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70)
70. 세계수.
순간 빡쳐서 말이 헛나왔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내가 헛짓거리를 했다는 거야?
욕이 막 튀어나오려는데······.
“뭐? 일부러 갇혀 있었다는 뜻인가?”
시노우엘이 잡혀 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수림의 거신목을 연구하던 중 프랭크 사령관의 카야킨 사냥팀에게 눈에 띄었고, 사로잡혀 장벽 너머로 끌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거치고 거쳐 최종적으로 도착한 것이 바로 이곳 바이마르 대영지.
“용케도 잘 버텼군.”
“나는 생명체의 마음을 열어 내 의지를 깃들게 할 수 있습니다.”
“정신 조작 같은 건가? 세뇌? 아니면 최면?”
“전부 비슷한 의미일 겁입니다. 다만 강제적으로 내 뜻에 맞춰 조종한다는 것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유도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 정신 조작으로 방금 저 시녀와 라디프 공작을 세뇌한 건가?”
“낸시는 저를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크기에 배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라디프 공작과는 협상을 했습니다.”
‘협상이라고?’
머리가 복잡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이 뽑혔다.
어쩐지 일이 술술 잘 풀리더라니!
좀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차라리 정신이 망가진 상태로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면, 내가 구해주고 엘프들에게 큰 빚을 남겼을 것이다.
그럼 대수림에서 엘프들의 능력을 앞으로 10년은 더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 그녀는 너무나 온전한 상태였다.
“대체 무슨 협상을 했다는 거지?”
“라디프 공작은 우리 엘프들에게 넓은 땅과 숲을 내주기로 했습니다. 전 그곳에 세계수를 심고 대수림에 흩어져 있는 엘프를 모아 이 세상에 적응하며 살고자 하는 겁니다.”
“그걸 라디프 공작이 순순히 허락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 없이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다.
특히 대영지의 영주쯤 되는 인물은 웬만한 조건에 수백의 엘프들을 받아들이고 넓은 땅까지 내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엘프는 줄 게 없을 텐데······?
궁금함에 직접 물었다.
“그럼 라디프 공작이 얻는 것은 뭐지?”
시노우엘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엘프의 우정과 세계수의 열매입니다.”
“세계수의 열매?”
“엘프는 평균적으로 200년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수의 열매를 먹어 하이엘프가 되면 500년을 살 수 있죠.”
“아! 그러니까 라디프 공작이 세계수의 열매로 자신의 수명을 더 늘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당신이 열었다는 것이군.”
“맞습니다. 에테나의 말처럼 매우 영리하신 분이시군요.”
시노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만큼은 아니겠지만, 인간도 2배의 수명은 확보될 겁니다.”
2배의 수명이라니, 솔직히 나도 욕심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오래 산다고 해서 그 인생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이미 세상의 멸망을 한번 겪어본 나로선,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그 세계수의 열매가 언제 나는 거지? 내가 알기로 식물은 일단 나무로 성장한 다음에 열매가 열리는 거로 아는데?”
“씨앗을 심고 첫 열매는 20년 후에 열립니다. 그리고 20년마다 50미터씩 자라고, 열매가 하나씩 더 열리지요.”
“라디프 공작이 지금 60살이니까. 80살이 되야 먹을 수 있다는 말이군. 그리고, 아직 씨앗이 심어진 것도 아니니까. 어쩌면 몇 년 더 걸릴 수도 있고.”
어이없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20년 이상을 기다린다니 라디프 공작의 인내심이 대단하군. 그 전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시노우엘이 내게 미소를 지었다.
“인간의 욕망은 다채롭죠. 당신의 바람은 뭐죠? 건강? 성공? 아니면 재물? 그것도 아니면 사랑인가요?”
“왜 이번엔 내 마음을 열어서 조종하려고? 그런 건 심지 약한 사람한테 통하는 거라고!”
내 반응에 시노우엘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모든 생명체가 다 마음을 여는 건 아니니까요.”
에테나가 지금 상황을 지켜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에테나, 그래도 난 시노우엘을 구하겠다는 계약은 지킨 거야. 그러니까 엘프는 앞으로 4년은 더 날 도와줘야 해. 계약은 계약이니까.”
그때 시노우엘이 끼어들었다.
“그건 제가 보증하지요. 세계수를 걸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에테나, 네가 마르실에게 내 뜻을 전해 줄 수 있겠니?”
“네. 시노우엘님.”
“그럼 됐어.”
다행히 엘프와 계약은 유효하다.
다만 계약 연장은 틀렸군.
하지만 괜찮다.
4년이면 나도 전진 기지도 자리를 잡았을 테니까.
그 후엔 정찰 임무를 엘프, 대신에 오크를 시켜야 하나?
안당고낙은 오크도 2명은 태울 수 있었으니, 좀 위험하긴 해도 정보는 계속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세계수 씨앗을 구하러 갔다는 엘프 원정팀 말이야. 돌아올 때가 지나지 않았나?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게 2년 전이라서 말이야.”
시노우엘은 아무 말 못 했다.
“그걸 라디프 공작이 알진 모르겠군.”
“그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원정팀을 돕기 위해 기간트 사냥팀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뭐? 라디프 공작이 대수림에 기간트를 보낸다고?”
이건 정말 의외였다.
라디프 공작은 돈을 아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대귀족치고는 상당히 씀씀이가 인색한 영주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수림에 사냥팀이라니······.
차원 균열 너머로 기간트 병력을 보내는 것은 조금만 상상해도 돈이 엄청나게 드는 일이었다.
“허! 엘프 원정대는 실패했을 테니, 그들을 돕기 위해 가는 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원정팀이로군.”
시노우엘은 이번에도 반박하지 않았다.
“우리 세상과 연결된 차원 균열이 대수림 북쪽에 있습니다. 새로운 인간 사냥팀이 그곳을 통과해 세계수의 씨앗을 구해올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녀로서는 최후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세계수 씨앗을 구하러 보낸 원정팀은 2년 전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전에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원정팀은 소식이 없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세계의 누군가 힘 있는 사람을 찾았을 것이고, 적당한 사람이 바로 라디프 바이마르 공작이었다.
‘이제 보니 일부러 잡힌 거군.’
어쩌다 납치된 엘프가 제국의 권력가들에게 상납 되고 있다는 것은 엘프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엘프의 지도자 격인 시노우엘이 몰랐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간의 마음을 이용해 기간트 원정팀까지 이계로 보내기로 했으니, 시노우엘의 계획은 성공한 것이다.
나 같으면 황제를 꾀었겠다.
그는 모든 권력의 정점이니, 얼마나 오래 살고 싶을까?
아니지! 라디프 공작이 실패하면 다음엔 황제한테 가려나?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에테나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시노우엘,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묻고 싶군. 대체 세계수가 뭔데, 그렇게 씨앗을 찾아 키우려고 하는 거지? 그런 거 없어도 엘프들의 능력이라면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시노우엘이 처음으로 매우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세계수는 그 자체로 훌륭한 방어 요새입니다. 그리고 거신목을 연구하면서 알아낸 건데, 세계수를 거신목에 접목할 수 있다면, 웬만한 괴수는 범접할 수 없을 겁니다.”
“요새라 나쁘진 않군. 그런데 고작 그것뿐이라고?”
그것 때문에 수백이 넘는 엘프 연합 원정대를 보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노우엘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세계수는 정령 차원과 다른 차원을 잇는 통로 같은 겁니다. 그러니 세계수가 있어야 이 세계에 정령이 들어올 수 있고, 그래야 엘프가 정령을 부릴 수도 정령 마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아! 정령이라면 인정이지. 꼭 찾아서 성공하길 빌지.”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알아낼 정도는 다 알아냈다.
시노우엘을 구한 대가는 이미 엘프 정보원으로 받았으니 상관없었고.
그랬기에 눈앞에 하이엘프를 다그치기보단 그냥 이해해주기로 했다.
소수의 엘프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정령 마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면 언제 인간들에게 사로잡히거나 괴수에게 잡아 먹힐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게 될 테니까.
물론 난 정령 능력 없이도 잘 대우해 줬을 텐데······.
“에테나 그만 가자. 응?”
에테나는 조금 전부터 시노우엘에게 무언가 말을 전하고 있었다.
시노우엘이 날 쳐다봤다.
“이 아이한테 들으니, 이곳 영지의 기간트 생산 공장을 보고 싶으시다고요?”
“그렇긴 한데, 그게 가능한가?”
“제가 이 성에서 가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귀공께서 하인 옷을 입으신다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건 그동안 우리 엘프들을 도와주신 은혜를 갚는 것이니 부담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난 에테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든 엘프가 다 에테나 같았으면 세계수 씨앗을 구하는데, 내가 도움을 줬을 수도 있었다.
나도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침입해서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
***
[바이마르 대영지 기간트 생산 공장]확실히 몰래 들어온 것보다는 훨씬 낫군.
그런데!
‘오! 분업화라니!’
흡사 지구의 자동차 공장을 보는 것 같았다.
나이트급 대형 작업용 기간트들이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손, 팔뚝, 팔꿈치, 어깨 등 단 한 가지 작업만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고, 그런 공정이 모여 팔 하나가 완성되고, 또 공정 마지막에서야 기간트 몸통에 사지와 머리를 연결하는 것 같았다.
시노우엘이 거대한 기간트 조립 공정을 돌아보더니, 살짝 한숨을 쉬었다.
“휴! 이곳 인간들의 기술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저 큰 것을 타고 괴수를 상대하다니요. 우리 엘프도 기간트가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괴수들에게 패하진 않았을 겁니다.”
“이건 인간의 기술이 아니야. 거신의 기술이지. 그리고 엘프의 정령 마법도 꽤 강하지 않나?”
전생에 정령을 다루는 헌터들의 힘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특히 S등급 헌터들은 집채만 한 정령을 소환해 괴수를 때려잡기도 하고,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괴수를 태우거나 수백 개 물의 정령을 소환해 괴수의 몸을 꿰뚫었다.
시노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은 강하지요. 하지만 엘프는 폐쇄적인 종족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잘 다루는 정령을 중심으로 여러 종족과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죠.”
“그만! 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서로 협력하지도 않고, 각개 격파당했겠지. 대부분 같은 이유로 망하는 거군.”
난 고개를 흔들었고, 시노우엘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엘프가 힘을 모아서 괴수를 상대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건 골백번 회귀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보니 엘프도 인간하고 같네.
‘응? 여긴 뭐지?’
대부분 공정은 개방되어 있었지만, 한쪽은 막혀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지! 여긴 출입통제 구역입니다. 들어가지 못합니다.”
중무장한 기사들과 병사들이 입구를 막아섰다.
시노우엘이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녀의 팔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중요한 장소인 것 같은데, 여기까지만 보지.”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러지요.”
우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난 분신인형 짹을 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잘 뒤져봐! 쓸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