마스터.]짹이 단검과 손도끼를 챙겨 들었다.
누군진 모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똑똑똑!
“네.”
끼이익!
반소매와 반바지로 된 군복.
전진 기지만의 개량 군복을 입은 글래디스였다.
아쉽게도 사마귀 꼭두각시는 아직도 글래디스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영원히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꼭두각시와 자동인형의 차이.
“아무리 피곤해도 이틀을 주무시다니요. 정보국 장교가 너무 게으른 거 아닙니까?”
“그래도 피곤이 풀리지 않아.”
“그러게 평소 체력 운동 좀 하십시오.”
난 글래디스를 쳐다봤다.
성난 그녀의 근육질 몸이 눈에 들어왔다.
그에 반해 내 몸은······.
그러게 체력 단련을 좀 하긴 해야겠다.
“무슨 일이야?”
“커널 사령관께서 이번 임무 때문에 중위님을 찾으십니다.”
“벌써? 며칠 더 쉬었으면 좋겠는데······.”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몸은 욕실을 향해가고 있었다.
군인은 참 피곤한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