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31)
31. 용꿈.
[바이마르 공작가 대연회장]휘황찬란한 조명.
화려한 그림과 정교한 조각이 가득한 벽과 기둥.
바닥엔 번쩍거리는 대리석이 깔렸다.
감미롭고 경쾌한 선율이 흐르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선남선녀들.
남자들은 여자들의 손을 잡아 중심을 잡고, 여자들이 몸을 빙그르르 돌자 드레스 하단이 넓게 퍼지며, 꽃이 피는 듯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다들 어쩌면 저렇게 춤을 잘 출까?’
난 사교춤은 배운 적이 없었다.
아니 상류층의 무도회에 참석한 것도 이번이 처음.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검을 연습할 시간도 부족한데,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저기 봐!”
“오오! 샤를린 위네스다!”
곳곳에서 탄성과 함께 춤을 추던 남자들의 시선이 돌아간다.
함께 추는 여자들에게 실례였지만, 사내들은 본능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내 배다른 동생인 블리언 빈스와 타미엘 빈스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와! 정말 예쁘다!”
“남부 최고의 미녀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네!”
나도 그녀를 보았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가슴이 마구 뛰고, 손끝이 저렸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한단 말인가!
테레니스 영지에도 미녀가 많았지만, 그녀와 비교하기엔 무리였다.
게다가 그녀가 입은 드레스는 화려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드레스가 화려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미모가 더욱 돋보였는지도 몰랐다.
그녀가 한쪽 벽에 서자, 주변 남자들이 힐끔힐끔 그녀를 쳐다보았다.
용기 있는 귀족 청년들이 나서서 춤을 청할 법도 한데,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왜일까?
그녀는 무도회에 참석했지만, 그저 다른 사람들이 추는 춤을 구경하고 있었다.
가끔 발끝으로 리듬을 타는 것이 춤을 추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 곁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아름답지만, 또 너무 외로워 보였다.
“에휴! 불쌍하지. 곧 결혼할지도 모른대.”
블리언이 말하자, 타미엘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형, 그게 무슨 말이야? 결혼하는데 왜 불쌍해?”
“몇 년 전에 위네스 가문이 투자를 잘못해 쫄딱 망했잖아.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알베르 후작과 혼담이 오가고 있데.”
“알베르 후작이면······, 빌란트 영지의?”
블리언이 고개를 끄덕이자 타미엘의 눈동자가 배로 커졌다.
“미친! 그 사람 나이가 예순이 넘잖아!”
“그리고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없을 만큼 뚱뚱하지.”
“와씨! 돈에 팔려가는 거네.”
“맞아. 그래서 아무도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는 거야. 괜히 소문이라도 잘못 나면 발란트 영지와 척을 지게 되는 거니까.”
“하아! 너무 불쌍하다.”
이제 17살이나 됐을까?
그녀는 화장했지만, 앳된 얼굴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60살이 넘는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니!
“야! 타일러, 어디 가는 거야?”
“어머니가 구석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잖아!”
내가 왜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더는 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어차피 영지로 돌아가면 그녀와 다시 볼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평생 간직할 추억 하나쯤은······.
“추, 춤은 배운 적이 없는데요. 그래도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날 보며 활짝 웃었다.
“네! 좋아요.”
이 순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 평소 운동신경이 좋지 않아 검술 실력도 별로였다.
그런 내가 춤이라고 다를까?
그녀의 발을 밟았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지금 몸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요. 그냥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긴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제 눈을 맞추고 저를 따라 움직이세요.”
“네.”
“자! 다시 갑니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춤을 리드했다.
“하나둘! 하나둘!”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따라 박자를 탄다.
어느새 난 그녀와 자연스레 춤을 추고 있었다.
갑자기 세상이 느리게 흘렀다.
어느 순간 음악도 들리지 않았고, 주변의 다른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살짝 상기된 그녀의 얼굴만 보였고, 아름다운 턱선과 춤을 추며 호흡하는 가냘픈 그녀의 숨소리만 들린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엔 나와 그녀밖에 없었다.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기를······.’
똑똑!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난 허공에 팔을 뻗고 있었다.
‘뭐지? 꿈인가?’
조금 전까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왠지 깨기 싫은 꿈이었다.
아니! 이건 타일러 빈스의 기억.
‘허! 정말 몸이 허해졌나?’
대수림에서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 타일러의 옛날 기억이 꿈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버린 여자의 꿈을 꾸다니.
‘지금쯤이면, 돈 많은 영감과 잘 살겠지······.’
똑똑똑!
“누구지?”
“글래디스입니다. 아침 식사하셔야죠.”
“아! 알았어. 바로 나가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에테나가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응? 내가?”
“표정이 밝으세요.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 봐요?”
피식 웃어줬다.
“아니, 개꿈.”
“개꿈이요?”
개꿈이란 단어를 알까?
내 표정을 봤으니, 의미는 잘 전달됐겠지.
아침 식사를 하고, 타냐 블랙과 두 군인을 불렀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여기서 갈라집시다.”
“네?”
“뭐요?”
타냐와 글래디스가 동시에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임무를 잊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다른 곳에 일이 있어서······.”
“그게 임무를 잊은 것이 아닙니까?”
글래디스는 눈에 힘을 팍 주고 날 쳐다봤다.
“여기서 카멜 전진 기지까진 보름 거리고, 카야킨까진 한 달 반이야. 그리고 절반은 지하 통로로 가니, 이 정도면 용병들과 충분히 돌아갈 수 있잖아.”
“네? 저도 가는 겁니까?”
“물론이네.”
가만히 듣던 타냐가 말했다.
“그럼 우리 용병대와 글래디스 하사관만 따로 가는 거요?”
“아니요. 콜벳 대위님도 함께 갈 거요.”
콜벳 대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도요?”
“물론입니다. 대위님께서 물건을 끝까지 카야킨 사령부에 전달해야지요.”
타냐 블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타일러 중위는 오크와 엘프들만 데리고 가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혹시, 살루스 전진 기지에 일이 있는 거요?”
난 대답 대신 살짝 웃어줬다.
이번 드워프 구출 작전은 용병들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장벽 사령부와도 상관없었고.
오로지 내 개인적인 일이었다.
“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오?”
“그게 아직은 알 수 없소. 직접 가서 알아봐야 하는 일이라······.”
타냐가 말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겠소. 일이 끝나면 함께 갑시다. 대수림에 기간트 없이 이동하는 건 자살행위요.”
‘훗! 나 기간트 있는데!’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내 기간트가 훨씬 더 강하지.
잠재력 끝판왕인 거신인형과 나이트급 기간트가 2대나 있으니까.
게다가 엘프와 오크까지 있으니 내 쪽이 훨씬 더 안전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날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타냐는 안심이 안 되는지, 계속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니면 이건 어떻겠소? 여기 말고 카멜 전진 기지에서 사흘만 기다려 주시오. 그때까지 일이 끝나면 만나서 함께 가고. 그게 아니면 먼저 카야킨 전진 기지로 가는 거요.”
타냐도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참! 기다리는 사흘도 일당을 쳐주는 거요?”
“당연하지요. 용병에게 시간은 돈이니까.”
“나야 손해 볼 게 없네. 그렇게 합시다.”
타냐는 자리에서 일어서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눈치를 보고 있던 콜벳 대위는 슬쩍 빠져 자기 기간트에 올라탔다.
글래디스는 내 결정이 못마땅한 것 같았다.
“글래디스, 이번 일은 상부에 보고해도 좋아.”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개인적인 일인데,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혹시, 드워프 때문입니까?”
그러고 보니, 글래디스는 살루스 야영지에서 드워프를 구할 때도, 드워프가 가엽다고 같이 살 목장과 집을 구했을 때도 함께였다.
이곳 살루스 전진 기지에 드워프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 대충 짐작했을 것이다.
“맞아. 이곳에서 고통받는 드워프를 구할 생각이네.”
그리고 나도 도움 좀 받고.
“너무 위험합니다. 거긴 카야킨 전진 기지와 다릅니다. 규모도 작고 일반인도 얼마 없어서 금방 들킬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콜벳 대위님이라도 데려가십시오. 돌아가는 길은 용병들의 기간트면 충분합니다.”
“아니, 그럴 순 없네. 아무리 그래도 임무가 우선이야. 내가 콜벳 대위를 전진 기지에서 데려온 것은 다 이런 때를 위한 거고.”
“하지만······.”
“그만! 내가 언제 자네를 실망시킨 적이 있나? 임무를 완수하지 않은 적은? 없지?”
“하아!”
한숨을 내뱉긴 했지만, 글래디스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나중에 전진 기지에서 보지.”
난 자리에서 일어서 몸을 돌렸다.
그때 글래디스가 말했다.
“이번 일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꼭 살아 돌아오십시오.”
나도 모르게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천생 군인인 줄 알았더니, 인간적인 모습도 있네.
드워프를 구하러 가기 위해 엘프와 오크를 모았다.
그런데 에테나가 뭐가 좋은지 웃고 있었다.
“에테나,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그동안 기간트 때문에 우리 엘프가 타일러님께 아무런 도움도 드리지 못했는데, 이번엔 활약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난 속으로 웃었다.
엘프나 오크나 기간트나 무조건 활약할 일이 없는 게 좋은 거라는 걸 모르네······.
그래도 다른 엘프와 다르게 에테나가 활기차고 의욕에 넘치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린 살루스 전진 기지로 향했다.
***
[살루스 전진 기지]거신목이라 부르기엔 상대적으로 작았다.
카야킨을 품은 거신목이 어미 나무라면, 이건 아기 수준.
그래도 나무 높이가 600미터는 돼 보였고, 입구 넓이가 50미터 정도로 기간트가 드나들기엔 충분했다.
‘짹이 무사해야 할 텐데······.’
살루스 전진 기지를 살피기 위해 짹(lv.5)을 내부로 들여보냈다.
기지 밖에도 간혹 기간트와 경비가 돌아다녔기에 난 거신목에서 500여 미터나 떨어진 나무 뒤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운명의 실타래 범위가 700미터라 꼭두각시를 쓸 순 없었고, 내가 직접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럴 땐 내 유일한 자동인형인 짹이 빛을 발했다.
점점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때 짹이 운명의 실타래 범위로 들어왔다.
난 곧바로 그를 인형의 집에 넣었다.
[마스터, 다녀왔습니다.]‘고생했어. 그래 좀 알아봤어.’
[드워프를 아주 혹독하게 쥐여 짜고 있는 뜻 보입니다. 광산에서 휴일도 없이 일한다고 들었습니다.]‘허! 완전히 노예처럼 부려 먹는군.’
드워프는 노예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대수림과 괴수의 위협에서 보호해주는 것이 정당한 거래였고, 가장 먼저 이계 난민을 수용한 아베르크 제국의 황제가 만든 룰이었다.
[그리고 지난주엔 과로로 한 명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드워프가 죽어?’
젠장!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헬다임의 살루스 야영지가 장벽 사령관에게 털렸다.
그러니 당연히 살루스 전진 기지에 상당한 압박이 갈 거라고 예상했어야 했다.
마석을 캐기 위해 드워프들을 더 강하게 압박했을 것이고, 밤낮없이 노예처럼 일을 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사망자도 나왔고.
그리고 이제야 라살만 소령과 사냥팀이 왜 무리하게 다른 영지 사냥팀을 공격했고, 우리도 공격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글러드에게 뭐라고 하지?’
순간 실망할 글러드 왕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드워프들을 꼭 구해간다고 약속했다.
일주일만 더 버텼다면 내가 구해줬을 텐데······.
가슴은 아프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빨리 움직여야겠어.
‘짹 드워프들이 일하는 광산이 어느 쪽이지?’
[살루스 기지 남쪽에 아주 깊은 지하 갱도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드워프들이 아예 갱도에서 먹고 자는 것 같습니다.]드워프들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탈출 계획을 세우지.
거신인형을 꺼냈다.
‘내가 직접 살펴야겠어!’
영혼 이동을 통해 드워프들의 작업 위치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거신인형(lv.5)으로 영혼 이동에 성공했습니다.]거신인형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곧장 마나를 집중하자, 푸른 안광이 뿜어졌다.
난 먼저 살루스 기지를 살폈다.
기간트들의 움직임이 보였고, 마석 배터리를 보관하는 창고도 보였다.
그리고.
‘허! 이거 봐라!’
기간트가 지키고 있는 곳에 마석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제법 그 양이 많아 보였다.
그동안 드워프들을 얼마나 혹사했을지 이것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이제 드워프들을 찾을 차례.
고개를 남쪽으로 돌려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렸다.
참 깊게도 팠다.
‘아! 여기네.’
아주 작은 푸른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드워프가 마석을 캐서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지하에 뜨문뜨문 박혀 있는 마석 광맥이 보였다.
저걸 캐는 거구나.
이제 드워프들의 위치를 알았으니, 어떻게 구할지 방법을······.
‘어?’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더 숙이자, 온통 푸른빛이 반짝였다.
마치 일렁이는 푸른 바다 같았다.
허! 그럼 내가 꾼 꿈이.
‘개꿈이 아니라 용꿈이었나?’
여기가 노다지였네.
마석 광산이라…
왠지 드워프를 구한 후에도 이들과 악연은 계속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