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01)
내 마법이 더 쎈데-101화(101/203)
< 제51장 – 황녀 미네르바 (2) >
해가 저물었다.
가도를 따라, 어둑한 거리를 한 대의 마차가 기세 좋게 달린다.
드르륵.
창을 열어, 잠시 기색을 가늠하던 민세희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쫓아오는 기색은 없네요.”
마차 내부로 안도의 기운이 흐른다.
혹시나 하는 추적자는 없던 모양이다.
그야 그러도록 민세희가 ‘손’을 쓰기는 했다.
다행히 그 수가 제대로 먹힌 것이겠지.
“날도 늦었고······. 그럼 이쯤에서 야영지를 찾아보도록 함세.”
해가 진 남부의 야생 가도는 마차가 속력을 내어 달릴 만한 길이 아니다.
일행은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하나 둘, 잠자리를 만들고 늦은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그럼 나는······.”
민세희는 근처의 물건들과 자신이 가진 도구를 이용해 마법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환경을 조작해, 일행을 은폐하기 위한 은형 마법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선배처럼 직접적인 마법 행사엔 약하지만, 이 정도라면 가능해.’
연구자 출신인 그녀는 이런 식으로 사물이나 도구 등을 써서 사용하는, 이른 바 설치형 마법에 강했다.
대강의 설치를 끝낸 뒤.
“스위치 온.”
짜악.
박수를 치자, 스멀스멀 대지의 지맥에서 마력이 올라와, 마차를 가렸다.
은형(隱形)의 진이 성공적으로 발동한 것이다.
그렇게 야영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간신히 일행에게 여유가 찾아왔다.
후루룩.
미리 끓여둔 스프를 마시며 레프너겐이 입을 열었다.
“허허, 마을 안에 만력교도가 그렇게 많을 줄이야. 하마터면 발이 묶일 뻔 했구먼.”
“예상 외로 숫자가 많았습니다.”
그 말을 받은 건 조용히 자신의 검을 손질하던 흑발의 귀공자 카스팔이었다.
카스팔의 말 대로였다.
만력교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문제는 마주친 교도 숫자가 총 열 명을 넘는다.
단순한 시골 마을에서 마주치긴 힘든 숫자인 것이다.
‘근처에 무슨 볼일이 있었던 걸까?’
예를 들어 정기적으로 순찰을 하고 있다던가, 때 마침 밀명을 받고 마을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던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민세희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최악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혹시.
‘······어디에서 정보가 새어나가기라도?’
민세희가 누구보다 앞서 황궁에 ‘타 종교의 준동’ 정보를 요하고, 직접 남부의 만력교를 조사하러 내려온 이유.
그건 표면적으로는 제국에 위협이 될지 모르기에···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 외에도 그녀에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만약 그들이 그 의도를 깨달은 것이라면, 조금 골치가 아파질 터였다.
여러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저, 저기······.”
“응? 아, 육포 먹을래? 이거 맛있더라?”
이멜다의 곤란한 듯한 말투와 호쾌한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에 민세희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야영지의 한쪽.
거기엔 일행의 경계심 어린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이멜다 옆에 착 달라붙어 다리를 꼬고 앉아, 육포를 뜯고 있는 헬레나.
그리고 옆에선 이스텔이 묵묵히 스프 그릇을 향해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걸 본 브리타가 민세희를 돌아보며 눈짓으로 물어왔다.
‘그녀들은 누굽니까?’
민세희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들이 누군지는, 여기 있는 자리에서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정체를 밝힐 수가 없었다.
신과 거의 동등한 자.
드래곤.
이렇게 말해봤자 믿을 리도 없거니와, 그 정보를 오픈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녀들은 흑문 너머에서 건너온 수상하기 짝이 없는 무리지만.
그럼에도 일행이 무작정 그녀들을 적대하지 않은 건.
‘마을에서 보여준 모습이 굉장했지.’
이멜다의 목소리를 듣고 왔다던 헬레나는 순식간에 만력교도들을 불꽃으로 쓰러트렸다.
거기서 느껴지던 신성한 기운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낀 것이다.
특히나 이멜다에게 친근하게 구는 모습이나, 이멜다 또한 당황하긴 해도 받아들이는 걸 보면서.
악인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테지.
‘따지고 보면, 이멜다는 헬레나의 권속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이멜다가 어떻게 성녀가 되었는지, 아르민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민세희였다.
정작 이멜다 본인은 헬레나로부터 느껴지는 ‘친근함’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양이지만.
잠시 고민을 하던 민세희는 직접 나서서 일행을 향해 헬레나와 이스텔을 소개했다.
“이쪽 분들은 아르민 씨의 지인입니다.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에요.”
“아······.”
아르민의 이름을 거론하자, 단박에 일행 사이로 납득의 기운이 흐른다.
그만큼 지난 3년 간, 선배의 이름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좋아.’
이대로라면 먹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분들 또한 이번 조사에서 도움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먼저 선수를 쳐서 민세희는 그녀들을 일행으로 꾸며냈다.
“전력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라네.”
“특히 그때 보여주었던 마법이라면······. 근데 그거 마법 맞죠?”
“······.”
차례대로 레프너겐, 브리타, 카스팔의 반응.
다만 이멜다만이.
“으음······.”
복잡한 시선으로 헬레나와 민세희를 번갈아봤지만.
민세희는 일부러 무시했다.
****
장소는 황궁의 알현실
평소라면 근엄한 분위기가 흐를 이 장소에서, 지금만큼은 긴장감이 섞인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백금 기사단의 기사단장과 궁정 마법사를 전부 마력만으로 제압한 아르민은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야.”
그 말에 황실 인원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마력파만으로 경지에 이른 실력자를 제압하는 실력을 가진 자다.
여기서 어떤 폭거를 요구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는 달리.
“나는 제국에 위협이 되는 외적을 치고 싶어. 거기에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군.”
“······네?”
“무슨······.”
순간 미네르바와 다른 이들 사이로 의아함과 술렁거림이 지나갔다.
폭거를 저지르더니, 난데없이 제국을 위해 힘을 빌려달라니?
무언가의 은어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이 정도 실력 행사라도 하지 않으면, 그쪽은 날 믿을 수가 없을 거 아냐?”
아르민은 알고 있었다.
저 치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자신의 개인정보 정도는 알고 있겠지.
몰락한 백작가 일레인스 가문의 차남.
그런 존재가 난데없이 다가가서 외적을 막읍시다! 하고 말해봤자 콧방귀나 뀔 위인들이다.
그러니 그걸 방지하고자, 아르민은 밤새 시나리오를 짰다.
그리고 지금.
“흑문 사건 때, 나는 우연히 그 일을 일으킨 흑막들을 알게 되었다. 3년 간 그 일을 추적하느라, 이곳에 돌아오지 못한 거야.”
자신이 짠 시나리오를 떠들기 시작했으니.
개요는 간단하다.
흑문 사건을 일으킨 건 제국의 몰락을 바라는 ‘악당’들이다.
그리고 그 배후엔 현재 대륙을 어지럽히는 사이비 종교 집단들이 있다고.
즉 여기에서.
‘칠영웅이 이끄는 종교들을 배후로 지목한다.’
직접 사건과 연관된 아르민이 이렇게 떠든다면, 그들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터다.
실제로 힘을 가진 아르민의 말이라면 더욱 더.
아르민은 바로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거짓말이라도 거기에 진실을 10%라도 섞게 되면 설득력은 높아진다.’
제국 입장에서도 흑문 사건을 일으킨 배후는 반드시 밝혀내고 처단해야할 악의 무리다.
황제를 시해하고, 황자들을 죽이게 만든 악당들.
설마 그 황제가 직접 그런 짓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기에 귀결되는 결론인 셈이다.
여기에서 아르민은 그 입맛에 맞게, 제국의 병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손’을 벌충할 생각이었다.
제국은 아르민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아르민의 말이 그만한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럼······. 자네의 이 힘은 혹시······.”
보그너가 꺼내든 말에 아르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그런 ‘의심’을 해오다니, 이야기가 쉬워졌다.
“맞아. 그들을 쫓던 중 우연한 기연을 만나 얻게 된 힘이야. 내게 이 힘을 전해준 정령은 마(魔)를 멸하는 힘이라고 하더군.”
되는 대로 주워섬길 뿐인 이야기지만.
그들이 직접 힘과 마주한 이상. 아르민의 말은 무시무시한 설득력을 지닌다.
“······자네의 말을 어떻게 믿지?”
“이미 그쪽은 남쪽에서 준동하고 있는 만력교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면서?”
아르민이 꺼낸 말에 보그너와 앙칼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여기서 정보가 새어나갔을 줄은, 그것도 평범한 백작가 차남 따위가 그 기밀사항을 알고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뭐, 이건 낮에 이스텔을 통해서 세희에게 들은 것뿐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아르민이 이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간단하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흑문 사건의 배후를 알고 있어. 그들을 쫓던 중에 힘도 얻었다. 나는 이 힘을 이용해 제국의 수도를 습격하고, 황제까지 시해한 그들을 막고 싶어.”
의기에 찬 목소리.
그야말로 제국의 안위를 위해 화를 내는 건실한 청년이지 않은가.
더구나 눈앞의 청년이 자신들이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오해가 발생하기 딱 좋다.
야바위, 사기를 치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앞뒤 맥락이 맞다면 혹하는 게 인간이다.
미네르바의 얼굴 위로 고민하는 표정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고민되겠지.’
아르민의 말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문제는 거짓이라는 확신도 없다.
게다가 재미있는 것은, 무작정 무시하기엔 아르민이 보여주는 저 ‘힘’ 자체가 미스터리다.
고작 몰락한 백작가의 차남 따위가 난데없이 저만한 힘을 가졌다는 소리는.
‘거기에 그 정도의 굴곡이 있다는 의심과 납득으로 이어지는 법이지.’
인간이란 매사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일을 두고, 어떻게든 납득하기 위해 필요한 이유를 갖다 붙이고, 치장하려 하지 않던가.
결론적으로 그들은 아르민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그들이 인상을 찡그리는 표정을 보고 반쯤 확신했다.
‘제대로 먹히는 군.’
다만 아무리 진실에 가까워 보이는 일이라도.
“······자네의 말은 일리가 있어. 확실히 그 정도 힘을 가졌고 내막을 알고 있다면······. 우리가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귀족 가문······. 까놓고 말해 몰락한 백작가의 차남에게 제국의 병력을 맡긴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뭐, 당연한 이야기겠지.
그 정도는 아르민도 예상한 바였다.
자, 그럼 어쩔 생각이지?
현실적으로 협력하기 무리니까. 이대로 없던 일로 하려는 건가?
‘그럴 땐 정말로 무력행사를 해야겠지만.’
그랬다간 아무리 그래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다만 아르민의 고민이 허무하게도.
“대신······.”
쿵.
보그너가 고개를 들었다.
마력파로 제압된 육체를 일으키고 당당히 아르민과 마주보고 섰다.
‘호오.’
제법 강력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했거늘.
역시 백금 기사단의 단장이라면 이 정도 기세는 이겨낼 수 있다는 건가.
거기에 감탄한 아르민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보그너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자네가 우리 기사단에 입단해주게.”
****
덜컹.
문을 닫고 아르민은 알현실을 뒤로 했다.
“생각보다 말이 먹히는 자들이라 다행이군.”
그야 황궁이 개판이 났던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자가 나타났다.
그들로서도 단순히 무시할 수는 없을 터.
아르민은 아까 전 미네르바가 보여주었던 표정을 떠올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웅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던 얼굴이, 오늘은 양아치를 보는 표정으로 바뀌어있었지.’
그것도 아르민으로선 대충 예상한 바다.
억지로 힘으로 밀고 갔으니, 우리의 황녀님께선 마음에 안 드는 점도 있을 테지.
뭐, 그건 앞으로 차차 조정해나가면 될 일이었다.
극한의 환경에서 원석을 단련한다.
그 과정에서, 미네르바가 멀쩡한 인재라면 꺾이지 않고 차츰 성장하겠지.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고작 그 정도 인간일 뿐이라는 소리고.”
민세희를 무척이나 신뢰하는 모양이니, 그녀를 보듬어주는 당근 역할은 후배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자신은 철저하게 채찍이 되어, 그녀를 친다.
이건 전부 미네르바를 위한 일이다.
암. 딱히 후배를 괴롭히던 시절이 떠올라서 이런 게 아니다.
그렇게 단련 과정이 전부 끝났을 때.
미네르바 황녀는 자신을 어떤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까?
어째 불현 듯.
‘마리나는 잘 있으려나.’
한때 함께 했던 하녀를 떠올리며, 아르민은 피식 웃는 얼굴로 황궁의 복도를 가로질렀다.
****
아르민이 사라지고 난 뒤, 보그너와 앙칼라 사이로 소란이 일었다.
“대체 그 청년은 뭐란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마력이었습니다. ‘마를 멸하는 마력’이라니. 그 어떤 서적에서도 찾을 수 없던, 처음 듣는 능력입니다.”
아르민이 남겨둔 파문은 컸다.
당연했다.
국가의 대들보라고 할 수 있는 무력의 두 기둥.
소드마스터에 이른 기사단장과 아크메이지에 올라선 궁정 마법사를 동시에 제압하다니?
“그 청년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기 힘들지만, 지금으로선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그나마 저런 자가 적이 아니라, 제국을 위해 움직이겠다는 게 다행이었다.
“일레인스 가문의 차남이라······. 그러고 보면 검성이 재능을 인정한 적이 있다던가 하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죠.”
“그때는 단순한 농담이라고 치부했거늘. 사실이었던 것인가.”
아무리 각종 소문이 사실이고, 아르민이 꺼낸 말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횡포가 심하군요. 기사단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게 해결책이 될지는······.”
“처음부터 민세희라고 하는 외지인을 국가 중요인으로 받아들인 것부터가 문제네······!”
“그래도 그녀가 아니었으면 당시 사건을 수습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앙칼라와 보그너의 언성이 점점 높아질 쯔음.
“그만.”
미네르바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동시에 보그너와 앙칼라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쉬고 싶네······. 자리를 비워주게.”
아까의 마력파는 아무리 황녀라고 해도 10대 소녀가 견딜만한 힘이 아니긴 했다.
보그너가 무어라 한 마디 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피로를 알아챈 앙칼라가 고개를 저으며 보그너를 끌고 퇴장했다.
잠시 후.
“······그 남자가 세희, 그대가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영웅’이란 말인가.”
하지만 저 횡포는 대체 무엇일까.
제국을 위해 일하겠다고?
미네르바는 아르민이 떠나기 직전 보여주었던 ‘미소’를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째.
‘······세희, 나는 모르겠소.’
아르민이 앞으로 자신을 어떻게 취급할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미네르바가 아르민에게 가진 첫인상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
남부의 야영지.
일행이 전부 잠자리에 들고 난 뒤.
잠시 거기서 멀어진 민세희는 헬레나와 단 둘이 마주섰다.
“이런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프린세스 헬레나······. 아니, 인페르날이라고 불러야 될까요?”
“어느 쪽 이름이든 너무 깨지 않아? 소름만 돋는데. 그냥 헬레나라고 불러. 이미 과거 일이기도 하고. 당신 이야기는 미스터 강한테 자주 들었어. 자기 외에 또 다른 방문자가 있다고 했었지. 연구실 후배라면서?”
“······네.”
“참 모를 일이야. 미스터 강도, 당신도.”
그야 우리들에게 벌어진 일은,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긴 했다.
어쨌거나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럼 이야기가 편해진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건 복합적인 질문이었다.
세실리아를 통해 들은 신화의 진실.
그게 사실이라면 헬레나는 천 년 전, 봉인이 된 신분이었다.
신좌에서 끌어내려진 존재.
“그게 좀 길어질 텐데 말이야.”
헬레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아르카디아를 주축으로 ‘모노리스’의 다음 장을 보기 위해 뭉친 칠영웅들과 거기에 반발한 자신.
덕분에 마계로 추방당해 천 년을 봉인 당했고.
“그때 미스터 강이 찾아왔지.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마계에서 선배가······.”
역시 선배는 굉장하다. 잠시 눈을 감고 그걸 음미한 민세희였다.
자신 또한 경계심을 품었지만, 이쯤 오면 믿어도 되지 않을까?
이야기만 들으면, 그녀는 아군이다.
곁에 이스텔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민세희가 고민하는 기색을 눈치 챈 헬레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난 말이야. 날 이렇게 만든 녀석들에게 엿을 먹여주고 싶을 뿐이야. 복수하고 싶어. 그걸 위해 미스터 강과 협력하기로 했지.”
그 말이 민세희의 등을 밀었다.
“이미 짐작하시고 계시겠지만.”
“응. 알아, 내가 쓰러트렸던 놈들에게서 유토피아······. 칠영웅 블라디미르의 신성이 느껴졌어. 제대로 된 놈이 아니니까. 아마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거겠지.”
“네······.”
남들에겐 비밀이지만, 민세희는 헬레나에게만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밝혔다.
신격을 가진 그녀라면, 알아두는 게 좋을 정보.
“아마 만력교는 아르카디아가 남겨둔 유산을······.”
그래. 아마 현재 아르카디아의 빈자리를 노리고, 칠영웅 전부가 눈이 벌개져서 찾고 있을 그것.
“모노리스의 파편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민세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 제51장 – 황녀 미네르바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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