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04)
내 마법이 더 쎈데-104화(104/203)
< 제53장 – 북방을 거니는 고래 (1) >
쿠웅! 쿠웅!
이미지는 고래일까.
족히 전장 10km는 되어 보이는 검은색 고래 동체 아래 달린 네 개의 다리. 놈은 그걸 이용해 사족 보행으로 거닐며 거침없이 설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쿠웅!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떨림이 전해져온다.
이미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사라졌다.
대지를 뒤흔들며 나아가는 ‘저것’을 목도한 순간,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놈의 위용에 압도당하고야 만 것이다.
‘이것 참 가지가지 하는구만.’
예언으로 점지한 신물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무려 사족보행 고래다.
심지어 저 등 위로는 마치 오래된 고성(古城)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을 정도였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누구라도 절로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신께서 직접 손으로 빚은 물건이 아니한가.]‘미네르바 녀석이 괴물이라고 말한 것도 이해가 되는군.’
그야 저런 위용을 뽐내며, 가로막는 모든 걸 쳐부수고 박살내고, 즈려 밟고 지나가는 거대괴수라면.
보는 사람에 따라선 신성함과 동시에 기괴함, 그리고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고 납득했다.
바로 그때였다.
– 적랑 기사단 1분대! 앞으로!
뿌우우!!
이 자리를 가득 메우는 뿔 나팔 소리를 뒤로 하고서.
두두두두!!
설원을 거니는 고래 옆으로 적색 갈기를 휘날리며, 내달리기 시작한 기사들이 보였다.
갑옷의 어깨 위로 불타오르듯 빛나는 붉은색의 견장.
저들이 바로 칼센 제국이 자랑하는 황제의 검. 적랑 기사단의 일원이 분명했다.
잠시 아르민은 그들을 응시했다. 어째서 여기서 적랑 기사단이 설원을 내달리는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1번대 장저어어어어언!!!”
우렁찬 포효에 이어.
철컥철컥.
메마른 설원 위로 메아리치는 쇠뇌의 장전음.
직후, 적랑 기사단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손날을 아래로 내리치며 명령했다.
“······발사!!”
쇄애애액!
쇄액!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 쇠뇌의 파공성을 뒤따르는 건.
콰아아아앙!!
설원을 붉게 물드는 거대한 폭발과 화염이었다.
아마도 쇠뇌에 담겨 있던 건 폭약과 화염 마법을 섞은 복합 시약이었던 것이겠지.
다만 그들이 폭탄 화살을 쏜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 교오오오오!!!!
갑작스레 일어난 폭발과 불꽃이었다. 그것에 놀란 듯 고래는 몸을 뒤틀며, 진행하던 방향을 비틀며 설원의 한쪽으로 움직임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 뒤에도 몇 번이고, 적랑 기사단의 분대가 교대로 화살을 쏘아 고래의 발치를 공략했다.
‘과연, 그런 거였나.’
그러고 보면 미네르바 황녀가 말했었다.
적랑 기사단이 직접 그놈의 신물이라는 것을 ‘확보’하고 ‘관리’하고 있노라고.
‘일부러 놈을 유도하고 있군.’
하긴 저 정도의 체구와 질량을 가진 괴물이 일직선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이 근방의 마을이나 영토 따위는 전부 초토화되고도 남아돌 터였다.
적랑 기사단은 적당한 틈을 보아, 직접 고래를 놀래켜 놈의 진행 궤도를 비트는 것이 분명했다.
대충 이 근방을 빙빙 돌도록 유도하는 것이겠지.
이걸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또 있었다.
‘직접 행동을 유도하는 게 가능하다는 건, 놈에겐 지능 대신 본능만이 존재한다는 뜻이야.’
그렇게 아르민이 상황을 냉철히 분석하는 사이.
“괴, 굉장하다······.”
“저게 적랑 기사단이구나······.”
마차 내에서 울려 퍼지는 감탄에 찬 목소리와 함께.
그들은 마침내 북방의 영토에 설치한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베이스캠프 안으로 속속들이 마차가 들어서는 사이, 먼저 캠프에 내려선 아르민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캠프에는 사람이 많았다.
‘백금 기사단의 3분의 1인 120명의 기사들과 엘프 사절단 30명. 그리고 나머지는 미리 와있던 공병대 인원들과 적랑 기사단인가.’
즉 이 캠프에만 벌써 500여명이나 모여 있다는 말이었다.
이 규모라면 이미 작은 마을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문득 아르민의 시선이 캠프 중심으로 향했다.
거기엔 마침 보그너 백작이 붉은색 견장을 차고 있는 기사들 무리로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적랑 기사단과 직접 접촉해, 새로이 갱신된 정보를 나누려는 모양이었다.
“자자! 마차에서 내린 단원들은 짐부터 챙겨라! 꾸물거릴 시간 따윈 없어! 앞으로 30분 안에 자신이 머물 텐트를 설치하고, 다시 이 자리에 모인다! 실시!”
하필 이럴 때 보그너 백작을 대신하여 기사단을 이끄는 상급 기사가 단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 예!!!
힘찬 대답을 내놓는 것과 동시에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기사단원들이었지만.
아르민은 거기에 어울릴 생각 따윈 없었다.
정보가 오간다면, 미리 알아두는 편이 좋다.
그런 판단을 통해.
‘조용히 접근한다.’
따악.
손가락을 튕긴다.
마력의 흐름을 조절하고, 주변의 인식을 비틀어 나 자신을 숨기는 마법.
광학위장(光學僞裝)의 마법이 발동되자, 공기에 녹아들 듯 아르민의 존재가 희미해졌다.
다가가자, 차츰 보그너 백작이 꺼내드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리차드.”
리차드라 불린 남자.
적색의 사자갈기와도 같은 머리칼과 수염을 가진 중년 남자는 필시 적랑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인 것이겠지.
리차드는 보그너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참, 제국의 자랑. 보그너 백작이 아니신가.”
“자네의 빈정거림은 여전하구만.”
보그너 백작과 리차드는 잠시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는가 싶더니.
“파하하핫! 오랜만이네. 보그너! 신수는 여전히 훤하군!”
“그러는 자네야말로 여전히 새빨간 수염이구만.”
“크흐흐! 적랑 기사단의 상징이다 보니, 정리하고 싶어도 우리 애들이 말려서 말이야.”
제법 친한 사이인지, 농을 주고받는 둘이었다.
‘강해보이는 군.’
보그너 백작도 본 순간부터 한가락 한다고 느끼긴 했지만, 리차드에 이르러선 확실히 풍기는 기도부터가 달랐다.
등 뒤로 새빨간 태양이 타오르는 것만 같은 기백은, 아마 기가 약한 인간이 마주했다면 그 자리에서 졸도해버릴 만큼 강대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랑 기사단의 단장이 가진 힘인 것이리라.
“그래서 뭔가 특기할만한 변화는 있나?”
“아니, 여전해. 여전히 저 괴물은 쿵쿵 거리면서 움직이지, 우리 애들은 고생이지. 난 오히려 놀랐다네. 그 궁둥이 무거운 제국의 귀족 놈들이 드디어 용단을 내리다니 말이야.”
“미리 알렸듯이, 엘프들이 엮였어.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그쪽 대표와 작전회의를 가질 생각이네.”
“그 귀 큰 놈들이 말이지. 뻗대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긴 하다만, 오늘만큼은 감사해야겠군.”
리차드의 너스레에 보그너가 이유를 묻자.
“어디 2년 넘게 설원에 처박혀있어 보게나. 사람이 어쩔 때 미치고 팔짝 뛰는지 자기 몸으로 알게 될 게야.”
쿠웅! 쿠웅!
멀리서 아스라이 울리는 진동.
리차드는 한숨을 내쉬며 현 상황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 시작했다.
“미리 보고했다시피. 아직도 놈의 등에는 오르지 못했네.”
걸어 다니는 괴물.
놈의 등 위로 세워져 있는 고성.
평범하게 머리가 있다면, 바로 저 장소가 심상치 않은 곳이라고 단박에 눈치를 챌 만큼.
성의 존재가 유별났다.
물론 그건 눈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쪽 마도병단 소속 마법사들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성 내부에서 강력한 마력반응이 느껴진다고 하더군. 나 같은 칼밥만 먹는 놈이야 모를 일이지만. 저 성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한 듯 허이.”
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적랑 기사단은 지난 2년 반이라는 시간을 저것과 부대껴왔다.
당연히.
“한 달 전에도 놈의 등 위에 오르기 위한 상륙작전을 실시했지만, 이번에도 수포로 돌아갔네.”
“예의 결계 때문에 말인가?”
“그래, 몇 번을 해도 우리 힘으로는 뚫을 수가 없어.”
아직까지도 저 괴물의 행동을 ‘관리’만 하고 멈출 수가 없는 이유.
그건 본질적으로 적랑 기사단이 아직 고래에 올라탄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성은 강력한 결계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적랑 기사단은 한 번도 그 등에 올라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과연 그래서 엘프들이 참가하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전보를 보내온 것이군.”
“그래. 엘프들의 마법이라면 결계를 뚫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네.”
다만.
“조심해야할 건 그 뿐만이 아니지. 저 괴물 놈에겐 특이한 ‘스킬’이 있다네.”
주기적으로 약 6시간에 한 번씩.
괴물은 주변의 마력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고 리차드는 말했다.
“듣기는 했다만, 믿기지 않는 군. 정말인가?”
“나도 처음 봤을 땐 자네와 같았지.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수준이야. 오죽하면 그렇게 소멸된 마력이 회복되는 데만 1시간이 족히 걸려. 그때까진 마도병단 자체를 운용할 수가 없다네.”
즉 이번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선, 최소 괴물이 마력을 먹어치우고 1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능하다고, 리차드는 그렇게 말을 마무리했다.
‘결계, 그리고 마력을 먹어치우는 스킬까지.’
결계라면 아르민이 특히 자신 있어 하는 분야기도 했다.
그렇게 몰래 엿들은 정보를 차곡차곡 정리하며, 아르민이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쯔음이었다.
– 와아아!
그때 캠프 구석이 소란스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엘프들이 도착했군.’
***
아르민이 살아가는 이 세계는 과연 판타지 세계답게, 엘프 종족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한 미형을 가진 종족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차에서 엘프들이 내려선 순간, 가장 먼저 술렁거리며 환호한 건 2년 반을 이 베이스캠프에서 살아온 적랑 기사단의 남자 단원들이었다.
– 오오오
– 쩐다.
그간 여러 가지 욕구가 쌓인 탓인지, 아니면 전투 전문 기사단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유의 야성적인 면모 때문인지.
엘프가 나타나자마자 광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같은 적랑 기사단의 소속인 여성 기사들은 동료가 보인 추태에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남자 엘프들의 외모엔 눈을 빛내고 있었으니.
자고로 사람이란 남자나 여자나 잘생기고 이쁜 걸 좋아한다는 건, 세계를 떠나 만고불변의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모두 좋아 죽으려고 하는구만.’
엘프들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건 젠체하기를 좋아하는 백금 기사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라면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고작 해봐야 군대에 위문 공연을 온 아이돌을 보고 환호하는 것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어딜 가든 그렇겠지만.
늘 개중에서는 선을 넘고 사고를 치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다.
“휘유~ 예쁜데?”
껄렁거리는 것이, 어째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들개란 느낌을 풍기는 남자였다.
어깨의 붉은 견장 위로 그어진 선은 총 세 개.
‘적랑 기사단의 상급 기사인가.’
이름 모를 놈은 때 마침 마차에서 내려선 그레이시아를 향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엘프 아가씨가 이런 곳까지 무슨 일이야? 혹시 그건가? 우리들을 위로 해주러 온 거야?”
히죽거리면서 그레이시아를 위 아래로 핥듯이 바라 보는 남자의 꼴은 실로 불량했으니.
그걸 그냥 참고 넘어갈 그레이시아가 아니었다.
“당신, 무례하군요.”
“에이, 무례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 이쁜이를 보면 내 아들이 참지를 못하더라고.”
남자는 서슴없이 자기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기사단 놈들답게, 예의 따윈 내다버린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엘프를 상대로 저런 태도라니, 적랑 기사단도 큰일이군.’
저런 멍청한 짓이 과연 정치적으로 어떤 갈등을 불러오게 될지, 최소한의 고려도 없다.
그야말로 멍청하기 때문에 머릿속이 꽃밭이란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레이시아와 그녀를 보좌하는 엘프들은 참지 않았다.
“더 이상 무례하게 굴면, 정식으로 항의하겠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그렇게 남자가 다가든 순간,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이 이상 내버려두면, 엘프들을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미네르바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
‘아랫것들의 실수를 책임지는 게 윗놈들이 할 일이라고는 하지만······.‘
뇌가 거시기에 달린 놈의 뒤치다꺼리까지 10대 아가씨에게 맡기는 건, 너무한 일이지 않은가.
“왔냐.”
그 한 마디.
엘프와 아는 척을 하며 등장한 아르민의 모습에, 삽시간에 주변으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 엘프와 아는 척이라니.
– 누구지?
– 정말로 황녀님의 애인인 것은······.
대체 아르민이 뭐하는 놈인지 종잡지 못하는 소리 일색이었지만.
적랑 기사단원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었는지.
“네놈은 또 뭐야?”
불쾌한 얼굴로 그리 물어왔다.
“아······.”
그레이시아의 얼굴이 살짝 반가움으로 물들지만, 금세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이것 봐라.’
이 자존심 강한 아가씨도, 도움 받은 것 자체는 기쁘다는 걸까.
좋은 걸 봤다.
어쨌거나 아르민은 다시금 적랑 기사단원을 바라보았다.
“뭐야, 백금 기사단 소속의 기사냐? 너 내가 누군지나 알고 막는 거냐? 내가 바로 적랑 기사단의 상급 기사 요르한이다. 임마.”
남자는 킬킬거리더니.
“귀족 도련님이 꼴에 기사라고 말이야. 되도 않는 정의감으로 나선 모양인데. 아서라. 제 실력도 모르고 나대는 기사도 나부랭이만큼 의미 없는 것도 없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말, 알고 있긴 하냐?”
자신을 요르한이라 밝힌 남자가 떠들어대는 말에, 아르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착각하고 있군.’
지금 상황을 아르민이 정의감에 참지 못하고 나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티가 나도록 내쉰 한숨에, 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을 해도 못 알아 처먹겠다면, 직접 알려주마. 새끼야.”
요르한이 손을 흔들자, 지잉 하고 놈의 건틀렛 위로 희미한 마력이 맺혔다.
그러자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 저 젊은 나이에 오러를 구현하다니!
– 저토록 짙은 색이라니, 굉장하군!
주변인의 감탄에 요르한은 콧대가 높아졌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강기의 구현이라, 제법이군.’
헌터 중에서도 무술가 타입의 놈들 중, 눈에 보일 만큼 강기를 만들어내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해야 열 명중 서 너명 정도일까?
헌터와 같은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놈이 가진 실력은 확실히 수위에 드는 것이겠지.
놈이 자신할 만도 했다.
그러나.
“어울려주는 것도 귀찮다. 짜샤.”
“응?”
놈에게만 들릴 정도로 내뱉은 목소리.
요르한조차도 자기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확신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따악.
아르민이 손가락을 튕겼다.
핀 포인트로 노리는 건, 놈의 뇌간에 존재하는 송과선(松果腺).
의도적으로 마력을 흩뿌려, 조용히 멜라토닌의 분비를 맹렬히 촉진한다.
말 그대로.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라.”
쿠웅!
아무 말 없이, 요르한은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힘이 있으면 뭐해, 마력 방비조차 안 되어 있는데.’
이래서야 현대 마법의 먹이가 될 뿐이다.
– 어?
– 응?
순간 이 자리로 정적이 감돌았지만.
아르민은 구경하는 모두에게 들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거 참, 우리 기사님이 너무 피곤하셨나 봅니다.”
적랑 기사단원 사이로 혼란이 치달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민은 그레이시아에게 다가갔다.
“······고마워요.”
방금 전에 일어난 미약한 마력의 떨림.
그걸 눈치 챈 그레이시아는 아르민이 뭔가 했다고 깨달은 것이리라.
“인사는 됐고, 조심해라.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다보니, 멍청한 놈들도 많은 모양이니까.”
“인간들이 무서워서 몸을 사리면 엘프가 아니죠.”
“아, 그러셔.”
이런 점에서는 역시나 꽉 막힌 것이 엘프답지만, 그 융통성 없는 태도에 아르민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나저나.
“저게 신물이군요. 처음 보는 생명체에요.”
베이스캠프에서 저 멀리 떨어진 장소.
아마 단순 거리만 해도 족히 50km는 떨어져 있을 테지만, ‘놈’의 크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여기까지 그놈의 고래가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고래야.”
“······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
“고래란 생명체라고. 뭐, 내가 아는 고래는 보통 하늘을 헤엄치는 녀석이지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래는 바다를 헤엄치는 놈들이겠지만.
판타지 세계에서 고래란 원래 하늘을 나는 놈들이라는 게 상식이다.
농담이지만.
“저희 엘프들이 인간들과 함께 저 고래···의 위로 향한다고 들었어요.”
“맞아, 위에 결계가 있는 모양이더군. 그걸 뚫는 게 엘프들의 역할이겠지.”
마력에 민감한 엘프들의 마법 실력은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때문에 엘프들이 결계를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확실히 해제하는 지가 작전의 핵심 요지가 될 테지.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엘프 나으리.”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뻔뻔한 농담이네요.”
그레이시아의 한숨 섞인 말을 들으며, 아르민은 씨익 미소 지었다.
****
“모두! 위치로!”
두두두두!!
기사단이 바삐 움직인다.
쿠웅! 쿠웅!
거대한 짐승 앞에 도열한 기사단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그 뒤로 엘프들도 저마다 정령을 불러내서 배치하는 모습이, 하나 같이 작전이 시작되기를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지켜봐라. 저것이 ‘놈’이 가진 특성이다.”
– 교오오오오!!
포효와 함께 주변 마력이 놈의 입가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실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소멸해들어가는 마력을 보며.
‘확실히, 장난이 아니구만.’
놈이 가진 특성에 왜 적랑 기사단이 이제껏 애를 먹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먹어치운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걸스럽게, 또한 탐욕스럽게 마력이 고갈된다.
이 일대가 순식간에 ‘마력의 진공’ 상태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세계의 마법들은 발동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군.’
실제로 뒤에서 엘프들이 현신 시킨 정령들의 모습이 희미해지기까지 했다.
동시에 아르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이 정도로 마력을 먹어치운다면, 필연 먹어치운 마력은 어디론가 ’흘러갈‘ 거야.’
농밀하게 농축된 마력의 행방.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기사단들은 작전 시작에 앞서, 일대의 마력이 회복되는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앞으로 한 시간.
어느 정도 마력의 진공이 되돌아온 시점에 맞추어.
“작전·········!! 개시······!!”
두두두두!!
드디어 고래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 제53장 – 북방을 거니는 고래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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