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62)
62. 곰과 여우.
‘응? 시안 5군단장이 함께 간다고?’
이상한데?
어제까지 협상단 명단에 시안 오르도 7황자는 없었다.
그런데 왜?
“왜? 의외인가?”
“앗! 깜짝이야!”
뒤에서 불쑥 나타난 것은 윌리엄 사령관이었다.
뭐지? 이 양반 은신술도 익힌 거야?
옆을 쳐다보자, 엠버 대령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살금살금 접근했다고 알려줬다.
점잖은 양반이 이런 장난을 치시다니······.
“시안 황자님은 내가 가시라고 권했네.”
“적진이 아닙니까? 왜 굳이 그런 위험을?”
“큰 공부가 되지 않겠나? 주변에 온통 말 잘 듣는 가신들이나 부하들밖에 없으니 너무 독단적으로 변하시는 같아서 말이야. 가디언 제국의 여우들과 협상을 하다 보면, 자신의 그릇을 좀 깨우치시겠지.”
윌리엄 사령관의 표정에 왠지 근심이 엿보였다.
물가에 어린아이를 놓은 부모의 표정이 이럴까?
“그럼 협상단 대표는 누굽니까?”
“대표는 그래도 찰스 그레빌 정보국장이네. 저 사람의 능력은 내가 보증하지. 겉으론 덜렁거리고 곰처럼 보이지만, 안엔 여우가 열 마리는 들어 있네.”
나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지.
“협상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야. 저들도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니까.”
“그래요? 그건 다행이네요.”
윌리엄 사령관이 피식 웃었다.
“혹시, 협상이 어그러지면 깽판을 쳐도 되겠습니까?”
“하하! 그러라고 자네를 보내는 거야.”
“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이 반응은 뭐지?
“시안 황자님을 잘 부탁하네.”
“호위 기사들이 잘하겠죠.”
“난 자네 대답을 듣고 싶네.”
“네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만 가지.”
윌리엄 사령관과 곧 출발할 협상단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높으신 분들끼리는 마지막으로 따로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호위 기사들 쪽으로 이동했다.
“와! 이젠 중령이시네요.”
로제 소령이 내 계급장을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하하! 미안하네. 내가 먼저 진급했군.”
“아닙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엘프 하사관은 함께 가지 않나요?”
“에테나 하사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함께 가진 않네.”
“아! 그렇군요.”
로제 소령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게 그렇게 기분 좋아질 일인가?
아무리 봐도 그녀가 엠버 대령보다도 마나량이 많은 거 같은데······.
얼마 전에도 마나량을 살펴봤는데, 오리지널 비숍급 기간트에 타야 한다면 사실 그녀가 적임자였다.
그런데 그녀는 오리지널 나이트급 기간트에 타고, 마나량이 훨씬 부족해 보이는 파이컬 중령이 비숍급에 탈 예정이었으니, 뭔가 아쉬웠다.
군대라 계급에서 밀린 거겠지.
“축하하네. 타일러 중령!”
“감사합니다. 파이컬 중령님.”
파이컬 중령 역시 5군단장이 협상단에 끼었기에 호위 기사로 차출된 것 같았다.
“그런데 바오트 대위가 안 보입니다?”
삼인방 중의 하나가 없으니 좀 허전해 보였다.
파이컬 중령과 로제 소령이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파이컬 중령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말했다.
“오리지널 기간트가 완성되어 이리 가져오고 있네.”
“아! 축하합니다.”
두 기사는 적진으로 가는 건 걱정되지 않는가 보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역시 기사들에겐 오리지널 기간트가 가장 큰 당근이었다.
“자! 모두 모이시오!”
엠버 대령이 큰 소리로 말했다.
윌리엄 사령관은 교장 선생님 훈화처럼 협상단과 호위 기사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또 최대한 적을 자극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좀 길어진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5분쯤 되자, 한두 명씩 졸기 시작했다.
그래, 원래 말이 많은 양반이었지······.
처음 열차에서 고막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지금이었다면 도망쳤겠지만, 그땐 겁많은 소위라 일주일 내내 참고 들었지.
기사들이 절반쯤 졸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럼 무사히 다녀들 오게!”
“와아아!”
짝짝짝!
다행히 기사들이 전부 졸기 전에 마무리되었다.
기사들은 기간트에 올라타고, 시안 7황자는 로제 소령과 난 찰스 국장과 각자 마차에 올랐다.
“출발!”
목적지는 가디언 제국의 전진 기지.
우린 그렇게 적진으로 향했다.
***
[보르자 전진 기지]어디로 가는 진 모르겠지만, 수십 대의 마장기가 주변을 오가고 있었다.
쿠쿠쿠쿠쿵!
마장기가 옆을 지나가자, 마차에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썩을 것들!’
환영 인사를 이런 식으로 하네.
벌써 기 싸움에 들어간 것이다.
협상단이 왠지 힘들겠······.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찰스 국장은 침까지 흘리며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하! 강철 심장이시네.
아니면 진짜 생각이 없으신 건가?
이제 나도 조금 헛갈린다.
“찰스 국장님! 일어나십시오. 곧 도착합니다.”
몸을 흔들어 깨우자, 그제야 눈을 떴다.
“응? 벌써 도착했다고?”
찰스 국장이 입에 묻은 침을 손등으로 쓰윽 닦았다.
“곧 도착합니다.”
“하암! 어젯밤에 잠을 잘못 잤더니, 좀 피곤하군.”
코까지 골고 주무신 분이······.
덕분에 제대로 자지 못한 건 나였다.
“워어!”
마차가 멈췄다.
내가 먼저 내리고, 찰스 국장이 내렸다.
그리고 또 다른 마차에서 시안 군단장과 로제 소령이 내렸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우리 주변으로 수십 기의 마장기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기세를 제대로 꺾으려고 하는군.
며칠 전에 우리 협상단의 방문을 알렸기에 미리 준비한 것 같았다.
그때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별이 몇 개야? 또 훈장은 왜 저렇게 많이 달고 나오셨을까?’
군복을 입은 장군들의 어깨엔 별이 반짝였고, 가슴엔 빈틈없이 훈장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장군들 맨 앞에서 다가오는 인물은 군인이 아니었다.
빼빼 마른 중년인이었다.
“어험! 어서들 오시오. 난 이곳 전진 기지의 책임자인 라몬 아라곤 후작이오. 내가 귀국과 협상을 맡게 됐소이다.”
저들도 최고 책임자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 시안 5군단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난 아베르크 제국의 7황자 시안 오르도요.”
“예?”
라몬 후작의 뒤쪽에 있던 장군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우리 측에서 황자를 보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황자의 얼굴을 모를 정도로 서로 교류가 없었다.
“황족이 오셨군요. 영광입니다.”
라몬 후작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숙였다.
타국의 황족이지만, 예를 표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인물이네.
황족을 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슬쩍 훑어보는 여유도 있었다.
“그럼 안으로 드실까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나섰다.
“뭐지?”
라몬 후작이 날 노려봤다.
중령 나부랭이가 끼어들어서 화났나?
“우리 아베르크 제국의 협상단 대표를 소개해 드려야지요.”
“······?”
찰스 국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찰스 그레빌 중장입니다. 정보국 국장 자리를 맡고 있지요.”
“그쪽이 아베르크 제국의 협상단 대표라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
이번엔 라몬 후작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둥글둥글하게 생겨서 배까지 나온 중년 아저씨의 모습에 살짝 실망하는 것도 같았다.
“저, 저기. 용무가 좀 급해서 그러는데? 화장실이 어디 있습니까?”
“뭐요?”
뿌우우웅! 푸직!
“흡!”
라몬 후작이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막고 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뒤쪽에서 중령이 다가왔다.
“큼! 중장님께 화장실을 안내해 드려라!”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찰스 국장은 안내하는 중령을 따라 허겁지겁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허! 저런 사람이 아베르크 제국의 협상 대표라니!”
“이거 광대가 따로 없군.”
그 모습을 보고 가디언 제국군 장군들은 고개를 흔들기도 했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쪽 협상단 역시 창피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으니까.
하지만 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참! 대단한 양반이네.’
이 주변을 봐라!
여기서부터 입구까지 이어진 길엔 오리지널 마장기 5대와 룩급 마장기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쭉 세워져 있었다.
누구라도 저 길을 걸어간다면 주눅이 들기 마련이었다.
만약 저기서 마장기들이 발이라도 한번 구르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이건 필히 여우 같은 라몬 후작이 철저히 계산하고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방금 찰스 국장의 화장실 해프닝 하나로 가디언 제국이 준비한 것을 단번에 허사로 만들었다.
‘와우! 저런 건 타고 나야 할 것 같은데······.’
난 때려죽여도 저건 못할 것 같았다.
그동안 나도 얼굴이 두껍다고 생각했지만, 찰스 국장을 보니 아직 멀었다.
세상엔 특이한 사람이 참 많다.
그리고 다들 비웃고 있을 때, 두 주먹을 쥐고 인상을 찡그린 사람이 하나 있었다.
라몬 후작!
당신이 먼저 한 방 먹었네.
‘그럼 곰과 여우의 대결인가?’
두 협상단 대표를 보니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그런데 방금 진짜 싼 거 아닌가?
우리도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
신경 많이 썼네.
안내받은 방이 아주 깔끔하다.
게다가 시원한 냉기가 나오는 방이라니!
협상단에서 내 신분은 북부군 사령관의 특별고문이 아니라, 협상단 대표의 호위 기사였다.
그런데도 이런 좋은 방을 준 것을 보니, 가디언 제국의 형편과 살림이 더 좋은가?
‘확! 전향해 버려?’
물론 농담이다.
아베르크 제국에 벌여놓고 뿌린 게 얼만데, 뼈를 묻어야지.
일단 좀 씻을까?
방에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있다니, 이 정도면 헬다임의 호텔 수준이었다.
물론 저들의 의도는 우리를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었겠지만, 나는 전혀 상관없다.
물을 틀어놓고, 눈으로 마나를 뿜어냈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입구는 정문 하나. 지하에 하나 더 있네!’
마석이 소량 포함된 거대한 문과 마장기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기에 문이 분명했다.
지하는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까?
내가 듣기론 이곳 전진 기지는 지하 통로가 없다고 들었다.
그럼 새로 팠다는 소리였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근데 여긴 왜 마장기가 지키고 있는 거지?’
거주 구역도 아니었고, 외곽에 마장기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큰 건물이 하나 있었다. 안쪽에도 마나가 반짝이는 물체가 있는 것이 꽤 중요한 물건인 것 같았다.
여기도 나중에 확인해 봐야지.
고개를 천천히 돌려가며 이곳 기지의 전체 마장기 숫자를 파악했다.
‘대략 350기 정도로군.’
나머진 그럼 전진 배치했거나 발굴지 근처에 주둔했을 것이다.
‘응? 누구지?’
그때 바로 문 너머 내방에 상당한 수준의 마나를 품은 사람이 들어왔다.
로제 소령인가?
오늘은 도착한 날이라 다들 쉬기로 했는데?
일단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소령 계급장을 단 사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나이는 20대 중후반.
꽤 젊은 나이에 초고속 진급한 것 같았다.
물론 나만큼은 아니지만.
“누구십니까?”
“엔리크 소령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협상이 끝날 때까지 중령님을 보좌하라는 명을 받고 왔습니다.”
“아! 절 감시하러 오신 거군요.”
“감시는 아닙니다. 그저 지내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또 식사는 입에 맞으시는지, 기지가 넓으니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 옆에서 챙겨드리는 역할입니다.”
“네. 그렇다고 합시다. 전 타일러입니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네. 타일러 중령님.”
엔리크 소령은 어색하게 웃었다.
“전 바로 옆방에 있습니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불러 주십시오.”
“네. 그러죠. 아! 그리고 이런 냉기 나오는 방이라니, 아주 훌륭합니다. 우리 블랙힐 전긴 기지엔 사령관실 빼고는 안 나오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저녁 식사는 언제입니까?”
“왜요? 배고프십니까?”
“시간 없다고 점심도 대충 육포로 때웠거든요.”
“그럼 식사하러 가시죠. 아직 식사 시간은 아니지만, 지금쯤 음식은 준비됐을 겁니다.”
“오! 감사합니다.”
엔리크 소령과 방을 나섰다.
우린 장교 식당으로 향했다.
고기 수프와 빵, 그리고 토마토를 곁들인 샐러드가 나왔다.
“이야! 가디언 제국의 짬밥이 좋네요.”
“짬밥이요?”
“군대 밥 말입니다. 어서 드세요.”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물론 우리가 온다고 하니, 특별히 준비한 것이겠지만.
“채소는 어떻게 수급합니까?”
“······?”
“생채소를 여기까지 옮기려면 냉기 장치가 달린 마차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비싼 마석 배터리를 그런 데 썼나 궁금해서요.”
“아! 채소는 여기서 직접 키워서 먹습니다.”
“키워요?”
“장벽 너머 본국의 흙을 대량으로 옮기고, 씨앗과 묘목을 가져와 거신목 위와 주변에 텃밭을 조성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비용이 많이 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득이 됩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난 왜 그런 방법을 생각지 못했을까?
인형의 집에 흙을 잔뜩 챙겨와 난민 기지에 텃밭을 조성하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수림에서 말라비틀어진 건채소가 아니라 신선한 채소를 섭취할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니까.
“그런데 이런 거 막 알려줘도 되는 겁니까?”
“뭐, 어떻습니까? 군사 기밀도 아닌데요.”
“아! 어쩐지 채소가 신선하더라니. 한 접시 더 먹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가져다드리죠.”
장교들 식사 시간이 됐는지, 하나둘 식당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중령 한 명이 엔리크 소령을 보더니, 손을 올리려다가 멈칫거렸다.
‘허! 이것 봐라!’
난 빵을 뜯어 먹으면서 다른 곳을 쳐다봤다.
중령이 경례하는 걸 보면 최소 대령 이상, 어쩌면 고위 귀족일 수도 있었다.
‘저 녀석도 나처럼 위장 신분이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