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is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11)
내 마법이 더 쎈데-111화(111/203)
< 제56장 – 서쪽으로 (1) >
제국 서부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서쪽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이 집단 착란 증세를 보인다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정보부 소속의 첩보원은 거기에 더해 이런 말을 전해왔다.
– 해당 현상은 이미 3년 가까이 진행되어온 듯 보이며, 현재 서부를 혼란에 빠트린 주범으로 지목됨.
단출한 몇 줄의 보고서.
그걸 접하고서 누구보다 먼저 충격을 받은 건 미네르바 자신이었다.
“······어째서 지난 3년 간 관련된 보고가 내게 올라오지 않은 게지?”
“일부러 숨겼겠지.”
“숨기다니, 어째서?”
미네르바 황녀는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아르민 입장에선 놀라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황제와 1황자, 그리고 2황자가 죽어버린 이상. 제국 중심부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각 지방의 영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창구를 잃어버린 셈이야.”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창구는 존재한다.
임시라고는 하나 미네르바가 황위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저 지방 귀족이 미네르바를 창구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스쳐지나가면서 본 적 있는 것 같군. 모르티엔 자작은 알로스린 대공 휘하의 인물이었던가.”
미네르바 황녀는 기나긴 한숨을 내쉬며 집무실 의자에 몸을 묻었다.
요컨대 정치 싸움의 문제였다.
알로스린 대공은 사태를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미네르바에게 알리진 않았다.
의도는 뻔했다.
“보고서를 보니, 모르티엔 측에서도 대처를 하기는 한 모양이야. 별로 소득은 없었던 것 같지만. 영주가 움직였는데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소리지.”
“그럼 당연히 신민들의 불만은,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나를 욕하겠군.”
과연, 이해가 빠른 아가씨였다.
황권 약화가 불러온 지방 귀족의 호족화.
이건 미네르바가 뛰어넘어야할 또 다른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 아냐?”
“그대의 요구 덕분이었지.”
지방 영주가 입 싹 닫고 덮어두던 일을, 그나마 아르민이 요구한 대로 정보부를 움직이면서 알게 되었다.
아직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다.
그래서였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대와 동행하고 싶네.”
****
다음날.
“거창한 호위는 필요 없네.”
집무실에 앉아 서류를 체크하던 미네르바 황녀가 내민 한 마디.
황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찾아온 보그너 백작은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다.
“재고해주십시오. 미네르바 황녀님. 시기가 시기이지 않습니까! 이런 때에 제도 바깥으로 외출을, 그것도 기사단의 호위 없이 나간다는 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수도 카라클의 치안 담당이자, 나아가 황족의 경호를 맡고 있는 백금 기사단의 단장이다.
그나마 지금도 참고 참아서 말을 돌려 하는 중일 테지.
‘본심으로는 미쳤냐고 따지고 싶을 테지.’
집무실의 구석 자리에 기대어 선 아르민은, 눈앞의 풍경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그런 이야기가 들려왔다는 건 당연히.
‘신물이 관련된 일일 확률이 높다.’
때문에 아르민은 조사하기 위해 움직일 생각이었다.
헌데 여기에 미네르바 황녀가 동행하고 싶다는 폭탄선언을 곁들였다.
‘뭐,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황궁에서 자리를 잡는데 바빠 신경 쓰지 못했다고는 하나, 서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네르바가 확인하고 해결을 했어야 하는 일이다.
가뜩이나 현재 제국의 귀족들 대다수가 미네르바 황녀에게 내린 평가는 이러했다.
–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이 막중한 자리에 앉은 어린 계집아이.
제국의 신민들이야 여전히 황족으로서, 그 어린 몸으로 옥좌에 앉은 미네르바를 존경하고 따르고 있지만.
왕정 국가에서 나라를 움직이는 힘은 신민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들 위에 군림하고, 경제, 정치, 문화에 깊숙이 개입한 귀족들의 입김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부에 벌어진 혼란을 수습하는 건, 미네르바에게도 중요했다.
“아무리 내 바빴다고는 하나, 서부에서 들려오는 신민들의 비탄에 빠진 목소리를 놓치다니. 이건 전부 내 부덕의 소치이네. 나는 그걸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
“하지만 어째서 그 현장으로 황녀께서 직접 발걸음을 하실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세력이 약한 본녀가 알로스린 대공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쯤은 당연히 해내야하네.”
“·········!”
부끄러움조차 무릅쓰고, 언급한 이야기.
보그너도 알고 있다.
3년 전 벌어진 <흑문 사건> 이후.
귀족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며, 살아남기 위한 동아줄로 뭘 잡아야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란 것을.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제3황녀 미네르바보다는 제4황자 카르몬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로스린 대공의 줄이 더 굵고 질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리라.
“영주조차도 손을 대지 못한 전염병 지역을 황녀님께서 직접 방문해 사태를 해결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확실히 지금까지의 여론을 단번에 반전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최소한 알로스린 대공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겠지.”
자신이 더한 추임새에, 보그너 백작은 잠시 아르민을 노려보았지만.
아르민으로선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만큼 미네르바 황녀는 궁지에 몰려있다.
그건 당사자가 알고 아르민이 알고, 보그너 백작도 잘 알고 있다.
“······3년 전 그날 이후, 서쪽에서는 교역까지 막혔네. 타국에선 흔들리는 제국의 추이를 살펴보자는 결론이었겠지.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제국 서부의 신음 소리는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어. 특히 이번에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서부에서 일어난 변고(變故)는 황제가 바뀐 것에 하늘이 노하여 뿌린 전염병이 아닌가 하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는 모양이네.”
미네르바 황녀도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은 이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단지 황궁에 앉아있기만 해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무늬만 황녀를 자처할 뿐이라는 오명을 씻을 기회.
그래서 더욱이.
“백금 기사단을 동원할 수는 없네. 기사단에게 얌전히 호위를 받으며 향했다간 손가락질이나 당할 테니.”
백금 기사단이 아무리 황족의 호위를 위해 존재하는 기사단이라고는 하나.
황녀가 제멋대로 외출하는 것까지 커버해줄 순 없다.
막말로 미네르바 황녀가 서쪽으로 떠나더라도 황궁에는 카르몬드 황자가 남아있으니까.
더구나 기사단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할 뿐이라고 비춰지는 것도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그래서 미네르바는 기사단의 정식 호위를 거절하고 나섰다.
오로지 소수 정예로만 그곳으로 향하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보그너 백작은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황녀님께서 직접 움직여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신민들은 물론, 귀족들도 황녀님을 다시 보고 따르리라는 건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번 외출을 알로스린 대공이 내버려둘 리가 없습니다.”
보그너 백작이 걱정하는 부분은 심플하다.
기사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황녀의 안전이 걱정된다. 이런 이유다.
물론 아르민이 함께하는 이상,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만.
“·········자네 말이 맞아. 그래도 나는 해야만 하네.”
“하오나······!”
“이번 조사에 다행히 검성 지크프리트 경이 함께 해주기로 했네. 이래도 호위가 부족하다고 말할 셈인가? 자네는 자네의 스승이기도 했던 검성을 믿지 못한다고 말하진 않을 셈이겠지?”
“·········.”
보그너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끝났군.’
저런 말까지 꺼낸 이상, 토를 달긴 어렵겠지.
미네르바 황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마음을 알고 있네. 은퇴한 검성께 부탁드리는 게 염치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번 일은 나를 지지해주는 그대의 마음을 배신하고자 하는 게 아닐세. 그저······.”
이런 과감한 선택이 필요할 만큼 정국은 최악이고.
자신은 발버둥을 쳐야만 한다고.
거기까지 들은 보그너 백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황녀 입에서 약한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먼저.
“예. 소인의 불찰입니다. 그 부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발 물러섰다.
“앙칼라 궁정법과 함께 조사단의 파견을 준비하겠습니다.”
“고맙네.”
****
조사단 일행은 빠르게 구성되었다.
미네르바 황녀를 필두로,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동행하는 검성 지크프리트.
황녀를 보필하기 위한 시녀 둘.
그리고 검성의 임시 제자와 아르민까지.
총 6명으로 구성된 단출한 조사단이 꾸려졌다.
그 중에서 특히.
“오랜만입니다! 아르민 경! 활약은 진즉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설마 이번 임무에 같이 할 수 있게 되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누구?”
처음 보는 얼굴의 청년이 씩씩한 목소리로 아르민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기,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저입니다! 저! 후티스 게르빌! 게르빌 남작가의 차남입니다! 어전대회에서 한 수를 겨뤘던 사관학교 생도!”
후티스? 사관학교 생도?
아르민은 잠시 고개를 모로 꼬다가.
“······아.”
깨달았다.
그 녀석이었다.
자신이 아니라, 아르민의 모습을 하고 이스텔이 참가했던 어전대회에서 한방에 뻗어버린 그 녀석.
이래서야 낯이 선 것도 당연했다.
‘그때 알로스린 놈들이 떠들던 임시 제자가 이 녀석이라고?’
고작 해봐야 자작가 차남인 주제에 검성의 임시 제자라니, 말 그대로 인생역전의 주인공이지 않은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흑문 사건>에서 우연히 지크프리트 님의 곁에서 전투를 도왔던 걸 계기로 제자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후티스는 오로지 제국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른다는 각오로, 시민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흑문에서 기어나온 괴물 앞에서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자신이 마음을 빼앗긴 남자라면 응당 이러했을 거라 속삭이며.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검성의 눈에 띄게 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던가.
“그런데 왜 계속 존댓말이냐?”
어전대회 때는 반말하면서 싸우지 않았나? 싶은 아르민이었지만.
“지크프리트 님께 아르민 경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습니다. 재능이 굉장한 분이시라고! 설마 직접 검성의 제자 제안을 받은 분이시라니! 특히나 북방의 영토에서 보여준 활약상을 듣고 결심했습니다. 한 명의 검사로서, 제국의 신민으로서, 그리고 검성의 제자로서 당신을 존경하기로 말입니다!”
“아, 뭐, 그래.”
존경심을 품었다 이건가.
이스텔이 심어놓은 거짓된 이미지와 제국의 체제 선전을 위한 프로파간다에 휘둘리다니.
‘쉬운 놈이구만.’
뭐, 타인이 호의를 품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굴리기 좋은 아랫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적당히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음?”
문득 아르민은 황녀의 보필을 위해 참가한 하녀 중, 푸른색 긴 머리를 가진 하녀에게 시선이 못박혔다.
황녀의 짐을 싣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하녀는, 아르민의 시선을 깨닫고는.
“······황녀님과 여러분의 시중을 맡게 된 하녀 ‘에리스’입니다.”
우아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아르민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자.
“혹시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시온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르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시중을 들기 위한 시녀란 말이지.
그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절도나, 자세에서 보이는 예리함.
무엇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마력신경을 자극하는 짙은 마력농도와 더불어 ‘탐지’ 마법에 걸려드는 하녀복 내부의 단검 다섯 자루에 이르러서는.
‘평범한 하녀 같은 게 아니군.’
하고 결론을 내린 아르민이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보그너 백작이 간신히 타협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조사단은 제국의 서부를 향해 출발했다.
****
제국은 넓다.
때문에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취하는 이동수단은 마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행 중에 황녀가 참가한 조사단이다.
조사단을 꾸리기 위해, 각종 요소를 챙긴 보그너 백작부터가 황녀가 마차만 타고 가도록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제국의 중심부터 말단까지, 각 중요지역을 혈관처럼 잇고 있는 마력열차를 통해 아르민 일행은 움직였다.
‘이것만큼은 환영할 일이군.’
만약 혼자 움직이려고 들었으면, 백금 기사단의 신입 단원에 불과한 아르민으로선 적지 않은 품이 들었으리라.
황녀가 참가한 거, 꽤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아르민이었다.
그리하여.
덜컹, 덜컹.
레일 위를 따라 달리는 열차 안.
“제국의 서부는 황량한 땅입죠.”
창밖으로 펼쳐진 황야에 가까운 초원을 보며, 후티스는 자신의 제국지리 상식을 설파했다.
“중부와 남부의 비옥한 토지에 비해, 제국의 서부는 연간 강수량이 적고, 무엇보다 마물의 산맥이라고 부르는 ‘그리센 산맥’을 접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지난 수백 년 간 개간 자체가 힘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인간들은 그걸 해냈다.
수인족이라는 신체능력이 강인한 종족을 노예로 부리고, 마법이라는 인지를 뛰어넘은 힘을 행사한 끝에 이룩해낸 쾌거였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선 다시 마물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황제 서거와 맞춰, 더욱더 서쪽에 있는 국가들과 교역이 끊겼단 건가.”
“예. 그래서 최근 서부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종종 돌고는 했습니다.”
황녀의 물음에 후티스는 공손히 답했다.
여러모로 서부가 생각보다 돌아가는 상황이 나쁘단 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엎친데덮친 격으로 들려오는 전염병의 이야기까지.
“·········.”
미네르바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해졌다.
‘신물이 엮인 일이라면, 뭐든 제대로 된 일일 리가 없지.’
아르카디아의 욕심으로 인해, 제국 서부가 결딴이 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얼른 가서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다만 한 가지.
아르민의 마음을 간질이는 것이 있었다.
‘탐식의 고래 때와는 달라. 이번 신물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주어진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그게 무기인지, 어떤 식으로 전염병을 퍼트리고 있는 건지.
아니, 실제로 전염병을 퍼트리고 있는 게 맞는지조차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러니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
마력열차 정거장에서 내리고 또 마차를 타고 깊숙이 서부로 들어가기를 3일.
차차 어둠이 내리고 있는 저녁 무렵.
덜컹거리는 마차의 창문 너머로 지평선 쪽에서 자그마한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마을의 이름이······. 티엔이로군요. 여기서부터 모르티엔 영지의 초입인 모양입니다.”
마차는 마을로 들어섰다.
미리 모르티엔 영주에겐 기별을 넣어놓은 만큼, 여기서 이틀 정도만 더 달리면 모르티엔 영주가 머무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어째, 마을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구먼.”
검성 지크프리트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무언가 마을의 상태가 이상했다.
인기척이라는 게 없다.
아무리 저녁때가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길거리에서 한 명의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저녁 짓는 굴뚝 연기조차도 보이질 않는 군.”
아르민의 지적에, 긴장된 분위기가 마차 안으로 타고 흘렀다.
그때였다.
“앗, 사람이에요!”
하녀 하나가 골목길 근처에 서성이는 인영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일단 길이라도 물어볼까요?”
후티스가 솔선해서 마차에서 내린 뒤,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거기, 당신은 이 마을 사람인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
귀족으로서 평민을 향해 자연스레 하대를 하며 다가가는 후티스였지만.
“잠깐, 후티스! 물러나라! 그 놈은 인간이 아니다!”
“······네?”
검성의 외침에 후티스가 멍하니 돌아본 순간.
– ♪~♬~
어디선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이어.
– 그어어어!
서성이던 인영이 후티스를 덮쳐들었다.
“으아악?!”
‘폭발, 속성은 바람.’
따악.
아르민이 손가락을 튕기자, 자연스러운 바람이 불어오며 후티스를 밀어내고 덮쳐드는 좀비 같은 자를 단숨에 터트렸다.
콰아앙!
피륙이 튄다.
새빨간 살점이 마차까지 날아와 철퍼덕 소리를 내며 달라붙는 순간.
“······아.”
미네르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야 말았다.
이런 상황만큼은 아무리 황녀라고 해도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리라.
“황녀님!”
하녀가 황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감싸는 걸 곁눈질로 지켜보면서.
“방금 그건?”
“마법입니다. 그보다 놈들의 숫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검성의 질문에 아르민이 답했다.
여기저기서 ‘그어어어’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숫자는 어림잡아 다섯, 아니, 여섯. 아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마을에 좀비라고? 대체 왜?’
게다가 여전히 귓가를 간질이는 이 피아노 선율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대처해야 하나?
좀비 전부를 불태우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것들이 신물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있는지 당장의 정보가 없는 탓이다.
그렇게 아르민이 약 1초 정도의 시간을 고민했을 무렵.
화르륵.
– 그어어어어!!
좀비들의 괴성과 함께, 골목 한쪽에서부터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 와아아아!!
– 놈들을 떼어내라!
– 마차를 지켜!
그건 갑옷을 걸친 자들이었다.
제국의 4대 기사단만큼 강인해보이진 않지만, 나름 절도 잇는 동작으로, 그들은 좀비들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그리고.
“무사하십니까?! 황녀님!”
말을 타고 마차로 다가온 중년 남자가 있었다.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가진 남자는 이렇게 외쳤다.
“저 카모쉬 모르티엔 자작! 황녀님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난데없이 알로스린 대공의 따까리가 등장했다.
< 제56장 – 서쪽으로 (1) > 끝
ⓒ 뫄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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